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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신22:1-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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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실시간 온라인 새벽기도(2210) |
신명기(88)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4대 사상 (신명기 22장 1-12줄)
1. 방관주의
하나님은 길을 잃은 동족의 소나 양을 외면하지 말고 반드시 그것들을 끌어다가 주인에게 돌려주라고 했습니다(1절). 또한 주인이 먼 곳에 살거나 주인을 찾지 못하면 그 가축을 집에 끌고 가서 주인이 찾기까지 보관했다가 주인을 찾으면 돌려주라고 했습니다(2절). 그 후 원 주인이 나타나면 그 가축을 돌려주었고 계속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자기가 가질 수도 있었지만 대개 가난한 자에게 주었습니다.
소나 양뿐만 아니라 나귀나 의복이나 어떤 것이든지 남이 잃어버린 물건을 습득하면 외면하지 말고 똑같이 조치했습니다(3절). 또한 형제의 나귀나 소가 길에 넘어진 것을 봐도 못 본 체하지 말고 반드시 그 형제를 도와 그것들을 일으키라고 했습니다(4절). 이웃의 어려움을 방관하지 말고 구체적인 이웃 사랑을 실천해서 선민답게 행동하라는 뜻입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서 형제를 미워하면 거짓말이라고 했습니다(요일 4:20). 하나님 사랑은 이웃 사랑으로 구체적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2. 대형주의
흔히 큰 물고기와 작은 물고기를 같이 잡을 때는 작은 물고기를 놔주지만 어미 새와 새끼 새를 같이 취할 때는 어미 새는 반드시 놓아주고 새끼 새를 취해야 복을 누리고 장수한다고 했습니다(6-7절). 그 복이 부모를 공경하라는 십계명의 5번째 계명을 지킬 때 약속된 복과 같은 것을 볼 때 이 계명은 간접적으로 효를 가르치는 계명이기도 하지만 작은 것도 소홀히 하지 말고 세심하고 사려 깊게 자연과 사물과 사건과 사람을 살피라는 메시지도 담겨 있습니다. 복 받는 비결이 거창한 행위에만 있지 않습니다.
작은 일에 충성할 때 큰 일이 맡겨집니다. 왜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이스라엘을 맡기셨습니까? 양을 잘 지키는 일에서부터 합격했기 때문입니다. 작고 연약한 것을 잘 살필 때 크신 축복으로 함께 하십니다. 너무 크게 되려고만 하지 마십시오. 크게도 되려고 하고 반대로 작게도 되려고 하십시오. 큰 것에만 너무 큰 의미를 두지 말고 큰 것도 존중하고 작은 것도 존중하십시오. 아침마다 드리는 소리 없는 기도의 손길이 표도 나지 않고 소리도 나지 않지만 그 작은 행동이 사탄의 진을 파괴하고 큰 역사를 일으키는 씨앗이 됩니다.
3. 성과주의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집의 지붕을 평평하게 만들어 휴식, 취침, 기도 장소 등으로 사용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실수로 떨어져 다치지 않도록 집을 지을 때 난간을 설치하라고 했습니다(8절). 빨리 집을 짓겠다고 하지 말고 조금 늦게 짓더라도 안전을 고려하라는 계명입니다. 빨리 성과를 내고 빨리 성취하겠다고 해서 편법을 쓰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습니다. 일할 때 수단방법을 가려 일하십시오. 운전할 때 5분 빨리 가려다가 50년 빨리 가는 수가 있습니다.
일할 때 너무 빨리 성과를 내려고 지름길을 찾다가 추락하거나 가장 성과가 늦어질 수도 있습니다. 성과와 성취에 집착하지 마십시오. 안전과 생명과 영혼을 먼저 고려하십시오. 예수님도 친히 십자가를 지시고 구원의 길을 여셨습니다. 십자가(Cross) 없이 왕관(Crown)을 얻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너무 편리한 길이나 지름길만 찾지 마십시오. 사람들은 편한 것을 좋아하지만 하나님은 편의주의와 성과주의를 싫어하십니다.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목적만 이루려고 하지 마십시오.
4. 혼합주의
하나님은 의복 문제로도 성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경건한 삶을 살라고 했습니다(5절). 남자가 여성적인 성향을 가지거나 여자가 남성적인 성향을 가질 수는 있지만 옷차림이나 화장 등에서 하나님이 주신 남녀의 성 차이를 정면으로 거스르거나 무시하면 안 됩니다. 더 나아가 성전환 수술이나 동성애는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정면으로 위배하는 가증스런 일입니다. ‘여호와께 가증한 자’란 표현은 우상숭배처럼 하나님께서 가장 혐오하는 죄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동성애는 물론 혼합주의 자체를 기뻐하지 않습니다(9-11절).
혼합주의를 주의하라는 말씀은 거룩한 삶을 살라는 말씀입니다. 겉옷의 네 귀(모서리)에 술(fringes)을 달게 한 것은 화려한 모양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존재로서 살겠다는 것을 나타내는 상징입니다. 나중에 바리새인들은 술의 참된 의미를 망각하고 자신들이 율법을 잘 지키는 사실을 과시하려고 옷에 술을 크게 만들어 달고 다녀서 예수님의 책망을 받았습니다(마 23:5). 사람이 하나님의 창조 질서와 뜻대로 구별된 삶을 살면 하나님께서 크신 축복으로 함께 하실 것입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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