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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히11:13-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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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민병석 목사 |
참고 : | http://www.bamjoongsori.org 밤중소리 |
(70) 본향을 바라보며 살아간 믿음의 선진들
(히브리서 11:13-16)
본문 13절로 16절까지는 이들 구약시대의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에 대해 그들이 소망으로 삼고 살아온 근원적인 근거에 대해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표현하면 이들 믿음의 선진들의 소망은 이 땅에 둔 생활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예비하신 하늘의 한 성, 다시 말하면 하늘의 예루살렘 성으로 곧 천국을 소망으로 살아간 것임을 밝혀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약속을 받지 못했지만 그 약속을 멀리서 바라보고 환영했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는 생활을 했는데 그 본향이란 하나님이 저희를 위하여 하늘에 예비한 성이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같은 말씀을 통해서 구약 시대에 살아간 사람들 중에도 믿음을 따라 천국에 올라간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1. 믿음을 따라 죽은 선진들
13절에서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들이 따랐다고 하는 믿음이란 무엇에 대한 믿음을 가리키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한 성으로 표현된 천국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했다’고 했는데 그들이 그들의 생애 중에 멀리서 보고 환영한 것이란 그들이 찾아갈 본향으로서의 천국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약속은 받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살아서 이 같은 약속의 성취를 보지 못한 채 죽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 같은 표현은 아벨이나 에녹이나 노아나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야곱 등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실행할 것이라고 하는 믿음을 가지고 그들의 생애를 살아간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특히 아브라함의 경우에서 10절 말씀을 보면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는 말씀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 나라의 소망 가운데 이삭과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는 생활을 하면서 그 나라를 동경하고 그 나라가 반드시 성취될 것으로 믿은 것입니다.
이 같은 선진들의 증거는 무엇을 말씀해 주는 것입니까? 우리는 그들보다 더 확실한 약속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가운데 요14:2-33절 말씀에서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구약 성도들에게는 이런 확실하고 분명한 약속이 없었지만 믿음으로 그 나라를 소망하고 그들의 삶의 목적을 그 나라에 두었던 것입니다.
2. 우리가 본받아야 할 선진들의 믿음
이 같은 믿음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우리의 신앙에 큰 교훈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을 먼 장래의 일로 생각하는 나머지 재림의 준비나 신부의 단장에 대해서는 듣기조차 싫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교훈해 주시는 것입니까? 마24:42절에서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고 하셨으며 44절에서 이어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눅21:36절에서는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말씀으로 미루어보아 우리는 믿음의 선진들처럼 비록 우리의 생애 중에 주의 재림이 없을지라도 그것을 바라고 재림의 주를 영접할 것을 믿음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13절에서 이들은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늘에 예비된 본향을 믿음으로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그들에게는 그들이 살아가고 있는 이 땅에서의 생애를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했다는 것입니다. 외국인과 나그네라는 말은 자신들이 살아가는 이 땅이 자신들의 본향이 아니라 장차 본향에 들어가는 나그네길이란 것을 의미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사실을 거듭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15절에서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다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만약 이들이 자신들이 등지고 나온 고향 땅이 본향이라고 한다면 그들은 언제인가 그곳에 돌아갈 기회가 주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소망한 본향은 그들이 떠나온 고향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예비하신 하늘의 본향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16절에서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이 땅에 있는 우리의 본향보다 더 나은 본향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 본향은 이 땅에 있어서 우리가 돌아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것이라고 본향이 있는 곳을 지적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들이 사모한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 본향이 눈에 보이는 곳이거나 지금 우리가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그 말씀으로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곳은 우리들이 믿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실상’이요 ‘증거’로써 확실하게 잡을 수 있는 것입니다.
결론 : 바울은 이 성에 대하여 고후5:8절에서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고 말씀해 주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하늘의 본향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장막과는 전혀 다른 하늘의 본향인 사실을 믿으시고 그 나라에 소망을 두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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