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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와 메추라기 이야기

민수기 정용섭 목사............... 조회 수 1311 추천 수 0 2018.10.09 22:5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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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민11:4-15 
설교자 : 정용섭 목사 
참고 : http://dabia.net/xe/980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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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와 메추라기 이야기

민11:4-15, 창조절 다섯째 주일, 2018년 9월30일

 

4.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5.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6.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하니 7.만나는 깟씨와 같고 모양은 진주와 같은 것이라 8.백성이 두루 다니며 그것을 거두어 맷돌에 갈기도 하며 절구에 찧기도 하고 가마에 삶기도 하여 과자를 만들었으니 그 맛이 기름 섞은 과자 맛 같았더라 9.밤에 이슬이 진영에 내릴 때에 만나도 함께 내렸더라 10.백성의 온 종족들이 각기 자기 장막 문에서 우는 것을 모세가 들으니라 이러므로 여호와의 진노가 심히 크고 모세도 기뻐하지 아니하여 11.모세가 여호와께 여짜오되 어찌하여 주께서 종을 괴롭게 하시나이까 어찌하여 내게 주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게 아니하시고 이 모든 백성을 내게 맡기사 내가 그 짐을 지게 하시나이까 12.이 모든 백성을 내가 배었나이까 내가 그들을 낳았나이까 어찌 주께서 내게 양육하는 아버지가 젖 먹는 아이를 품듯 그들을 품에 품고 주께서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가라 하시나이까 13.이 모든 백성에게 줄 고기를 내가 어디서 얻으리이까 그들이 나를 향하여 울며 이르되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라 하온즉 14.책임이 심히 중하여 나 혼자는 이 모든 백성을 감당할 수 없나이다 15.주께서 내게 이같이 행하실진대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내가 고난 당함을 내가 보지 않게 하옵소서.

 

애굽에서 소수민족으로 살던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가나안으로 이주하는 대장정에 나섰습니다. 애굽에서 가나안까지 가는데 장정 걸음으로 한 달이면 충분하지만 그들은 40년이나 걸렸습니다. 40년에 걸친 광야생활에서 온갖 어려운 일은 다 겪었습니다. 이민족의 공격을 받기도 하고, 전염병에 걸리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굶어죽는 사람들도 많이 나왔습니다. 애굽에서의 엑서더스를 후회하는 사람들도 생기고, 그들의 지도자였던 모세를 원망하는 사람들도 나왔습니다. 아주 특별한 경우에는 내전을 겪기도 했습니다. 혹독한 시련의 기간이었습니다. 그런 일들 중의 하나가 오늘 설교 본문인 민 11장에 나옵니다.

 

고기를 원하는 백성들


광야를 횡단하는 출애굽 이스라엘 공동체에는 이스라엘 사람들만이 아니라 다른 종족들도 섞여있었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그들은 원래 나일강 유역의 비옥한 땅 고센에 살고 있었습니다. 당시 애굽에는 원주민인 애굽 사람들만이 아니라 여러 민족들도 어울려서 살았습니다. 제국의 상황은 언제가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과 혼인관계를 맺거나 친구가 되거나 사업적으로 관계를 맺고 살았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을 떠난다는 소문을 들은 다른 민족 사람들이 동행하고 싶어 했을 수도 있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들에게 먼저 제안했을 수도 있습니다. 광야 생활 과정에서 이방 민족의 일부가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들어왔을 개연성도 있습니다. 민 11:4절에 따르면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었다고 합니다. 공동번역은 그들이 불평을 했다고 합니다. 불평의 이유는 먹을거리가 형편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불평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도 부화뇌동했습니다. 공동번역으로 4-6절을 읽겠습니다.


그들 가운데 섞여 살던 외국인들이 먹을 것이 없다고 불평을 하자, 이스라엘 백성도 다시 우는 소리를 했다. “아, 고기 좀 먹어봤으면. 이집트에서는 공짜로 먹던 생선, 오이, 참외, 부추, 파, 마늘이 눈앞에 선한데, 지금 우리는 먹을 것이 없어 죽는구나. 보기만 해도 지긋지긋한 이 만나밖에 없다니.”

 

당시 애굽은 지중해 연안의 여러 나라 중에서 가장 잘 나가는 나라에 속했습니다. 피라미드 건축에서 그들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피라미드를 건축하려면 물적인 토대가 받쳐줘야 하고, 건축술이 뛰어나야 하고, 왕의 정치적 리더십이 확고해야만 했습니다. 그 모든 기반은 나일강입니다. 강이 자주 범람했습니다. 상류에서 기름진 흙이 밀려 내려오는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일강 인근에서 고기도 잡고, 농사도 짓고, 소와 양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부가 축적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 소수민족들도 함께 먹고 사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었습니다. 지금 미국의 우리 교포들이 사는 거와 비슷했다고 보면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잘 먹고 잘 사는 것보다는 영혼의 자유가 더 소중하다고 생각하여 과감하게 출애굽을 감행했으나 현실은 척박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광야생활은 매 순간이 생존과의 투쟁이었습니다. 애굽에서 누렸던 문화생활도 불가능했습니다. 사는 것 자체가 힘들기도 하고 무료해졌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갈 날도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현재 상황에 대한 불평불만이 높아졌습니다. 그들의 마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문장이 ‘고기를 먹고 싶다.’입니다.


애굽에 살 때도 고기는 자주 먹지 못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출애굽은 기원전 13세기에 일어났습니다. 지금부터 3천2백 년 전입니다. 당시에 일반 백성들은 소나 돼지고기를 자주 먹기 힘들었습니다. 일 년에 몇 차례만 국가의 큰 행사가 있을 때에 왕으로부터 선물로 받았을 뿐입니다. 나일강에서 나는 생선은 충분히 먹을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제 광야생활이 시작된 뒤로는 생선 대가리조차 먹을 수 없습니다. 문제는 먹을거리 자체에 대한 불평입니다. 애굽에서 먹던 것을 회상하면서 현재의 것을 불만스럽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만나마저 부정하게 되었습니다. 공동번역이 재미있게 표현했습니다. ‘보기만 해도 지긋지긋한 이 만나밖에 없다니...’


출애굽기와 민수기가 전하는 만나 이야기가 약간 다릅니다. 민수기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나를 이미 먹고 있던 것으로 나오지만, 출애굽기에는 만나를 먹게 된 사연을 자세하게 묘사합니다. 그 이야기가 출 16장에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광야로 나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먹을 게 떨어지자 지도자인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기 시작합니다. 당신들이 우리를 광야로 끌어냈기에 지금 굶어죽게 생겼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원망함을 들었노라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해 질 때에는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부르리니 내가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인 줄 알리라 하라.”(출 16:12). 이 말씀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진을 치고 있던 광야에 저녁에는 메추라기가 덮이고 아침에는 만나가 이슬처럼 내려앉았다고 합니다.


만나 이야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나님 경험에서 절대적인 것이었습니다. 조상 대대로 하나님이 광야에서 자기 조상들을 만나로 먹여 살렸다는 사실을 이야기했고, 거기에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시 78:24, 105:40, 느 9:15에 만나 이야기가 나옵니다. 요 6:31절에 따르면 사람들은 예수님에게 하나님의 표적에 관해 질문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습니다. “기록된 바 하늘에서 그들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만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은총 중에서 가장 큰 은총의 하나였습니다. 광야 40년의 생존을 가능하게 한 먹을거리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민수기의 기록에 따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만나를 지긋지긋하게 여기고 고기 먹기를 갈망했습니다. 본문은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재앙을 불러온 인간의 탐욕, 즉 불평이라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신세를 한탄하면서 울었습니다. 이런 표현이 본문에 세 번이나 나옵니다. 4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라고 합니다. ‘다시’라는 걸 보니 이들은 이전에도 울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울음도 습관이 되긴 합니다. 10절을 보십시오. ‘백성의 온 종족이 각기 자기 장막 문에서 우는 것을 모세가 들으니라.’ 그들은 광야에서 천막생활을 했습니다. 각자 천막 앞에 나와서 우는 모습은 엄청난 감정 고조를 유발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집단적으로 히스테리에 빠진 듯이 보입니다. 모세는 이런 상황을 하나님께 아뢰면서 13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울면서 고기를 요구했다는 사실을 짚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을 안타까운 심정으로 바라봅니다. 한편으로는 얼마나 힘들었으면 저런 모습을 보일까 하고 이해가 가지만 다른 한편으로 유치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지금 광야생활을 무사히 끝낼 수 있느냐 아니냐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고기 먹고 싶다고 우는 것은 가난한 집에서 반찬투정 하는 아이처럼 보입니다.


저는 그들과 오늘 우리와 다를 게 없다고 봅니다. 요즘 서울 집값으로 인해서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정부에서는 급기야 서울 인근의 신도시 설립 정책을 발표했습니다. 서울시 안에서도 적절한 땅에 집을 짓겠다고 합니다. 어느 지역 주민들은 자신들의 지역에 임대 주택을 짓지 말라고 시위를 했습니다. 나는 처음 뉴스 제목을 보고 기자가 뭔가 제목을 잘못 단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기존의 주민들이 임대 주택을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그 뉴스를 자세히 읽다보니 기존 주민들의 생각이 뭔지 알게 되었습니다. 임대 주택이 들어오면 자신들의 집값이 떨어진다는 겁니다. 고기를 먹고 싶다고 우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똑같습니다. 이분들만 우는 소리를 하는 게 아닙니다. 경제 사정이 조금만 나빠지면 모두 아우성입니다. 이런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 앞 대목에 나오는 ‘탐욕을 품은’ 사람들입니다.

 

메추라기 공급


모세는 지금 상당히 곤란한 입장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광야를 거쳐서 가나안까지 간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약속과 명령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고, 다른 하나는 모세의 리더십이 확고하게 유지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두 가지 조건이 모두 흔들리는 중입니다. 고단한 현실 앞에서 그들은 하나님을 가깝게 느끼지 못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상황이 어려워지면 서로 원망하게 됩니다. 특히 지도자를 향한 원망이 가장 큽니다. 천하의 모세도 이런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습니다. 자칫 군중 폭동이 일어날 기세입니다. 광야에서 고기를 구할 수도 없었고, 고기가 없으면 백성들의 마음을 진정시킬 수도 없었습니다. 호렙산에서 자신에게 민족 구원의 사명을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으면 하고 후회했을지도 모릅니다. 그의 마음이 14,15절에 다음과 같이 나옵니다.

 

책임이 심히 중하여 나 혼자는 이 모든 백성을 감당할 수 없나이다. 주께서 내게 이같이 행하실진대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내가 고난당함을 내가 보지 않게 하옵소서.

 

그는 죽음으로써 지금 상황을 피하고 싶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말을 듣고 백성들의 요구를 들어주겠다고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루나 이틀이 아니라 고기 냄새에 질리도록 한 달 동안 매일 먹이겠다는 겁니다. 비현실적인 말씀으로 들렸습니다. 그게 가능한 말씀이냐, 하고 모세는 따졌습니다. 그 이야기는 민 11장 중반 이후에 나옵니다. 민 11:31절에 따르면 하나님이 바람을 불게해서 메추라기를 이스라엘 백성이 머물고 있는 지역에 떨어지게 했습니다. 메추라기는 철새입니다. 절망적인 상황에 떨어져 하나님께 기도드리던 모세에게 메추라기를 통해서 백성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 있다는 생각이 떠오른 것입니다. 모세는 그걸 하나님의 응답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백성들은 하루 낮과 밤에 걸쳐서 메추라기를 모았습니다. 가정마다 모은 메추라기가 열 호멜이라고 합니다. 우리말 성경의 각주에 보니 1호멜은 220리터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각 가정마다 하루 낮과 밤에 모은 메추라기의 양이 2천2백 리터에 해당됩니다. 그걸 햇빛에 말리면 저장해서 어느 정도 기간은 먹을 만했습니다.


이것으로 메추라기 이야기가 끝날 수도 있습니다. 동기가 어떻든 해피엔딩입니다. 출애굽기와 달리 민수기는 이 상황을 훨씬 더 엄중하게 받아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절망에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메추라기를 먹을 수 있도록 했으나 이로 인해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큰 재앙이 내셨다고 합니다. 민 11:33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고기가 아직 이 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다.’ 거기서 죽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곳 이름이 기브롯 핫다아와로 전해졌습니다. 그 뜻은 ‘탐욕의 무덤’입니다. 일부 사람들의 탐욕이 주변 사람들에게 ‘전염되어서’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탐욕의 무덤에 떨어진 것입니다.

 

탐욕의 무덤


인간의 탐욕이 하나님의 진노를 야기하며, 그 하나님의 진노가 사람들에게 큰 재앙으로 나타났다는 성경의 진술을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탐욕을 부려도 아무런 어려움을 당하지 않고 오히려 떵떵 거리면서 잘 사는 사람들도 있고, 거꾸로 탐욕 없이 살지만 큰 어려움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람들도 이 세상에는 많기 때문입니다. 틀린 생각이 아닙니다. 재앙을 당하는 사람들이 모두 탐욕스럽다고 말할 근거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이유 없는 재난과 고난이 자주 일어납니다. 그게 우리의 세상 경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탐욕이 하나님의 진노를 부른다는 말은 큰 틀에서 옳습니다. 디테일에서 벌어지는 것은 우리가 다 모르기에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을 뿐입니다.


저는 현대 문명 역시 탐욕을 바탕으로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연정복이라는 말로 우리는 자연을 탈취합니다. 유럽의 식민지 역사가 바로 그런 것 중의 하나입니다. 자연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자연을 강탈합니다. 유전자 변형은 과학의 힘으로 자연을 왜곡시키는 겁니다. 핵으로 무한의 에너지를 얻겠다고 이야기합니다. 핵을 강제로 다루는 겁니다. 인공지능을 통해서 천국과 같은 세상을 꿈꾸기도 합니다. 인간은 점점 더 자연을 탐욕의 대상으로 삼는 중입니다. 그게 뭐 어떤데, 그런 노력으로 세상이 좀더 살기 좋아지면 되는 거 아니냐, 하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노력을 일체 하지 말고 그냥 자연 상태로 살아야 한다는 말이냐, 하는 주장도 가능합니다. 인간 자체가 자연의 일부이기에, 즉 세상에 던져진 존재이기에 자연을 탐욕의 대상으로 다룬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그렇게 다루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자연의 반란이 일어나면 인간은 그걸 감당하지 못합니다. 생태계가 완전히 파괴되어 생존이 불가능한 세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인간이 만든 핵무기로 인해서 지구 멸망도 가능합니다. 인공지능으로 완벽하게 통제된 세상에서 인간은 깊은 허무에 떨어질 수 있습니다.


저는 지금 개연성이 높지 않은 묵시적인 미래를 통해서 여러분들에게 두려움을 일으키려는 게 아닙니다. 자연과학 기술 자체를 부정하지도 않습니다. 문제는 인간의 탐욕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고기를 먹고 싶다는 갈망입니다. 이런 탐욕과 갈망은 무슨 일이든지 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을 불신하고 누군가를 원망합니다. 결과는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하나님의 진노입니다. 개인의 운명도 마찬가지입니다. 탐욕에 사로잡혀서 고기를 먹고 싶다는 하소연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미래는 겉으로 멀쩡해도 기브롯 핫다아와, 즉 탐욕의 무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탐욕과 신세한탄이 이미 재앙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탐욕을 넘어설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서 그 대답을 찾는다면, 만나만으로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삶의 태도가 그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만나를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만나만으로 만족하기는 쉽지 않긴 하지만 그것만으로 만족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습니다. 무엇을 먹느냐가 아니라 ‘먹는다는 사실 자체’에, 즉 삶 자체에 집중할 수 있어야만 만나만으로 만족할 수 있습니다. 이는 곧 예수님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의 태도’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고기를 먹지 못하고 만나만 먹어도 행복하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이미 경험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손자가 있는 분들은 손자를 바라만 봐도 비슷한 경험을 할 겁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면, 그래서 그와 함께 하는 순간이 그리워진다면 탐욕과는 전혀 다른 삶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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