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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마26:26-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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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 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26장 26절~30절: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이에 저희가 찬미하고 감람산으로 나아가니라
시대적으로 때가 저물 때에는 예수님께서 당신의 사랑하는 자들을 불러서 주님의 축사의 떡을 먹게 하시는 것입니다. 분봉 왕 헤롯이 세상 로마권세를 들쳐 업고 세상잔치를 벌이며 선지자 죽이는 일을 할 때에 주님은 벳새다 광야로 사랑하는 백성들을 불러내어 오병이어의 축사로 이적의 떡을 먹이셨고, 그 옛날 모세 때에 애굽의 바로 왕에게 시달릴 대로 시달린 당신의 백성을 애굽에서 출발시키는 전날 밤 양의 고기와 누룩 없는 떡을 먹게 하셨고, 세상 외식주의로 흐르는 예수님 당시 때의 육적 이스라엘의 종교 때에도 축사의 떡을 먹여 주셨고, 세상 마지막 때에도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광야로 나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신앙사상적으로 진리와 생명의 말씀을 먹이신다고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거짓 종들이 기독교 종교계의 주권을 잡고 비 진리가 진리행세를 할 때에 해를 입은 여자는 광야의 신앙사상으로 피하여 그 곳에서 주님의 양육을 받는 것입니다.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하나님의 자리에 앉는 것을 본 자는 도의 봉우리의 산으로 피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세상 넓은 길, 사망의 길로 나가는 신앙이 아니고 하나님의 본질을 찾고자 하는 자들은 성령의 인도를 받아 주님의 축복의 떡을 먹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룟유다의 성질을 가진 자는 왔다 갔다 하다가 주님으로부터, 진리로부터 자기의 세상욕심을 채우지 못하니까 가룟유다처럼 자기의 갈 곳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빠져들어 가는 것이 무서울진저!’
‘떡을 가져 축사하시고 떼어주시면서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다 잔을 가져 축사하시고 이것은 죄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내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예수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셨으면 예수님의 정신, 예수님의 사상, 예수님의 소원 목적이 나오는 것이 틀림이 없는 것이냐? 받아먹은 자는 자기 속에 진리가 자라나고, 구원이 자라나고, 예수님과 한 지체로 성장하게 될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진리와 생명을 받아먹은 자는 예수님의 분신으로서 살든지 죽던지, 살리던지 죽이던지 예수님 당신이 책임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영생이신 당신의 몸과 피를 먹게 하심은 우리를 영원히 당신처럼 살게 하려고 하심이 틀림이 없느냐? 당신의 몸을 십자가상에서 갈기갈기 찢어주시면서 ‘이것을 먹어라’ 피를 쏟으시면서 ‘이것을 마셔라, 이것을 먹어야 산다’
갈릴리로부터 가르쳐 오면서 3년 동안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 당신을 헐값에 팔아먹을 줄 아시면서도, 인간 나의 죄 때문에 죽으시면서도 그래도 사랑하시면서 ‘내가 주는 것을 받아먹어라’ 하신 그 주님의 사랑을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고, 잔을 받는 손이 떨리고, 그 사랑에 목이 메이고 눈물이 앞을 가려 감히 주님을 뵐 면목이 없을 터인데 회개의 빛도 없이, 양심의 가책도 없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날름날름 받아먹는 저 가룟유다입니다. 예수를 먹는 자는 예수 정신으로 살아야지! 그런데 가룟유다처럼 사는 자도 있는가?
26장 28, 29절: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많은 사람의 죄를 위해서 흘리는 피, 언약의 피를 흘리는 일이 언제까지 없겠다고 하느냐?
그런고로 십자가의 사건이 단 한 번으로 이루어진 것이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
26장 30절: 이에 저희가 찬미하고 감람산으로 나아가니라
찬미는 무슨 찬미였을까?
① 장승곡?
② 승리의 개가?
주님과 제자들이 같이 불렀는데 주님은 어떤 마음으로 불렀겠으며, 제자들은 어떤 마음으로 불렀겠느냐?
26장 31절: 오늘밤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왜? 양들을 치는 것이 아니라 목자를 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목자를 치는 것이냐? 주님은 목자이시고 성도들은 양입니다.
‘내가 목자를 친다’
곧 예수님 자신이 자신을 친다는 말입니다. 우리 인간은 자기가 자기를 칠 수가 있습니다.
주님은 만능의 능력자요, 창조의 주로서 주님 당신의 허락 하에 종교지도자들이 원하는 대로 그들의 자유를 꺽지 않고 들어서 예수님 당신을 십자가에 못박히게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만사가 인간의 자유로 되는 것 같으나 주님은 그 자유를 이용하여 성도를 위하여, 택자의 구원을 위하여 주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영원 전서부터 된 구원을 다 이루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핍박을 받으니 제자들이 예수님의 핍박받는 것을 보고 마음이 상해서 흩어질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말하자면 ‘예수를 믿으면 뭔가 잘 될 줄 알고 믿고 따라왔더니 결과는 저렇게 핍박을 받고 죽게 되는구나’ 하며 자신도 그 꼴이 되겠으니 예수 믿고 따라온 것을 후회하고 제 갈 길로 다 간다는 말입니다.
예수 믿으면 신령천국에서 보좌에 앉을 생각만 할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한 번씩은 최악의 죽는 고비를 겪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리고 그 기간은 죽을 때까지 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모두에게 그렇게 정해져 있다면 아마 한 사람도 예수 안 밀을 걸? 나도는 교회의 주보나 전도지를 보면 예수 믿는 것이 마치 사주팔자 궁합을 잘 봐 주는 점쟁이들이 세상에서 잘 되게 해 준다고 하듯이 예수관상쟁이와 같은 자들이 예수가 육신적인 문제를 해결해 준다는 말을 듣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많지만 ‘예수 믿고 세상에서 환난 핍박을 다 이길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집시다’ 하면 예수 믿을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예수가 당신을 뭐든지 잘 되게 해 주고 행복하게 해 준다’고 하니 예수를 믿지?
진리가 고난을 받으면 더 하나님께로 찰싹 붙어야 할 터인데 실족해서 나가떨어지면 되겠느냐? 진리대로 살다가 상황적으로 어려워진다고 해서 배반하면 되겠느냐? 진리의 활동이 어려워진다고 해서 주님을 배반하고 진리를 배반하면 되겠느냐? 비 진리의 세상이 커지니까 자기도 커지고 싶어서 그 곳에 가서 동참하고 협조하는 것은 심판거리 장만입니다.
평안할 때는 순교의 신앙으로 살고, 환난이 왔을 때는 부활의 신앙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진리 때문에 오는 환난은 꼭 통과를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참 목자가 없는 삶은 전부는 사망계로 낭비의 삶입니다.
26장 32절: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그러나 살아난 후에는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살아나신다, 그리고 우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신다’ 하는 이 말씀을 들었으면 그 말씀을 믿고 모두들 다 모여서 갈릴리로 가면 될 것을......
그런데 베드로는 ‘다 주를 버릴지라도(실족을 할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절대로 버리지 않겠나이다’ 하고 장담을 하는 것을 보니까 누가 들어도 훌륭한 신앙입니다. 그런 베드로는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보여 가룟유다에게 재산을 맡겨 둘 사람은 없지만 베드로에게는 재산을 맡길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신앙장담은 말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본질로 인격이 자라지 못한 자가 장담을 한다고 해도 그게 바로 그 사람의 신앙이 아닙니다. 말하자면 본질에서 자란 만큼의 신앙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자기에게 앞으로 다가올 시험의 사건이 얼마나 클지, 작을지 모릅니다. 베드로가 장담을 한다고 주님이 믿어 주실까?
26장 34, 35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베드로가 가로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베드로가 하루 밤 사이에 세 번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할 것이랍니다. 이것은 베드로의 인격을 무시하는 소리고, 베드로의 충성스런 마음을, 그 신앙을 어떻게 보고 하는 소리냐?
베드로가 또 한 번 장담을 합니다.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철없는 어린 것이 겁도 없이 장담도 잘한다고 마귀가 옆에서 얼마나 웃었을까?
그리고 아까 33절에서 ‘다 주를 버릴지라도’ 그 말을 했는데 다른 제자들은 베드로가 어떤 믿음으로 그런 말을 한다고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베드로의 그 말을 옆에서 들었던 다른 제자들은 자기들을 무시한다고 얼마나 속이 상했을까? 그래서 35절에 ‘베드로 너만 믿음이 좋으냐? 우리도 믿음이 있다’ 하는 뜻으로 모든 제자들도 베드로처럼 말을 한 것입니다.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정말 제자들이 하나같이 그런 믿음을 가졌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정말 제자들이 천국이 그렇게 좋고, 주님이 그렇게 좋고, 진리가 그렇게 좋고, 훗날의 영광을 바라보니 그렇게 좋아서 그 가치를 알고 나온 장담들이냐? 모르는 상태에서 아무리 장담을 한다고 해도 그것은 육에서 나오는 소리, 육에서 나오는 장담이 분명할까?
진리의 정신 사상을 모르고 비 진리의 세상적인 신앙노선을 가는 사람이 아무리 결심을 하고 사명의식을 가지고 죽을 각오를 하고 나가도 그것은 영이 아닌 육이기 때문에 주님이 알아주는 신앙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고 죽은들 자타에게 성화구원이 아닌 사망운동만 하고 갔기 때문에 그것은 하나님 앞에 순교라고 보기 힘듭니다.
지금 장담을 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부지런히 진리사상화 자체화 되어지려고 애쓰고 노력을 하다 보면 장담을 안 해도 됩니다. 사람이 바로 되어나가니까! 그런데 그것도 아니면서 장담을 하는 것은 100% 넘어질 사람인데, 그러나 자기는 넘어질 것을 모르고 장담을 합니다. 안 믿어주면 토라지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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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신앙생활을 하려면 인격자이신 하나님의 가장 깊은 심원인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 당신의 애성에서 발로된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따라 신앙을 해야만 됩니다. 이래야 기독교 본질에서 이탈하지 않고 가장 효율적 적중적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덧입을 수 있고, 성도 각자가 이 땅에서 이렇게 덧입은 하나님의 성품의 양에 따라 장차 천국에서의 누림에 차등이 생기게 됨을 성경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통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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