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문학책, 너 예뻐졌구나
경향신문 원문 l 입력 2018.06.18 21:01
디자이너·일러스트레이터와 협업한 문고판 잇따라 나와
SNS에서 독서 공유 문화 늘어 시각적인 요소 부각 추세
서점가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예뻐진’ 문학 책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최근 출판사들이 잇따라 문고판 형태의 문학 시리즈를 내놓으며 디자이너나 일러스트레이터와 협업해 책 표지와 내지를 감각적으로 꾸미고 있다. 독자들의 다양한 취향을 충족시키고, 특히 이미지에 익숙한 젊은 세대를 독자층으로 확보하기 위한 전략이다.
미메시스의 ‘테이크아웃’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젊은 소설가 20명의 단편소설에, 일러스트레이터 20명의 일러스트를 각각 매칭한 시리즈로 <섬의 애슐리>(정세랑 글, 한예롤 그림), <춤추는 사신>(배명훈 글, 노상호 그림), <우리집 강아지>(김학찬 글, 권신홍 그림) 등 3권이 최근 먼저 나왔다. 미메시스의 김미정 편집자는 “예술·디자인 관련 책들을 많이 펴내는 출판사로서 문학 시리즈도 디자인 측면에서 새롭게 할 수 있는 게 많을 것으로 봤다”면서 “일러스트가 문학 텍스트의 서브(삽화)가 아니라 두 장르가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읽기를 염두에 뒀다”고 말했다.
현대문학의 ‘핀’ 시리즈는 월간 문예지 ‘현대문학’에 실렸던 소설과 시를 모아 “좋은 작품을 조명한다”는 취지에서 단행본으로 출간한 것이다. 지난 3월 나온 시집 ‘핀’ 시리즈 1호를 보면 박상순·이장욱·이기성·김경후·유계영·양안다 등 시인 6명의 시집을 한데 묶었다. 각 시집에 같은 주제의 에세이가 한 편씩 실려 있고, 6권의 시집에 통일된 표지 디자인을 적용했다. 표지 디자인은 패브릭 드로잉을 하는 정다운 작가의 작품이다. 현대문학의 윤희영 잡지팀장은 “현대문학은 문예지에서도 실력 있는 화가들의 작품들을 함께 실어왔다. ‘핀’ 시리즈 역시 문학작품 수준과 걸맞은 디자인이나 일러스트가 들어가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 디자인적 요소에 굉장히 공을 들였다”고 했다. 윤 팀장은 “6권을 모아놓으면 한 화가의 컬렉션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몇 년 전부터 출판사들은 독자층을 확대하기 위해 문학 책 분량을 줄이고, 외형도 작고 가볍게 만들기 시작했다. 스마트폰 사용이 일상화되면서 독자들은 긴 글보다는 짧은 글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또한 젊은 독자들 사이에선 인스타그램 등 SNS에 독서 내용을 공유하는 문화가 형성돼 시각적인 측면이 중요해졌다.
출판사 사계절은 지난해 창립 35주년을 맞아 첫 문학 시리즈 ‘욜로욜로’를 선보였다. 1318문고 109권에서 엄선한 10권의 작품을 리커버 형태로 출간했다. 사계절은 디자인 학교 ‘파티’(PaTI·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의 젊은 아티스트 18명의 일러스트와 디자인을 책 표지에 넣었다. 김태희 사계절 기획편집부 총괄팀장은 “1318문고 첫 출간 때 10대였을 독자들이 이제 20~30대가 됐을 것이고, 이 세대는 디자인에 신경을 많이 쓴다”면서 “기획 단계에서 ‘책을 소장하고 싶게끔 만들자, 그러려면 아트적인 것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다”고 말했다.
인터넷서점 예스24의 김도훈 문학MD는 “소설, 에세이를 불문하고 문고판 형태의 책이 예전보다 많이 늘어나는 추세다. 비문학 책들도 시각적인 요소를 강화한 책들이 눈에 띈다”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게 하는 효과가 있고, 디자인이나 일러스트는 책 내용이나 분위기를 다양하게 소개하는 수단이자 책에 관한 강한 인상을 심어주는 무기이기도 하다”고 했다. 문고판 형태의 문학 시리즈로는 민음사의 ‘쏜살문고’, 위고·코난북스·제철소 등 1인 출판사 3곳이 함께 만드는 ‘아무튼 시리즈’, 열린책들의 ‘블루 컬렉션’ 등이 있다. 문고판 형태는 아니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X 아트’ 프로젝트도 유명하다. 하루키의 단편과 유명 일러스트의 작품을 결합한 시리즈로 지난 4월 네 번째 책인 <버스데이 걸>이 출판사 비채에서 출간됐다.
이런 책들은 젊은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의 활동 영역을 넓히는 효과를 낼 수 있다. 다만 제작 비용이 증가해 분량이 적고, 문고판인데도 기존 단행본들과 비슷한 가격대다. 일각에선 “가격이 비싸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흐름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구환회 인터넷교보문고 소설MD는 “문고판 형태의 문학 시리즈 종수가 더 늘어나면 젊은 독자층의 반응도 더 끌어낼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면서 “문고판 시리즈는 아니지만 최근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곰돌이 푸>와 같은 책은 내용뿐만 아니라 캐릭터가 크게 보이는 표지가 신규 수요를 만들어 낸 사례였다”고 말했다.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