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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무척 길군요...그러나 이 어두운 밤도 끝날 때가 있겠지요? 그래요 해는 곧 뜰 것입니다. 밝아오는 새벽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
성령의 이중 역사 duplication work of Holy Spirit
주일말씀 최용우............... 조회 수 678 추천 수 0 2018.10.25 23:34:09성경본문 : | 롬8: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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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 | 주님의교회 |
성령의 이중 역사 duplication work of Holy Spirit
2018.10.24. 주님의교회 수요예배
찬송가 298. 299. 313. 315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성령]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8:5-6)
“성령의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5:16)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다.”(약3:17)
1.성령님의 이중사역
2.성령님의 외적인 역사
3.성령님의 내적인 역사
4.조화
1.성령님의 이중사역
예수원의 대천덕(토레이) 신부님은 ‘성령님은 우리에게 두 가지 측면에서 역사하시는데 외적인 역사와 내적인 역사가 있다’고 했습니다.
①성령님이 사람의 껍데기인 외부에 역사하시면 권능이 임하고 힘, 능력, 자신감, 활력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주로 순복음 교회와 기도원의 열광적인 집회에서 외적 역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방언과 치유와 기적이 일어납니다. 우리 동네에 ‘열방교회’라는 이름의 교회가 있는데 ‘열 받아서 방방 뜨는 교회’라고 간판에 써 있습니다.
성령님의 외적 역사는 은사적 권능적 입니다. 성령님의 외적 역사를 경험하면 능력 있는 신자가 될 수 있습니다. 교회적으로도 성령의 외적 역사가 있으면 금방 교회가 부흥하게 됩니다.
②성령님이 사람의 내면에 역사하시면 그리스도의 인격과 생명의 아름다움이 나타나 사랑의 사람이 됩니다. 주로 영성사역을 하는 교회와 수도원의 정적인 모임에서 성령의 내적 역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임재와 기름부음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성령의 내적 역사는 열매적, 인격적, 생명적입니다. 성령님의 내적인 역사를 경험하면 은혜로운 신자가 될 수 있습니다. 교회적으로도 성령의 내적 역사가 있으면 사랑이 넘치는 교회가 됩니다.
③성령님의 외적인 역사만 충만하면 외적으로는 매우 강하지만 내면은 허전하고 황폐해집니다. 주변에 다른 사람들이 붙어있질 못하죠. 그래서 아름답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성령님의 내적인 역사가 충만하면 겸손하고 헌신 된 아름다운 삶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지만 동시에 무기력하고 연약해서 자주 넘어집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성령의 외적, 내적 균형을 맞추는 것입니다.
2.성령님의 외적인 역사
①성령님의 외적인 역사와 내적인 역사 중에 어느 것이 더 중요할까요? 정답은 둘 다 중요합니다. 우리에게는 두 가지가 다 필요합니다. 어느 한쪽만 강조하고 추구하다가는 반쪽 신앙인이 됩니다. 두 가지가 적당하게 균형을 맞춘 사람이 ‘성숙한 신자(성도)’입니다.
다만 성령님의 외적 역사와 내적 역사 중에 어느 것을 먼저 받아야 합니까? 그 순서는 있습니다. 외적인 역사를 먼저 받아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육체와 영혼이 다듬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먼저 강력한 외적 성령의 역사로 단단한 자아를 깨뜨리고, 더러운 죄악의 부스러기들을 정화(청소)해야 합니다.
②날씨가 맑은 날 아내가 이불을 좀 가지고 밖에 나가 팡팡 털어 오라 합니다. 저는 이불을 한 개씩 가지고 나가 대문 밖에서 유관순 누나가 태극기를 힘차게 흔든 것 맹키로 이를 앙-물고 이불을 흔듭니다. “내가 일제침략시대 태어났다면 분명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33인 독립지사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을 거야.”
우리의 육체는 이 세상 문화에 더럽혀져 있고 찌들어 있고, 우리의 마음은 온갖 세상 찌꺼기들이 가득하여 영혼이 기를 못 펴고 딱딱하게 굳어 있습니다. 이것을 이불 털듯이 팡팡 털어내는 것이 ‘성령의 외적 사역’에 해당합니다.
③외적 사역은 안에서 밖으로 내는 사역으로서 열정적인 찬양, 통성기도와 같은 ‘소리기도’, 그리고 육체의 교만한 힘을 빼는 ‘금식’ ‘고행’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행하는 ‘주여삼창’을 할 때 제발 좀 ‘하나님이 귀 먹으셨냐?’ 하고 입을 삐쭉거리며 입술로만 소리를 내지 말고, 계백장군처럼 배에서부터 소리를 끌어올려 “쥬이이이이여어어어어...”하고 소리를 치십시오. 그래야 성령님이 역사하십니다. 주여 삼창은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소리는 ‘힘’입니다. 하나님은 ‘소리’로 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들도 소리로 이 세상을 창조하는 사역에 동참합니다.
④성령님의 외적 역사는 굉장한 능력이 있어 마치 탱크가 돌진하는 것처럼 엄청납니다. 성령님의 외적 역사는 온갖 하늘의 보화를 끌어오는 ‘권능의 역사’입니다.
성령님의 외적 역사는 재물을 끌어옵니다. 교회는 소리를 지르는 만큼 성장하고 부흥하며, 개인은 소리를 지르는 만큼 재물이 생깁니다. 시장에 한번 가 보세요. 어느 가게 앞에 사람이 많냐 하면 이리로 오라고 소리를 지르는 사람의 가게 앞으로 사람들이 몰려갑니다.
성령님의 외적 역사는 여러 가지 병을 치유합니다. 암, 고혈압, 당뇨병, 관절염, 디스크, 두통, 자궁암, 정신병, 피부병, 탈모, 위장병, 불면증, 아토피, 건망증, 변비.... 다 치유합니다.
성령님의 외적 역사는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심리학자들은 사람은 그 본질상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외적 역사는 사람을 180도 뒤집어버려 딴 사람이 되게 합니다.
⑤성령의 역사에 대해 다 쓰려면 책을 한 권 써도 부족할 것입니다. 이러한 성령의 역사를 내가 실제로 경험하려면, 성령님이 ‘역사’하시도록 내가 준비되어야 하는데, 아무리 성령님이 역사하시고 싶어도 내가 문을 열지 않으면 역사하실 수가 없지 않겠습니까?
⑥우선은 딱딱한 내 영이 부드럽고 민감해져야 합니다. 아!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무수한 고급 설교를 들어도 그것이 마음에 하나도 스며들지 않고 세상 사람들보다 더 지독한 죄를 짓고 살며, 그것에 대한 양심의 가책도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마음이 물 한 방울 스며들지 않는 대리석처럼 딱딱하기 때문입니다.
소리를 지르며 찬양하고 기도하고 열 받아 방방 뛰어야 마음이 풀어지고 부서지고 틈이 생깁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마음이 침체 되고 문제가 있으면 보따리 싸 들고 기도원에 들어가 몇날며칠 소리 지르며 기도하여 문제 해결을 받고 오곤 했던 것입니다.
3.성령님의 내적인 역사
①성령님의 외적인 역사로 우리의 육체와 영혼이 다듬어지지 않으면 성령님의 내적인 역사를 받기가 쉽지 않습니다. 학생들이 막 떠들면 카리스마가 있는 교사는 막대기로 교탁을 탁탁 두 번 두드리며 “조용! 공부를 시작하겠습니다.” 하고 교실이 조용해진 다음 공부를 시작하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②성령님의 내적인 역사는 굉장히 민감합니다. 성령님의 깊은 임재는 매우 달콤하고 부드럽고 감미롭습니다. 그것은 주로 기운(영)으로 역사 하는데, 조금만 기운을 깨는 말과 행동과 소리가 있으면 성령님은 순식간에 소멸되어 버립니다.
특히 전자 악기의 인공적인 소리와 날카로운 고음은 성령님의 임재를 방해하는 가장 큰 치명적인 도구들입니다. 전자 악기는 인간의 감정을 자극하여 흥분시키기 위해 세상 음악에서 사용하는 도구이지 성령님의 임재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악기입니다.
종소리나 피아노 소리는 그 파장이 휘감아 돌기 때문에 성령님의 기운이 소리를 타고 넘어 들어오는데, 전자 악기는 직선적이라 기운이 부서지고 깨져버립니다. 이런 것도 모르고 요즘에는 교회마다 전자 악기가 없는 곳이 없고, 사람 소리보다 전자음이 엄청 커서 시끄러운 교회가 많습니다. 악기는 보조도구이기 때문에 사람 소리보다 크면 안 됩니다.
③성령님이 임재하시면 사람은 그 기운에 압도되어 수동적이 됩니다. 몇 시간씩 계속 기도를 하는 사람들은 성령님의 임재 속에서 자신도 어떻게 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렇게 장시간 기도가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 기도의 거장들은 임재 기도를 한 사람들입니다.
5만번 기도의 응답을 받은 죠지 뮬러는 새벽에 기도실에 들어가 두 시간을 기본적으로 두 시간을 기도하지 않으면 기도실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죠지 물러가 기도 제목을 적어놓고 그 기도 목록을 하나님 앞에 일일이 열거한 것이 아닙니다. 임재 가운데 있을 때, 이미 적어놓은 기도의 응답은 오고 있는 것입니다.
④성령님의 내적인 역사를 방해하는 가장 큰 훼방꾼은 ‘의식’(인식)입니다. 인간의 의식은 매우 불완전한 것이며, 지성의 지배를 받습니다. 어떤 한 가지 최초로 머릿속에 들어온 사실을 가지고 그것을 기준 삼아 다른 것을 판단하는 것이 인간 지성의 한계입니다.
성령님께서 내 안에 계시며 나를 도우십니다. 이 사실은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입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고 어떤 형태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무조건 그 사실을 믿어야 그것이 나에게서 실체가 됩니다.
그런데 사람의 의식은 단순하고 어리석어서 자꾸 그것을 지성으로 해석하려고 합니다. 특히 목회자들이 ‘모든 것을 성경으로’ 해석하려고 합니다. 지성이 설득되지 않으면 믿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가장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성경을 많이 공부한 사람들이고 가장 믿음이 좋은 사람은 그냥 무조건 받아들이는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입니다. 성경에서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믿음’은 연약한 믿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⑤오늘날 개혁교회가 철떡같이 믿고 있는 ‘구속사적 구원의 진리’는 공부를 많이 한 신학자들 머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조명을 받기 위해 깊은 산속이나 빈 광야 동굴 속에서 하나님을 직면했던 교부 수도사들이 하나님께 받은 것들입니다.
성령님께서 한 사람에게 역사하여 말씀하실 때는 먼저 그 사람이 성령님을 민감하게 인식하도록 좀 많이 다스리십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그냥 ‘자기의 생각 대로’하도록 내버려 두십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 안에는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보다 그냥 자기 생각대로 사는 사람이 너무 많은 것이 문제입니다. 자기 생각대로 살면서도 자기 생각대로 사는지도 모르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 그리스도인은 힘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도 할 수도 없습니다. 이름뿐인 그리스도인이며 실제 삶 가운데 아무런 능력도 없습니다.
⑥기독교 신앙은 다른 종교와는 달리 내면적, 관계적인 신앙입니다. 다른 종교가 외적으로 화려한 성전을 짓고 많은 사람들을 모아서 ‘우리는 이렇게 멋지다.’ 하고 보여주기식이라면, 기독교 신앙은 내면적으로 깊이 들어가 하나님을 만나고 우리가 천국이라고 부르는 다음 세상의 삶까지 결정하는 광의적 신앙입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깊은 신앙으로 인도하십니다. 육체를 뚫고 의식(마음, 지성, 이성)을 뚫고 그 바닥에 있는 깊은 곳까지 우리를 데리고 내려갑니다.
하나님은 어디에 계신가? 내 마음 가장 깊은 곳 지성소에 계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왜 지성소에 계신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가?
⑦자신의 마음에 겹겹이 두꺼운 성벽을 쌓아 놓고 마음 밖에서 하나님이 없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목사님은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도록 겹겹이 쌓은 그 성벽을 ‘자아(自我)’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려면 그 ‘자아를 파쇄’를 해야 합니다.
성경은 그렇게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도록 쌓아 놓은 겉 껍질을 ‘겉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만나려면 겉사람이 죽어야 합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겉사람에게 역사하시는 게 아니라 속사람에게 역사하십니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롬7:22)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엡3:16)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4:16)
사도 바울이 다마스커스 길에서 하나님을 만난 후 그 겉사람이 완전히 깨져버렸을 때 그 삶은 180도 바뀌었습니다.
⑧성령님의 내적인 역사는 한 사람을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까지 인도합니다. 토마스 머튼은 그의 책 <칠층산>에서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 것은 마치 산을 올라가는 것과 같은데 그것은 일곱봉우리를 넘어 마지막에 영화의 단계에 이르러 ‘성인’이 된다고 했습니다. 성인 한 사람의 영적인 영향력은 시대아 세대를 초월하여 그야말로 어마어마합니다.
4.조화
①성령의 외적 역사에만 초점을 맞추면, 은사주의자가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겉이 굉장히 쎄지면서 여러 가지 활동도 많이 하고 뭔가 세워지는 것이 눈에 보입니다. 나중에는 은사만 따라다니게 됩니다.
솔로몬이 바로 은사주의자였습니다. 성전을 짓고, 마누라를 천명이나 거느리고, 이 세상에서 해 볼 수 있는 것은 다 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으면서 남긴 마지막 말은 ‘헛되고 헛되니 다 헛되도다.’
오늘날 성경에 나오는 인물의 이름을 따서 자기 이름을 짓는 경우가 많은데,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이름 중에 가장 부자로 살았던 ‘솔로몬’의 이름을 쓰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그는 부자로 살았지만 본받을 만큼 잘 살지는 못했기 때문입니다.
②성령의 내적 역사에만 초점을 맞추면 신비주의자가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신비주의자들 가운데 이단이 많은 이유는 하나님께서 열어 주시는 것만 봐야 하는데 마귀가 보여주는 것까지 보고는 분별을 못 하고 속기 때문입니다.
③우리는 성령의 외적 역사와 내적 역사를 균형있게 조화시켜야 합니다.
먼저는 외적 역사로 우리의 영혼을 깨뜨린 다음에 내면으로 들어가는 법을 배워서 자유자재로 넘나들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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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1.레노바레 성경 (두란노)
2.나의 뇌(腦)
3.설교 원고 20181024수요-성령의 이중역사.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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