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성경본문 : | 마23:23-28 |
---|---|
설교자 : | 김경형 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23장 23절: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화 있을진저! 누구에게? 외식하는 인도자들에게, 교인들에게!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
이것 전부는 식물에서 나온 향이고, 양념이라고 합니다.
성경에 보면 나무의 열매의 십일조, 곡식의 열매의 십일조가 있습니다.
열매에는 신앙열매가 있습니다. 자기 속에서 진리신앙으로 된 성령의 열매입니다. 이 신앙으로 살면서 얻어진 소득의 십일조입니다.
사실 모든 채소와 곡식과 나무의 열매들도 하나님께서 햇빛과 비와 사계절을 통해 자라게 해서 우리의 성화구원을 위해서 주신 것이니 십일조를 내지 못할 이유가 있느냐? 내지 못할 이유가 있다면 말해봐라! 자기가 수고해서 얻었다고 하는 사람은, 아까워서 벌벌 떨고 십일조를 못 한다고 인색한 마음이 들거든 하지 말라! 하나님은 그것 안 받으니까! 인색한 사람은 인색한 대로 대우해 주시고, 감사히 내는 사람은 감사한 대로 대우해 주십니다.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의는 하나님의 공의.
하나님의 옳은 것을 알게 해야 신앙생활에 판단을 잘 합니다.
인은 하나님의 적극적인 사랑과 긍휼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나옵니다.
신은 하나님께서 인간 자기에게 무엇을 할 것이며, 무엇을 바라시는지 알게 해야 그 분의 인격을 믿지 알게 하지 않으면 어떻게 믿음이 생기겠습니까?
이것을 버리면 그저 명령이요 강조입니다. 인도자가 그런 사람이 되고, 교인들은 믿음이 안 들어가니 참말로 힘들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의와 인과 신속에서 다 하라는 말입니다. 그래야 물질을 드리는 것도 자연스럽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와 인과 신으로 말미암아 나오는 믿음에서는 누구든지 토를 달지 말아라! 자기 믿음 없는 것을 한탄해야지 남 잘 하는 것을 끄집어내리지 말라! 마귀짓을 하면 자기가 시험 들고 얻어맞습니다.
23장 24절: 소경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약대는 삼키는도다
소경된 인도자가 어떤 식성을 가졌느냐?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약대는 집어삼킨답니다.
무슨 목구멍이 그런 목구멍이 있나? 이런 인도자는 소경인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부정을 저지르는 사람들을 보면 큰 직책을 가진 자들의 큰 범행은 뒷구멍으로 살살 봐주고, 힘없고 나약한 사람들이 저지른 사소한 죄는 꼬투리를 잡아 물고 늘어지곤 합니다. 그렇게 하는 걸 어떻게 보면 불의 불법을 용납 않고 철두철미하게 법을 집행하는 것처럼 보이지!
약대와 하루살이를 비교해 보면
① 크기로 말한다면 하루살이는 약대에 비해 비교도 할 수 없습니다. 비슷해야 비교가 되지! 하루살이는 없는 것 같습니다.
② 시간적으로 말한다면 하루살이는 그 날 출생했다 그 날 죽습니다. 그러나 약대는 출생해서 긴긴 시간을 삽니다. 오래 오래 갑니다.
③ 무게로 말한다면 하루살이는 무게에 달리지도 않습니다.
④ 가치적으로 따진다면 하루살이가 무슨 가치가 있나? 가치 없고 시시하고 미미합니다. 쳐주지 않는 것이다.
비유하여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약대는 삼킨다’고 하는 것은 인도자들이 하나님 앞에 하지 말아야 할 큰 부정을 저지르고 있으면서도 별 것도 아닌 지극히 작고 미미한 것을 큰 부정인 것처럼 말한다는 말입니다. 영적인 면에 관한 죄는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는 죄이고 중요한 것인데 이를 알지를 못하고 하나님 앞에 큰 비중이 아닌 것을 크게 죄악시하고 문제를 삼는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알고 보면 교회에서 교역자, 인도자가 죄가 더 클까, 교인들의 죄가 더 클까? 인도자들이 영적인 면에서 깨닫지 못한 그 죄는 영원히 가는 것입니다. 임시성에, 세상성에 속한 그 죄보다 영원성에 해당되는 그 죄가 엄청 더 큰 것인 줄 알아야 합니다. 교인들의 활동의 죄보다 깨닫지 못하게 한 죄가 더 큰 것입니다.
23장 25, 26절: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화 있을진저! 어떤 자들에게? 겉만 깨끗하게 하고 속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한 자들에게 있습니다. 이들이 누구냐 하면 외식자들입니다.
기독교의 신앙의 소경은 안을 못 보는 것이 소경이고, 겉만 보고 치장하는 것이 소경입니다. 속을 못 보니 속을 중요시 못하고 겉만 중요하게 보니 겉만 꾸미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사람들을 볼 때도 속에 인격적인 것이 많이 들어 있는 사람일수록 평범하게 보이는데, 반면에 속이 빈 사람일수록 겉을 치장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자기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사치 치장을 하는 것만큼 비어 있다는 것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요란할 록 속이 비었구나, 소리가 요란할 수록 속이 비었구나! 빈 깡통이 소리가 요란하지!
예배순서 치장이 왜 그리 많은지? 교회 안에 눈에 볼거리가 왜 그리 많은지? 신앙의 영적인 면을 모르면 치장하는 것은 자동적입니다.
신랑 신부가 결혼하고 신혼여행 가는 차 뒤에 깡통 매달고 가는 것을 보았는데 ‘오, 신랑 신부 속이 비었구나!’ 왜? ‘우리는 공중도덕성이 비었소’ 하고 본인들이 나타내었으니까!
속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 먼저 자기 안을 깨끗이 하라! 먼저 교인들의 마음속 청소부터 하라! 기독교 복음은 먼저 안부터 깨끗이 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진리로, 가치 평가적으로 안을 깨끗이 하는 것이 아닌 운동은 기독교 복음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 교역자들이 교인들로부터 세상을 구하도록 하는 것은 탐욕인 줄 알아야 합니다.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방탕은 무절제요, 무절제는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자기 속에 진리의 법이 없으니 어떻게 자기를 단속하겠습니까? 결국은 미친 짓들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먼저 자기 안을 깨끗이 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먼저 자기 자신의 안을 하나님의 온전으로 닮게 하면 밖으로 나타나는 일도 하나님 앞에서 깨끗한 일을 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역시 다른 사람에게도!
23장 27, 28절: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화 있을진저! 누구에게? 회칠한 무덤 같은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들이냐? 외식하는 자들에게 입니다.
회칠한 무덤은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지만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회칠한 무덤’
무덤은 죽은 사람 곧, 시체가 누운 곳. 시체는 생명호흡이 없는 자요, 생명활동이 없는 자요, 모든 감각성이 없는 자요, 건설이 없는 자요, 썩는 일만 하는 자요, 썩는 냄새로 병만 옮기는 자요, 병들어 죽이는 일만 하는 자요, 생명 없는 고깃덩어리입니다.
이 시체, 송장이 누운 곳을 외부에서 안을 못 보게 바깥을 회칠을 해 잘 꾸며 놨으니 사람들 눈에는 참 아름답게 보입니다. 속이 어떤 줄 모르고 ‘나도 저렇게 한 번 살아보았으면’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최고의 종교에다, 그리고 직분의 명칭에 따라 옷 입은 것이 참 아름답게 보이는 모양입니다. 특별한 종교단체들이 옷 입은 것을 보면 뭔가 달리 보이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회칠한 무덤은 비바람 불면 다 본색이 들러나기 마련입니다. 그것을 감추려면 또 회칠을 하고!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외부 모양 직책 활동이 아무리 아름답게 보여도 안에는 송장 뼈다귀들이고, 썩은 살에 온갖 벌레들, 구더기들이 살고 있습니다.
‘죽은 사람의 뼈’
아무 쓸모없는 타락적 주관성입니다. 그 잘난 고집들입니다.
‘더러운 것’
거룩하지 못한 타락적 성질 성분 성격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바꾸어지지 못한 성질들입니다. 이런 것이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23장 28절: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사람들 눈에는 그들이 활동하는 것들이 별로 하자가 없게 보입니다. 없는 사람에게 구제 잘 하지, 돈주고 밥주고 쌀주고 용돈도 주고 배워주고 하면 누가 싫어할 자가 있느냐? 구제 받는 사람이 자기는 사람 못 되어 죽어 가는데도 자기의 육을 도와주는 사람을 칭찬하지, 제 삼자들도 도와주는 사람보고 잘 한다고 그러지.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고쳐주었지 얻어먹는 버릇을 기르지는 않았습니다.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그들 스스로가 마음먹기를 ‘우리의 속에는 더러운 것이 가득하니까 이것이 안 나타나게 하려면 활동을 더 잘 해야 감쪽같이 속아 넘어갈 것이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하는 것인가? 아닙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종교지도자들이 꼭 그런 마음을 가지고 하는 것처럼 말씀을 하시니 그들이 성이 나고 분이 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그들이 안 그런 것을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인가? 그 말씀을 하신 원인을 모르면 예수님을 죽이는 일을 하게 됩니다.
온 세상 사람들은 아담이 뱀의 말을 듣고 타락된 이후 선악과를 옳게 보는 하나님을 떠난 인간지식이 하나 더 생겼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이 지식은 세상 끝 날까지 가게 되는 지식인데, 이 지식은 가치 판단 평가성을, 속을 볼 수 있는 영의 눈이 없습니다. 멀어 버렸습니다. 감겼습니다. 하나밖에 모릅니다. 겉모양, 외모의 것으로 판단을 하고 기준을 삼습니다. 정확한 판단기준이 없습니다. 다수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사람의 속을 보시는 눈을, 하나님의 법을 기준 척도로 하고 보는 지식이요, 영의 눈으로 보고 말씀하심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성문계시로 완성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하나님의 정신이요, 하나님의 사상이요, 하나님의 마음이요, 하나님의 지식이요, 이 기준 척도로 하나님의 영적 이스라엘은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가지고 사람의 속을 바꾸고 속을 고쳐나가는 지식전환은 아니하고 겉모양 외모 활동위주와 목적으로 나아가니 그렇게 나아가는 그 지식이 하나님의 기준에서 보실 때, 하나님의 법에서 볼 때는 외식이고 불법이라는 말입니다. 진리에서 볼 때 전부는 하나님의 기준 척도에서 벗어난 짓들을 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사람의 중심을 고치는 이것을 활동강조에다 쳐 바르니 회칠한 무덤 같다는 것입니다.
목적적으로 지식을 바꾸지 않는 한 지도자 인도자 자기의 외식과 불법은 하나님 앞에 여전한 것입니다. 아무리 충성봉사를 해도, 세상이 알아주는 종교적인 업적을 남겨도, 종교단체나 세상에서 감사패를 받아도 모르면 외식과 불법을 행하다가 하나님의 심판대에 오르는 것입니다. (계속)
*************************
성도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신앙생활을 하려면 인격자이신 하나님의 가장 깊은 심원인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 당신의 애성에서 발로된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따라 신앙을 해야만 됩니다. 이래야 기독교 본질에서 이탈하지 않고 가장 효율적 적중적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덧입을 수 있고, 성도 각자가 이 땅에서 이렇게 덧입은 하나님의 성품의 양에 따라 장차 천국에서의 누림에 차등이 생기게 됨을 성경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통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