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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엄마…이미경
쾅, 현관문 닫히는 소리가 들리더니 쿵쿵 아빠가 들어왔다. 아빠는 식탁 위에 부스럭대는 까만 비닐 봉투를 거칠게 내려놓았다.
"네 엄마는 왜 그런다냐?"
이럴 땐 궁금하지 않아도 물어보는 게 상책이다. '왜?' 하고 말하려는데 엄마가 들어왔다. 어깨 위에 짊어진 쌀 한 포대를 마루 위에 내려놓았다.
"김치 한번 들어 주면서 오는 내내 구시렁대기는. 무겁기는 내가 더 무겁구먼."
"무거운 게 문제야? 비닐봉투가 문제지!"
그제야 아빠가 짜증내는 이유를 알았다. 아빠는 비닐봉투를 싫어한다. 특히 까만 비닐봉투를 싫어한다. 환경오염 때문이 아니라 남자가 까만 비닐봉투를 들고 다니면 모양이 안 난다고 싫어한다.
"그럼 어떡해? 김치는 한 보따리고, 쌀도 짊어져야 하는데."
엄마는 가끔씩 일하는 갈빗집에서 김치를 싸 온다. 그 김치를 제일 잘 먹는 사람은 아빠다.
"배달은 뒀다 국 끓여 먹게? 미련하기는."
"다 이유가 있지잉."
엄마는 뭐가 좋은지 아빠 타박에도 천사 같은 미소를 지었다.
"얼른 밥이나 줘."
아빠는 내 옆에 앉아 리모컨을 집더니 채널을 돌렸다, 야구 중계다. 아빠가 즐겨 보는 프로그램은 야구, 축구, 그리고 로또 방송이다. 로또 방송은 빼먹은 날이 거의 없다.
"뭐야, 또 지고 있는 거야?"
아빠는 화면 속 야구 선수들이 한심하다는 듯 혀를 끌끌 차며 양말을 벗었다. 양말을 발랑 뒤집어 야구공처럼 돌돌 말더니 화장실 앞에 획 내던졌다. 양말 벗을 때는 뭉치지도, 뒤집지도 말라고 엄마가 신신당부하지만 쇠귀에 경 읽기다. 물론 엄마 말을 들을 때가 있긴 하다. 밥 먹으라는 소리를 들을 때이다. 아빠는 국에 만 밥을 볼이 터질 듯 밀어 넣고, 엄마가 식당에서 가져온 총각김치를 아작아작 씹어 먹었다.
"여보, 찬영아!"
엄마는 내 이름을 불러 놓고 3초간 숨을 죽이더니, 마치 첩보원이 비밀 암호를 대듯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 시험 볼 거다!"
엄마 입술이 초승달처럼 얇게 펴지더니, 양 볼이 보름달처럼 동그랗게 떠올랐다.
"무슨 시험? 엄마도 아빠처럼 공인중개사 시험 볼 거야?"
나는 엄마가 공인중개사 말고 다른 시험을 보면 좋을 것 같았다.
"공인중개사는 아무나 보나?"
"그런 대단한 분이 떨어지기는 왜 떨어지나? 준수 엄마는 칠 개월 만에 붙었는데. 나한테 공부할 시간 한번 줘 봐. 일 년이면 합격하고도 남았네요."
엄마가 가자미눈으로 아빠를 째려봤다. 엄마가 자존심 상해하는 건 이해되지만 대학 나온 아빠도 공인중개사 시험에 떨어졌는데, 고등학교밖에 안 나온 엄마가 공인중개사 되는 건 더 어려울 것 같았다.
"시험에 붙으면 난 정말 좋은데…, 근데 찬영이가 어떨지 모르겠구나."
"시험에 합격하면 좋은 거잖아."
"그거야 그렇지."
"대체 무슨 시험을 본다는 거야?"
아빠가 총각김치를 또 한 입 베어 물었다. 총각무의 삼분의 이가 입속으로 들어갔다.
"환경미화원."
엄마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뭐! 환경미화원? 당신 미쳤어?"
아빠 입에서 밥알 몇 개와 씹던 총각무가 튀어나왔다.
"소리는 왜 지르고 난리야? 찬영이도 가만있는데. 어쨌든 서류는 통과했으니까 체력 시험 볼 거야."
나는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엄마가 시험에 합격하면 좋다고는 했지만, 그게 환경미화원이면 다시 생각해 볼 문제다. 하지만 나보다 아빠가 더 결사반대다. 아빠는 동네 창피해서 얼굴을 어떻게 들고 다니느냐며 길길이 소리를 질렀고, 내 목소리는 낄 틈이 없었다. 원래 내가 싫어하는데 다른 사람이 더 싫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 싫어하던 마음도 사라지나 보다.
기운이 쫙 빠졌다. 낙엽들을 발로 휘저으며 걷고 있는데 형광 연두색 옷을 입은 환경미화원 아저씨가 눈에 들어왔다. 아저씨는 수북이 쌓인 낙엽들과 여기저기 나뒹구는 전단지를 비로 쓸고 있었다. '엄마가 환경미화원에 합격한다면…,'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준수가 어깨를 확 밀쳤다.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야, 김찬영, 무슨 생각 하느라 부르는데도 모르냐?"
"깜짝이야, 놀랐잖아."
"죄라도 지었냐?"
준수 말대로 나쁜 짓 하다 들킨 것 같았다. 나는 얼른 말을 돌렸다.
"너희 엄마 공인중개사 시험 정말 칠 개월 공부하고 합격했어?"
"응, 보통 일 년은 공부해야 된다고 했는데, 우리 엄만 칠 개월 만에 합격했어."
준수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 사실 합격 비법이 따로 있었어."
"합격 비법?"
"응, 내 행운의 부적 때문이야. 암만 생각해도 엄마 합격은 내 부적 때문인 것 같아."
"부적이라니?"
"초강력 자석에 합격이라고 써서 엄마한테 줬거든."
"쳇, 그게 무슨 부적이야."
"부적 맞거든! 내 기를 모아 모아서 초강력 자석에 팍팍 불어넣었으니까. 그 부적이 없었으면 분명 떨어졌을 거야."
나는 준수의 말이 엉터리라고 생각하면서도 부적이라는 말이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문방구로 향했다. 초강력 자석이 아닌 막대자석을 하나 사서 손에 꼭 쥐고 집으로 뛰어왔다. 냉장고에 붙여 보았다. 확실히 초강력 자석보다 힘이 약했다. 스르륵 미끄러지다가 멈췄다. 나는 집게로 자석을 잡고, 가스레인지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자석을 달구었다. 언젠가 과학 시간에 자석에 열을 가하면 자석의 힘이 사라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십오 분쯤 지나자 자석이 시커멓게 변했다. 자석의 열을 식히고 다시 냉장고에 붙여 보았다. 툭 떨어졌다.
"됐다!"
나는 파란색 색종이로 자석을 감싸고 풀을 붙였다. 그 위에 검은색 사인펜으로 '합격'이라고 쓰고, 제발 엄마가 시험에 떨어지기를 빌었다. 드디어 불합격 부적이 완성되었다.
"찬영아, 일어나 봐. 체력 시험 연습하는데 네가 시간 좀 측정해 줘야겠다."
일요일 아침, 엄마가 나를 깨우며 말했다. 아빠는 엄마가 시험에 떨어지기만을 학수고대할 테니, 아빠와 같이 갈 순 없고 대신 나를 데려가는 것이다. 엄마는 그저께 사온 쌀 포대를 짊어지고 앞장서 갔다. 나는 주머니 속에 있는 막대자석을 만지작거렸다. 줄까 말까 하다 막대자석을 꺼내 엄마에게 내밀었다.
"이게 뭐야?"
"자석이야. 합격 부적."
"합격 부적? 우리 찬영이 다 컸네. 엄마를 이렇게 이해해 주고."
엄마가 환하게 웃었다. 사실 불합격 부적인데…. 아무것도 모르고 좋아하는 엄마를 보니 커다란 돌덩이가 들어앉은 것처럼 마음이 무거워졌다.
"네가 싫다고 했으면 엄마도 많이 망설였을 거야."
나는 엄마 눈을 쳐다보지 못했다.
"엄마 정말 환경미화원 되고 싶어? 환경미화원이 엄마 꿈은 아니잖아. 그치?"
"글쎄…, 꿈은 아니지만 지금은 꿈보다 절실해졌어. 네 아빠는 언제 공인중개사가 될지 모르고, 식당은 언제 또 문 닫을지 모르고. 휴, 식당 전전하며 사는 것도 힘드니까. 엄마가 열심히 일해야 우리 아들 미술 학원도 보내고 그래야 만화도 더 잘 그릴 수 있지."
내 꿈은 만화가다. 작년 3학년 여름방학 때 내가 만화가가 되겠다고 하자 아빠는 엄마에게 그랬던 것처럼 결사반대했고, 엄마는 '네가 좋아하고, 하고 싶다면 엄마는 좋아.'라고 말했다. 엄마는 만화가가 되고 싶다는 내 꿈을 응원해 줬는데, 엄마가 간절히 원하는 것을 내가 싫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게 맘에 걸렸다. 왠지 엄마를 배신하는 것 같았다.
"자, 이제 시작하자!"
나는 무거운 쌀 포대를 들어보았다. 허리까지 들어 올리는 데도 낑낑댔다. 10킬로그램이라고 했다.
"모래주머니 대신 이걸로 연습할 거야."
"이걸로 무슨 연습을 해?"
"모래주머니 들고 달리기."
엄마는 앞으로 달려가며 거리를 가늠하더니, 땅바닥에 선을 그었다.
"여기까지가 50미터거든. 넌 여기 서서 출발 신호하고 스톱워치 누르면 돼."
엄마는 다시 출발선으로 뛰어가 쌀 포대를 오른쪽 어깨 위에 짊어졌다. 난 휴대폰의 스톱워치를 누르며 '출발!' 하고 소리쳤다. 멀리서 엄마가 뛰어오기 시작했다. 오른손으로 쌀 포대를 단단히 잡고 이따금 왼손으로 쌀 포대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았다. 뒤뚱거리며 뛰어오는 엄마 모습은 그리스 신화에서 하늘을 어깨에 떠받치고 있는 아틀라스 같았다.
엄마가 헉헉대며 도착선까지 달려왔다. 기록은 13초.
"하, 큰일이네. 늦어도 9초 안으로 들어와야 안전한데. 어쩌냐, 찬영아?"
엄마는 일곱 번이나 뛰었다. 최고 기록은 11초였다. 땀범벅이 된 엄마는 못내 아쉬워하며 종목을 바꿔 연습했다.
이번엔 모래주머니 들고 서 있기다. 엄마는 쌀 포대를 머리 위로 번쩍 들어 올렸다.
"이건 좀 할 만하네. 음식 들고 나른 실력이 여기서 발휘되나 보다."
하지만 40초가 지나자 엄마의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쭉 뻗은 팔이 바들바들 떨리기 시작했다. 일 분이 지났을 무렵 엄마가 쌀 포대를 땅바닥에 털썩 내려놓았다.
"이거라도 만점 받아야 하는데."
여러 번 연습 끝에 엄마는 간신히 1분 30초까지 버텨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연습하는 엄마를 보니 불합격 부적을 준 게 후회됐다.
수업을 마치고 나는 다시 문방구에 들렀다. 이번엔 초강력 자석을 샀다. 노란색 색종이로 감싼 자석을 두 손으로 꼭 쥐고 소원을 빌었다.
'우리 엄마 환경미화원 시험에 꼭 합격하게 해 주세요.'
저녁에 식당 일을 마치고 돌아온 엄마에게 초강력 자석을 내밀었다.
"엄마, 그때 내가 줬던 자석 어디 있어? 내일 시험 볼 때 그거 말고 이거 갖고 가."
"뭐하러 자석을 또 샀어? 이러다 일등으로 합격하겠네. 호호호!"
"어쨌든 이거 가져가. 이게 더 효과 만점이야."
엄마는 진짜 합격 부적을 받으며 빙긋 웃었다. 가짜 합격 부적이 무사히 내 손으로 들어오자 무겁게 짓누르던 돌덩어리가 사라진 듯 가벼웠다.
수업 시간 내내 선생님 이야기가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종례가 끝나자마자 부리나케 집으로 향했다. 현관에 엄마 신발이 놓여 있었다. 신발을 벗자마자 소리쳤다.
"엄마! 어떻게 됐어? 합격했어?"
거실에 누워 있던 엄마가 부스스 일어나며 말했다.
"아직 몰라. 이틀 후에 발표야."
엄마 무릎에 붕대가 감겨 있었다.
"무릎은 왜 그래?"
"모래주머니 들고 뛰다가 넘어졌어. 넘어지지만 않았으면 9초 안에 들어올 수 있었는데, 너무 아까워."
"잘 넘어졌지. 안 그랬으면…."
옆에서 아빠가 끼어들었다. 나는 얼른 아빠 말을 자르고 엄마에게 말했다.
"다른 건?"
"연습할 때보다 기록이 좋았어."
엄마의 표정이 밝아졌다. 다행이다. 그래도 합격할 희망은 있는 거니까.
이상한 일이었다. 합격 발표를 기다리는 이틀 내내 엄마보다 내가 더 안달이 났다. 이젠 합격만 한다면 엄마보다 내가 더 좋아할 것 같았다.
합격 발표 날, 텔레비전 앞에서 아빠와 라면을 먹고 있는데 식당 일을 마친 엄마가 들어왔다.
"엄마, 어떻게 됐어?"
"어떻게 됐게?"
엄마가 빙그레 웃는다.
"합격했구나!"
"정말이야?"
아빠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주 떨어져 달라고 고사를 지냈구먼. 그래 소원대로 떨어졌다. 내가 떨어진 이유는 다 당신 때문이야. 그것만 알라고. 일생에 도움이 안 돼."
"엄마, 정말 떨어졌어?"
이번엔 내가 믿을 수 없었다.
"그래, 넘어지지만 않았어도 붙었을 텐데…."
"잘됐네. 그게 다 그런 데 시험 보지 말라는 신의 뜻이야."
아빠는 신의 뜻이 아니라 아빠의 뜻대로 이루어져서 기쁜 표정이었다.
나는 엄마가 아빠에게 '소원대로 떨어졌다.'고 말한 게 계속 마음에 걸렸다. 어쩌면 처음엔 아빠보다 내가 더 엄마가 시험에 떨어지기를 바랐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중엔 진짜 합격하기를 빌었는데…. 이랬다저랬다 하니까 소원을 들어주는 누군가도 헷갈렸나 보다. 절로 한숨이 나왔다.
화장실에 가려고 방에서 나왔다. 엄마가 텔레비전을 켜 놓은 채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텔레비전을 끄고 화장실로 걸어갔다. 아빠가 벗은 양말이 동그랗게 말려 화장실 앞에 놓여 있었다. 내 양말도 뒤집어진 채 한 짝은 화장실 앞에, 한 짝은 화장실 안에 널브러져 있었다. 나는 돌돌 말린 아빠 양말과 내 양말을 뒤집어 바로 폈다. 그리고 세탁 바구니에 가만히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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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 소감 - 이미경
1969년 서울 출생
한성대 사학과 졸업
"아무도 자신의 본래 모습을 좋아해 주지 않는데 날마다 밖에 나가 꿋꿋하게 자신을 살아간다는 건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에요."
<이매지너리 프렌드>에서 부도가 말했다.
사랑받기를 기대하지 않고 사랑하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좋아하지만 그 대상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기꺼이 나 또한 좋아하지 않기로 했다. 소심한 자기 방어다.
동화를 쓰면서 소심한 자기 방어를 무장 해제하자고, 열렬히 짝사랑하자고, 버림받더라도 사랑한 것에 후회 없노라 말할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글 쓰는 내내 그 대상이 나를 좋아할까 하는 회의감에 몇 번씩 마음이 어지러웠다. '나를 좋아해요?' '그럼 나 글 써도 되는 거예요?' 맘 놓고 즐기지 못함을 한심해하며 자기 비하를 했다.
한편으로는 '다이아몬드가 될 원석인데 사람들이 아직 눈치 채지 못한 것뿐이야'라며 자기 연민에 빠지기도 했다.
번민에 휩싸이던 중 반응을 보여준 내 짝사랑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하지만 그건 어쩌면 응답이 아니라 질문일지 모른다. 내 대답을 듣기 위한 또 다른 질문.
그렇다면 이번에는 나를 좋아해 주지 않아도 꿋꿋하게 자신을 살아가는 맥스처럼 용감한 사람, 멋진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물론 자신을 방어하고 비하하고 연민하는 짓을 그만두진 못할 거다. 하지만 귀찮을 정도로 '나 괜찮아?' 물어보는 횟수는 줄어들 테고 시간 낭비도 덜 할 테니 그만큼 내 마음에 꼭 드는 동화를 쓸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품어 본다.
동화세상의 선생님들, 이륙기의 언니, 동생들, 내가 땅 사더라도 배 아프지 않아 할 친구들에게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 전한다.
억척스럽게 노력형이었던 엄마를 반만이라도 닮았으면 좋았을 텐데, 흉내 내기도 힘드네요. 우리 엄마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애고 재주 부리지 말고, 엄벙덩벙 넘어가려 하지 말고, 글을 쓰려면 좀 제대로 써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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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사평…서민 가정 오밀조밀 재미있는 일상…겉과 속 알찬 이야기
많은 응모작 가운데 끝까지 심사자의 손에 남은 것은 여섯 편이었다. 모두 나름의 장점을 갖춘 작품들이었기에 그 중 한 편을 고르기는 쉽지 않았다. '효주네 옆집에는 누가 살까요?'(권정선)는 기발한 상상력을 동원하여 쓴 재미있는 글인데 옆집 식구 정체를 알아내는 과정이 너무 밋밋해서 맥이 빠진 것이 흠이었다. '사라진 슈퍼맨'(박정미)은 능숙한 이야기 솜씨와 세상을 보는 진지한 시선이 미더웠으나 사건 전개가 다소 상투에 흐른 점이 거슬렸다. '엄마처럼 안 해'(김우연)는 갈등 사태를 극복해 가는 주인공의 심리 묘사가 돋보였지만 갈등을 선악 구도로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이 생동감을 떨어뜨렸다. '등에서 나무가 자라는 아이'(이혜정)는 주인공의 힘겨운 삶에 대한 작가의 따스한 시선이 공감을 자아냈으나 문장이 군데군데 거치적거리는 것이 약점이 되었다. '거짓말 일기'(최빛나)는 마지막까지 당선작과 무게를 겨루며 결정을 망설이게 한 작품이다. 주인공 아이 마음이 어른 세계와 부딪치며 갈등하는 과정이 담담하면서도 치밀한 서술에 실려 완성도를 높였고, 끝을 다 보여주지 않는 열린 결말도 참신해 보였다. 하지만 결말에 이르는 설정에 작위의 느낌이 강하여 끝내 심사자의 손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결국 흠결이 가장 적은 이미경 씨의 '달려라, 엄마'가 당선작으로 뽑혔다. 이 작품은 팍팍한 삶을 어렵사리 꾸려나가는 서민 가정의 오밀조밀한 일상을 주인공인 아이 눈으로 재미있게 그린, 겉과 속이 알찬 수작이다. 소재는 대단하달 것이 없고 주제 또한 아주 새롭거나 깊이 있다 하기 어렵지만, 읽는 재미와 아울러 다 읽은 뒤에 남는 울림과 여운은 만만찮다.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소재를 짐짓 유쾌하게 이끌어가면서도 지나치게 가벼워지지 않게 균형을 잡아 나간 입담도 돋보인다. 다만 화자 격인 아이 눈길에 좀 더 충실했으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소재의 특성상 아이보다 엄마 쪽에 시선이 기우는 건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아이 심리 묘사에 많은 공을 들였더라면 더 힘 있는 글이 되지 않았을까.
심사위원 서정오(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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