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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출처 : | http://cafe.daum.net/peterhan/4M8S/5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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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동안 하염없이 내리는 가을비를 바라보면서 마음까지 내린다. 공기도 서늘하고 하늘은 더 깊어지면서 나무들은 겨울을 대비하느라 소리 없이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그들의 앙상함을 보는 순간 이제 정말로 가을의 끝자락이 온 몸으로 체감되면서, 서늘한 바람만큼 마음까지 무겁지 않았던 것은 가슴에 새겨진 사랑은 쓸쓸함과 안타까움으로 교차되었기 때문이다.
가을이 되면 싸늘한 공기와 함께 떨어지는 낙엽들, 더욱 초라해지는 가로수 길, 텅 빈 들판 속에 그윽한 저녁노을 등 텅 비어버린 정경은 상실의 운명을 닮았기에 외로움은 더욱 짙어져 누구라도 시 주인공이 되곤 한다. 우리는 서로 다른 출발점을 떠나 다른 길을 가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삶의 목적에 의미를 갖게 된다. 물론 만남이 동행이 될 순 없지만 적어도 동행에는 사랑과 기회, 용서 그리고 기다림이 있기에 그런 만남을 가을엔 더 꿈꿔본다. 인간은 혼자 살수 없기에 사막이든 복잡한 시내든 상관없이 떠날 사람은 떠나고 남을 사람은 어떤 처지가운데서도 남는다.
한 여름에 갑자기 내리는 소낙비가 지나는 줄 알고 처마 밑에 피해있었으나 폭풍우로 돌변하여 세상을 다 헤집고 지나고 서야 멈추는 것을 보고, 만사에 때가 있음을 알기에 떠나는 계절, 저무는 노을, 힘겨운 삶마저도 연약한 내가 어찌하리. 흐르는 것이 삶이었던가.
저 강물도 저 바람도 저 구름도 그리고 나도 흘러가는 것이 인생이기에 아픔 속에서도 나그네 심정으로 가고 있지만 함께 할 수 없음에 가슴시릴 뿐이다. 늘 만나고 늘 같이 일하고 늘 동행하고 싶어도 낙엽 빗질 소리에 가을이 달아나듯, 나를 떠나는 사람들을 어쩔 수 없다고 하나 그들에 대한 그리움은 왜 오랫동안 남아있을까.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얼마 전에 책에서 발견했다.
얼마 전엔 서점에서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산문집이 눈에 들어왔다. 젊은 시인은 사고로 누나를 잃은 후 죽음과 삶 그리고 사랑과 인간관계 등 자신의 생각들을 써내려갔다. 특별히 외로움은 타인을 통해서 고독은 자신과의 관계에서 비롯된다는 그의 주장에 정신이 번쩍 났다.
나는 그동안 고독이나 외로움들은 무조건 타인과의 관계에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해 왔지 정작 문제 자신에 대해선 소홀했던 것 같았다. 이제 보니 타인 속에서 느껴지는 외로움보다는 내가 나 자신을 돌볼 여유가 없었기에 고독했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이는 고독보다는 고독의 감정 속에 살아오므로 외로움이 더해졌기에 외로움을 해소키 위해 다른 사람보다 내가 나를 만나야 고독이 사라지기에 이 가을에 자신을 좀 더 깊이 만나야 겨울을 맞이할 것 같다.
인생의 하프라인을 한참 지났음에도 아직까지도 내가 나를 알아주지 않는데 타인이 자신을 알아주길 원하고 있으니, 여전히 고독으로 물마시고 외로움으로 옷 입을 수밖에 없었으리라. 폴 틸리히는 ‘고독이란 혼자 있는 즐거움이요 외로움은 혼자 있는 고통‘이라고 했다. 홀로 자신을 만나고 홀로 자신과 통하므로 홀로 자신의 한계를 통감하면서 비로써 자신을 알아가면서 외로움이 두렵지 않게 된다. 어리석은 인간은 사랑이란 미명하에 행했던 일들이 오히려 미움 받게 했지만, 박준의 글대로 시간에게 용서받게 된다. 떠나야 돌아 올 수 있다고 나를 떠나야 원리로 돌아가면서 묶인 것들이 풀려지기에 시간에게 용서함을 받게 된다.
누군가를 만나 사랑하게 되면 우리는 상대를 알게 되는 순간 동시에 또 모르는 부분이 생겨난다. 안다는 것이 아는 것이 아니다. 나도 나를 모르는데 내가 어떻게 타인을 알겠는가. 다만 나를 이겨낸 만큼 혼자 있는 즐거움을 찾게 되면서, 타인에 대한 이해보다는 타인에 대한 적응력이 생겨나면서, 그들도 내 삶의 일부분으로 여겨 가을이 지나가도 겨울이 다가와도 고독이나 외로움에 끌려 다니질 않게 된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서 소쩍새도 피나게 울어대었고 천둥도 몸부림치며 울었고 밤새 내린 무서리에도 꿋꿋하게 견뎌냈다고 하는데, 국화꽃과 비할 수 없는 내게도 삶의 결실을 위해 수없는 진통 같은 고독과 외로움이 있어야 하는 것은 세상엔 그냥 얻어지는 위대함이 없기 때문이다.
자연은 평소 인간에게 적잖은 감동을 주는데 그 풍성함 속에서 가을엔 앙상함을 드러낸 모습을 통해 보잘 것 없는 자신을 보며, 이 가을에 누군가와 함께 걷고 싶지만 아무도 함께 걸어 줄 사람이 곁에 없을지라도 길 떠나는 나그네 심정으로 홀로 그 길을 갈 수 있는 것은 자신을 만났기에, 누구와도 적막한 숲길이든 시끌벅적한 카페든 상관이 없다. 남은 시간이 너무 소중하기에 이 가을에 그냥 누구라도 걷고 싶은 것이다.
한억만 목사<경포호수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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