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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마9:2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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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조용기 목사 |
참고 : | 2017.5.21여의도순복음교회 |
열두 해 동안이나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지니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이르시되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즉시 구원을 받으니라”(마태복음 9장 20∼22절)
인생을 살다보면 갖가지 고난을 당하게 됩니다. 그럴 때 낙심하고 절망하여 그대로 주저앉아 버려서는 안 됩니다.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소원과 꿈을 가지고 믿음으로 예수님께 나아가야 됩니다. 성경에는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한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서 운명이 달라지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여인은 병에서 낫고자 하는 뜨거운 꿈이 마음속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께 직접 나와서 안수를 받지 못하더라도 몰래 뒤로 가서 옷자락에 손만 대도 나을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소원과 꿈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갔는데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서 순식간에 열두 해를 앓던 병에서 고침을 받고 건강하게 되었습니다.
레위기 15장에 보면 혈루병에 대한 규례가 나오는데, 이 혈루병에 걸리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러 나갈 수도 없습니다. 사람이나 사물이 이 혈루병에 걸린 사람에게 접촉만 하면 부정한 상태가 되고 맙니다. 그래서 혈루병에 걸린 여인은 성전에 가서 제사를 드릴 수도 없고, 가족들이 모이는데 나갈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는 육체적인 고통도 있거니와 심리적인 고통도 말할 수 없이 컸었습니다.
12년 동안 여기 저기 의사를 찾아다니며 치료를 받아도 낫지 아니하고, 있던 재산 다 허비해버리고 물질적으로도 궁핍하게 되었습니다. 육체적 고통과 심리적 고통, 거기에 물질적 가난까지 그야말로 절대 절망에 처해 있었습니다.
1. 어느 날 다가온 고난
고통을 가져오는 것은 질병뿐만 아닙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는 삶은 가난에 의해서도 고통이 대단히 큽니다. 통계청의 최근 발표에 의하면 지금 우리나라 청년 실업이 역대 최고라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노인 빈곤율은 OECD 국가 중 1위요, OECD평균보다 4배나 높고 노인 자살률도 1위를 기록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먹고 살기가 힘든 것입니다. 때로는 삶의 어려움 때문에 희망마저 포기하고 자살과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취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2. 죽음의 문턱에 서 있는 여인
이 혈루병 앓은 여인처럼 정신적, 육체적 고통 속에 견디지 못하고 죽음 일보직전에 있었습니다. 마귀가 무자비한 공격으로 이 여인을 공격했습니다. 결국 희망도 꿈도, 믿음도 다 버리고 죽음을 기다리는 처지에 있게 된 것입니다. 모든 병의 뒤에는 마귀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냥 병들면 병들었지, 무슨 마귀가 있느냐?”라고 그러는데 성경은 모든 병은 그 배후에 마귀의 억압이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성령과 권능을 기름 붓듯 하였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며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들을 치료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귀를 쫓아내면 병도 쫓겨나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5장 8절에 보면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정복하여 지배하려고 하는 마귀의 역사가 끊임없이 있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에는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들 못살게 하는 것은 마귀가 하는 짓이지, 하나님이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좋은 것을 주시고 생명을 주신다. 그러나 마귀는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어려운 일을 겪을 때 그 배후에 도둑놈 같은 마귀가 있어서 괴롭게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병을 앓다 보면 나중에는 낫겠다는 꿈과 희망조차 잃어버리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예수님 당시에 예루살렘 한 곳에 베데스다라고 하는 연못이 있었습니다. 그 베데스다 연못 주변에는 병에 걸린 사람들과 그들의 가족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연못 물이 요동할 때 제일 먼저 그 물에 들어가는 사람은 어떤 병이든지 다 나아요. 그런 특별한 사건이 있기 때문에 병든 사람들은 물이 끓을 때 먼저 들어가기 위해서 전부 물가에 가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38년 동안 기다리고 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38년간 병 낫기를 고대했는데, 심신히 너무 약해서 직접 걸어 들어갈 수 없고, 또 주변에 자신을 물어 넣어 줄 가족들도 없는 비참한 신세였습니다. 결국 다른 사람들이 연못에 들어가는 것만 물끄러미 바라보며 부러워만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많이 고통을 당하다가 이제 낫는 것조차도 포기할 정도로 아주 절망에 처했습니다. 자기보다 늦게 온 사람들도 물속에 뛰어 들어가서 고침을 받아 나가는데, 아주 베데스다 연못가에 고참 중에 고참으로 38년 동안 있었는데 이제는 물에 뛰어 들어갈 수 있다는 자신도 다 잃어버리고 인생을 포기한 상태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루 베데스다 연못가에 와서 이 사람에게 찾아가서 그 앞에 서니까 사람들이 모여올 것 아닙니까? 예수님께서 그 사람보고 “낫고자 하느냐?”, “이 사람이 누구를 보고 희롱을 하느냐? 낫고자 아니하면 그 연못가에 38년 동안 앉아있겠냐?”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너 낫고자 하느냐?” 물었습니다. 이 사람은 말할 필요 없이 “내 낫고자 하나 물이 동할 때 나를 물속에 집어넣어줄 사람이 없어 38년 동안 이렇게 물가에서 의식주문제를 해결하고 요행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네 침상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시는 순간 순식간에 몸이 날아갈 듯이 상쾌하고 병이 나아버렸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낫고자 하느냐’ 물었냐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도와주려고 할 때 그 사람이 소원과 꿈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소원과 꿈이 있어야 하나님이 도와줄 수 있습니다.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했습니다. 꿈이 없는 백성이 되어 있으니깐 하나님이 도와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꿈을 다시 살리기 위해서 “낫고자 하느냐?” 그것을 물은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와서 기도하는 사람은 꿈이 있어야 돼요. 여러분께서 하나님께 나와서 은혜를 받고자하면 마음에 소원과 꿈이 분명하게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소원과 꿈이 없이 목적 없이 방황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이 사람은 38년 동안 베데스다 연못가에 있었으니 소망도 꿈도 다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런데 이 꿈이 없으면 망합니다. 병이 낫지 않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그 사람에게 제일 물은 질문이 “낫고자 하느냐?” 병자가 낫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물어볼 필요도 없습니다. 근데 예수께서 이렇게 질문하신 것은 38년 된 병자의 마음속에 낫겠다는 꿈과 희망을 다시 복구시켜주기 위한 일 때문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 살아있는 주변에 희망과 꿈을 잃어버린 사람이 많습니다. 하나님을 찾지도 아니하고 자기의 미래의 희망도 놓쳐버리고, 바람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사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찾아와서 뭐라고 하는지 압니까? “여의도순복음교회 한번 가자” 남편이 꾀고, 아내가 꾀고, 자식이 꾀고, 부모가 꾀고, 친구가 꾀고. “가서 설교만 들어보자” 그래서 꾐을 받아서 나온 사람이 많아요. 나는 그런 편지를 많이 받습니다. “우리 집사람이 한 번만 따라와 달라고 사정을 해서 한 번 따라 나오니 두 번이 되고, 세 번이 되고, 이제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장로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교회 나오면 마음에 소원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고 내가 소원한 꿈을 마음속에 품으면 희한한 일이 일어나거든요.
하나님이 선택한 아브라함같은 사람도 아들이 있어야 됐는데 하나님께 꿈을 갖고 나오지 않으니깐 10년을 기도를 했는데 아들을 얻지 못했습니다. 마음에 꿈을 품으면 하나님이 그 사람하고 연결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대화하는 중에 꿈을 갖지 않고 기도한 것은 헛수고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너 자손들이 하늘의 별들처럼 많게 될 것이라’고 꿈을 다시 심어주니깐 그 꿈을 받아서 가슴에 품고 기도해서 이삭 아들을 얻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예술가가 아니어서 꿈을 아름답게 그릴 수 없을지는 몰라도 자기가 소원하는 바를 마음속에 꿈 꿔야 되는 것입니다. 그 꿈을 가슴에 품고 기도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기도가 눈 깜빡할 사이에 응답 안 된다고 낙심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꿈을 마음속에 품고 하나님께 인내를 가지고 기도를 하면 하나님 만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을 하면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 올바른 신앙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심령으로 만나보아서 신앙이 뜨거워지는 것입니다.
3. 그의 옷 가에 손을 대니
이 혈루병 앓은 여인도 열두 해 동안 온갖 치료를 다 받아도 병이 안 나았어요. 견딜 수가 없는 처지에 있습니다. 사회에서 완전히 분리되어 버리고, 자기 집에 들어가 가족들을 만날 수도 없는 거지요. 격리된 외로운 곳에서 죽음의 날을 기다리고 울고 있었습니다. 절망입니다. 누가 그에게 도움을 베풀 수가 있겠습니까. 그가 친하게 지내는 친구를 만났던지, 누가 그에게 와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꿈을 심어준 것입니다.
마태복음 4장 23절 24절 보면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종교가만 되었다고 생각하면 오해합니다. 예수님은 영혼을 구원하시고 병든 자를 고쳤습니다. 그리스도의 사역의 반수 이상은 병 고치는 데 시간을 보냈었습니다. 기독교는 병 고치는 종교인 것입니다. 정신병, 육체의 병, 생활의 병, 병 고치는 종교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예수님 당시에 갈릴리 온 천지에 그리스도의 소문이 나고 수많은 병 든 자들이 와서 치료를 받는데, 예수님이 뭐가 달라졌습니까? 요사이는 예수님의 치유가 그렇게 쉽지 않습니까? 우리 신앙생활에 고장이 나있는 것입니다. 2,000년 전에는 예수님이 죄인의 죄를 사하시고 병든 자를 고쳤었는데, 오늘날에 와서는 예수님이 병든 자 고친 일을 그만 둔 교회가 많습니다. 이걸 우리가 고쳐야 돼요. 여러분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모시고 다니기 때문에 여러분 가슴속에 모시고 있는 예수가 죄 사함만 주시는 분이 아니라 여러분을 통해서 병든 자도 고쳐야 되는 것입니다. 치료가 없는 복음은 복음이 아닙니다. 치료가 없는 예수님은 예수님이 아닙니다. 십자가 없는 기독교가 기독교가 될 수 없지 않나요.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몸 찢고 피 흘려 “내가 다 이루었다”고 하시면서 우리의 구주가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도 여러분을 용서와 의로 돌보아주시고 오늘도 여러분 성령 받게 해주시고, 오늘도 치료해주시고, 오늘도 가난과 저주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오늘도 죽음에서 부활하여 영생을 얻는 소망을 주시는 주님인 것입니다. 우리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간구하는 예수님은 변화되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소문을 듣고 마음에 생기를 받아서 일어나 마귀를 물리치고, 그리스도에 대한 소문이 마음에 희망과 꿈을 심어주어서 바라던 목표가 이루어지게 돼야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 보면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에게서 들어 믿음이 마음속에 생긴다고 주님께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네 믿음대로 될 지어다”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마가복음 5장 27절로 28절에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옷자락에 손만 대도 병이 나을 것이라고 믿은 그 여인의 병이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댄 여자에게 치료가 넘친 것 같이, 여러분도 ‘나는 여의도 순복음교회에 예배 보러 가서 예배를 볼 동안에 내가 마음에 소원을 가지고 있을 때, 병자면 기도하면 고침을 받을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무식한 일을 하고 있다고 비난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비난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하기를 원하시는 것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용서해주시는 예수님, 성령 충만을 주시는 예수님, 치료해주시는 예수님, 축복 주시는 예수님, 부활영생을 주시는 예수님, 그 예수님을 우리에게 구주로 주신 것입니다.
4.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예수님을 구주로 모심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생애가 넘치도록 달라져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예수님으로부터 생기가 흘러 우리에게 들어오는 것을 성경에는 보여주고 있는데, 에스겔서에 보면 백골골짜기에 사람의 뼈다귀로 산더미처럼 뼈다귀가 늘어져있는데, 에스겔에게 하나님이 말씀하기를 “저들이 살아 일어나느냐?”, “아이고 저런 백골이 가득 차 있는데 저 뼈들이 어떻게 살아납니까?”, “그 뼈들을 향해서 말을 하라”고.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야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붙어서 살아나게 하라 하셨다 하라 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에스겔37장 9절~10절)
백골이 된 사람도 하나님의 명령 한 마디에 생사람으로 살아납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시냐면, 살아있는 우리들에게도 하나님의 생기가 불어오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한 사람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 속에 생기가 충만해져야 되는 것입니다.
5. 생명의 근원, 십자가
죽음의 기가 흐르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생명의 기가 흐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산 생활에 생기가 넘쳐흐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죽음의 기가 흘러넘칩니다. 저는 생기가 넘쳐나지 못할 때, 몸이 아프고 괴로울 때, 슬프고 고통스러울 때, 주님 앞에 “주님 성령의 불화로를 내 가슴속에 부어주어서 천국의 성령의 불길이 타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게 기도하면 가슴속에 하나님의 불길이 일어나기 시작하면 온 몸에 불기둥, 구름기둥이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에게 나가서 생기를 부어달라고 간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마른 뼈다귀에 명령해서 뼈다귀가 살아나서 대 군대가 되는 것을 보았는데, 우리는 어디에 가서 생기를 얻을 수가 있을까요? 우리 생기의 근원이 갈보리 십자가인 것입니다. 갈보리 십자가 밑에 가서 “생기야 십자가를 통해서 내 온 몸속에 불러질 지어다!”하고 기도하면 용서의 생기, 성령 충만의 생기, 치료의 생기, 축복의 생기, 영생복락의 생기, 세상에서는 꿈꿀 수도 없는 그 놀라운 생기가 성령으로 여러분에게 불어오는 것입니다.
생기가 들어오면 참으로 성령의 역사를 체험해볼 수 있고 너무나 좋은 은혜를 맛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생명의 기운은 십자가에서 넘쳐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의지하면 생기가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생기를 채워주시옵소서. 생기가 넘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게 마음으로 믿음에 의지해서 기도하고 입으로 시인하면 구원에 이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로마서10장10절)
자꾸 하나님의 생기가 십자가를 통해서 여러분의 생애 속에 열매 맺게 되는 것을 말로써 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로써 믿는 것입니다. “나에게 용서의 생기가 넘쳐납니다. 치료의 생기가 넘쳐납니다. 축복의 생기가 넘쳐납니다.” 기도할 뿐 아니라 입으로 자꾸 시인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시편 103편 3절로 5절에 보면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음에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입으로 그렇게 시인한 것이 진짜로 기도를 잘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지치고, 피곤하고, 고달플 때 생기가 넘쳐나야 살아갈 행복을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결론
오랫동안 혈루증을 앓은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만 대어도 낫겠다는 말을 늘 자기에게 했습니다. “너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만 대어도 낫는다.” 그런 소망을 가지고, 소망을 가진 것을 늘 입술로 시인해야 되고, 그 마음속에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대면 낫는다.’는 희망과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전부 입으로 표현해내는 것입니다. “나는 낫는다. 옷자락에 손만 대어도 낫는다. 난 그리하여 건강을 얻는다.” 자기 입술에서 나오는 말로써 자기의 신앙을 복 돋아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모두 다 여러분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믿음을 입술의 고백을 통해서 체험을 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마음에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해야 구원에 이릅니다. 우리가 시인을 하면 그 입술의 파장이 나가서 변화와 창조를 가지고 오는 것입니다.
땅이 공허하고 혼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을 때 하나님의 심이 수면에 운행해도 아무 역사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공허하고 혼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그 수면에 하나님의 심이 운행하고 있는데 언제 역사가 일어났냐, “빛이 있으라” 입에서 말이 나가니깐 창조적인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온 천지가 입술의 말을 통해서 성령이 창조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도할 때 성령이 여러분 마음속에 운행하는 것입니다. 그 기도에 여러분이 하나님께 받을 축복을 말로써 표현하면 변화와 기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말을 볼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 말한 대로 됩니다. 생각한 대로 됩니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 말로써 여러분이 운명과 환경을 변화시키고 창조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혈루병 앓은 여인은 예수님을 만나면 살 수 있다는 희망과 꿈 그리고 믿음을 가지고 운명이 달라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 그 믿음이 변화와 창조를 가지고 옵니다. 그냥 종교를 믿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변화를 갖다 주실 때 언제나 말로써 시인하게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운명을 변화시킬 때 아브람을 축복하고 난 다음에 그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바꾸었습니다. 많은 조상의 아버지라고 바꾸었습니다. 그 생애 입술로 고백할 수 있도록 이름을 바꾸어준 것입니다.
하루에 이름을 제일 많이 부르지 않습니까? 그만큼 입으로 시인하게 되면 기적이 일어나거든요. 사래(사래)도 사라로 바꾸십니다. 아직 이삭을 낳지 못했을 때 많은 자식의 어머니란 이름을 주었습니다. 사람들이 다 비웃었습니다. “자식도 없는데 많은 자식의 어미라니? 한 두 자식의 어미라고 해도 좋을건데, 많은 자식의 어미라니 너무 과장된 것이다.” 그러나 그때부터는 사람들마다 우습지만 그 입에서 나온 이름이 창조적인 본능을 행사해서 아브라함은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었고, 사라는 많은 자식의 어미가 된 사라, 변화가 다가온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마음속에 소원과 꿈이 있으면 그 소원과 꿈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믿음의 기도를 하고, 그 다음 이루어진 것을 입으로 시인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힘이 없다고 하지만 여러분 세월이 흘러가고 난 다음 보면 여러분이 생각하고 말한 것이 이루어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명 강수를 언제나 마시기를 원하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오중복음으로 확실히 우리가 알고 입술로 강하게 시인하면 생기가 우리 삶 속에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생명 강이 넘쳐나고, 생명의 바람이 넘쳐나고,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게 됨으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한 것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우리는 삶의 무게로, 질병으로 고통하며 낙심할 때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오니, 철저하게 하나님을 믿고 바라보며, 입술로 선포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도와주시옵소서. 주 안에서 늘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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