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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5:12-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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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참고 : | 2017.8.13 희망의교회 http://hopech.kr |
놀라운 치유
눅5:12-26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은 복음 전파와 이적 행하심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사역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수많은 이적을 행하셨는데, 그 모든 이적은 복음 전파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적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며, 그분이 전하시는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누가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두 가지 이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온 몸에 나병이 들린 사람을 고쳐주셨으며, 거동할 수 없었던 중풍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
온 몸에 나병 들린 사람
한 나병환자가 예수님께 왔습니다. 의사였던 누가는 이 사람의 증상을 정확히 기록했습니다. “예수께서 한 동네에 계실 때에 온 몸에 나병 들린 사람이 있어 예수를 보고 엎드려 구하여 이르되 원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니”(12절)
이 사람은 ‘온 몸에 나병이 들려’ 그 상태가 매우 심했습니다. 그의 몸에서는 고름이 흘러나오고 썩는 냄새가 지독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코는 문드러지고, 손가락과 발가락이 떨어져 나간 흉한 모습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나병은 전염병이었으며, 이 병에 걸린 사람은 부정하게 여겨졌습니다. 따라서 나병환자들은 가정과 사회에서 격리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나병에 걸린 사람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로 여겨졌습니다. 나병환자들은 육체적인 고통과 슬픔과 고독과 수치와 절망 가운데서 살아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나병환자는 예수님에 대해서 듣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어떤 병이든지 다 고쳐주시며, 죄인들을 기꺼이 받아주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을 들었을 때 이 나병환자는 한 줄기 소망을 품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는 어떻게든 예수님을 찾아가 고침 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언제나 많은 사람들에게 에워싸여 계셨으며, 자신과 같은 나병환자는 부정하기 때문에 사람들 앞에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부정하고 저주 받은 자로 여겼습니다. 만일 그가 사람들 앞에 나섰다가는 온갖 욕을 먹고 돌에 맞을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나병환자는 그 모든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예수님 앞으로 왔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보고 즉시 엎드려 자신을 고쳐주시라고 간구했습니다.
원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이 나병환자는 예수님 앞에 엎드려 ‘원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께서 전능하신 분이심을 믿었습니다. 문제는 그 거룩하시고 전능하신 분이 자기 같은 부정한 자를 용납하시고 고쳐주실 마음이 있으신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그를 고쳐주실 마음만 있으시다면, 얼마든지 깨끗하게 고쳐주실 수 있으리라 믿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불쌍한 나병환자에게 손을 대시며 고쳐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나병이 곧 떠나니라”(13절)
이 나병환자는 부정했기 때문에 사람들 앞에 나올 수 없었으며, 아무도 그를 만질 수 없었습니다. 그를 만지는 자마다 부정해지고, 나병에 전염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손을 내밀어 그를 만지셨습니다. 그것은 이 불쌍한 사람에 대한 주님의 연민과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의 고통과 슬픔과 고독과 수치와 절망을 잘 아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불쌍히 여기사 그에게 자비의 손을 내밀어 주셨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의 심한 나병이 즉시 떠나가고 완전히 깨끗해졌습니다. 사랑의 주님께서 이 사람을 긍휼히 여기시고 온전히 고쳐주셨던 것입니다.
제사장에게 가서 보이라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에게 이 사실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제사장에게 가서 몸을 보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그를 경고하시되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네가 깨끗하게 됨으로 인하여 모세가 명한 대로 예물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셨더니”(14절)
나병환자가 치유되면 제사장에게 가서 확진을 받아야 했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제사장은 나병에서 치유된 사람을 일주일간 감금해두었다가, 일주일 후에도 나병 증세가 전혀 나타나지 않으면 속죄제를 드리고 정결예식을 행하게 했습니다. 그 후에야 이 사람은 가정과 사회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을 치유해주셨을 뿐만 아니라, 공식적으로 죄와 저주에서 완전히 회복된 자로 인정을 받게 하셨던 것입니다.
물러가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심
예수님께서는 나병을 고쳐주시고, 이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소문은 더욱 퍼졌습니다. 당시 나병은 불치병이었고, 이 병에 걸린 사람은 하나님께 저주 받은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나병을 고쳐주셨던 것입니다. 이 소문을 듣고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몰려들었습니다. “예수의 소문이 더욱 퍼지매 수많은 무리가 말씀도 듣고 자기 병도 고침을 받고자 하여 모여 오되”(15절)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몰려드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일입니다. 정치인이나 의사나 사업가나 연예인이나, 심지어는 교회도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몰려들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들에게서 물러가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16절)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수록, 그리고 사역이 많고 바빠질수록 사람들에게서 물러나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의 비결은 바로 이 기도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명에 집중하시고 흔들림 없이 그 사명을 끝까지 완수하실 수 있었던 비결도 역시 기도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많은 사람들과 일들 속에 묻혀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당신은 기도하기 위해 그 모든 것들로부터 얼마나 물러나고 있습니까? 우리가 그 모든 일들을 올바르고 능력 있게 감당할 수 있는 비결은 기도입니다. 이 바쁘고 혼란스런 일들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는 비결도 바로 기도입니다. 주님과 은밀하게 단둘이 교제하기 위해 다른 모든 것들로부터 물러나 기도하기를 힘쓰십시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가는 비결입니다. 일과 인간관계, TV와 컴퓨터, 스마트 폰으로부터 물러나 주님 앞으로 나아가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바리새인들과 율법 교사들
누가는 본문에서 처음으로 바리새인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준수에 특별한 열심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율법을 철저히 지켰으며, 당시 유대 사회에서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성전 중심의 귀족 계급이었던 사두개인들과 함께 산헤드린 공회를 반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율법준수는 형식적이고 위선적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바리새인들을 신랄하게 비판하시고 책망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사두개인들과 함께 예수님을 대적하고 결국 십자가에 못 박게 했습니다.
율법 교사들은 바리새인들 중에서도 율법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가르치는 율법의 권위자들이었는데, 서기관과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바리새인들과 율법 교사들이 예수님께서 말씀 가르치시는 곳에 왔습니다. “하루는 가르치실 때에 갈릴리의 각 마을과 유대 예루살렘에서 온 율법 교사들이 앉았는데 병을 고치는 주의 능력이 예수와 함께 하더라”(17절)
바리새인들과 율법 교사들이 왜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 곳에 왔을까요? 예수님께서 놀라운 일들을 행하셨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당시 종교 지도자요 율법의 전문가들이었던 이들은 예수님의 사역을 확인하기 위해 그 자리에 왔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특히 병 고치시는 일이 미신적이거나 마술적인 속임수는 아닌지 알아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누가는 그 때 병 고치는 주의 능력이 예수님과 함께 하고 있었다고 기록했습니다. 자,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중풍병자를 침상에 메고 온 사람들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예수님께서 말씀을 가르치고 계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권위 있고 은혜로운 말씀을 주목하여 듣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큰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지붕을 뜯고 병든 사람을 침상에 누인 채로 예수님 앞으로 달아 내렸던 것입니다. “한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침상에 메고 와서 예수 앞에 들여놓고자 하였으나 무리 때문에 들어갈 길을 얻지 못한지라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벗기고 병자를 침상 째 무리 가운데로 예수 앞에 달아내리니”(18-19절)
마가는 네 사람이 한 중풍병자를 메고 와서 이런 일을 했다고 기록했습니다. 이 중풍병자는 침상에 누워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중증이었습니다. 아마도 그 사람의 친구들이었을 이 네 사람은 이 중풍병자를 예수님께로 데리고 가면 고쳐주실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 날 예수님께서 말씀을 가르치시던 집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침상을 메고 예수님 앞으로 가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침상을 메고 지붕으로 올라가 지붕을 뜯고 자기들의 친구를 침상 째로 예수님 앞에 달아 내렸던 것입니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 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던 사람들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소동 가운데서 이 사람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20절)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들의 믿음을 보시고 기뻐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는 병 고침을 받기 위해 찾아온 이 사람의 병을 고쳐주기 전에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하셨을까요?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그 자리에 있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신성모독을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생각하여 이르되 이 신성모독 하는 자가 누구냐 오직 하나님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21절) 하나님만 죄를 사할 수 있는데,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 마음에 무슨 생각을 하느냐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매 그 사람이 그들 앞에서 곧 일어나 그 누웠던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22-25절)
예수님께서는 평소에 하시던 대로 그냥 이 중풍병자를 고쳐주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셨을까요? 병 고치는 이적을 행하는 것보다 죄를 사하는 일은 훨씬 크고 중대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통해 메시아이신 당신께 죄 사하는 권세가 있다는 것과, 주님께서는 죄를 사해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분명히 나타내고자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그 중풍병자를 고치셔서 즉시 일어나 누웠던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게 하셨습니다.
이 이적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이심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메시아’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대신 ‘인자’라는 말을 사용하셨습니다. ‘인자’는 다니엘이 메시아에 대해 예언하면서 사용한 호칭입니다.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단7:13-14)
메시아가 오신 목적
예수님께서는 이 일을 통해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은 병자들을 고쳐주시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죄를 사해주시기 위해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타락한 인류는 죄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영원히 멸망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로 영원히 멸망당할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들의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누구나 우리 죄를 대신 담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받게 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죄를 사해주시기 위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고쳐주시기 전에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기 위해 오셨음을 분명히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메시아이심을 믿지 않았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께서 신성모독을 하셨다고 생각했습니다.
주님 앞에 나아가자
예수님께서 온 몸에 나병 들린 사람을 고쳐주신 것과, 침상에 누워 움직일 수 없었던 중풍병자를 고쳐주신 것은 단순히 병을 고쳐주신 이적이 아니었습니다. 온 몸에 나병이 들린 사람은 소망 없는 죄인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침상에 누워 움직일 수 없었던 중풍병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의 병을 고쳐주시기 전에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질병은 죄와 비슷합니다. 특히 나병은 죄와 비슷합니다. 질병이 육신의 병이라면, 죄는 영혼의 병입니다. 나병이 살과 뼈를 썩게 하여 육체를 파괴하듯이, 죄는 사람의 마음과 영혼을 부패시키고 파멸시킵니다. 나병은 통증이 없는 가운데 병이 진행되어 육체를 파괴합니다. 죄도 회개하지 않고 버리지 않으면 무감각해집니다. 그래서 죄를 짓고도 태연하며, 계속해서 죄를 더 짓게 됩니다. 그리하여 소망 없는 멸망의 자식이 되게 합니다. 영원히 멸망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병이 낫는 것과 죄 사함을 받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중요합니까? 말할 것도 없이 죄 사함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죄 사함을 받지 못한다면, 병 고침 받은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돈 많이 번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일 잘 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무엇이 더 중요하고 우선적인지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죄의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우리의 모든 문제는 해결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죄 문제만 해결된다면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온전히 회복되고, 우리는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무엇이나 구하는 것을 다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 추하고 무서운 죄에서 깨끗함을 받을 수 있습니까? 이 나병환자와 중풍병자처럼 모든 방해를 극복하고 주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받아주시고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기 위해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히9:14) 소망 없는, 영원히 멸망당할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셨고,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주님 앞에 나아가 죄를 내어놓고 깨끗하게 해주시기를 간절히 구하십시오.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온전히 회복되어 얼마든지 주시는 은혜를 힘입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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