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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기복주의와 이상주의

순전한신앙이야기 황부일............... 조회 수 150 추천 수 0 2018.08.05 17: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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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기독교 기복주의와 이상주의

고은교회 황부일목사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몰려든 무리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소문을 따라 열심히 예수를 찾았고 미리 예수께서 가실 곳을 예측하여 먼저 가서 몰려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무리는 모두 예수를 찾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각각의 기대도 있었고 모인 회중이 공동으로 구하는 것도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의 각각의 기대는 계층별로 형편따라 구하는 차이가 있었고 공통적으로는 함께 구하는 것은 저들 유대민족으로 함께 바라는 이상대로 유대나라 회복이였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예수님 이름으로 모이는 무리들을 보면 성령의 역사로 거룩케 되는 은혜로써 부름받아 교회되는 경우는 매우 적고 대체적으로 당시 유대무리처럼 예수를 통해 각자 기대를 얻고 이루려고 모여드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이것을 구하는 별로 구분하여 나누어 보면 기독교 기복주의와 기독교 이상주의로 볼 수 있습니다.

<기독교 기복주의>

기복주의 혹은 기복신앙은 같은 맥락입니다. 여기서 기복이란 "복받기 위해 빈다"는 것입니다. 대체적인 종교의 목적이 다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들은 바라고 소원하는 것이 다 있습니다. 그것은 죄와 허물로 죽어 육체가 된 인생들이 죄의 본성을 따라 욕심, 욕망으로 사는 것 인데 그것이 끝없이 욕구하는 대로 되지 않기에 그것을 신앙으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는 종교를 찾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에는 대체적으로 기복주의가 많습니다.
기독교가 이교화 되어간다는 상태가 바로 그것입니다.

성경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또한 그의 자녀들에게 주신다는 약속된 복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약속된 영원한 하늘의 복에는 관심없고 자기들이 필요로 하고 더 기대하는 바대로의 세상복을 위해 주를 찾고 모든 신앙의 행위를 그 목적을 위해 열심히 하는 것이 바로 기복주의 신앙인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의 언약의 축복이 늘 계시되어 내려 오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메시야를 통한 메시야왕국 실현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저들 나들대로 메시야를 통한 기대들을 품고 그틀을 만들어 놓고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유대사회를 상류층,중류층,
하류층으로 나누어 볼때 상류층은 메시야를 통해 기득권회복과 그 더이상의 부귀영화를 누리는 기대의 복으로 바랬고 , 중류층은 갈등과 혼란과 전쟁이 없는 평안의 안정의 행복을 기대했고,
하류층은 메시야를 통해 형편적 문제해결과 신분적 상승의 기대 복을
고대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메시야라고 하는 예수님은 자신들의 기대의 복을 채워주지 않고
그나라와 그의 전하자 점점 불신하고 멀리하며 아예 거짓 메시야 이단으로 몰아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실제 당시 유대인들을 보면 예수께서 하신 오병이어의 역사를 보고 더욱 열심히 밤이고 새벽이고 생활의 해결사로 예수를 찾았고 예수님을 억지로 잡아 저들의 삶의 해결사로 임금삼으려 하자 예수께서 혼자 산으로 떠나가셨다고 했습니다.(요6:14~15)

예수님은 그들에게,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의 인치신 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 6:26-27)
즉 썩을 복을 주러 오신 것이 아니요 영생할 복을 주러 오신 것을 분명하게 밝히신 것입니다.

당시에 모여든 무리들이나 오늘날 예수 이름으로 모여든 대체적인 무리들이 예수를 통해 자신들이 기대하는 바 세상영광이나 형편적으로 복된 것을 얻으려 하고 그것이 원하는대로 안되는 문제들을 해결받으려고 모이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오늘날 보면 사람들의 기대의 세상복을 말하는 교회가 많고 그러한 곳에 몰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교회들이 그런 무리들로 성장하여 대형교회를 이루고 성공한 교회고 목회라고 하지만 대부분이 주께서 역사하시는 신령한 축복으로 그나라를 나타내는 거룩한 교회로 서가는 경우가 아닌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신령한 복을 증거 합니다. 그것은 전혀 사람들이 기대하는 차원의 복이 아닙니다.
그 신령한 복은 하나님께서 이미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것으로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심이라고 증거했습니다. (엡 1:3-5)

원래 복이라는 것은 저주에서 화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인간은 죄와 허물로 죽고 그 형벌을 살아가는 진노의 존재들입니다.
전도서 5:17을 보면 죄의 형벌을 살아가는 인생이 된 인간들에 대해 잘 말씀했는데 보면, "일평생을 어두운데서 먹으며 번뇌와 병과 분노가 저에게 있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이런 죄와 그 형벌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근원적으로 불행힌 인생이 무엇인들 진정으로 복될 수 있습니까?
인간이 원하는 그 어떤 기대의 복이 넘치게 되었다 하여도 죄로 인한 저주와 그 진노의 형벌은 벗어 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도 여호와의 복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오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라.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신 33:29)
예수님은 "사람이 만일 온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라겠느냐" (마 16:26)라고 말씀하심이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복은 욕망적인 온 천하적이고 부귀영화고 그것을 얻고 누리고자 주를 찾고 필요로 하는 것이 바로 기복신앙입니다.

기독교 기복주의가 그렇습니다.
나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내 기대대로 넘치길 바라고 또한 나를 통해 오병이어같은 역사가 소원대로 이루어지길 바라는 것입니다.

이들은 그리스도를 통한 죄의 형벌인 저주와 죽음의 인생 상태에서 해방되는 구원의 복과 그 구원을 영원히 누리며 사는 하늘의 신령한 참 복을.모르는 것입니다.

구원을 얻고 사는 참복은 세상 형편이나 조건이 있고 없고 많고 적고 상관없이 하나님나라를 구원의 능력으로 은혜로 살아가는 것이요 하박국서지자처럼 모든것이 되는 것 없고 가진 것도 없고 세상상태는 전쟁의 소식으로 불안해도 하나님 한분만으로 기뻐하며 사는 것이 진정으로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것이 기독교의 참 복인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믿음을.통해 세상을 살게 하려는 기복적인 교회들이 너무 많은 것입니다.

<기독교 이상주의>

이상주의는 망상주의와는 다릅니다. 철저히 현실적이면서도 현실이 궁극적으로 최상이 됨을 바라는 중심입니다.
보편적 개념에서 이상은 도덕적, 미적, 사회적으로 생각 할 수 있는 가장 완전한 상태를 말하며 바람직한 좋은 상태를 완전히 갖추어 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이상주의자들은 완전한 사회 유토피아를 꿈꾸는 자들입니다.
그렇게 될 수 있고 그렇게 믿고 합력하려는 것이 기독교 이상주의 자들입니다.그래서 이들은 공동체적으로 바라는 것을 이루어 보려고 기독교 연합운동을 많이 합니다.

복음이란 용어 개념을 보면 "구원의 소식", "평화의 소식",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 합니다.
기독교 이상주의자들은 여기서 "좋은 소식"을 자기들이 기대하는 가장 좋은 상태로 바라고 인정합니다.
그래서 이들의 신앙은 주를 통해 지상낙원을 바랍니다.
구원도 그들의 지향하는 이상실현이고 평화도 인류가 세계가
함께 공존하며 좋은 세상을 이루는 것을 말합니다.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공동체가 함께 공감하는 행복을 지향합니다.
이성적 좋은세상 이성적 좋은 관계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마 7:7-11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비유하여 아무리 악한 아버지라도 아들이 떡을 달라는데 돌을 줄 자가 있겠느냐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좋은 것과 우리가 기대하며 바라는 좋은 것과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납니다.
사람들이 바라는 좋은 것은 인간적이고 세상적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좋은 것은 구원이고 세상이 아닌 하나님 나라입니다.
같은 말씀인 누가복음 11:13에 보면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성령은 내주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이 오신 것은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로서 그리스도와 믿음을 통한 하나님나라 구원입니다.

기독교 이상주의자들은 복음이 말하는 좋은 소식으로서 인간적 이성적 행복이나 이상을 말하며 평화도 세상 평화를 말하고 모두 함께 계층 없이 박애젹으로 잘사는 사회실현을 말합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박애주의자고 인권주의자고 가난한 자, 억압받는 자, 갇힌 자 등을 그 형편에서 건져주고 계층도 없는 좋은 이상 사회 구현을 위해 오셔서 반대 무리와 저항하다가 잡혀 죽으신 혁명가로 여깁니다.

결국 이들은 지상천국을 기대합니다. 그래서 도시 성시화 운동도 벌이고 사회정의구현이나 인권운동도 벌입니다.
기복신앙은 좀더 개인주의적이라면 기독교이상주의자들은 공동체적입니다.
세상 사회와 더불어 새시대 좋은 세상 구현이 이들의 구원관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요18:36)는 말씀을 모르는 것입니다.

이시대 기독교 일반 신앙의 흐름을 보면 과거 어렵고 과도기적인 시대에 찾던 기복적인 신앙보다 형편이 좋아진 이젠 기독교 이상주의인 인본주의신앙이 더 공감 확대 되었습니다.
그만큼 사람들의 형편은 좋아지고
높아진 학벌이나 세계적 소통의 매체를 통한 다원적인 이성적 지식이
많이 향상되었기 때문입니다.

분명 이시대는 인본주의 신앙이 판치는 시대입니다.
기독교 이상주의가 각 교파에서 많은 공감을 형성하며 같은 이념이나 시대적문화 까지 조화된체 사회와 공조를 이루며 현대교회들로 크게 자리해 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성경은 분명히 증거하기를,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골2:8)
말씀함을 알아야 합니다.

<복음의 합당한 신앙 입장>

오늘날 교회라 하면서 모여서 주로 구하는 부류들로 나누어 보면 자기유익을 구하는 부류들(기복주의)
과 사회공동체의 유익을 구하는 부류들(이상주의)로 나누어져 있음을 볼 수있습니다.
그리고 교회구원의 유익을 구하는
역사적 정통신앙의 개혀파가 있습니다.

바울은 증거하기를,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1:22~24)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어느 시대나 사람들이 기복을 구하든지, 이상주의를 지향하든지, 각각 그렇게 맞추어 주는 다른 복음이 넘치든지, 십자가의 도인 복음의 진리만
증거되고 거룩히 따르는 역사가 있는
교회가 바로 성령이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시는 역사적 정통교회인 것입니다.

그리고 언약된 교회구원을 지향하는 개혁파 교회가 맞다면
오로지 복음의 합달한 신앙을 위해 일심하고 합력해야 합니다.(빌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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