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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계2: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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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중곤 목사 |
참고 : | 들풀쉼터교회 목사 |
성경 : 계2:1-7
제목 : 처음 사랑
찬송 : 290(412), 309(409), 298(35)
계2:1-7
1.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2.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6.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교회가 사랑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교회는 모든 것을 잃는다 해도 사랑은 남아 있어야 하는데 사랑을 잃으면 교회의 존재의미가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소개된 에베소 교회는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바울사도가 개척한 교회(행18:18-23; 19:1-22)였으며, 3년 동안 눈물과 희생으로 목회한 교회였습니다.(행20:17-38)
에베소(Ephesus)는 아시아에 있는 로마 제국의 큰 항구 도시로 남쪽에 밀레도, 북쪽에 서머나를 끼고 있는 상업과 종교의 중심지였습니다.
초기 신약 시대에도 에베소에는 유대인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었습니다(행18:19). 바울사도는 2차전도 여행 중 안디옥으로 돌아오던 중 에베소를 방문한 바울은 유대인들과 변론한 후에, 고린도에서부터 동행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이곳에 머물게 한 후에 에베소를 떠났습니다(행18:18-26). 그 후 바울사도는 3차전도 여행 때 이곳에서 3년 간(행20;31) 머물면서 복음을 전파하였으며, 에베소를 떠날 때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를 머물게 함으로 복음 전도 사역을 계속하게 하였습니다.(딤전1:3)
에베소 교회의 대표적인 지도자로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아볼로, 디모데, 두기고’ 등이 있습니다(행18:18-26, 딤전 1:3, 딤후4:12). 이처럼 에베소교회는 사랑의 열정이 있던 사역자들이 목회한 교회였습니다.
에베소교회는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일곱 개의 교회들(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에 대한 사도요한이 성령에 감동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기록한 것으로, 그 중 에베소 교회는 ‘2.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계2:2-4)는 말씀에서 에베소교회는 칭찬과 책망을 동시에 받은 교회입니다.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것은 처음 사랑이 식어졌다는 말입니다. 교회의 최고의 덕목은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마22:32-40절에서 한 율법사가 예수님을 시험하여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냐는 질문에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대답하셨습니다.
고전13:1-3절에는‘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 하였으며, 베드로사도는 벧후1:5-7절에서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고 하심으로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최고의 덕목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처음 교회가 개척될 때는 서로 사랑하며 무슨 일이 있으면 서로 내일처럼 열심히 도와줍니다. 예배도 열심히 참석하고, 봉사와 헌금하는 일에도 기쁨과 감사함으로 참여합니다. 사랑으로 하면 모든 것이 힘들지 않습니다. 기쁘고 즐겁습니다.
그러다가 사랑을 잃으면, 예배도, 헌금도, 그렇게 열심히 봉사하던 것도, 기쁨도, 감격도 점점 식어가는 것입니다. 사랑이 식어지면 모든 것이 힘들고 귀찮아지면서 형제와 자매들의 흠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을 잃지 않도록 서로 관심을 가지고 기도하면서 처음 사랑을 잃지 않도록 힘써야합니다.
초대교회의 특징은 사랑이었습니다. 그 사랑은 나눔과 섬김으로 나타났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사랑이 있습니까? 자신의 눈 속의 들보보다는 상대편의 눈 속의 티를 더 크게 보고 비판하고 판단하려고 하지는 않습니까? 사랑은 무엇입니까?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것입니까? 아니면, 이해하고 용서하고 위로하는 것입니까? 그런데 우리는 상처를 아물게 하고 위로하기 보다는 상처를 더 크게 할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사랑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하고,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해 주는 것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해 주는 것입니다. 상처를 주기보다 상처가 아물도록 힘써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성도들의 잘하는 일, 좋은 점을 보고 배우고 나도 그렇게 해야지 하는 긍정적인 생각보다는, 성도들의 흠이 보이고, 작은 실수에도 그렇게 예민하고 참아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용서와 이해보다는 서운함과 미움이 앞서는 우리입니다. 칭찬과 격려보다는 시기와 질투가 형제와 자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상처를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의 모습이라면 우리는 처음사랑을 잃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처음 사랑을 회복해야합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13:35)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진정 거듭난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주셨는데, 우리가 얼마나 형제와 이웃을 사랑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원자탄’으로 유명하신 ‘손양원’목사님은 교회의 순수성을 보존하기 위해 일제의 신사 참배를 목숨을 걸고 반대하였으며, 그 일로 5년 동안 감옥에서 지냈습니다. 해방 후에는 하나님을 부정하는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48세에 순교를 당하셨습니다.
1948년 10월 21일 여수ㆍ순천 반란 사건으로 사랑하는 두 아들 ‘동인과 동신’이 좌익사상에 물든 친구 학생들에 의해 희생되었습니다. 그 때 아들을 죽인 범인이 같은 학교 친구인 ‘안재선’이라는 학생이었는데, 손 목사님은 그를 살려주고 양아들로 삼았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큰 딸 ‘손동희’ 권사님의‘나의 아버지 손양원 목사’라는 회고록에 보면, 큰 딸 손동희 권사님은 당시 매산 여중 1학년 때였는데, 두 오빠가 살해된 어느 산모퉁이 썰렁한 밭도랑에 가마니를 깐채 누워있는 두 오빠의 시체를 찾았을 때, 얼마나 얻어맞았는지 머리가 터져 온 몸은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고 이마와 가슴에는 흉측한 총알 자국이 여기 저기 뻥하니 뚫려있어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제서야 참았던 눈물을 쏟으며 고래고래 악을 쓰며 울부짖다가 하나님을 향해 원망의 소리를 질렀다고 합니다. ‘하나님! 하나님은 그때 무얼 하고 계셨나요. 내 오빠들이 그렇게 무고하게 죽어갈 때 당신은 눈을 감고 계셨나요. 한 사람만 데려가도 억울한데, 왜 두 사람이나 데려갔습니까. 대답해 주세요, 이것이 과연 자비의 하나님이 하신 일인가요? 하나님 두고 봅시다. 내가 예수를 믿는가 봐요.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어찌 이럴 수 있나요?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왜 죽게 놔두셨나요. 다시 살릴 수는 없었나요.’오빠를 지켜주지 않은 하나님이 너무 너무 미웠다고 했습니다.
장례식을 끝내고 일주일 뒤에 동인, 동신 죽인 놈을 잡았다고 소식을 들었는데, 손양원 목사님은 아들 둘을 죽인 그 학생을 살려서 아들을 삼겠다고 하셨답니다. 손동희 권사님은 손 목사님의 말을 용납할 수가 없었답니다.
그러자 손 목사님은 ‘제1, 2계명이 하나님의 명령이라면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도 똑같은 하나님의 명령인데, 원수를 사랑하라는 명령을 순종하지 않는다면 지난 5년간의 감옥살이가 모두 헛수고요 너희를 고생시킨 것도 헛고생만 시킨 것이 된다. 그 학생을 죽여서 우리에게 무슨 이득이 되겠느냐? 그를 살리고 그의 영혼을 구원 할 수 있다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뿐아니라 한 영혼을 구원한 보람도 느낄 수 있지 않겠느냐?’그때 손 권사님은 ‘용서는 하시되 아들 삼는 것은 안 됩니다.’라고 말했답니다.
그러나 손 목사님은 끝내 ‘용서만 가지고는 안 된다. 원수를 사랑하라했으니 사랑하기 위해 아들을 삼아야 한다.’손동희 권사님은 아무리 싸워도 아버지를 설득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아버지 말씀대로 따르겠습니다’순순히 항복하고 말았답니다.
손 목사님은 애양원의 한센병 환자들 1000명을 섬기며 ‘오! 주님 이들을 사랑하되 내 부모 형제 처자보다 더 사랑하게 하옵소서. 만약 내 몸이 저들처럼 될지라도 사랑하게 하옵소서, 저들이 나를 싫어 버릴지라도 내가 여기서 쫓겨날지라도 그래도 사랑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면서 사랑을 잃지 않았다고 합니다. 공산주의자들에게도 끝까지 복음을 전하며 사랑을 잃지 않았다고 합니다. 6.25전쟁 중에도 얼마든지 피할 길이 있었지만, ‘몸도 성치 않은 환자들을 두고 내 어찌 나만 살자고 도망가겠는가. 나는 양떼들과 함께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아야 한다.’며 피신하지 않다가, 결국 1950. 9.28일 48세로 여수에서 공산당에 의해 순교를 당하셨습니다.
교회는 사랑이 넘쳐야 합니다. 교회에 와서 서로 상처받고 마음 상하고 미워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믿음을 잃으면 그것이 무슨 교회요 성도입니까?
우리의 신앙생활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원천입니다. 자기만족을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도, 습관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나, 책임감 때문에 신앙생활 하는 것도 아닙니다. 사랑이 없는 인내는 짜증만 나게 할 뿐 아니라 화목하게 하게하지도 못합니다. 사랑이 없는 예배는 지루하고, 설교도 찬송도 길게만 느껴질 뿐입니다. 사랑이 없는 봉사는 지겹고 겉보기에는 그럴듯해도 그 속에는 형식과 원망과 피곤과 짜증과 불평뿐이요 아집과 자기자랑만 남을 뿐입니다.
우리는 첫사랑을 회복하는 가정이 되고, 교회가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누구나 우리 들풀쉼터교회가 사랑이 넘치는 교회라고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교회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에베소 교회와 에베소의 역사에서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는 사실을 실제적으로 확인했다고 합니다. 즉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로 개종한 후 주후 330년 5월 11일 신 로마를 만들고 수도를 콘스탄티노플이라 호칭하면서 대 주교의 권한이 에베소에서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지면서 에베소 교회의 영광은 점차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 후 11세기에는 감독권마저 폐지되었으며 1308년에는 터어키 군에 의하여 점령되었습니다. 오늘 날의 에베소는 볼품없는 철도와 왜소한 정거장 허름한 여관과 빈민가만 보일 뿐 바울 당시 아시아 제일의 항구도시였던 사실은 추억 속의 그림자로만 남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큰 건물을 가진 교회나 작은 교회, 수 천 명 나오는 교회나 두세 명 나오는 교회 일지라도, 하나님께서 친히 함께하시고 붙드시고 인도하시며 사랑을 회복하기를 원하시는 줄 믿습니다. 점점 사랑을 잃어가는 세상이지만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이 샘솟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서로 관심을 가지고 서로 존경하고, 서로 인내하고 관용과 사랑으로, 서로 섬기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복음의 진리 안에서 처음 사랑을 회복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열정은 매우 빠르고 뜨겁게 달아오르지만 3년을 버티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랑하면 할수록 친밀감과 책임감은 높아가는 것입니다.
사랑의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3:18)고 하였으며, 요일4:7-11절에는 ‘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는 말씀과 같이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시기까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그 사랑을 우리도 전함으로 아직까지 주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사랑의 복음을 전하며, 손양원 목사님의 사랑할 수 없는 원수까지도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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