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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엡4:7-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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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실시간 온라인 새벽기도(2321 |
은사와 관련된 4대 교훈 (에베소서 4장 7-12절)
1.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라
은사는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분량대로 주셨다(7절). 내 생각으로 남을 재단하거나 편단하지 말라. 믿음의 실천을 감동으로 이끌되 강요는 삼가라. 사람마다 믿음의 그릇이 다르다. 일과 봉사도 믿음의 그릇대로 해야 한다. 한 분야에서 다 똑같이 잘날 필요는 없다. 자기 분량대로 주어진 재능과 은사를 따라 사는 것이 행복이다. 자기 재능을 살린 분야의 장인이 되는 것이 팔방미인이 되는 것보다 낫다.
어떤 교인은 “저는 재능이 하나도 없어요.”라고 말한다. 그 말은 틀린 말이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도 재능 없이 이 세상에 보내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독특하고 고유한 재능이 있다. 남의 재능이 내 재능보다 화려해 보일 수는 있지만 그런 결과가 있기까지 흘린 땀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땀을 투자하면 누구나 자기 재능을 특출하게 만들 수 있다. 땀도 없이 재능이 없다거나 하나님의 은혜가 자기에게만 없다고 여기지 말라.
하나님의 원초적인 은혜의 크기는 사람마다 큰 차이가 없다. 그 은혜를 어떻게 구체화시켜내느냐에 따라 차이가 커지는 것이다. 저는 두 딸을 똑같이 사랑하기에 기본적인 은혜는 거의 똑같이 준다. 그러나 구체적인 선물은 나이와 개성과 태도와 재능에 따라 다르게 준다. 사랑하는 마음은 같아도 부모가 자녀에게 다른 선물을 주듯이 하나님도 사람마다 가장 적절하게 다른 선물을 나눠주신다. 그 차이를 이해해야 한다.
남이 나와 다른 존재임을 이해하는 관용을 사회학적 용어로 똘레랑스라고 한다. 영어로는 톨러런스(tolerance)라고 한다. 똘레랑스란 남의 행동양식을 이해하고 존중한다는 뜻이다. 남의 행동양식을 존중할 때 내 행동양식도 존중받는다. 예절바르다는 것은 인사 잘하고 교양 있는 것도 의미하지만 가장 기초적인 의미는 사람의 차이를 인정하는 똘레랑스의 자세를 가지는 것이다.
명백한 잘못이나 무례도 아닌데 남에게 “어떻게 그렇게 행동하는가? 좀 바꿔라.”라고 하는 것은 오히려 무례한 태도다. 반면에 “그는 나와 다르다. 이해하자.”라고 하는 것이 예의 바른 태도다. 그런 태도가 있어야 차분히 서로의 단점을 고쳐나갈 수 있다. 인간관계에서 속상한 일을 당하면 이런 고백부터 하라. “하나님은 그를 나와 다르게 만드셨다. 이해하자.” 예수님의 성육신의 핵심 의미 중의 하나도 이해와 관용이다. 이해하고 관용하는 예의를 갖출 때 하나님께 그 모습을 기뻐하시고 마음의 소원을 이뤄주실 것이다.
2. 은사로 하나님을 높이라
예수님은 성육신하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세상과 사탄을 결박하고 승천하신 후 성령을 보내어 은사를 주셨다(8-9절). 왜 그렇게 하셨는가? 본문 10절 하반부를 보라. “이는 만물을 충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만물을 충만하게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다는 뜻이다. 왜 은사가 주어졌는가?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라는 뜻이다. 은사를 신기하고 특별한 것으로만 생각하지 말라. 자기 재능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임 받으면 그것이 은사다. 재능을 은사화시키는 삶이 가장 성공적인 삶이다.
많은 재능보다 은사화된 재능이 중요하다. 재능을 은사화하면 하나님께 영광도 되고 자기도 행복해진다. 늘 기도하라. “하나님! 저의 재능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소서!” 그런 목표를 가지고 살 때 행복도 따라온다. 재능을 가지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데 쓰라. 더 나아가 삶의 최대 목적을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데 두라. 위대한 성취를 해도 자기 이름을 높이는 자랑은 삼가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자랑만 하라. 인간적인 성취를 자랑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탈취한 것이 되어 나중에는 오히려 더 무섭게 추락한다.
물론 정당한 성공이라면 남의 성공을 기쁘게 인정해주고 존중해주라. 그래야 하나님께서 자신의 축복 레벨도 올려주신다. 자랑하지 말라는 말은 남의 자랑스러운 일까지 깎아내리라는 말은 아니다. 존경해주고 높여주어야 할 사람조차 “나는 사람을 높이지 않고 하나님만 높일 거야.”라고 하면서 무조건 무시하지 말라. 스스로 지나치게 과시하며 자랑하지만 않는다면 자랑스러운 사람을 자랑스럽게 여겨주고 높여주어야 할 사람을 높여주라. 높은 사람을 깎아내리는 것이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라고 오해하지 말라.
가끔 보면 어떤 사람은 “나는 하나님만 높일 것이니까 사람 앞에서는 예의를 차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행동할 거야.”라고 하면서 무례하게 행동한다. 그러나 성도의 무례는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크게 깎는 것이다. 자연스러움과 예의 없음을 분별하지 못할 정도로 지혜와 지식의 은사가 없다면 문제다. 예의 없는 태도는 교만한 태도와 거의 비례한다는 점을 생각할 때 성도는 예의도 깍듯이 차릴 줄 알아야 한다.
성도도 예의를 차릴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하면 즉시 영성을 내세워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꼭 있다. “기독교는 윤리나 도덕이 아닙니다.” 누가 기독교를 윤리나 도덕이라고 했는가? 기독교인이라면 지킬 것을 지킬 줄 알아야 하나님의 이름이 훼손되지 않기에 보편적인 도덕 윤리도 지키고 사실상 그 이상의 예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믿음과 예의는 무관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삶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믿음과 삶을 괴리시키지 않는 모습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복된 모습이다.
3. 은사로 직분을 잘 감당하라
본문 11절을 보라.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하나님이 은사를 주신 것은 각각 맡은 하나님의 직분을 잘 감당하라는 뜻이다. 성공이란 각자의 맡은 직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흔히 재물과 많아지고 지위가 올라가면 성공했다고 생각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사람의 성공이 무슨 큰 성공이 되겠는가? 작은 일을 해도 하나님 앞에서 늘 진실하게 땀을 흘리며 최선을 다하면 그것이 성공이다.
작은 것의 가치를 보는 눈을 기르라. 아름답고 소중하면 작은 것도 귀한 것이다. 크든지 작든지 자기 직분에 충실한 사람은 누구보다 소중한 사람이다. 하나님이 주신 재능을 적어도 두 가지를 하는 데 꼭 쓰라. 하나는 일을 통해 자기 이상을 이루는 데 사용하고 또 하나는 하나님이 맡겨준 직분을 잘 감당하는 데 사용하라. 교회에서 어떤 직분을 맡기면 피치 못할 사정 외에는 그 직분을 힘써 감당하라. 맡겨진 직분을 잘 감당할 때 복도 얻고 권위도 생긴다.
공동체 생활에서 개혁 의견을 내기 전에 항상 맡겨진 직분부터 잘 감당하라. 몇 년쯤 감당해야 하는가? 최소한 10년쯤은 감당하라. 어떤 목회자는 교단에서 20년간 제 자리를 감당하면서 개혁의견을 내지 않았다. 그러자 오히려 영향력이 생겨 그의 가벼운 말도 엄청난 권위가 실리게 되었다. 자기 자리를 30년쯤 말없이 감당하면 그의 권위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개혁 의견을 내기 전에 먼저 자기 직분을 잘 감당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그 의견이 중후하게 받아들여진다. 묵묵히 자기 일을 감당할 때 발전도 있고 질서도 있고 희망도 있게 된다.
얼마 전에 한 구치소에서 처음 <월새기(월간새벽기도)>를 접하고 너무 좋다고 <온새기(온라인새벽기도)> 회원이 되고 결국 우리 교회에 몇 번 나온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교회에 나온 지 둘째 주도 아닌 첫째 주에 말했다. “목사님! 은혜 많이 받고 많이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성가대가 성가 끝나고 앞좌석으로 나오는 것이 좋지 않네요. 기도에 방해가 되고 경건성이 훼손되어요. 그냥 성가대 자리에 있게 하세요.”라고 말했다. 처음 나온 주에 교회 주일예배 틀을 바꾸라고 하는 말이라서 전혀 중후하게 들리지 않았다.
옛날에는 그런 말을 들으면 그의 마음에 들게 해서 교회에 정착시키려고 “아, 그래요?”라고 반응하지만 요새는 별로 반응하지 않는 편이다. 그럴듯한 말보다 자기 일을 감당하는 삶을 먼저 보려고 하기 때문이다. 어디에 가든지 신실한 행동으로 먼저 신뢰감을 주라. 맡겨진 일을 묵묵히 책임 있게 잘 감당하는 모습을 보여야 그의 말에도 신뢰가 가고 그의 제안도 적극적인 수용이 고려된다. 은사는 실천과 책임으로 나타나야 한다.
4. 은사로 교회를 잘 섬기라
왜 하나님이 은사를 주셨는가?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하게 하면서 결국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라는 뜻이다(12절). 은사는 영성을 과시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교회를 섬기라고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은사를 가졌으면 과시하지 말고 은밀하게 “내 은사로 어떻게 교회와 교인을 잘 순종하며 섬길까?”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고 실천하라. 그러면 교외와 교인에게도 유익이 되고 자신에게도 유익이 된다.
내가 직분을 잘 감당하면 교회도 좋아지고 남도 좋아지고 결국 나도 좋아진다. 그러므로 교회를 섬길 때 특별한 사정없이 “나 없으면 되나 보자.”고 하면서 봉사를 놓지 말아야 자신에게도 유익이 된다. 자기 은사로 남을 섬기고 교회를 세우는데 최선을 다하라. 또한 개인의 은사를 가지고 비교하면 안 되듯이 개 교회의 특장을 가지고 비교해도 안 된다. 앞으로 혹시 교회를 옮기면 분당 샛별교회의 장점은 깨끗이 잊고 그때부터 새로운 교회에 자기를 맞추고 그 교회의 장점을 살리는 일에 최선을 다하라. 그 신실함을 하나님이 크게 기뻐하실 것이다.
살다 보면 이전 연인과 헤어지고 새로운 연인을 만날 수 있다. 그때 지혜로운 사람은 새로운 연인을 옛 연인의 장점을 가지고 비교하지 않는다. 옛 연인의 장점을 기억하며 새 연인에게 그것이 없음을 아쉬워할 수는 있지만 옛 연인이 가진 것을 새 연인이 가지도록 강요하면 안 된다. 게다가 새 연인 앞에서 “옛 연인은 이랬어요. 당신도 그러세요.”라고 하면 새로운 연인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그 연인관계를 굳건히 하는데 도움도 안 된다.
교회생활도 피치 못할 사정으로 교회를 옮겼으면 이전 교회에서 어떤 것이 좋았어도 새 교회에서 “이전에 다니던 교회는 이랬어요.”라고 하지 말고 이전 교회의 장점은 깨끗이 잊으라. 그래야 더욱 복된 미래가 펼쳐진다. 교회는 다 다르다. 심지어는 같은 교회도 10년 전과 10년 후가 다를 수 있고 작았을 때와 컸을 때가 다를 수 있다. 그처럼 교회가 다른 것을 이해하고 교회의 장점을 존중하며 단점을 극복하려고 조용히 기여하고 더 좋은 날을 기다리며 현실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이 은사로 교회를 잘 섬기는 삶이다.
< 은사를 가지고 섬기라 >
은사는 영성과 영력을 과시하고 공동체의 헤게모니를 잡는 수단이 아니다. 성도는 늘 헤게모니보다 하모니에 관심이 많아야 한다. 프랜시스 쉐퍼 박사가 말했다. “구원은 개인적으로 받지만 기독교 신앙은 개인주의가 아닙니다.” 교회에서는 영적인 귀족처럼 행세하지 말라. 은사는 영적 귀족이 되라고 주어진 것이 아니라 섬기라고 주어진 것이다. 은사를 잘못 행사하면 교회를 분열로 몰고 가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은사의 탈을 쓴 헛된 은사다.
어떤 사람은 예언의 은사를 받았다면서 “이번에 로또를 사. 어떤 주식을 사라. 누가 다음 대통령이 된다.”라는 식의 말을 수시로 한다. 그것은 예언의 은사가 아니다. 그런 얘기는 누구나 할 수 있고 누구나 맞출 수 있다. 과시욕과 신비욕이 가득 찬 그런 예언은 사탄의 예언이다. 진짜 예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호기심과 신비감을 주기보다 거룩한 도전과 격려와 희망을 준다. 참된 예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찬란한 내일의 약속을 가지고 희망을 주고 격려해주기에 그가 가는 곳마다 사랑과 희망이 넘친다.
참된 은사를 받은 사람이 한 사람만 있어도 교회가 분열하기보다 교회의 분위기가 크게 달라진다. 은사는 생기를 일으키고 사랑과 평화의 분위기를 만든다. 결국 은사를 가진 사람이 가는 곳마다 사랑과 평화와 활기와 섬김이 넘치고 교회가 살아난다. 은사는 교회의 부족한 부분을 메우면서 섬기라고 주어진 것이다. 그처럼 조용히 무대 뒤편에서 은사로 섬겨주는 사람이 많을 때 그 교회는 은혜가 넘치는 교회가 된다.
은사로 자기를 돋보이게 하면 교회 전체가 엉망이 되고 결국 아무도 돋보이지 않게 된다. 은사를 가지고 감사하며 조용히 섬기라. 어떤 성도는 어렵게 살면서도 남의 누림을 전혀 질투하지 않고 오히려 중보기도를 해주고 남에게 미소를 지어주고 베풀면서 산다. 얼마나 복된 삶인가? 그런 삶을 통해 남에게 도전과 자극을 주면서 하나 되기를 힘쓰고 하나님이 주신 은사로 이웃에게 선한 영향을 끼치며 교회를 세우는 데 힘쓰라. 축복의 원리는 복잡하지 않다. 자기에게 주어진 은사로 열심히 헌신하고 섬기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면 축복은 저절로 따라온다.
요새 <월새기(월간새벽기도) 영어판>을 위해 여건이 되면 헌신하겠다는 사람이 대략 10여명 된다. 그 중에 누가 그 물꼬를 틀지 궁금하고 기대도 된다. 그 중에 한 명은 <월새기 영어판>의 첫 물꼬를 튼 사람으로 자신이 바라거나 의도하지 않았어도 하나님 앞에서 오래 이름이 기억될 것이다. 억지로 이름을 높이겠다고 안달할 필요가 없다. 순수하게 헌신하면 자기도 모르게 이름이 높여진다. 어디서든지 원리는 유사하다. 즉 섬기면 섬김 받고, 헌신하면 축복 받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면 자기 이름이 높여진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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