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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매일신문] 노파콘 -유영선

신춘문예 유영선............... 조회 수 67 추천 수 0 2018.12.03 21: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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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매일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노파콘 - 유영선

 

노파콘 / 유영선

 

7분 1초 남았어. 8시 15분 전에 교문을 지나야 해. 나래는 달리기 시작했지.

“달리기 금지! 달리기 금지!”

똑똑 팔찌가 요란하게 말했어. 나래는 달리면 큰일 난다는 걸 깜박한 거지. 학생은 교장 선생님이 허락할 때만 달릴 수 있어. 하지만 모든 교장 선생님은 아이들이 뛰는 걸 싫어하지.

시계에 빨간불이 들어왔어. 손목이 흔들릴 정도로 진동이 울렸지.

<신호등 앞. 벌거벗은 고양이. 곧 마취총 쏨.>

길에 있던 모든 사람들도 고개를 숙이고 똑똑 팔찌를 봤어. 노파콘에서 모두에게 보낸 문자니까. 노파콘은 고상한 도시 한가운데에 있어. 교무실 같은 거야. 제일 높은 사람은 노파야. 교장 선생님과 비슷해. 사람들이 뛰는 걸 싫어하지.

나래는 고개를 두리번거렸어. 고양이를 구해야 하거든. 잡히면 눈에 똑똑 카메라가 심어질 거야.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찍겠지. 모든 고양이들이 그러하듯이.

길 건너에 고양이가 웅크리고 있었어. 노란 줄무늬가 호랑이 같았지. 햇빛을 받으니 털이 반짝반짝 빛났어. 매우 근사했지. 나래는 옷을 입지 않은 고양이를 처음 봤어. 털을 쓰다듬어 보고 싶었단다.

나래 옆에 검은 색안경을 낀 아저씨들이 둘러섰어. 고양이를 잡으러 온 거야. 나래는 가슴이 두근거렸어.

“고양이야! 어서 도망가!”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어. 고양이는 기지개를 켜더니 앞다리를 쭉쭉 뻗으며 달려갔지. 오래된 동네 쪽으로. 거기에는 똑똑 카메라가 없으니 잡히지 않을 거야.

사람들이 모두 나래를 쳐다봤어. 똑똑 카메라도 나래를 향했지. 검은 색안경을 낀 아저씨들은 마취총을 만지작거렸어. 나래는 신호등에 초록불이 들어오자 달리기 시작했어.

“달리기 금지! 달리기 금지!”

똑똑 팔찌는 쉬지 않고 말했어. 나래는 멈추지 않고 달렸지. 어쨌든 지각은 안했어.

8시 20분. 선생님이 들어왔어. 선생님은 1초도 일찍 들어오지 않아. 물론 0.1초도 늦지 않지.

“신나래! 길거리에서 소리를 지르고, 뛰는 게 똑똑 카메라에 찍혔다.”

선생님은 나래부터 찾았어.

“학교에 늦을까 봐 뛰었어요.”

나래는 고양이 얘기는 쏙 뺐어.

“똑똑 팔찌가 시간을 알려주는데 왜 늦어?”

“갑자기 똥이 마려워서 똥을 누느라……."

“결국 똥 때문에 뛴 거구나. 아직도 똥을 언제 누어야 하는지 모르니? 여러분, 똥은 언제 누어야 하죠?”

“짝숫날 아침 7시요!”

아이들이 입을 모아 대답했지.

“똥을 때맞춰 누는 건 아주 작은 규칙이야. 자꾸 규칙을 어기면 빨간 스티커를 받는단다. 빨간 스티커가 많아지면 좋은 중학교에 못 가. 그러면 좋은 고등학교에도 못 가지. 당연히 대학에도 못 가. 대학 졸업장이 없으면 직업도 못 가져. 직업이 없으면 아무것도 안 하고 노는 사람이 되는 거란다. 고상한 도시에서 노는 인간은 필요 없어.”

선생님은 나래에게 빨간 스티커를 주었어. 홀숫날에 똥을 누어서 한 장, 길거리에서 소리쳐서 한 장. 뛰어서 한 장.

“나래 어떡해.”

새미는 울먹거리기까지 했단다. 이제까지 빨간 스티커를 받은 아이는 없었으니까.

“전학생이 있어요. 인사하렴.”

선생님은 함께 온 여자 아이를 소개했어.

“내 이름은 이여울이야. 오래된 동네에서 살아.”

아이들은 입을 꾹 다물고 여울이만 바라봤지.

나래는 아침에 엄마가 한 말이 떠올랐어.

“딱 봐서 이상한 사람이 있어. 오래된 동네 사람이지. 무조건 피해. 아직 똑똑 팔찌를 차고 있지 않아서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몰라.”

고상한 도시에는 오래된 동네가 있었어. 개천 건너에 있어 오가는 사람이 없지. 다리도 없고 말이야. 게다가 오래된 동네는 똑똑 카메라도 없지.

그런데 요즘은 개천이 말라서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어.

“빨리 그 동네에도 똑똑 카메라를 달든지, 개천에 벽을 치든지 해야 할 텐데 말이다. 불안해서 살겠니.”

엄마는 코에 주름을 만들어가며 인상을 썼어.

“나는 우리 도시가 더 넓어져서 좋은데? 더 멀리 갈 수 있잖아.”

나래는 개천이 말라서 좋았지. 오래된 동네에 꼭 가보고 싶었거든. 이제 여울이랑 같은 반이니 동네 구경을 시켜달라고 할 참이었어.

“나래랑 여울이는 맨 앞으로 와서 앉으렴. 여울이는 아직 똑똑 팔찌가 없으니 내가 신경을 더 써야 해. 나래는 빨간 스티커가 많으니까 특별히 관심을 가져야 하고.”

선생님은 나래랑 여울이에게 돋보이는 자리에 앉으라고 했어. 맨 앞에 책상이 단 두 개만 있는 자리야. 누구에게든 제일 잘 보여.

“아침에 고양이 구해주는 거 다 봤다. 멋지더라.”

여울이는 자리에 앉자마자 나래에게 말했어. 부스럭거리며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지.

“이거 먹을래?”

초코 덩어리가 박힌 손바닥 만한 쿠키였어.

“여울아. 수업 시간에 과자를 먹으면 빨간 스티커를 받아. 빨간 스티커를 많이 받으면 쓸모없는 인간이 돼.”

나래는 속삭였어. 선생님한테 걸리면 큰일이니까. 하지만 쿠키는 이미 한 입 베어 물었어.

쉬는 시간에 아이들이 나래에게 몰려왔어.

“너 쿠키 먹었다며?”

“우리 엄마가 너 똑똑 카메라로 봤대.”

“정해진 시간에만 음식 먹어야 하는 거 몰라? 너 또 빨간 스티커 받겠다.”

“너 이제 큰일 났다. 빨간 스티커 다섯 장이야.”

나래는 한숨을 쉬었어.

“근데 맛있어?”

새미가 침을 삼키며 물었지. 여울이는 새미에게도 초코 쿠키를 건넸어. 여울이 가방 속에 초코 쿠키가 엄청 많았어! 아이들은 초코 쿠키를 오물거렸지.

선생님은 모두에게 빨간 스티커 한 장씩을 줬단다.

3분 2초 남았어. 3시가 되기 전에 학원에 가야해. 나래는 뛰기 시작했지.

“달리면 안 돼! 달리면 안 돼!”

똑똑 팔찌가 요란하게 말했어.

나래는 계속 달려서 2시 59분 59초에 도착했어.

‘초코 쿠키 정말 맛있었는데.’

학원에서도 나래는 입술을 달싹거렸어.

‘여울이는 어쩜 그렇게 용감할까. 수업 시간에 쿠키 먹을 생각도 하고.’

나래는 내일 여울이에게 용감한 비결을 물어보기로 마음먹었지.

“신나래! 너 지금 무슨 생각하니!”

학원 원장 선생님이 문을 벌컥 열며 소리쳤어.

“똑똑 카메라에 다 찍혔어. 왜 눈동자가 칠판을 향해 있지 않고 위로 자꾸 올라가지? 딴생각하고 있는 거 맞지?”

나래는 집에 와서 또 혼났단다.

“학원에서 딴생각하는 게 똑똑 카메라에 찍혔더구나. 아침에는 똥도 누더니, 이제 눈동자도 조절하지 못하면 어떡하니. 엄마는 우리 나래가 삐뚤게 될까 봐 걱정이 돼.”

자꾸 빨간 스티커를 받으면 좋은 중학교에 못 가고 그러면 좋은 고등학교에 못 가고 빨간 스티커가 계속 늘어서 대학에 못 가면 대학 졸업장이 없어서 직업이 없고, 직업이 없으면 돈을 벌지 못해서 아무것도 안하고 노는 사람이 된다고 엄마는 걱정했지.

다음 날, 나래는 일부러 조금 늦게 나왔어. 또 뛰어가려고. 그런데 신호등 앞에 여울이가 서 있었어.

“먹을래?”

여울이가 초코 쿠키를 내밀었어.

“좋아. 어제 네가 준 쿠키도 정말 맛있더라.”

나래는 쿠키를 베어 물었지. 길거리에서 음식을 먹으면 똑똑 카메라에 찍히는데 말이야.

둘은 횡단보도를 건넜어. 그런데 횡단보도 가운데 벌거벗은 고양이가 웅크리고 있는 거야. 햇빛을 받으면서 눈부시게 빛났지. 바람도 털을 쓰다듬으면서 지나갔단다. 나래와 여울이는 그냥 지나칠 수 없었어. 손바닥에 쿠키를 올려놓고 고양이를 향해 쪼그리고 앉았지. 오톨도톨한 고양이 혓바닥이 손에 닿았어. 둘은 간지러워서 깔깔거렸단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앉아 있었지.

차들이 비키라고 빵빵거렸어. 횡단보도는 30초 안에 건너야 하거든. 버스 안에 있던 사람들도 고개를 쭉 뺐어. 버스 뒤에 있던 자동차도 빵빵거렸어. 길 가던 사람들은 놀라서 걸음을 멈췄지. 그러고는 노파콘에 전화를 걸어서 빵빵거린 기사들을 알렸어. 검은 색안경을 낀 사람들이 타다다닥 구두 소리를 내며 빠르게 걸어왔지. 기사들이 끌려갔어. 버스 안 사람들은 어쩔 줄 모르고 발만 동동 굴렀어. 버스를 누가 운전하겠니. 버스에 탄 사람들이 모두 지각을 할 판이었어. 지각을 하면 회사에서 빨간 스티커를 받겠지. 그렇다고 내려서 뛸 수는 없었어. 뛰면 법에 걸리잖아. 사람들은 우다다닥 빠르게 걷기 시작했어. 조금 더 빠르게, 점점 더 빠르게. 사람들이 찬 똑똑 팔찌에서는 계속 경고음이 울렸지. 뛰지 말라고, 위험하다고. 건물에 있던 사람들도 창문을 열고 내다봤어. 바로 노파콘에 알렸지. 많은 사람들이 어디론가 빠르게 가고 있다고 말이야.

똑똑 카메라는 고개를 이리 돌렸다가 저리 돌렸다가 아주 바빴어. 빠르게 걷던 사람들이 뛰기 시작했으니까. 어떤 카메라는 너무 열심히 고개를 돌리느라 목이 빠지기도 했어. 연기가 폴폴 솟았지. 연기가 나니까 소방차가 몰려왔어. 사이렌이 울려 퍼졌지. 똑똑 카메라를 고치러 온 수리공은 정신이 없어서 가로등을 켜버렸어. 도시 전체에 가로등이 빛났어. 가로등이 켜지니 밤인줄 알고 간판불도 깜박거렸어.

“여러분, 고상함을 잃지 마세요. 똑똑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습니다. 당황하지 마세요. 위험한 행동은 하지 마세요. 절대 뛰지 마세요. 카메라가 찍고 있으니까! 야! 너! 뛰지 말라고!”

노파콘에 사는 노파가 고상함을 잃고 소리를 질렀어.

나래와 여울이는 천천히 걸어갔어. 고양이도 둘을 따라 우아하게 걸었지. 학교에는 9시 10분에 도착해도 괜찮았어. 선생님이 들어오지 않았거든.

“절대 밖으로 나가지 마. 선생님이 올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고 있어. 똑똑 카메라로 지켜보고 있다!”

교장 선생님은 목소리가 갈라졌어. 하지만 아이들은 알고 있었지. 모든 똑똑 카메라가 고장 났다는 걸 말이야. 그리고 말을 듣지 않아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말이야.

나래는 운동장 가운데에서 볕을 쬐던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어. 여울이도 눈을 찡긋했지. 나래는 그게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어.

“나가자!”

나래는 벌떡 일어섰어. 친구들도 따라했지. 모두들 초코 쿠키를 오물거리면서. 나래네 반 아이들이 운동장으로 뛰쳐나왔어. 운동장 가운데에 있는 탑에서 교장 선생님은 큰소리를 쳤어. 내려오지는 않고 계속 소리만 질렀어.

“가만히 있으라고 했잖아! 모두 빨간 스티커 100장을 받아야겠구나!”

교장 선생님 얼굴은 빨간 스티커보다 더 빨개졌지. 고상한 교장 선생님은 발을 구르며 화를 냈어.

“교장 선생님도 큰소리로 말했으니 스티커를 받아야 해요!”

아이들은 깔깔대며 웃었어.

“제게 빨간 스티커가 많으니 하나 드릴게요!”

나래가 크게 말했어. 아이들은 너도나도 자기 스티커를 주겠다며 손을 들었지.

벌거벗은 고양이도, 처음 뛰어 본 아이들도, 쉬지 않고 달렸어. 숨이 찼지만 기분은 꽤 괜찮았거든. 둘이서 손을 잡고 뛰기도 하고, 셋이서 어깨동무를 하고 달리기도 했지. 소리를 질러도 좋았어. 여럿이서 허리를 잡고 꼬리를 만들어 달리기도 했어.

“더 큰 꼬리를 만들자!”

나래는 신이 났어. 여울이 뒤에 나래가 서고, 나래 뒤에는 새미가, 그 뒤는 유나가 이었지. 나래네 반 아이들을 보고 옆 반 아이들도 나왔어. 게네들도 꼬리를 이었단다.

아이들은 교문 밖으로 나갔어. 고상한 학교 아이들이 나오는 걸 보고, 우아한 학교 아이들도 나왔지. 긴 꼬리는 두 개가 되었단다. 고상한 학교, 우아한 학교 아이들을 보고 점잖은 학교 아이들도 나왔지. 꼬리는 세 개가 되었어. 꼬리는 세 개, 네 개……. 계속 늘었어. 몇 시인지는 모르겠지만 해가 저물고 있었어. 아이들은 더 멀리까지 달려갔지. 아무래도 상관없었으니까.


<당선소감>


언젠가는 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이어서 다행입니다. 더 늦었더라면 움츠러들었을 겁니다.

당선 전화를 받고 온몸에 따뜻한 기운이 돌았습니다. 당장 밖으로 나가 동네 고양이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앞구르기, 뒷구르기를 하며 온 동네를 굴러다녔습니다. 학원을 가던 아이들도 따라붙었습니다. 나란히 손을 잡고 언덕을 달려 내려갔습니다. 바람도 세차게 밀어주었습니다. 모두가 둥실 떠올랐습니다. 옆 동네로 날아가서 기쁨을 전했습니다. 마침 회사를 관둔 친구가 마중을 나왔습니다. 우리는 백화점 식품 매장으로 들어가서 예쁜 쿠키와 빵, 케이크, 초콜릿을 몽땅 먹어버렸습니다. 빵빵해진 배를 두드리면서 리듬을 맞추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지나가던 사람들도 화음을 넣으며 함께 불렀습니다. 밤이 깊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습니다.

그날 마음속 어린아이는 신나게 놀았습니다. 당선 전화를 일주일 정도 늦게 받았더라면 어른인 저도 함께 놀 수 있었을 겁니다. 장염에 걸려서 흰죽만 먹고 있었거든요. 아쉽지만 천천히 동네를 걷고, 마을버스를 타고 옆 동네 친구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것도 참 좋았습니다.

글쓰기가 즐거웠던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매번 힘들었고 괴롭기만 했습니다. 제 안에 있는 국어사전은 너무 얇았습니다. 단어들은 허름하고 문장은 거칠었습니다. 한 문장에서 다음 문장으로 밀고 가는 게 힘에 부쳤습니다. 제가 감추고 싶은 부분이 계속 드러나서 두려웠습니다. 이야기 속에 숨고 싶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왜 글을 쓰고 있나, 이해가 안 됐습니다. 하지만 글을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동화 쓰는 일이었습니다. 감추고 싶었지만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비밀로 간직하고 싶었지만 공감해주길 바랐습니다. 혼자 있고 싶었지만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혼자서 글을 썼다면 금방 지쳤을 겁니다. 오랜 시간 합평교실을 함께한 모난돌 식구들(우리는 정말 글 쓰고 밥을 함께 먹었으므로)과 이끌어 주신 김하늘 선생님 고맙습니다. 함께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커피를 마시고 달콤한 것을 먹고, 다독여주고 응원해주고, 같이 울어준 친구들에게도 고맙습니다.

제가 하는 모든 일을 믿고 응원해주신 부모님, 항상 저를 챙겨주는 여동생과 남동생이 제일 고맙습니다. 가족은 제가 어느 곳에서든지 깊이 뿌리내릴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글 쓰는 일은 여전히 괴로울 겁니다. 하지만 두렵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굳세게 쓰겠습니다.


<심사평>고양이로 시작된 사회 일탈과 반성 돋보여

 

응모작이 꽤 많은 편이었고 다양한 소재의 작품들을 검토할 수 있었다. 동화의 대상을 어린이로 생각하다 보니 응모작 상당수가 아이들의 현실인 공부, 선행 학습, 엄마의 간섭에 대한 반항심을 다루고 있었다. 짐작한 대로 유기견과 길고양이에 대한 작품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화장하는 여자 아이들 이야기가 제법 보이는 것을 근거로 어린이 사회에 이런 현실이 있다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었다. 고령 응모자가 많은 것도 흥미로운 사실이었다.

동화의 가장 중요한 점은 서사의 힘이고 ‘읽는 맛’에 매력이 있는데 그 부분에서는 모든 작품이 기대에 미치지 못해 아쉬웠다. 가정과 학교 안에서의 다양한 폭력을 깊은 성찰 없이 거칠게 ‘보여주기만’ 한 작품이 많아서 동화에 대한 인식에 우려가 되었고 기본적인 문장 쓰기나 문맥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는 작품이 많아 동화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본심에서 '아리랑 사건'과 '노파콘'을 검토하였다. 근래 들어서 동화에 이주민 소재 혹은 한국인 후손 소재가 자주 나타나는데 대개 문제에 대한 인식이 표피적이거나 빤하게 짐작되는 결말을 보여 늘 아쉬움이 남았다. 그럼에도 '아리랑 사건'을 본심에 올려놓고 고민한 까닭은 일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납득이 되게끔 독자를 이끄는 자연스러운 진술, 주인공 심리에서 느껴지는 작가의 섬세한 감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제목에서 기대하게 되는 ‘사건’이랄 것이 크게 보이지 않고 주인공이 모든 인물을 삐딱하게 대하거나 내내 화가 나 있는 이유를 설득력 있게 제시하지 못한 점, 선생님이 어째서 주인공에게 ‘아리랑’을 부르게 했는지 끝내 알 수 없다는 것이 허점으로 걸렸다. 섣부르게 화합으로 마무리한 결말도 무리가 있어 보인다.

'노파콘'은 미래의 어떤 도시 혹은 철저히 계산된 하나의 사회를 연상하게 하는 작품이다. 삶의 모든 것을 통제하고 원격으로 감시하는 사회의 일탈이 고양이 한 마리로 시작되고 그것이 체계화된 사회에 대한 반성을 불러오는 과정이 아이의 시선에 맞게 무리 없이 차근차근 이루어져 있었다. 끝까지 이미지 연상이 가능한 묘사와 대화도 장점이다. 새로운 소재가 아닌데도 흥미롭게 읽히는 것은 이 작가가 가진 서사의 감각이므로 이후에 어떤 행보를 보일지 기대가 된다. 이 계기가 한 작가의 의미 있는 출발이 되기를 바란다.
심사 : 황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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