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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히11: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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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허태수 목사 |
참고 : | 2017.5.30 춘천 성암감리교회 |
예수도 고통을 감내하고서야 구세주가 되셨다.
히11:27
요즘 제가 설교 문을 쓸 때 과거와는 다른 마음으로 씁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20살에 시작한 설교가 이제 60살, 40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설교가 최종적인 과녁을 향해 있어야 하는 거죠. 그러다 보니 처음부터 끝까지를 아우르는 언어, 모든 사건과 언어의 총합이라 할 수 있는 관점으로 읽고 해석하고 그에 준해 설교를 합니다.
수요일엔 보통 교회가 갖는 시각 밖에서 성서를 보고 있습니다. 주일엔 우리가 믿는 믿음이 세계사의 현장에서 어떻게 해석되고 살아내야 하는 문제인가를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는 중에 문득 지금까지 제가 히브리서를 본문으로 설교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는 저 뿐만이 아니라 학자들 내에서도 히브리서는 신약성서의 고아라고 알려져 있을 정도로 인기가 없습니다. 로마서와 고린도전서 다음으로 세 번째로 긴 장 절을 가지고 있기에 신약성서에서 두께로는 비중이 있는 책이지만, 그 내용이 낯 설 다는 이유로 학자들과 설교자들이 모두 기피하는 성서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서는 성차별적이고 희생을 강요하는 서신이라는 기울어진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은연중에 기피되었던 거 같습니다.
히브리서신은 16장 전체가 하나의 설교입니다. 마치 유대인출신 초대 기독교인들 공동체에게 서신기자가 긴 설교를 했다고 상상해보시면 되겠어요. 이 설교가 선포될 당시 상황은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 상황만큼, 아니 그 이상 심각했습니다. 이 공동체는 소수였습니다. 미국의 흑인이나 유색인종처럼, 한국사회 이주민들처럼 소수였습니다. 유대교를 따르는 대다수 유대인들에게 박해를 받고, 동시에 로마 제국으로부터도 박해를 받는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곧 오실 거라 믿었던 예수님은 오시지 않았고, 자고 깨면 같이 신앙 생활하던 친구들이 순교를 당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 살벌하고 두려운 상황에서 살아야 했던 공동체를 염두에 두고 이 설교가 들려진 겁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한 설교가 히브리서다 그 말입니다.
이 설교를 듣는 대부분 교인들은 아마도 자신들도 곧 박해로 인해 순교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죽을 줄 알면서도 믿음을 버리지 않고 결단하는 이들을 설교자는 위로하고 이들의 믿음을 격려하는 겁니다. 죽을 줄 알고 믿는 사람들에게 하는 격려라니, 죽음을 피하라는 것도 아니고, 죽음에 큰 보상이 있다는 것도 아닙니다. 격려라는 게 이런 겁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바탕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11:1).
히브리 서신은 그 공동체가 겪는 고민과 고통을 자신 히브리 신앙의 선배들도 겪었다고 위로를 합니다. 아브라함도 사라도, 이삭도 야곱도, 요셉도, 모세도, 라합도,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사무엘, 그리고 모든 예언자들이 이런 고생을 겪었다고, 너무나 많은 성서의 인물들을 열거하면서 위로합니다. 이 신앙의 선배들도 당신들이 바라고 소망하는 곳으로 가지도 못했고, 원하고 바라던 모든 일을 이루어내지도 못했지만, 그래도 그렇게 힘든 길을 갔다고, 그러니 우리도 갈 수 있다고 이들 공동체를 격려합니다. 그래서, 이들 모두가 “구름떼와 같이 수많은 증인”이 되어 이 공동체를 둘러싸고, 보호하고 있다고 확신을 줍니다. 그러니 보이지 않지만, 지금 보이는 현실이 너무 갑갑하고 어둡지만, 소망하는 그것을 향해 포기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고, 고통을 견뎌내고 달려가자고 절절히 외치고 있는 것이죠.
히브리서가 가르치는 게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후포모네 (?πομον?-hypomone)’라는 헬라어의 의미입니다. 소위 “인내, 감내, 저항”이라는 뜻으로 해석되는 이 단어는 구약, 신약성서 전역에 걸쳐 나오는데(시37:9,이51:5,미7:7,스3:8,마24:13,롬5:3-5), 히브리서신엔 우리가 본문으로 삼은 11장 27절에 나옵니다. 히브리서 가지는 모세를 예로 들면서 “그는 보이지 않는 그 분을 마치 보는 듯이 바라보면서 견디어 냈습니다.”라고 합니다. 이때 그 ‘견디어 내다’가 바로 ‘후포모네’입니다. 즉, 후포모네는 이집트의 파라오가 모세에게 고통을 줬을 때 그것을 견딘 모세의 저항을 가리킵니다. 신약성서에서 후포모네는 저항의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저항과 약간 의미가 다르죠? 우리가 아는 저항은 거부하려고 덤비는 것인데 이 저항은 그냥 감내해 내는 것입니다. 덤비고 싸우는 저항도 중요하죠. 그런데, 어찌 보면 노골적으로 덤비지 않고 온갖 고통을 이를 악물고 묵묵히 버텨 견디어내는 것, 이런 저항도 있습니다. 바로 이 저항을 히브리 서신이 강조하는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히브리서가 고통을 무조건 감내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아닙니다. 더 더욱 고통을 이쁘게 포장하고 정당화하는 것도 아니고요. 다만 고통을 겪을 수 밖 에 없는 상황이 온다는 것, 그 고통이 올 때 수동적으로 피하지 말고 감내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라고 격려하는 겁니다. 예를 들면, 교우 중에 누가 아프면 목사가 찾아가서 뭐라 격려 하는가 하면 “아픔을 피하려고 하지 마시고 그냥 아프세요. 아픔을 버텨내세요.” 이런다는 겁니다. 히브리서가 이런 내용이니 목사들이 설교의 본문으로 삼을 리가 있겠어요?
여기서 히브리서신이 가지고 있는 구원론 (그리스도론)을 잠시 살펴보지요. 이 서신기자가 펼치고 있는 십자가의 신학이 가히 놀랍습니다. 십자가가 구원의 상징인 것은 그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을 통해서 예수님이 변화되셨기 때문이라고 사도 바울과는 완전히 다른 주장을 펼치는 겁니다. 사도바울은 십자가 사건이 구원의 사건인 것은 그 사건이 믿는 자들을 변화시켰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갈 2:20). 그런데, 히브리서신 기자가 보기에 십자가 사건이 구원의 사건인 것은 그 사건이 예수를 변화시켰기 때문이라는 겁니다(히 5:7-10; 2:9-18). 하나님의 아들이기에 그 길을 가지 않고 피할 수 있었지만 (5:8), 예수님은 몸소 힘들게 그 길을 갔다고 히브리서신은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 고통과 죽음으로 예수님은 우리 인간, 아니 피조물 모두가 겪는 고통에 대해 죽음에 대해 철저하게 경험했다는 것입니다 (2:9; 2:17). 그래서 우리 인간과 유한한 피조물을 완전하게 이해하시고, 우리와 완전히 공감하시고, 우리를 완전하게 품어내실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5:9). 그런 점에서 예수님은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12:2)라는 겁니다. 예수님이 완전하신 건 그 분이 인간의 고통을 완벽하게 공감한다는 의미입니다. 그 분이 하나님이신 건, 구세주인 것은, 그 분이 철저하게 인간의 고통, 죽음을 감내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이것이 후포모네 신앙의 역설이자, 히브리서신이 주는 가르침입니다.
세상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는 요즘 같은 세상, 살상이 난무하고, 분노가 폭력으로 자행되는 이런 세상, 이름도 알 수 없는 질병들과 바이러스가 우리가 먹는 보약보다 100배나 강력해지는 세상, 평화의 길이 도대체 안 보이는 이런 상황을 보면서, 포기하지 않고 그 모든 것을 감내하는 후포모네 신앙의 저항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살기가 너무 힘들어 한숨이 나오고, 땅이 꺼질 만큼 무거운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가야하지만, 그런 상황을 견디어 내는 신앙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 신앙은 결코 절대 희망을 버리지 말라고 우리를 인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런 고통이 (다른 이에겐 일어나도) 내겐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안일함에 후포모네 신앙은 우리에게 그런 고통의 삶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다른 이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연대하라고 격려합니다. 예수님도 우리와 함께 철저 하게 아픔과 고통을 공감하셨기에, 우리도 그를 따르는 자들로서 그렇게 하라고 격려합니다. 내가 비록 아프지 않아도, 고통을 당하고 있지 않아도, ‘아 하나님이 나만 사랑 하시는구나’하고, 요 따위로 생각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고통과 함께 하라는 겁니다. 이게 히브리 공동체에 직면한 삶의 고통에 직면한 하나님의 격려입니다.
오늘 우리도 히브리서신의 공동체에게 하셨던 하나님의 격려를 믿음으로 받고 ‘아멘’으로 화답하고 실행하며 살아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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