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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마21:23-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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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 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21장 23절~27절: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실새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나아와 가로되 네가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뇨 또 누가 이 권세를 주었느뇨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너희가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르리라 요한의 세례가 어디로서 왔느냐 하늘로서냐 사람에게로서냐 저희가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만일 하늘로서라 하면 어찌하여 저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요 만일 사람에게로서라 하면 모든 사람이 요한을 선지자로 여기니 백성이 무섭다 하여 예수께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가르친다고 하는 것은 성역에 관한 일을 가르치심입니다. 이것을 본 제사장과 백성들이 시비를 합니다. ‘네가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뇨? 누가 이 권세를 주었느냐?’
성전에 들어와서 장사하는 것을 둘러엎고 내 쫓았지, 불구자들을 말씀으로 고쳐주었지, 성전 안에서 천국의 말씀을 가르치고 있지. 제사장과 장로들의 권세라야 만이, 그들의 결정이라야 만이 최고인데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가만 보니까 보통 권세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무엇인가 신적인 권능이 뒤에서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겉으로 보기에는 나사렛 시골 촌뜨기요, 로마에서 공부를 한 것도 아니고, 황제의 인증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제사장과 장로들의 인증도 없는 인물이요, 잘 아는 사이도 아니고, 예수님의 뒤에 무슨 조직이나 단체나 배경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러나 하는 일에서는 신적인 능력이 풍기고, 백성들이 추앙하고 있으니 섣불리 건드릴 수는 없고 해서 시비를 하느라고 옆에서 쿡 찔러보는 것입니다.
21장 24절~27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너희가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르리라 요한의 세례가 어디로서 왔느냐 하늘로서냐 사람에게로서냐 저희가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만일 하늘로서라 하면 어찌하여 저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요 만일 사람에게로서라 하면 모든 사람이 요한을 선지자로 여기니 백성이 무섭다 하여 예수께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세례요한의 세례가 하늘로서냐, 사람에게로서냐’ 하고 예수님께서 되물었습니다. 예수님의 되묻는 질문에 그들은 난처하게 된 것입니다. 고민을 한 것입니다. ‘하늘로서라’ 하면 ‘왜 선지자의 말을 안 따랐느냐’ 할 것이고, ‘사람에게서라’ 하면 백성들에게 맞아죽을 것이고. 핍박하고 죽였으니까! 결국 나오는 말이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그들의 말은 하나님 앞에 참말로 옳지 못한 악한 대답입니다. 자기들의 양심을 속인 것이지만 그 양심을 하나님께서 왜 모르시겠느냐? 주님인들 모르시겠느냐? 우리 같으면 신앙양심이 찔려서 회개의 눈물이 바다를 이룰 턴데!
예수님 역시 그들에게 무슨 권세로, 누구의 권세로 그 일을 하는지 대답을 해 주지 않았습니다. 대답을 안 해 주었어도 그들에게 묻는 말로서 그들에게 양심적으로 대답하게 한 것이고, 입을 틀어 막아버린 것입니다.
성전 안에서는 기도할 것이요, 장사하는 집이 아닙니다. 정결해야 합니다. 장사하는 마음은 가지고 들어오지 말아야 합니다. 성전은 사람을 진리로 온전케 하는 곳이니 온전함을 받아야 합니다. 성전 안에서는 천국복음만 가르치는 곳입니다. 이것이 성역입니다.
세례요한의 세례는 물세례로서 죄씻음을 받는 표로써 이제는 다시 세상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의를 이루면서 살겠다는 결심입니다. 이것이 성역입니다. 그래서 지금 세례 받고 하나님의 의를 이루려고 노력하고, 하나님의 의를 이루면서 살고.
이 사역이 없으면 아무리 자기가 종교적 제도로 인정을 받았다 하더라도 사람들이 직분, 직책적으로 알아줄는지 모르지만 주님으로부터 인정을 못 받는 교역자가 됩니다. 주님의 인정 곧, 성역의 역사가 없는 자칭 교역자일 뿐입니다. 자칭 교역자가 무슨 일을 했겠느냐?
주님께서는 세상로마가 알아주는, 당시의 종교인들이 알아주는 명예 간판 배경 조직도 없습니다. 그것으로 인해서 올라갈 것도 아무 것도 없습니다. 또 그 줄 타고 올라가시는 주님도 아니십니다. 오직 진리권세입니다. 하나님의 권능과 능력입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가만히 보면 세상사람들이야 무엇을 알겠느냐마는 교회 안에서도 잘 나타나지 않는 하나님 앞에서 믿음이 있는 평신도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성역을 하시는데 누가 감히 세상적 종교적 귄위를 내세워 그들을 정죄할 수 있을까?
우리는 모든 교회의 활동의 배후에 어떤 권능이 역사하는지 익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령의 활동인지, 악령의 활동인지? 성역이 뭔지 모르고 정죄하기를 좋아한다면 자기가 도로 정죄를 받는 것입니다.
21장 28절~32절: 그러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뇨 한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대답하여 가로되 아버지여 가겠소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이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가로되 싫소이다 하더니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그 둘 중에 누가 아비의 뜻대로 하였느뇨 가로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저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기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종시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
마음대로 상상을 하고, 이치에 맞게 따져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한 손해를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두 아들에게 포도원에 가서 일을 하라고 시킨 것을 보면 충분히 일을 할만한 아들들입니다. 그리고 아들들은 아버지가 하는 일을 늘 보아왔던 것임이 틀림이 없습니다. 할만하니까 시켰겠지!
큰아들에게 시켰더니 대답은 ‘예’ 해 놓고는 가지 아니했고, 둘째아들에게 시켰더니 ‘싫소이다’ 하더니 그 후에 뉘우치고 포도원에 들어가서 일을 한 것입니다. 결국 큰아들은 아버지의 말씀에 불순종을 했고, 둘째아들은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을 한 셈입니다. 큰아들은 생득적 상속이 있는데 자기의 위치와 신분을 망각했습니다. 큰아들로서의 순종의 본을 보였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데 큰아들은 이스라엘로 비유가 되어 있고, 세리와 창기는 그들이 보는 죄인이요 이방인들입니다. 그렇지만 이들이 먼저 하나님의 의의 도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주님을 영접하고 하늘나라에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나라란 현재에 하나님 말씀, 진리를 받는 진리통치, 하나님의 애정권 생명권통치, 궁극적 성화구원을 이루어 가는 신앙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신앙은 아브라함의 신앙을 본받지 못하면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전통과 혈통을 내세우며 타락적인 그 알량한 자존심을 내세우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받은 것입니다.
21장 33절~41절: 다시 한 비유를 들으라 한 집주인이 포도원을 만들고 산울로 두르고 거기 즙 짜는 구유를 파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실과 때가 가까우매 그 실과를 받으려고 자기 종들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농부들이 종들을 잡아 하나는 심히 때리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로 쳤거늘 다시 다른 종들을 처음보다 많이 보내니 저희에게도 그렇게 하였는지라 후에 자기 아들을 보내며 가로되 저희가 내 아들은 공경하리라 하였더니 농부들이 그 아들을 보고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의 유업을 차지하자 하고 이에 잡아 포도원 밖에 내어쫓아 죽였느니라 그러면 포도원 주인이 올 때에 이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뇨 저희가 말하되 이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 때에 실과를 바칠 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줄지니이다
포도원 주인이 타국에 가기 전에 농부들이 원만히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애로사항이 없도록, 세를 받는데 조금도 미안하지 않게스리 다 설비를 해 주고 타국에 간 후에 세월이 지나서 수확이 된 것에서 세를 받으려고 주인이 종들을 세를 받아오라고 농부들에게 보냈더니 때리고 돌로 치고 죽이고 했습니다. 한 번만이 아니고 종들을 여러 번 보냈는데 그렇게 대우했다는 것입니다. 아들까지 보냈는데 주인의 아들까지 죽였다는 것입니다. 일을 이렇게 저질러 놓았으니 포도원 주인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지!
21장 41절: 저희가 말하되 이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 때에 실과를 바칠 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줄지니이다
악한 자들을 모두 진멸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세를 주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비유에서 역사적인 측면으로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셨고, 또 하나님의 말씀도 주셨고, 달라는 왕도 주셨고, 천군 천사들도 보내서 보호도 해 주셨고, 선지자들도 보내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지자들을 수없이 핍박을 하고 죽인 것입니다.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까지 죽인 것입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께서 구약시대는 앗수르군대와 바벨론군대를 보내어 진멸했고, 예수님 부활 승천 후에는 로마군대를 보내서 진멸을 한 것입니다.
교회적인 면으로 보면 성경도 주셨고, 종들도 주셨고, 사람도 주셨고, 성령도 주셨습니다. 물질도 주셨고, 좋은 환경도 주셨습니다. 사건도 주셨습니다. 그러나 점점 더 속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성도 개인의 신앙적인 면으로 보면 성령의 열매가 잘 맺혀지라고 성경 66권 성문계시를 완성하여 주셨고, 성령의 감화 감동도 주셨고, 자연은총도 주셨고, 특수은총도 다 주셨습니다. 성령의 열매가 얼마나 잘 맺혀졌나 알고자 하여 사건을 보내기도 하시고, 미운 사람 고운 사람을 교체시켜 만나게도 하시고, 좋은 환경 나쁜 환경을 교체시키면서 주시기도 하시고.
이렇게 하나님께서 다 나에게 보내실 때 성령의 열매가 열린 신앙과, 믿음이 좋은 사람이 된 것을 보여주지 못하고 대립과 마찰과 충돌을 일으키고, 미워하고 욕하고 주먹질하고 예수를 죽이는 자와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이 진리로 교훈적으로 오실 때에는 그래도 회개할 기회는 있지만 사건으로 오실 때에는 회개할 기회가 그 만큼 촉박하다는 것이요, 주인이신 주님이 오실 때에는 회개할 기회를 다 넘겼으니 그 인생은 끝난 것입니다. 진리의 교훈과 성령영감의 감화가 함께 올 때 얼른 얼른 자기의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야지 교만하게 있다가 기회를 놓치게 되면 성령 훼방죄로서 심판으로 넘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예정대로 주님께서 이미 만들어 놓은 것으로서 우리는 성령의 열매만 맺으면 됩니다. 교회는 인간들이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일에 수종을 드는 것이 교회입니다.
농부들이 주인의 종들을 환난 핍박을 주고 주인의 아들까지 죽인 것을 보면 그 중심사상이,
① 타락된 지식으로 한없이 교만했고,
② 자기들 스스로가 다 왕이라는 것이고,
③ 포도의 열매는 팔아먹고 자기들의 배만 채웠고,
④ 주인의 것을 빼앗으려고 했으니 강도들이고,
⑤ 주인에 대한 고마움도 없고 감사함도 없고,
이들은 인간들도 아닙니다.
농부들이 잘못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러 번 종들을 보내시고 아들까지 보내신 것을 보면 참으로 사랑이 많으신 분이시고 참으심이 많은 분이십니다.
그렇게 하심 속에는 농부들의 잘못을 용서해 주시고, 더 나아가서 포도원을 완전히 맡기실 작정이었고, 더 나아가서 주인의 아들과 같은 차원으로 올리시려는 주인으로 보여지는 것인데 참으로 어리석은 농부들입니다. 주인의 은혜도 모르고 사람 죽이기를 일삼았으니 이는 스스로가 인간 됨을 포기한 거와 같으니 죽일 수밖에!
주님의 이 물음에 우리들의 생각은? 제자들의 생각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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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신앙생활을 하려면 인격자이신 하나님의 가장 깊은 심원인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 당신의 애성에서 발로된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따라 신앙을 해야만 됩니다. 이래야 기독교 본질에서 이탈하지 않고 가장 효율적 적중적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덧입을 수 있고, 성도 각자가 이 땅에서 이렇게 덧입은 하나님의 성품의 양에 따라 장차 천국에서의 누림에 차등이 생기게 됨을 성경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통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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