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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마18:8-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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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 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18장 8, 9절: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손 네 발이 범죄하면 찍어내어 버려라’
그것도 양쪽 다 찍는 것이 아니고 한쪽씩입니다. 아까는 가르치는 자의 입장에서였는데 지금은 자기에게 향해져 있습니다.
우리 인간들을 보통 보면 다른 사람이 죄를 지으면 살인이 일어날 것처럼 ‘죽일 놈, 살릴 놈’ 하는데 자기가 죄를 지으면 자기를 변호하고, 자기 죄를 감추고, 자기를 얼마나 용서를 잘 해 주는지? 또 자기는 신앙 면에서 보면 용서 못할 큰 죄인임에도 다른 사람이 별 것 아닌 죄를 지었는데도 지옥갈 죄처럼 야단을 치는 것도 있고. 우리가 자기를 가만히 살펴보면 자기가 큰 모순덩어리인 것을 분명히 다 발견을 할 수가 있습니다.
‘만일 네 손과 발이 범죄하면 찍어내어 버려라’
우리의 몸은 성령님이 거하는 전이요, 손과 발은 거룩한 일을 이루어 나가는 의의 도구입니다. 그런데 손과 발로 죄를 짓는 자가 많습니다. 손으로는 훔치고 뺏고 나쁜 것을 주고 두들겨 패고 글로 써서 죄를 짓고 주고받다가 걸려들고.
또 손을 사역적으로 보면 손은 일하는 손이요, 일을 잘 하면 역사가 이루어지고, 역사가 이루어지느니 만큼 그 사람은 세력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손은 일이요 역사요 세력을 의미합니다.
두 손을 인간 자기가 자기 마음대로 써서 어떤 역사를 할 수 있습니다. 목적적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놓고 가느냐, 세상의 역사를 이루어 놓고 가느냐? 목적적으로 동시에 두 가지는 안 됩니다. 한 가지 만인데 어느 쪽을 자를 것이냐? 말하자면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넘어지게 하는 쪽이 어느 쪽 사역이냐? 그 쪽 사역을 자르라는 말입니다.
우리의 손은 주는 사역인데 자타에게 천국이 이루어지는 성화구원의 사역입니다. 이 사역이 아니면 자르라는 것입니다. 자를 수 없을까? 자를 수 있는 것입니다. 두 손이 성화구원으로만 나가서 건강한 몸으로 안 잘리고 영생에 들어만 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게 아니고 한 손의 역사가 세상 쪽이 되어 가지고 나가며 안 자르고 둔다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겠느냐?
‘네 발이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발로서 짓는 죄도 많습니다. 발길로 걷어차는 것, 못 갈 데로 가는 것, 바로 가지 않고 비뚤비뚤 가다가 그 무엇에 부딪히고 빠지고.
발은 걷는 것, 가는 것인데 신앙 면으로 보면 진리신앙 노선의 발걸음이 있고, 세상신앙 노선의 발걸음이 있습니다. 양쪽으로 걸을 수는 없습니다. 그 어느 한쪽 노선으로 가는 발은 끊고 남은 한쪽 노선으로 가야 합니다. 성도 자기를 하나님 앞에서 넘어지게 하는 세상노선을 잘라야 합니다. 성화구원을 이루지 못하게 하고 넓은 길 사망 길로 가게 하는 그 발은 찍어야 합니다. 알면서 그냥 두던, 몰라서 그냥 두던 그냥 두게 되면 영원한 불맛을 보게 됩니다.
‘네 눈이 범죄케 하거든 빼어 버리라’
눈으로 짓는 죄도 많습니다. 눈으로 보고 탐하는 것, 못 볼 것을 보는 것.
신앙으로 보면 눈이 보는 방향이 있습니다. 신령세계인 천국을 보느냐, 불타질 세상을 보느냐? 자기가 어느 쪽을 목적으로 하고 신앙하며 살아가고 있느냐? 만일 세상으로 보는 눈이 자기의 신앙목적이 되어 있다면 그 쪽 눈은 뽑아야 합니다. 뽑지 않고 있다가는 영원한 불맛을 이 땅에서 보고 가게 됩니다.
손과 발과 눈이 자기를 넘어뜨리게 해도 그냥 두면 안 되느냐? 안 됩니다. 자기가 감염되어 그 독이 올라 자기가 죽습니다. 예를 들면 손과 발을 독사에 물려 그대로 두어도 되지? 손과 발끝에 못이 찔렸다 했을 때 그대로 두면 안 될까? 독이 올라오는데!
‘손과 발과 눈을 찍고 뽑아라’
자극적이고 끔찍한 말입니다. 죄가 얼마나 무서운 건지, 죽음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자극을 주어서까지라도 온전한 성화구원의 영생으로 들어가게 하고자 함입니다.
우리가 신체에 독이 올라오는데 사전에 찍지 못해 죽는 것도 있는데 오늘날 자기가 깨닫고 보니 ‘세상신앙의 노선을 탔구나, 잘못 믿어 왔구나’ 하는 것이 있다면 그 쪽으로는 찍고 잘라야지! 찍고 자르기 전에는 자기는 진리신앙 노선으로 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안 찍고 안 자르고 적당하게 될 수는 없느냐? 주님보고 ‘우리 적당히 타협할 수 없습니까’ 하고 물으면? 찍고 자르라고 하지! 우리 인간은 인격을 가졌고 도덕성이 있고 오각의 오감성을 가졌고 가치 판단 평가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인데 우리에게 이런 특수성이 부여된 것은 죄다 하는 것은 즉시 찍어내 버리고 영생을 택하여 가는 면에 써먹으라고 주신 것이 아니겠느냐?
일반도덕성적인 면에서 손과 발과 눈이 죄를 지은 것은 잘못했다고 용서해 달라고 회개는 잘 하는데 신앙 면에서 세상 임시성적 종교적 사역적으로 나가는 그 손과 발과 눈은 찍고 자르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그런 것들을 죄로 여기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나름대로 자기는 성경을 가지고 믿음으로 한다고 하기 때문에 회개를 못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말씀 진리이치를 깨닫게 하는 것은, 사람 만들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온전의 인격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일이요, 이것이 아닌 부흥의 목적으로 사람의 수에다, 그리고 건물도 크게 짓고, 그리고 종을 많이 배출하고,(종이라는 질적 본질적 실력은 없고) 신학교를 졸업시켜서 내보내는 뭐 그런 사역으로 나가는 것은 하나님의 본질이 없는 하나의 종교적 사역으로서 여기서 어떤 문제들이 발생이 되리라 하는 것이 염려가 되는 데도 그 면에는 별로 신경이 안 쓰이고 그렇게라도 남 먼저 많이 하면 주님께 영광이라고 생각이 되니까 그 면을 찍고 자르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이방종교적인 난장판 상태를 한국의 교회들이, 신학교들이 책임을 지느냐? 서로가 내가 안 그랬다고 할 테지!
개인이나 교회나 가정이나 신학교나 찍으라고 할 때에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다. 찍지 않고 자르지 않고 그대로 나간다면 조용할까?
18장 10절: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소자 중 하나를 업신여기지 말라’
이 소자를 우리가 기독교 일반적으로 한 번 생각을 해 봅시다! 글자 그대로 말입니다. 소자는 어린아이요, 어른을 향해 자라 가는 것입니다. 키도 자라고 인격도 자라고 자라 갑니다.
그런데 누구처럼 자라라고 예수님께서 어린아이를 제자들 앞에다 두었느냐?
세상 어느 배우처럼?
세상 어느 가수처럼?
세상 어느 배구 야구 축구선수처럼 키우라고 하는 것이냐, 아니면 제자들 자기들 모습처럼 키우라고 하는 것이냐, 아니면 예수님처럼 온전자로 키우라고 하는 것이냐?
어린아이는 자라면서 무엇이든지 배우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깊이 생각해야 할 문제입니다.
어린아이가 장사꾼을 만나면 장사를 배우게 되고,
농사를 짓는 사람을 만나면 농사를 배우게 되고,
정치를 하는 사람을 만나면 정치를 배우게 되고,
기술자를 만나면 기술을 배우게 되고,
악한 사람을 만나면 악한 것을 배우게 됩니다.
이 일반이치를 무시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이가 자라면서 사는 것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제는 아이의 인격이 문제인 것입니다. 사람의 인격에 대해서는 생각하는 사람들은 참 드뭅니다. 사람들은 거의가 다 ‘무엇을 배우고 익혀야 잘 먹고 잘 살다가 가느냐’ 이것뿐입니다. 사람의 인격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그래서 세상이라는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인간이란 무엇이며 무엇을 위해서 살다가 가는 것이 인간인지 잘 모르고 삽니다.
기술을 많이 가졌기 때문에 인격자냐?
장사를 잘 하기 때문에 인격자냐?
정치를 잘 하기 때문에 인격자냐?
절대로 같은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는 아무리 ‘내로라’ 하고 명예 영광과 부요를 가졌다 하더라도 비인격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자기가 인격자가 되어 가치 판단과 평가성을 영원히 후회없이 내리고 사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여기서 신앙적인 면으로 생각해 봅시다. 소자란 진리의 하나님말씀을 붙잡고 하나님의 온전을 향한 소원 목적을 품고 주님처럼 닮아 가는 모든 성도들을 말함입니다. 이런 겸손한 자들은 어린아이가 자라며 어른이 되듯이 영적 기능과 지능 면에서 탁월하고 신적 도덕성이 예수 그리스도처럼 성장을 한다는 말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잘 살아도 주님의 온전한 인격으로 닮고 자란 것이 없으면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사람이 사람의 가치를 모르면 어떻게 사람을 가르칠 수가 있겠느냐?
‘그에게는 천사들이 항상 내 아버지의 얼굴을 뵈옵는다’
진리의 신앙노선에서 영원히 존영자로 자랄 수 있는 소자를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속화된 종교지도자들은 외부적 외모적 부피 큰 것 덩어리 큰 것 불에 타지고 사라질 것 바람불면 날아갈 것들을 가지고 사람을 깔보고 무시하고 비웃고 멸시하고 깔고 뭉개기를 잘 합니다. 이것은 다 사람이 덜 되어서 그 모양입니다. 소자를 위해서 천사들이 항상 아버지의 얼굴을 뵈옵는데, 주님도 그 소자를 깔보지 않는데 하찮은 우리 인간들이 어떻게 그 소자를 깔보겠느냐?
천사들이 수종들고 있습니다. 그 증거가 무엇이냐? 항상 자라고 있다는게 증거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이면적으로 자라지 않는 것입니다. 깨달음이 자꾸 되어 가는 자는 소자요, 천사가 수종들고 있는 증거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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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신앙생활을 하려면 인격자이신 하나님의 가장 깊은 심원인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 당신의 애성에서 발로된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따라 신앙을 해야만 됩니다. 이래야 기독교 본질에서 이탈하지 않고 가장 효율적 적중적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덧입을 수 있고, 성도 각자가 이 땅에서 이렇게 덧입은 하나님의 성품의 양에 따라 장차 천국에서의 누림에 차등이 생기게 됨을 성경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통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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