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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롬1:2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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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부겸 목사 |
참고 : | 복사 http://blog.naver.com/malsoom/182388691 |
2013년 3월 17일 주일설교
성경말씀 : 로마서 1장 22절~23절, 29절~31절
설교제목 : ‘진리(眞理)의 변주(變奏)’
<바울의 세계관>
바울의 세계관은 한 마디로 선악(善惡) 이분법적 세계관입니다. 하느님의 세계를 선(善)으로 상정하면서 인간의 세계를 악(惡)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하느님의 세계를 성스러움(聖)으로 전제하면서 인간의 세계를 속됨(俗)으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성속(聖俗) 이원론입니다.
그런데 과연 이런 이분법적 세계관이 진리에 합당한 사유구조(思惟構造)일까요? 글쎄요. 정말 생각을 잘해야 합니다. 특히 이런 식의 이분법적 세계관이 예수의 세계관과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요? 정말 잘 살펴봐야 합니다.
<바울에 대한 옹호>
저 역시 바울 선생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바에 대해서, 그 진의를 충분히 잘 헤아리고 있습니다. 윤리와 도덕이 땅에 떨어진 시대,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내팽개친 채, 짐승의 아귀다툼만을 벌이는 타락해져 버린 세상에 대해서 바울 선생은 중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완전한 하느님의 세계를 흠모하면서, 그 신비로운 세계로 나아가려 했을 것입니다. 그는 신령한 하느님의 산에 오르려는 구도적 열정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을 넘어서자>
그러나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어야 합니다. 들어감이 있으면 나아옴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빛으로 향하는 마음이 있는 만큼 어둠을 향하는 마음 역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속세의 사사로운 인연을 끊고 하느님의 거룩한 산을 향해서 나아가는 초발심(初發心)이 귀한 만큼 성스러운 산을 등지고 세상을 향해서 나아가는 후발심(後發心)도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밝은 세계에서 영성적 의미를 발견했다면, 인간의 어두운 세계에서도 역시 영성적 의미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 세계를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나눠서 하나를 취하고 하나를 버리는 행태가 아니라, 이곳저곳에서도 모두 하느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설교의 결론>
바람 잘날 없는 세상살이입니다. 먼지가 잦아들 날이 없는 인생살이입니다. 매일매일의 나날이 전쟁치르듯이 사는 악다구니 세상입니다. 그러나 진리의 빛은 바로 그곳에서도 광채를 뿜어내고 있습니다. 거룩한 하느님의 산에서만 진리의 빛이 영롱한 것이 아니라, 속된 인간세계의 어둠 속에서도 하느님의 빛은 변주(變奏) 되고 있는 것입니다. 영성의 사람이라면 이를 알아차려야 하고, 빛 속에서건 어둠 속에서건 진리의 현현을 만끽하면서 살아갈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설교를 마치면서>
이제 설교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오늘 설교말씀의 제목을 ‘진리(眞理)의 변주(變奏)’라고 잡아보았습니다. 오늘 이 설교말씀의 제목을 깊이 묵상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축도>
하늘의 하느님이여. 땅의 예수여. 바람의 성령이여!
이제는 우리 생명의 근원 되시는 하느님의 신비로운 사랑과
이 땅에서 진리의 세계로 진입한 예수님의 놀라운 은혜와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를 아름다운 곳으로 인도해 주시는 성령님의 은총이
우리 수도교회 교우들 머리 위에 영원토록 충만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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