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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경상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빨강이의 외출 - 정영숙
빨강이의 외출 / 정영숙
빨강이가 비척거리며 엉덩이를 밀어 넣었다.
“가까이 오면 안 돼!”
곁에 있던 파랑이가 놀라 소리쳤다. 옆에 있던 다른 차들도 빨강이가 다가올까 봐 모두 벌벌 떨었다.
똑같은 크기의 금을 그어놓고 그 안에서 꼼짝 못하게 하다니, 빨강이는 날마다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빨강이는 여행을 떠나기로 작정하고 주차장에서 나왔다.
“여기는 앞으로 밖에 못가잖아.”
고속도로를 달리던 빨강이는 맥이 탁 풀렸다.
“마음대로 달리려면 어디로 가야하나요?”
휴게소에서 만난 트럭에게 물었다.
“저쪽 광장에 가보았니?”
“거긴 같이 놀아줄 친구가 없어 싫어요.”
트럭은 빨강이 등 뒤에 있는 초보 딱지를 보며 빙그레 웃었다.
“그럼 나 따라 올래? 농촌에 배추실러 가는 중이란다.”
빨강이는 너무 기뻐 트럭 뒤를 따랐다.
“좀 천천히 가면 안돼요?”
트럭을 놓칠까봐 빨강이가 큰 소리로 외쳤다.
“느리게 달리면 곤란해. 제한 속도가 있거든.”
잠시 한쪽에 멈춰 선 트럭이 방어 운전을 해주려고 빨강이를 앞세웠다.
“야호! 신 난다.”
빨강이는 바로 뒤에 든든한 트럭이 있어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아뿔싸!”
이정표를 잘보고 가야 하는데 목적지를 지나쳐버렸다. 유턴을 할 수 있는 곳까지 달려가야만 했다.
“그 길이 아니라고 빵빵거렸어야죠.”
무안했던지 빨강이가 오히려 트럭에게 투덜거렸다.
“야! 겁 없이 달리는데 무슨 수로 말려.”
트럭이 약속시각 늦겠다며, 부릉부릉 빨강이를 재촉했다.
“앞만 보고 달리기도 힘든데, 이정표까지 어떻게 신경 써요.”
빨강이는 계속 변명을 늘어놓았다.
“군소리 말고 어서 가자.”
트럭이 갈 길을 재촉했다.
얼마나 달렸을까? 주변이 온통 배추밭뿐인 한가한 시골 길이 나왔다.
“여기서는 안심하고 네 마음껏 달려봐.”
트럭이 빨강이를 향해 말했다.
신호등도 차선도 없는 시골길이라서, 빨강이는 우측으로 씽! 좌측으로 씽! 기분 내키는 대로 내달렸다. 앞을 보니 저만치에서 누군가 빨리 오라고 손짓을 하는 것 같았다. 빨강이는 기분이 우쭐했다.
“누가 나를 아는 체하지?”
빨강이는 호기심에 달려가 보았다. 논길에 서있는 허수아비였다. 바둑판같은 논 두럭이 마치 주차장 선처럼 보였다.
“너도 참 답답하겠다.”
빨강이가 허수아비를 향해 말했다.
“그럴 틈이 어딨어? 참새등살에 허리가 휠 지경인데.”
“엄살 부리기는. 네 허리는 단단한 막대기잖아.”
바람이 빨강이 말에 맞장구라도 치듯 헐렁한 옷을 홀라당 걷어 올렸다.
“내말이 맞지?”
참새를 쫓던 허수아비가 토라져 힘없이 손을 내렸다. 팔짝 날아오르던 참새 떼가 저만치 다시 포릉 내려앉았다.
“내가 도와줄까?”
빨강이가 물었다.
“필요 없어.”
허수아비가 단번에 거절했다.
“다시는 얼씬거리지 못하게 아주 혼내 준다니까.”
빨강이는 빵빵 큰소리쳤지만 참새들은 끄덕도 하지 않았다. 허수아비가 가소로운 듯 헛기침을 하며 긴팔을 휘휘 저었다. 참새 떼가 화들짝 놀라 치솟았다.
“내 목소리보다 더 무서운가 봐.”
도망치는 참새 떼를 보며 빨강이가 중얼거렸다.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냐?”
바로 코앞에서 경운기가 조급하게 탈탈거렸다.
“저게 뭐지?”
달구지를 뒤꽁무니에 달고 있었다. 꽃게 집게발 같은 운전대로 움직이는 차는 처음 보았다. 비바람을 막아줄 지붕도 없었다.
“정말 웃기게 생겼다.”
빨강이가 놀렸다.
“농기계도 몰라보는 네가 더 웃긴다.”
경운기가 우락부락한 얼굴을 빨강이 앞에 퉁명스럽게 디밀었다.
“우리 친구할래?”
대뜸 빨강이가 물었다. 경운기랑 같이 있으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다.
“나는 한가하게 노닥거릴 시간 없어.”
“뭐가 그리 바쁜데?”
“짐도 실어 날라야하고, 땅도 갈아야 하고, 제일 큰일은 농약 뿌리는 거야.”
“그렇게 죽어라고 일만 하지 말고 나랑 놀자.”
빨강이가 살짝 윙크를 했다. 무뚝뚝한 경운기는 할 일이 많다며 얼른 길이나 비키라고 했다.
“이렇게 좁은데?”
“자신 없으면 가만히 있어 내가 알아서 지나갈게.”
탈탈거리며 다가오는 경운기 소리가 어찌나 큰지, 빨강이는 덜컥 겁이 났다. 살짝 비켜선다는 게 그만 논두렁으로 주르륵 미끄러지고 말았다. 결국 빨강이는 소 목에 얹은 멍에에 매달려 빠져 나와야했다. 애완용 강아지나 고양이밖에 모르는 빨강이 눈에 소는 너무도 신기했다.
“우리 친구하자.”
빨강이 말에 소가 슬슬 한쪽으로 피했다.
“나를 도와준 선물이야.”
“음메!”
소가 관심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나 같은 멋진 친구가 있다는 건 행운이야.”
소는 발밑에 있는 풀을 뜯어 우물우물 씹었다. 먹이를 먹으면서도 쇠똥을 퍼드덕 쌌다. 빨강이는 쇠똥 냄새가 고약했지만 꾹 참았다.
“빵! 빵!”
아무 대꾸가 없자 빨강이가 크게 경적을 울렸다. 두 눈이 휘둥그래진 소가 겅중겅중 달아났다.
“제발 돌아와.”
빨강이가 쫒아가려했다.
“소가 놀라 허둥대잖아.”
언제 왔는지 배추를 가득 실은 트럭이 말렸다. 소는 겁이 많아 넘어지면 크게 다친다고 했다.
“왜 소는 부품을 새것으로 갈아 끼울 수 없어요?“
빨강이는 덩치도 비슷하고 친구로 제격인 소를 놓쳐버린 게 아쉬웠다.
“유감스럽게도 소는 자동차처럼 수리 할 수 없는 가축이란다.”
트럭이 빨강이 옆으로 바짝 다가서며 말했다. 얼른 피했다.
“운전 실력 제법인데.”
트럭의 칭찬에도 빨강이는 시큰둥했다.
“이제 그만 돌아가.”
트럭의 말에 빨강이가 고개를 저었다.
“나도 따라 갈래요.”
“더 이상은 안 돼.”
트럭은 어리광을 부리는 빨강이에게 빵빵 작별 인사를 하고 갈 길을 서둘렀다. 해가 저물어 주위가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다. 빨강이는 풀이 죽어 주차장으로 천천히 들어섰다. 모든 차들의 시선이 빨강이에게 쏠렸다.
“하루 종일 어디를 쏘다니다 왔을까?”
“그러게 말이야. 엉덩이에 멍든 것 좀 봐.”
“아유, 더러워서 어째, 목욕하고 오라고 세차장 좀 가르쳐줘야겠어.”
빨강이는 못 들은 척 했다.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야.”
파랑이가 자기 옆의 빈 지리를 가리켰다. 빨강이는 용기를 내어 핸들을 꺾었다.
“끼익!”
“덤벙대지 말고 살살, 살살 들어와.”
“나도 알아.”
빨강이는 발아래 그어진 하얀 선을 보며 조심스럽게 엉덩이를 틀었다.
그때 저쪽에서 처음 보는 자동차 한 대가 의기양양하게 달려왔다. 금방이라도 덮칠 것 같아 와락 겁이 났다.
“거기 금 그어졌잖아!”
빨강이가 고개를 쭉 내밀고 소리쳤다.
<당선소감>세상과 아이들 소통의 다리 되도록 노력
‘어떻게’를 해결해 주는 게 동화라고 배웠습니다. 어린이가 살아가면서 낯선 존재를 어떻게 받아들이며, 어떻게 어울려서 살 것인가, 동화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동화를 통해 아이 스스로 문제 해결의 힘을 얻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앞으로도 끊임없이 안테나를 세우고 사물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진솔하게 전하겠습니다. 고정관념 때문에 어른들은 보지 못하는 것들을 동화로 형상화시켜 아이들에게 보여주겠습니다. 그리하여 제가 쓴 동화가 세상과 아이들 사이에 소통의 다리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눈이 내리는 날, 당선 소식을 주신 경상일보와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꾸준하게 동화를 쓸 수 있도록 지도해주신 광주교육대학원 이성자 교수님 고맙습니다. 바쁜 일상 중에도 시간을 내어 부족한 글 서로 합평해주는 화요 글동무들 사랑합니다.
◎ 약력
▶ 2008년 문학공간 시 등단
▶ 광주 동화창작연구소 수료
<심사평>문학성·상상력 아동의 눈높이에 맞춰
본선에 올라 온 작품이 16편이었다. 대부분 동화의 기본과 무난한 수준을 뛰어 넘지 못했고 주제가 신선하다 싶으면 폴롯과 대화 전개가 미흡한 작품들이 많았다.
응모 작품들을 몇 번이나 읽다가 다행히도 눈에 번쩍 뜨이는 작품을 발견하게 되어 기쁜 마음으로 당선작을 내기로 했다.
당선작 ‘빨강이의 외출’은 동화의 요소, 즉 문학성과 상상력을 아동의 눈높이에 맞춘 작품으로 현실감각이 살아 있다. 주인공 빨강이의 캐릭터가 생생하게 살아 있고 문장 또한 발랄하다. 빨강이도 현실이 답답하여 금 밖으로 뛰쳐나가 봤지만 결국은 제 자리로 돌아와 어쩔 수없이 적응하고 안주해 가는 현실을, 초보 딱지를 붙인 자동차의 의인화를 통해 현실세태, 즉 부딪치고 좌절하며 성장해 가는 삶의 과정을 재밌게 형상화 시킨 수작이다.
트럭을 따라 시골여행을 하며 만나는 여러 사물들과의 묘사도 재미있고 대화 속에서 얻어지는 작은 깨달음도 소중하다.
끝맺음 처리를 “금 그어졌잖아” 라고 한마디로 외치는 유쾌한 반전도 신선하다.
당선을 축하 하고 빛나는 감각으로 좋은 동화작가가 되기를 바란다.
심사 : 강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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