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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우 원고지 한장 칼럼]
1661.악한 권력
예수님의 부활 승천 성령강림 이후 사도들이 예루살렘에서 말씀을 전하고 큰 표적을 행하자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대제사장과 사두개인들은 이를 아주 불쾌하게 생각하고 사도들을 체포해 감옥에 쳐 넣었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악한 권력은 자기들의 정치적 계산에 따라서 죄 없는 사람들을 얼마든지 감옥에 가둡니다.
1662.살리신 하나님
사도들이 예수를 전해야만 했던 이유는 산헤드린이 무고하여 십자가에 처형하게 한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권력이 행하는 일이 죽임이라면,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은 살림입니다. 권력에 사로잡힌 사람은 자기의 행위가 죽이는 일인지도 잘 모릅니다. 사도들이 그런 이들의 명령을 따를 수는 없었습니다.
1663.들어 올리신 하나님
사도들이 예수를 전해야만 했던 이유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를 오른 편으로 들어 올리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님이 생명의 중심으로 옮기셨다는 의미 입니다. 이런 일은 오직 하나님만 하실 수 있습니다. 산헤드린 권력은 단지 자기들의 권위를 내세우는 일만 합니다. 이런 점에서 그들은 무능력합니다.
1664.증인이기 때문에
사도들이 예수를 전해야만 했던 이유는 사도들은 하나님이 행하신 구원에 대한 증인들이기 때문입니다. 사도들만이 아니라 성령도 이것에 대한 증인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이 사도들에게 허락하신 생명의 영입니다. 그 성령의 능력으로 사도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표적이 일어났습니다. 그 표적은 오늘날도 동일하게 일어납니다.
1665.자원하여 감사함으로
하나님은 강요해서 드리는 헌금이나 감정적인 충동에 의해서나 주변의 시각을 의식해서 드리는 헌금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형편대로 감사헌금을 드리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기쁘게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헌금을 원하십니다. 감사헌금을 드릴 때 부담이 아니라, 심령의 자유와 평안을 느끼기를 원하십니다.
1666.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
옛날에 한 여인이 무덤 셋이 있는 곳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호랑이한테 재작년에 남편을 잃고 작년에 시아버지를 잃고 올해 아들을 잃은 것이었습니다. “왜 그런 호환 중에도 이곳을 떠나지 않나요?”라고 묻자 “이곳에 호환은 있어도 과도한 세금이나 노역을 물리고 재물을 빼앗는 관리는 없어요. 그래서 못 떠나요.”
1667.드리는 삶
하나님 앞에 드릴 줄 아는 삶은 신앙상태와 신앙성숙의 정도를 알아보는 중요한 지표중의 하나입니다. 공동체 생활에서 ‘드리는 삶’은 책임감과 신실함을 나타내는 중요한 표시입니다. 그래도 헌금은 강요되면 안 됩니다. 가혹한 신앙은 다른 어떤 것보다 더 무서운 후유증을 낳을 수 있습니다. 자발적으로 기쁘게 헌금할 때 심령에도 기쁨이 넘치고 하나님도 기뻐하십니다.
1668.함께 누리기
기쁨과 즐거움을 누릴 때는 늘 마음에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남보다 많이 누리게 하셨고 그것이 감사하면 그 마음이 소외된 자들에게 실천으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의 감사절이 자기들끼리만 먹고 마시고 마는 자기들만의 절기가 되면 안 됩니다.
1669.마조히스트
심리학적으로 맞을수록 쾌감을 느끼는 사람을 마조히스트(Masochist)라고 하는데 주님의 제자들은 주님을 위해서는 어떤 고난도 두려워하지 않는 신령한 마조히스트처럼 살았습니다.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맞는 것은 마조히스터가 아닙니다. 정의로운 일이나 당위성을 가진 어떤 공의로운 일 때문에 억울하게 맞는 것이 마조히스터입니다.
1670.가만 있으라
20세기 최대의 실천신학자인 본회퍼는 “조용히 있으라!”는 나치 정부의 명령을 듣지 않아 교수형을 당했지만 그는 20세기에 가장 위대한 ‘행동하는 양심’이 되었습니다. ‘가만 있으라’는 말을 들었다가 300명이 넘는 학생들이 희생된 ‘세월호’ 사건을 기억하십시오. 누가 “가만 있으라. 조용하라!” 해도 복음 전하는 일을 멈추지 마십시오.ⓒ최용우(전재및 재배포 대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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