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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종교위기의 시대, ‘고요한소리’의 큰 울림
조운찬 논설위원
경향신문 2018.10.17
지난 주말, 불교 포럼에 참석했다. 후배의 권유를 받고, 법문을 들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일찌감치 참가를 약속한 터였다. 그보다는 포럼의 주제가 더 끌렸다. 주제는 ‘다시 돌아보다, 종교’. 개인적으로 이 포럼이 아니더라도 지금이 ‘이 땅의 종교’를 말할 때라고 생각해 왔다. 불교 조계종 고위스님의 파계 의혹, 대형 교회의 세습, 일부 개신교 목사의 세월호 왜곡 등, 가짜 종교가 판치는 속에서 어찌 종교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있을까. 최근 <종교 없는 삶>이나 <세속성자> 같은 신간을 찾아 읽은 것도 이 때문이었다. 왠지 이날의 포럼에서는 해답을 얻을 것만 같았다.
사단법인 ‘고요한소리’ 주최로 조계사 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열린 ‘중도포럼’은 만석이었다. 자리 250석은 물론 통로까지 메웠다. 고요한소리의 회주 활성 스님이 법문을 했다. 스님은 자신의 법명을 ‘살려내는(活) 소리(聲)’라고 소개하며 “항상 부처님의 소리를 얼마나 되살려 전하고 있는지 자문하고 있다”고 말했다. 법문의 요지는 중도(中道), 곧 사성제와 팔정도였다. 부처님의 가르침의 핵심 개념이다. 그러나 담마와 아비담마 등 근본불교 용어를 들어 설명하는 스님의 법문은 쉽지 않았다. 그래도 마음에 파고든 말씀은 있었다. 생(生)과 멸(滅)을 함께 얘기하는 불교가 ‘다다익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 그리고 종교는 신과 인간의 이분법에서 벗어나 신뿐 아니라 인간, 자연까지도 살려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법문이 끝나고 토론이 시작됐다. 불교학자, 종교학자, 목사로 구성된 발제자들은 4차 산업시대 종교의 역할을 얘기했다. 최종석 금강대 교수는 정보기술시대에 불교가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해 현대 심리학의 방법론을 차용해 불성이나 영성을 감성지능(EQ)처럼 지수화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김재영 서강대 교수는 우리 사회에 종교 간 벽이 너무 높다며 신학대나 불교대학에서 타 종교인을 교수로 임용할 것을 제안했다. 내심 기대했던 조계종 사태나 명성교회의 세습 등 구체적 현실은 거론되지 않았다. ‘불교계의 무기력증’ ‘개신교의 적폐’ 등으로 우회 언급하는 정도였다. 그나마 이정배 목사의 “우리 사회의 갈릴리는 노동자들이 고공농성하는 현장이어야 한다”는 얘기가 현실감이 있었다. 이날 종교 현장에 대한 비판이나 토론은 없었다. 그러나 참석자들은 이 땅의 종교 현실과 앞날에 대한 인식을 공유한 듯 보였다. 토론장의 분위기가 말해주었다. 4시간 넘게 진행된 포럼에서 200여명이 자리를 지켰다.
포럼에서 ‘고요한소리’를 알게 됐다. 이 단체는 불교 신자들이 1987년 활성 스님을 모시고 출범했다. 늦은 나이에 출가한 스님은 부처님 가르침의 원형을 알기 위해 근본불교인 팔리어 경전의 번역 사업을 발원했고, 신자들이 뜻을 모았다고 한다. 고요한소리는 부처님의 본래 가르침을 연구하고 실천하기 위해 설립됐다. 이를 위해 초기불교경전 번역과 스리랑카불자협회가 펴낸 훌륭한 불서 및 논문들을 번역출간하고 있다. 지난 30년간 이곳에서 펴낸 불교 서적은 120만부가 넘는다. 이 모든 일을 회원들이 맡아 하고 있다. 지금은 불교계에 팔리어 경전이 꽤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번역의 물꼬를 튼 곳이 ‘고요한소리’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현대는 종교 위기의 시대이다. 신자 등 종교인의 감소는 세계적인 추세다. 기독교 국가인 미국의 경우 1950년대 5%였던 무종교인의 수가 지금은 30%로 늘었다. 한국은 절반 이상이 종교 없이 살아간다. 탈종교화 현상은 종교의 가르침이 현대정신과 맞지 않는 데서 나타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도덕과 윤리, 영성, 초월감, 명상 등은 종교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종교 밖에서도 충족할 수 있다. 게다가 성소수자, 난민, 낙태 등에 폐쇄적인 보수 종교는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와 충돌하고 있다. 교회와 사찰이 물신화되고 종교인이 타락상을 보이는 한국 종교의 상황은 더욱 절박하다.
종교가 종교답지 못할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첫째는 무종교인으로 살아가는 방법이다. 필 주커먼의 <종교 없는 삶>은 종교 없이 도덕적·영적으로 충만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보고서이다. 두번째는 제도권 종교 밖에서 대안의 종교를 찾아가는 길이다. 양희송의 <세속성자>가 이런 흐름을 보여준다. 세속성자들은 타락한 교회나 성직자를 비판하지만 종교를 부정하지 않는다. 세번째는 ‘고요한소리’의 길이다. 현실 종교의 흐름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종교 근본의 길을 가는 방안이다. 이는 속도와 효율로 대표되는 현대와 맞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종교 근본에 대한 탐구는 더디지만 울림이 크다. ‘고요한소리’는 묵묵히 31년째 이 길을 걷고 있다. 이날의 포럼은 울림이 있는 회향이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10172050005&code=990503#csidxe92080001e4bdcc98473ac36900a97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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