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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들에서 배불리 먹다

마태복음 정용섭 목사............... 조회 수 352 추천 수 0 2017.10.17 23: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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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14:13-21 
설교자 : 정용섭 목사 
참고 : http://dabia.net/xe/94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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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들에서 배불리 먹다

마 14:13-21, 성령강림후 9주, 2017년 8월6일

 

예수께서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사 따로 빈 들에 가시니 무리가 듣고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따라간지라 14.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자를 고쳐 주시니라 15.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 16.예수께서 이르시되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17.제자들이 이르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니이다 18.이르시되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하시고 19.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20.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21.먹은 사람은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오병이어 이야기


오늘 설교 본문인 마 14:13-21에 나오는 ‘오병이어’ 이야기는 네 복음서에 다 나옵니다. 초기 기독교에 잘 알려진 이야기라는 뜻입니다. 빵 다섯 덩어리와 생선 두 마리로 여자와 아이들을 제외 하고 성년 남자만 계산해서 5천명이 배불리 먹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았다고 하니, 이런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초기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좋아했을지, 눈에 선합니다. 거의 비슷한 이야기가 15장에 반복해서 나옵니다. 전반적인 구조는 동일한데 세부 사항에서만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빵이 일곱 덩이이고, 생선은 두어 마리입니다. 그리고 남은 것이 일곱 광주리이고, 배불리 먹은 사람이 여자와 아이들을 빼고 4천명이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제 2천 년 전으로 돌아가서 그 당시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조금 더 자세히 확인해보겠습니다.


마 14:13절은 ‘예수께서 들으시고...’라는 문장으로 시작됩니다. 예수께서 들으신 소식은 세례 요한이 헤롯에 의해서 참수형을 당한 사건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에게 세례를 베푼 인물입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가 선포한 하나님 나라도 세례 요한이 먼저 선포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을 여자가 낳은 자 중에서 가장 큰 인물이라고 칭찬한 적이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서로에게 정신적으로 큰 힘이 되었을 겁니다. 세례 요한의 죽음은 예수님에게도 충격적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님은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건너 한적인 빈 들로 가셨다고 합니다. 그 소문을 듣고 사람들이 그곳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예수님은 몰려든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셨으며 그들 중의 병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 이런 일들은 예수님이 평소에 늘 하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는 중에 날이 저물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기도 하고 저녁밥을 준비할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상황이 여의치 않았습니다. 15절 말씀은 그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이곳은 빈 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서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

 

예수님과 함께 했으니 행복한 시간이었겠지만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이제 끼니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습니다. 빈 들의 이런 상황을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요? 몇 가지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좋으니까 한 끼는 굶어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일반 대중들에게는 설득이 안 됩니다. 금식 운운했다가는 지금까지 받은 은혜를 다 까먹을지도 모릅니다. 가까운 마을에 가서 먹을 걸 구해오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이것도 비현실적인 방법입니다. 거기 모인 사람의 숫자가 너무 많습니다. 세 번째 방법을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제시했습니다. 사람들을 해산시키는 겁니다. 각자 집으로 가든지 아니면 마을로 들어가서 각자 끼니를 해결하게 하는 겁니다. 이게 가장 현실성 있는 제안입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의 제안에 동의할 것으로 예상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씀을 제자들에게 하십니다. 사람들을 마을에 들어가게 할 것 없이 제자들이 직접 먹을 것을 주라는 겁니다. 이건 말이 안 됩니다. 제자들은 공동생활을 했으니까 자신들의 먹을거리를 평소에 어느 정도 비축하고 있었겠지만, 그것으로 거기 모인 사람들을 먹일 수는 없습니다. 제자들 중에서는 뒤에서 헛웃음을 켜는 이들도 있었을 겁니다. 예수님이 지금 농담하시는지, 아니면 우리의 대처능력을 시험하시는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고 말입니다. 병행구인 막 6:37절은 제자들의 절박한 심정을 다음과 같이 강조합니다.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 이백 데나리온은 요즘 가치로 바꾸면 2천만 원 정도입니다. 그런 돈이 제자들에게 없을 뿐만 아니라 지금 이 시간에 그런 정도의 많은 먹을거리를 구입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제자들은 ‘우리에게 있는 것은 빵 다섯 덩어리와 생선 두 마리뿐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상황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발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것을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거기 모인 사람들을 풀밭에 앉게 했습니다. 빵 다섯 개와 생선 두 마리를 손에 들고 축사한 뒤에 제자들로 하여금 그걸 사람들에게 나눠주게 했습니다. 제자들은 그 말씀을 따랐습니다. 그러자 거기 모인 사람들이 배불리 먹었고, 남은 게 열두 바구니에 찼습니다. 거기 모인 사람은 여자들과 아이들을 빼고도 5천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여자들과 아이들까지 합하면 최소한 1만 명은 넘었을 겁니다.

 

오병이어 사건에 대한 해석


이러 일이 실제로 일어난 것일까요? 이게 가능할 일일까요? 믿기 힘들 겁니다. 우리교회 초등부 어린이들도 이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할 겁니다. 당연한 의심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어정쩡한 입장을 보입니다. 성경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으니까 그걸 믿지 못하겠다고 대놓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예수님은 장애인을 고치거나 심지어 죽었던 사람을 살리기도 했고, 물을 포도주로 만들기도 했었으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이것을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라고 믿기도 쉽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자연과학의 원리에 완전히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충 그러려니 하거나, 여기에는 어떤 다른 의미가 있겠거니 하고 판단을 유보합니다. 설교자로서 저도 이것의 사실성 여부를 단정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그것의 신앙적 의미만 말씀드릴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많은 설교자들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객관적인 사실로 전제한 채 예수님께서 우리의 삶도 그런 기적으로 채워주실 줄로 믿으라고 큰 소리를 치고 있기 때문에 저는 진리의 차원에서라도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빵 다섯 덩어리와 생선 두 마리가 자꾸 늘어나는 일은 일어날 수도 없고, 일어나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의 창조 원리에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원리에 따르면, 그것은 물리학이 가리키고 있는 것인데, 빵이 만들어지는 순서는 다음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밀이 들판에서 수개월 동안 자라서 가루로 만들어져야 합니다. 빵 만드는 사람이 밀가루에 물을 붓고 반죽을 만든 다음, 필요에 따라서 효소를 넣고 발효시켜서 구워야 합니다. 이런 과정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런 과정 없이 한 덩이의 빵을 반으로 떼어내는 바로 순간에 그 빵이 다시 원래의 온전한 덩어리로 늘어나는 일은 없습니다. 그런 것은 사람의 눈을 속이는 마술에 불과합니다. 여기서 다른 주장이 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니까 빵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건너뛸 수 있는 거 아니냐, 하고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한 세계의 물리 원칙에 자신을 제한시키십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을 구원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강도의 칼을 순식간에 꽃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그런 건 믿음이 아니라 오히려 불신앙입니다. 칼 바르트는 『교의학 개요』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혹시 하나님께서 2×2=5와 같은 어떤 것을 만드실 수 있는지와 같은 모든 유치한 질문들은 무의미하다.”


그렇다면 오병이어가 픽션이라거나, 좋게 봐서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뜻일까요? 성경은 선의라고 하더라도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거짓말처럼 보이는 이유는 우리가 당시 사람들의 글쓰기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는 이런 방식으로 글을 썼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출애굽 당시에 하나님이 홍해를 갈라서 마른 땅처럼 건널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엘리야는 죽지 않고 불 수레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고대인들에게 점성술은 첨단 과학이었습니다. 이런 것들이 고대에는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오병이어 사건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입니다. 그 이야기에는 그들의 신앙적인 진정성이 담겨 있습니다. 선의라 하더라도 거짓말은 전혀 개입될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병이어 당시에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그걸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음과 같이 몇 가지 추정만 가능합니다.


1) 빵과 생선이 실제로 마술처럼 늘어난 게 아니라 거기 모인 모든 사람들이 각각 자기가 준비해온 것을 내어놓고 함께 먹은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예수님이 빵과 생선을 손에 들고 하늘을 쳐다보면서 축사하는 순간에 사람들이 크게 감동 받은 겁니다. 병행구인 요 6:9절에 따르면 최초로 빵과 생선을 자발적으로 내어놓은 이가 한 어린이었습니다. 자기 먹을거리를 내어놓은 어린아이의 행동에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일리가 있습니다. 이와 비슷한 일들은 일상에서도 자주 일어납니다. 어떤 이들의 희생적인 행동을 보면 전염되는 게 사람의 일반적인 심리입니다.


2) 거기 모인 남자만 해서 5천 명이 되는 사람들이 실제로 배불리 먹었다기보다는 영적으로 배가 부른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아무리 많이 먹어도 허기를 느끼는 경우가 있고, 배가 고파도 포만감을 느끼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예수님과 함께 한다는 사실에서 거기 모인 사람들이 다 영적으로 배가 불렀다고 느끼는 건 잘못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이후 광야에서 40년을 지내면서 먹은 것은 만나와 메추라기입니다. 그런 먹을거리는 별로 만족스러운 게 아닙니다. 굶어죽지 않는 수준입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광야에서 내려주신 만나와 메추라기를 가장 큰 은총으로 여겼습니다.


3) 오병이어 이야기는 초기 기독교의 성찬예식을 상징하는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기독교 성찬예식의 원조인 예수님의 유월절 만찬의식은 마 26:17-29절에 나옵니다. 26절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오늘 본문인 마 14:19절에서 행하신 의식과 비슷합니다. 요한복음 기자는 오병이어 이야기를 전한 뒤에 예수님의 말씀을 이렇게 전합니다.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니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오늘 우리의 성찬식에서도 빵과 포도주를 예수님의 몸과 살이라고 믿는 거와 같습니다.

 

놀라운 일


이런 세 가지 해석보다는 갈릴리 호수 건너편 빈 들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을 때 어떤 일이 실제로 일어났는지가 여전히 궁금하다고 여기는 분들이 여전히 계실 겁니다. 그걸 최종적으로 확실하게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그 이야기를 통해서 마태복음 기자가 우리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기자의 관심은 예수님을 통해서 자신들에게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사람들이 예상할 수 없는 크고 놀라운 일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그들은 세상에서 맛볼 수 없는 생명을 경험한 것입니다. 그래서 날이 저물고 배고프고 빈 들과 같은 세상을 살아가지만 모두 배부르다고 외칠 수 있었습니다. 오병이어 이야기는 초기 기독교인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면서 감격스러운 경험을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 감격스러운 경험을 아는 게 중요합니다. 그럴 때 오늘 우리도 여기서 그런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번 설교를 준비하면서 본문에서 새로운 사실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평소에 수없이 접했던 이야기이고, 그 본문으로 수없이 설교했지만 이번에는 전혀 새로운 관점이 눈에 보인 겁니다. 그것은 오병이어가 바로 초기 기독교인들을 가리킬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병이어가 하찮은 먹을거리인 것처럼 초기 기독교인들도 세상의 권력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부와 세리 등으로 구성된 열두 제자들은 물론이고 그 외의 추종자들도 내세울 게 없었습니다. 오병이어가 예수의 손에 들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처럼 초기 기독교인들도 예수의 제자가 되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를 통해서 무엇이 생명인지를 정확하게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로 인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그 짧은 시간에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사실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오병이어가 말하고 있는 참된 기적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자신의 삶과 세상을 너무 편협한 시각으로만 바라보기 때문에 오병이어와 같은 기적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자신의 삶도 형편없이 축소되어 있습니다. 빵 다섯 덩어리와 생선 두 마리만 들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사람과 같습니다. 우리의 현재 상황이 이처럼 초라한 먹을거리에 불과할지 몰라도 여기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숨어 있습니다. 매일의 삶이 초라한 것처럼 보여도 거기에는 하나님 나라가 숨어 있습니다. 오병이어로 1만 명이 먹고도 남는 거와 같은 놀라운 일들이 여러분에게서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런 놀라운 일들이 가정에서도 가능하고, 교회에서도 가능하면, 여러분의 직장에서도 가능할 겁니다. 무조건 사람들에게 착하게 대하고 여러분이 희생적이어야 한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때로는 투쟁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기적을 경험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예수의 제자가 됨으로써, 즉 그의 영혼에 사로잡힘으로써 자신과 세상을 전혀 새롭게 받아들이는 영적 통찰력입니다.


그렇습니다. 소박하고 초라한 먹을거리가 수많은 사람들을 배불리게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영적 상상력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으로의 변혁을 위한 과감한 상상력 말입니다. 기업가, 경제인, 정치인, 교사, 노동자, 주부로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자기가 살고 있는 그 현장에서 모두가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세상이 실현될 수 있는 거룩한 꿈을 꾸어야 합니다. 지금 정부는 부동산 투기와 소득 불균형을 극복하기 위해서 여러 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일 년 만에 아파트 투기로 다른 사람의 연봉에 해당되는 소득을 올렸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이건 하나님이 원하시는 정의로운 세상이 아닙니다. 이런 방식으로 세상이 돌아가면 결국 빈부격차는 심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모두가 배부른 세상은 점점 요원해집니다. 남북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함께 배부를 수 있는 길에 대한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병이어는 마술이 아닙니다. 창조 원리인 물리 원칙까지 허무는 하나님의 돌발적인 개입도 아닙니다. 전적으로 새로운 삶으로의 변혁을 꿈꾸는 사람들의 거룩한 상상력입니다. 이런 사람들에 의해서 하나님이 창조한 세상은 새로워질 것이며, 하나님 나라에 가까워질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일에 증인으로 나선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개인의 삶과 교회에서, 더 나가서 세상에서 오병이어의 놀라운 능력이 현실화될 수 있도록,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여러분을 통해서 그런 놀라운 일을 행하실 수도 있도록 최선을 다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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