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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마24:31-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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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 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24장 31절: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큰 나팔소리로 모으리라, 천사를 보내 사방에 흩어져 있는 택자들을 모은다’
나팔은 전쟁 때 출전신호, 기상신호, 잠자는 신호, 식사신호, 소집신호 등을 할 때 붑니다. 어쨌든 신호입니다. 얼마나 큰지 지구 땅 사방에서 다 들립니다. 죽어 있는 자도 눈을 뜨고 벌떡 일어날 정도이니까 ‘나는 귀가 먹어서 못 들었소’ 할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왜 사방에서 모으느냐?
① 어느 민족 어느 족속을 막론하고,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택자는 다 올라갑니다.
②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때문에 쫓겨나간 자들.
③ 세계 각 곳의 복음전도자들과 그 곳에서 예수 믿은 택자들.
④ 환난 핍박을 만나 피난간 자들.
⑤ 어디서 어떻게 무슨 죽음을 당하여 죽었던간 택자들.
천사들이 바람처럼 내려가서 하나도 빠뜨림 없이 다 데리고 올라갑니다.
그런데 올라가기는 올라가는데 오늘날 택한 백성들의 예수 믿는 형편을 가만 보면 아마 그 날 별 희한한 광경을 보게되지 않을까 생각이 됩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진리의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예배에 모이도록 약속된 시간인데 TV 비디오 보느라고 머뭇거리는 사람, 낚시질 가는 사람, 산으로 캠핑 가는 사람, 어디 배타고 여행가는 사람, 남 시집 장가 구경 가는 사람, 무슨 누구 잔치에 가는 사람, ‘누구 제사다’ 하고 가는 사람 등 별별 사람이 다 있듯이 아마 그 때 천사들에게 붙들려 오는 모습도 다를 것입니다.
교회에서 공갈 협박하면서 안수하다가 목덜미 뒤로 잡혀서 질질 끌려가면서 신 한 짝은 저기 벗겨져 나가고 끌리다 보니 양말은 펑크가 난 채 허리끈에 붙들려서 오는 사람도 있을까? 머리채를 붙들려서 오는 사람도 있을까? 발목이 잡혀 거꾸로 붙들려 오는 사람도 있을까? 천사의 손을 양쪽에 나란히 잡고 마치 엄마 아빠의 손을 잡은 어린아이처럼 좋아서 기뻐서 오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세상 정에 끌려서 눈물 흘리면서 억지로 끌려오는 사람도 있을까? 신앙정조를 지킨 영모의 미모성! 큰 나팔소리가 언제 날지 의식을 하고 살아야 합니다.
세상에서도 진리의 나팔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누구의 소리가 더 큰가? 시부모? 친정부모? 신랑? 주님?
여름밤 되면 모기소리 민감하게 들리지! 대문 밖의 남의 집 아이들 소리가 아무리 커도 자기 집 자식 우는소리는 민감하게 크게 들리지!
지금도 나팔소리를 들을 줄 아는 사람은 아무리 멀리 있어도 진리의 고상한 나팔소리를 척 알아듣고 ‘아, 이것은 날 부르는 소리로구나’ 하고 멀리 있어도 오는 것이고, 가는 것입니다. 그 날에 주님의 큰 나팔소리를 못 듣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아무튼 그 날에는 큰 환난 가운데서 죽은 자들도 있을 것이고, 그 후에 통곡자들도 있을 것이고, 택한 자들은 천사들에 의해 또 올라갈 것이고.
24장 32절~35절: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배우라’
어떤 방법으로 보던지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워야 합니다.
비유는 일상생활의 도덕성을 전달하는 교훈적 수단입니다. 인간 자기의 영원의 삶과 심판에 관한 교훈이기 때문에 익히 깨달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무화과나무의 가치성은 열매입니다. 가지만 뻗고 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다면 무화과나무는 가치가 없습니다. 이스라엘을 상징한 무화과나무가 열매가 없으므로 저주하여 나무가 죽은 일이 있습니다.
교회들이 물질만능주의의 세상을 만나서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신앙의 본질을 버리고 물질팽창주의로 마치 종교들이 제 철을 만나 사방에서 경쟁이나 하듯이 자기의 숫자와 덩치 큰 것을 과시하느라고 가지와 잎사귀만 너울거리면 주님이 곧 가까이 문 앞에 이른 줄 알아야 합니다. 말세가 되어질 수록 교인들의 신앙정신이 옛사람이 주격이 되어 교회의 주도권을 잡게 됩니다. 목적이 세상이요, 위주가 세상이요, 활동이 세상이요, 교회의 신앙정신이 세상이요, 이렇게 외식주의로 흘러갈 때는 주님이 곧 가까이 문 앞에 이른 줄을 알아야 합니다.
더운 계절이 되면 연한 가지가 바람에 맞추어 흐느적 흐느적 하며 율동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환난의 바람이 불면 찢어지기 마련입니다. 참 성도는 이것을 미리 보고 열매 맺는 일을 부지런히 합니다.
① 종교연합운동에 한 몫 낄까?
② 주님과 인격적 결합에 한 몫 낄까?
절대로 주님은 외식주의 운동자들을 가만두지 않습니다. 그런 시대, 그런 족속들을 절대로 얼버무려 어물쩍 넘어가지 않습니다.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하는 것은 다른 모든 순서를 다 거치고 마지막 남은 순서에 도달해 왔다는 것입니다. 시퍼런 칼날을 보듯이 느낌이 섬짓하여 자기 신앙을 점검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교회와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보고 민감하게 느낄 줄 알아야 합니다.
자기에게 열매를 찾아보라! 성령의 열매가 있느냐? 있다면 가치 판단 평가성이 어디 있느냐? 있다면 자타의 성화구원에 힘을 쏟고 있느냐? 거짓말할 시간도 없습니다.
24장 34, 35절: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이 세대란 이 시대라는 말도 되고, 그 족속들, 그 가문들, 그 종류의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은 사람들을 말함이 아닙니다. 자타의 성화구원을 이룰 수 있는 진리생명 이치의 신앙이 아닌 세상주의 인본주의 외식주의 신앙들이 주류를 이루어 가지고 진리인 것처럼 교권행세를 하는 그런 현상의 시대를 말하는 것입니다.
노아홍수 때의 신앙의 사람들이 그랬고,
육적 이스라엘 정치적 종말 때도 그랬고,
육적 이스라엘 종교적 종말 때도 그랬고,
이제 영적 이스라엘 종교적 종말 때도 그럴 것입니다.
그렇게 심판 받고 망했는데도 왜 또 그 길을 밟을까?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외식주의 신앙을 참 신앙으로 보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 신앙의 본질을 못 찾으면 그와 같은 현상들이 일어나는 것이 분명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멸망을 당한 시대의 사람들의 그 정신을 이어 받은 후손들이 있고, 그 정신을 이어 받은 가문들이 있고, 그 정신을 이어 받은 족속들이 있고 자손들이 있습니다. 아무리 깨닫도록 말해도 자기들이 옳다고 주장만 내세우는 것을 보면 멸망을 받을 족속들이 따로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세상을 끌고 와서 교회 안에서 합리화시킨 이것은 세상주의요 외식주의요 인본주의라고 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24장 35절: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늘과 땅은 없어집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은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합니다. 영원히 효력이 있습니다. 하늘 아래와 땅 위에 ‘내로라’ 하며 목에 힘을 주고 불타질 것을 가지고 자랑하고 산 자들은 하늘과 땅이 없어질 때에 모두 없어집니다.
① 하나님을 무시한 자,
② 진리말씀을 무시한 자,
③ 자타의 이룰 구원 성화구원을 무시한 자,
이런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자기 하나를 지나치거나 자기 하나를 모르고 빠뜨리거나 놓치고 옆으로 지나가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심판이 정문으로 들어오듯이 자기에게로 정통으로 찾아올 것이라는 말입니다.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말씀을 말씀으로 하신 것,
말씀을 행동으로 하신 것,
말씀을 이적 기사로 하신 것,
말씀을 큰 사건으로 하신 것
전부는 영원 궁극적인 결과가 들어 있는 말씀입니다. 입어진 그 효력성은 절대로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하고 그 효과를 보게된다는 말씀이십니다. 주님 당신이 지으신 만물을 무시할지언정 주님말씀 붙잡고 살면서 성화구원을 잘 입은 그 성도 하나를 절대로 무시하지 않는다는 말씀이십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세상을 무시할지언정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지 말아야 할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 궁극적 성화구원이 들어 있으니 소홀히 여기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만일 말씀을 소홀히 여기게 되면 구원 입을 사건이 자기를 무시해 버리고, 그것을 본 마귀는 ‘아이구, 너는 내 새끼다’ 하고 좋단다고 업고 가버립니다. 말하자면 모든 외식주의 인본주의 세상주의 자들에게 적절한 앙갚음의 대우를 반드시 해 줄 것입니다. 진리신앙 자들은 영광으로 갚아 줄 것이나 세상을 붙들고 있는 자들은 세상과 함께 불에 타게 될 것입니다.
24장 36절: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순간의 그 날과 순간의 그 때는 아무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십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전지 전능성이 어떻게 되느냐?
주님은 만물의 창조도, 역사의 진행도, 성도의 이룰 구원도, 마지막 심판도, 모든 예정 계획이 그리스도가 없이는 아니 되었습니다.
천국보좌를 마음대로 스스로 버리신 분이, 그리고 인간으로 오신 분이 지상의 미래와 천국의 영원 누림의 미래를 가르쳐 주시는 분이, 세상만사와 인간의 마음을 자상하게 아시는 분이 그 날을 정말 모르신다고 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입니다. 누가 36절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일 사람이 있을까? 노아 때 120년 후에 비가 오고 홍수가 진다는 그 말씀은 그리스도를 제외하고 하신 말씀인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로 말씀하심인가?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하고, 아들은 아버지를 사랑하고 동등 동질이신데 왜 모른다고 말씀하셨을까? 우리 인간의 세계에서는 이런 것이 있습니다. 자기가 뻔히 알고 있으면서 답변하기가 곤란하면 ‘아무개한테 물어봐라, 나는 잘 모른다’ 하면 ‘그런가?’ 하고 그냥 넘어갑니다. 이유야 어쨌든 가르쳐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만큼 극비사항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미리 가르쳐준다고 하자! 그렇게 되면 어리석은 인간들이 ‘실컨 놀다가 심판 날 전에 예수 믿자’ 그럴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되면 성화구원은 다 절단이 나버립니다. 예를 들면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올 시간을 잘 알아두었다가 들어오기 직전에 책상머리에 앉아서 공부하는 척 책장을 넘기고 있으면 아버지는 그 장면을 보고 ‘음, 공부 열심히 하는구나’ 할 것이 아닌가? 하지만 밖에서 워낙 놀았기 때문에 공부실력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자기가 속은 것입니다. 말하자면 인간 자기 망하는 약은 꾀를 방지하기 위해서 심판의 날 재림의 날을 안 가르쳐준 것이고, 또 한 뜻은 모두 조바심을 갖고 깨어 있게 만들려고, 방종 방랑 방탕을 못하게 하려고 이고, 또 한 뜻은 성화구원을 이루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날은 안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심판과 재림의 날을 아는게 문제가 아니라 성화구원을 열심히 이루어 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 안에서 혹자들이 재림의 그 날을 안다고 하는 것은 모두 거짓 종들이요, 사단 마귀의 속임수요, 이단들이라고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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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신앙생활을 하려면 인격자이신 하나님의 가장 깊은 심원인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 당신의 애성에서 발로된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따라 신앙을 해야만 됩니다. 이래야 기독교 본질에서 이탈하지 않고 가장 효율적 적중적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덧입을 수 있고, 성도 각자가 이 땅에서 이렇게 덧입은 하나님의 성품의 양에 따라 장차 천국에서의 누림에 차등이 생기게 됨을 성경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통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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