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성경본문 : | 마20:20-28 |
---|---|
설교자 : | 김경형 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20장 20절~23절: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미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엇을 원하느뇨 가로되 이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저희가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가라사대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세배대의 아들들은 어부 야고보와 요한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어미가 예수님께 부탁하기를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면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해 달라고 요청을 한 것입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예수님의 심정 의사 뜻하고는 너무나 거리가 멉니다.
그러나 저러나 그들의 어미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면 수난도 받는다는 이것을 들었을까, 못 들었을까? 야고보와 요한도 열 두 제자 중에 있는 제자이니까 예수님의 수난을 들었을 텐데 예수님이 그 말씀하실 때에 두 제자와 어미는 어디 갔다가 말씀을 마치자 마자 나타났느냐?
경의를 표하면서 뭘 요청을 한 것입니다.
‘뭘 원하느냐’
사람의 심령을 다 아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럼에도 다시 물으신 것은 너무 엉뚱한 말이라 다른 제자들에게도 알리기 위한 뜻으로 다시 물으신 것입니다.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주의 나라’ 라고 할 때
첫째는, 천국처럼 들리나 지금 여기서는 이 세상나라의 개념입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면 두 아들을 좌우편에 앉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직권을 가지고 임명을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치맛바람이 여기서도 붑니다. 주님에게 높은 자리에 앉게 해 달라는 기도가 수없이 많습니다.
두 번째는, 두 아들의 어미가 천국을 염두에 두고 말을 했더라도 천국의 높은 자리는 임명제가 아닙니다. 실력제입니다.
세 번째는, 천국의 그림자인 교회도 임명제가 아니고 실력제입니다. 실력적으로 되는 걸 보고 교역자는 임명합니다.
20장 22, 23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저희가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가라사대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나의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하니까 저희가 마실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시려고 하는 잔을 저희가 알고 있을까? 알기는 무엇을 알겠느냐? 예수님이 십자가를 질 수 있는 자격은 도성인신 성육신이요, 33년의 삶 속에서 죄를 한 번도 짓지 않는 것, 사람을 병에서 자유케 하고 살려내는 것, 성화구원의 이치가 들어 있는 삶이어야 합니다. 마귀의 시험을 이기고 사망권을 정복하고 하나님께 만족을 드리는 역사입니다. 이래야 만이 하나님의 예정된 백성의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의 마시는 잔은 아무나 마신다고 되는게 아닙니다.
그들이 마실 수 있다고 한 것은 아마도 어떤 환난 고통을 받더라도, 즉 십자가에 죽는 결심을 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지시는 십자가의 고난은 그들의 생각과는 다른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은 택자의 구원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받는 고난은 택자의 구원이 아닙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고난도 하나님의 허락 하에 되는 것이지 자기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사명감으로 주의 일을 하겠습니다’ 그 말을 한다고 해서 주님이 ‘오, 그래? 시켜줄 테니 한 번 해 봐라’ 그게 아닙니다. 사명자가 될 자는 ‘내가 사명자가 되리라’ 그 생각은 없고 다만 주님의 뜻대로 사는 그것만이 평소에 들어 있습니다. 그렇게 사는 것을 보고 주님의 종으로 들어 쓰십니다. 평소에 말씀 받을 준비도 안 되어 있는 사람을 주의 종을 시켜 놓으면 참말로 주님이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사단 마귀의 사역에 휘말리기 쉽습니다.
주님의 좌우편에 앉는 것도 주님이 지명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① 이미 예정이 되었다는 말이냐?
② 예정이 안 되었다는 말이냐?
지금 우리가 생각을 할 때에
① ‘내가 사명자다’ 하며 큰 소리하는 그런 자가 앉겠느냐?
② 하나님의 말씀의 뜻대로 만들어진 자가 앉겠느냐?
③ 옛사람이 주격이 되어 십자가를 지는 그 사람이 그 자리에 앉겠느냐?
④ 항상 순생애로 성화구원을 잘 이룬 그 사람이 그 자리에 앉겠느냐?
예수님께서는 옛사람 자기 죽는 십자가를 짊어지고 따르라는 것이지 일 크게 잘 하는 그 고통의 십자가를 짊어지라는 것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십자가의 고난이라고 하는 게 이방 종교적 사상에서 나온 고난이 많습니다.
① 밥 안 먹고 며칠씩 굶기, 40일 금식기도 하기.
② 얼음물 속에서 목욕하고 눈 속에서 기도하기.
③ 무릎 꿇고 계단 오르기.
④ 소나무에 거꾸로 매달리기.
이런 것은 자학입니다. 신앙이 아닙니다.
이런 생각에서 풀리지 않으면 자기는 그런 신앙으로 죽습니다. 그렇게 죽는 것은 순교도 아니고, 악령 들린 개죽음입니다. 자기가 예수도 아니면서 원숭이처럼 예수 흉내를 내면 주님께서는 그렇게 죽게 만들어 버립니다.
20장 24절~28절: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가라사대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열 제자들이 듣고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겼습니다. 괜히 열 제자의 미움만 산 것입니다. 가만있었으면 될 터인데! 어머니의 치맛바람 때문입니다. 똑똑한 척 날뛰다가 주님으로부터 무안 당하고 열 제자들에게 미움을 받고!
그 때 뿐만이 아니고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높은 자리 올라가려고 눈이 시뻘겋습니다. 불신세상 나무랄 것도 못 됩니다.
20장 25, 26절: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가라사대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예수님께서 조용히 제자들을 불러다가 깨우칩니다.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임의로 사람을 임명하고 권세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들은 그렇지 않다’ 하시면서 큰 자가 되는 원리를 가르쳐 주십니다. ‘크고 싶으냐? 그러면 섬겨라!’ 섬기면서 실력이 커지는 것입니다. 교회를 섬기지 않고 커진 것은 문제가 큽니다. 섬기지 않고 커지려는 것은 이방인들의 마음입니다.
기독교는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바로 인도하는 것인데, 사람을 배우지 않고 사람을 가르칠 수 없고, 성경을 모르고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원칙을 벗어나면 자기는 거짓이 되어 버립니다.
사람이 배워갈 수록 귓문이 열리고 영안이 열리고 깨달음이 커지고 지혜도 생기고 마음이 넓어지고 사랑도 풍부해지고 시간봉사 물질봉사 노력 봉사하는 봉사심도 생기고 그래야지! 모든 면에서 커지려면 섬겨라! 섬기는 사람이 커진다. 안 섬기면 평생 커지지 않습니다.
열 제자들이 화를 냈습니다. 화를 내면 커지나, 작아지나? 밉단다고 골탕을 먹이면 자기가 저 밑으로 떨어져 버립니다.
섬기는 자도 자기가 커질 자리에서 섬겨야지 이용만 당할 곳에서 섬기다가 심판만 받으면 되겠느냐? 말하자면 그것은 옳은 섬김이 아니고 악한 것을 키우는 협조자요 동참자로서 심판을 당하는 것입니다. 옳은 곳에서 섬기는 자는 주님을 닮습니다. 인격이 고상하게 자라갑니다.
20장 27절: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여기서 먼저 분별할 것은 무엇을 하는데서 종이냐? 무엇을 하는 사람들이냐? 어떤 교회냐? 무엇을 하는 교회냐?
장사하는 교회냐?
춤추는 교회냐?
무당교회냐?
주님 성품 닮게 깨닫게 하는 교회냐?
교회 잘못 들어가서 망한 교인이 많습니다. 자기에게 무엇이 망하는 줄도 모르고 돌아다니는 교인도 많고, 떠돌이 종들도 많습니다.
천국에서 큰 자될 자는 지금 자기 교회에서 하나님 말씀의 이치를 잘 깨닫고, 지혜 지식이 자라고, 도덕성이 자라고, 능력성이 자라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없는 곳에서 섬기고 종노릇하는 자는 거짓적이며 이단적인 자기인 줄 알고 빨리 회개하고 돌아서야 합니다. 심판하시는 이는 주님이시요, 자기는 심판을 받을 자인 줄 알아야 합니다.
20장 28절: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누구의 일에 섬기러 왔느냐?
① 사람의 일을 섬기러 왔느냐?
② 하나님의 일을 섬기러 왔느냐?
③ 인간들이 하는 일을, 인간들의 소원 목적을 도와주러 왔느냐?
④ 죄인 인간들에게 하나님의 일이 잘 되도록 하러 왔느냐?
인간의 영을 목적으로 하고 영의 일이 잘 되어 나가도록 몸과 목숨을 다 드리고 나가는 이 일이 하나님을 섬김입니다. 잘못 깨달으면 세상사람들을 위해서 모든 궂은일을 다 도맡아서 하는 이것을 예수님께서 섬기러 왔다고 하는 뜻으로서 착각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 이라고 했는데 대속물이란 사람의 죄를 속할 수 있는 몸입니다.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인류의 대표 아담과 하와가 금하신 선악과를 먹은 후 죄가 인간에게 들어오고 사망이 된 것입니다.
아담 하와의 범죄가 왜 후손들에게 해당하느냐?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의인되게 하는 원리를 주기 위해서 입니다. 세상에는 대표적인 원리가 많습니다. 죄인을 석방시키려면 같은 죄인은 될 수 없고, 무죄인도 될 수 없고, 의를 행한 의인이라야 죄인을 석방시킬 수 있습니다.
인간이 누구 앞에 죄인이냐?
① 인간 앞이냐?
② 하나님 앞이냐?
예수님 당신의 몸과 목숨을 누구 앞에 지불이냐?
① 하나님에게냐?
② 마귀에게냐?
죄지은 사람을 누가 맡고 있느냐? 죄인을 풀어내려면 간수에게 지불이냐, 법 앞에 지불이냐?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지공법 앞에 만족을 드리는 속죄물이 된 것입니다. 성화구원 면에서 인간을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 만들기 위해 몸과 목숨, 힘과 뜻을 다하는 섬김입니다.
사망 아래서 잘 살고 잘 먹고가 문제가 아니라 인간은 죄 문제가 해결되면 기쁨이요 즐거움이요 행복이요 살맛이 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자기를 죄 문제 해결 짓고 참 자유를 주러 오셨고, 죄와 관계없이 하나님 말씀, 진리로 하나님을 닮아갈 수 있는 인간으로 살맛나게 만들어 주려고 오신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을 자기의 세상살이에다 이용을 하게 되면 이는 자기가 마귀의 종이 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계속)
*************************
성도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신앙생활을 하려면 인격자이신 하나님의 가장 깊은 심원인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 당신의 애성에서 발로된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따라 신앙을 해야만 됩니다. 이래야 기독교 본질에서 이탈하지 않고 가장 효율적 적중적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덧입을 수 있고, 성도 각자가 이 땅에서 이렇게 덧입은 하나님의 성품의 양에 따라 장차 천국에서의 누림에 차등이 생기게 됨을 성경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통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