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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조선일보] 하늘에 있는 아빠에게 - 김보경

신춘문예 김보경............... 조회 수 132 추천 수 0 2018.12.05 23:25:35
.........

하늘에 있는 아빠에게 / 김보경

 

아빠.

어제 한숨도 못 잤어요. 비바람이 아주 세차게 불었잖아요. 창문에 비치는 마당의 단풍나무가 꼭 뿌리째 뽑힐 것처럼 흔들렸어요. 지금도 비가 와요.

어제는 할머니 코 고는 소리도 안 들렸어요. 자꾸 뒤척이시다 일어나 앉아 창문을 바라보셨죠. 깊게 한숨을 내쉬는 소리를 들었지만 난 잠들어 있는 척 가만히 있었어요. 할머니가 나까지 걱정하실까 봐요.

땅에 있는 것들이 이렇게 흔들렸는데 하늘에 있는 아빠는 괜찮나요?

아빠.

수원이 삼촌이 며칠 전에 새 휴대폰을 주고 갔어요. 아빠가 보고 싶으면 이걸로 아빠와 영상통화를 해도 된대요. 몇 번이고 영상통화를 눌렀다가 그만두었어요. 아빠 얼굴을 보고 눈물이 쏟아지면 어떡해요. 그럼 아빠도 힘이 빠질 거잖아요. 수원이 삼촌은 그런 것도 모르고, 전화비 많이 나올까 그러냐고 자꾸 귀찮게 물어보는 거예요. 그리고 얼마나 사나이가 됐는지 보자고 자꾸 목욕탕 가자고 끌고가서 도망치느라 힘들었어요.

아빠, 눈치없는 수원이 삼촌 보면 나 대신 좀 때려 주세요. 많이는 말고 딱 한 대만요. 수원이 삼촌은 귀신처럼 쌀독에 쌀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오거든요.

이제까지 잘 참아왔는데 영상전화를 하라고 휴대폰을 받으니까 갑자기 아빠가 많이 보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영상전화 대신 편지를 쓰기로 했어요. 아직은 눈물을 잘 참을 자신이 없어서요. 편지를 쓰니까 존댓말이 저절로 나오네요. 매일 아빠한테 버릇없이 군다고 할머니한테 혼났었는데. 그때마다 아빠는 허허허 웃으면서 괜찮다고 수염을 비벼댔었죠.

아빠가 하늘로 올라간 지 오늘이 352일째예요. 높고 좁은 그곳에서 발만 겨우 딛고 있는데 어지럽지 않나요? 아빠, 아래는 절대로 내려다보면 안 돼요. 그럴 때 센 바람이 불어서 아빠를 떨어뜨리면 어떡해요. 아빠는 괜찮다고 웃겠지만, 세상엔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날 수 있단 말예요.

아빠. 352일 전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아빠랑 할머니랑 셋이 같이 살던 그때로요. 아파트에 살지 않아도, 패밀리 레스토랑에 못 가도 괜찮아요.

아빠가 하늘에 올라가고 한 달도 안 됐을 때, 전화 통화 했었죠. 그때 소리소리 지르면서 당장 내려오라고, 딴 애 아빠 올라가라 그러라고 울고 떼썼던 거 기억나세요? 아빠, 거기서도 다 보였죠?

그때 전화기로 들리는 아빠 목소리가 훌쩍훌쩍 코맹맹이 소리가 났어. 아빠가 울먹울먹하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더 크게 울고 소리질렀어요. 조금만 더 떼쓰면 들어줄 것 같아서요. 그런데 아빠는 역시 대장님다워요. 분명히 아빠도 울고 있는 줄 알았는데 금세 굵은 목소리로 허허 웃는 거예요.

"이밝음! 계속 울면 고추 떨어진다."

그때 눈물을 닦고 나서 지금까지 한 번도 안 울었어요. 물론 고추가 떨어질까 봐 그런 건 아니고요. 아빠도 수원이 삼촌도 자꾸 까먹나본데 난 이제 알 거 다 아는 4학년이라고요.

떼쓰고 울어봐야, 소용없을 걸 알았거든요. 아빠는 아빠랑 아빠 친구들이 원하는 것을 이룰 때까지는 절대로 내려오지 않을 거예요. 맞죠?

그렇다고 그게 괜찮은 건 아니에요.

사실은 화가 나요.

아빠가 올라가 있는 동안 할머니는 여기저기 고물을 주우러 다녀요. 할머니가 아픈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고물 주우러 나가는 걸 보면 가슴속에서 뭐가 부글부글 끓어올라요. 막 화가 나요.

요샌 자꾸 화를 냈더니 내 얼굴이 못생겨지고 있대요. 내가 잘생겨서 좋다고 그랬던 서영이가 그랬어요. 그래서 전 이제 서영이 안 좋아하기로 했어요. 그 말을 듣는데도 화가 나서요. 나쁜 건 내가 아닌데, 아빠가 하늘에 있는 것도 내 탓이 아닌데 못생겨지는 건 나잖아요. 이건 정말 불공평해요.

그렇게 말한 게 서영이 잘못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렇게 말하는 서영이한테 화를 낸 건 어쩔 수 없어요. 불공평하다고 서영이가 뭐라고 하면 말해줄래요.

"이 세상엔 불공평한 일 투성이야."

라고요.

나도 알아요. 내가 화가 나는 건 서영이 때문이 아니라 아빠 때문인 걸요.

아빠, 어떻게 아픈 할머니랑 나만 두고 올라가버릴 수가 있어요?

회사만 중요하고, 아빠 친구들만 중요하고 나랑 할머니는 중요하지 않나요?

회사에서 나오지 말라고 하면 영욱이네 아빠처럼 다른 회사로 옮겨가면 되잖아요.

할머니는 걱정 말고 학교나 열심히 다니라고 하지만 학교도 가기 싫어요. 놀리는 애들도 있어요. 이걸 말하면 아빠한테 혼나겠지만 그래도 말할래요. 나, 놀리는 애들을 때려준 적도 있어요.

여름에 겨울 털실내화 신는다고 놀리는 거나 작아진 티셔츠 아래로 속옷이 나온다고 놀리는 건 괜찮은데 아빠를 놀리는 건 정말 못 참겠더라고요.

무슨 속셈인지 자꾸 제 앞에서 '원숭이도 하늘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 '하늘에서 벌레가 뚝' 이렇게 떨어진다는 얘기를 자꾸만 하는 거예요. 떨어진다는 소리만 들어도 할머니랑 나는 가슴이 쿵 쿵 내려앉는데.

아빠가 올라가 있는 걸 알고 하는 얘기인지 그냥 하는 얘기인지 모르겠어요. 그 땐 꼭 알고 하는 얘기 같아서 저도 모르게 주먹이 나갔어요. 그 말을 한 성원이를 눕혀놓고 막 때렸는데 나중에 서영이가 내가 나 같지 않고 괴물 같았다고 했어요. 담임 선생님이 뒷덜미를 잡고 끌어올리지 않았더라면 성원이는 코피로 끝나진 않았을 거예요.

우리 반 아이들이 아빠가 하늘에, 굴뚝 위에 있다는 걸 알고 있을까요? 선생님은 아시는 거 같지만. 아마 영욱이가 얘기했을 거예요. 영욱이 녀석, 친구들한테 운동화랑 스케이트보드 자랑을 하다가 나만 보면 후다닥 감추더라고요. 치, 내가 뭐라고 그런 것도 아닌데.

아빠.

공부도 하기 싫어요. 할머니도, 선생님도 공부를 열심히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하는데 어떤 게 훌륭한 사람인지 잘 모르겠거든요.

아빠는 참 좋은 사람인데 뉴스에선 아빠가 나쁘다고 얘기해요. 아빠처럼 자꾸 하늘에 올라가서, 높은 데 올라가서 떼쓰는 사람들 때문에 아빠 회사가 어려워진대요. 아빠처럼 고집 센 사람들이 많아져서 우리나라가 나빠진대요.

아빠 수염은 닮고 싶지 않지만 아빠처럼 굵은 목소리로 멋지게 노래하는 남자가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아빠를 닮으면 안 될 것 같아요.

아빠가 계속 안 내려오면 아빠가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수원이 삼촌밖에 없을 거예요. 더 시간이 지나면 수원이 삼촌도 모른 척할지도 모르죠. 수원이 삼촌이 어떤 사람과 통화하면서 막 화를 내더니 시간이 지치게 만든다고 그러던걸요.

아빠, 시간이 나와 할머니를 지치게 만들지도 몰라요. 아니, 사실은 아빠가 가장 지치겠죠. 그러기 전에 아빠가 내려왔으면 좋겠어요.

이런 약한 말을 하려고 편지를 쓰기 시작한 건 아닌데. 이러면 300일 전에 아빠 내려오라고 울고불고 떼쓰던 꼬맹이 이밝음과 똑같은 거죠?

아빠, 난 괜찮아요.

할머니 말씀처럼 아빠가 밥만 잘 먹고 건강하게만 있다면 하늘에서 있든 내 옆에 있든 괜찮아요.

신문지 쫙 펼친 것보다도 좁은 그곳에서 아빠 밥은 잘 먹고 있나요?

 수원이 삼촌이 아빠 친구들이 대장님을 잘 도와주고 있다고 걱정 말라고 했지만 할머니는 아빠가 끼니를 거를까 봐 밥 먹을 때마다 한소리씩 하세요.

화장실은 어떻게 하고 있나요? 힘들다고 아무데서나 볼일 보면 안 돼요. 수염은 더 많이 자랐겠죠?

"떼쟁이 이밝음이 웬일로 이렇게 철든 소리를 하지?"라고 아빠가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거 같아요.

사실은 어떤 아이 덕분일지도 몰라요. 지난주에 수원이 삼촌이 어떤 아이랑 같이 왔었거든요. 삼촌 뒤에 숨어서 고개만 내밀고 있었던 그 아이가 저한테 말했어요.

"네 아빠가 우리 아빠 대신 싸우고 있어. 고마워."

화났다고 보여주고 싶어서 돌아보지도 않고 게임만 하고 있는데 어느 틈에 다가왔는지 조그만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는 거예요.

아빠는 돌아가신 그 애 아빠 대신 싸우고, 그 아이는 아빠 대신 나한테 고맙다고 한 거죠. 난 아빠한테, 아빠를 하늘로 올라가게 만든 아빠 친구들한테 화를 내고 있는데요.

그날 수원이 삼촌이 우리 둘한테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어요. 왜 그 아이 아빠가 물건을 만들어 내던 공장의 굴뚝에서 뛰어내렸는지. 왜 아빠가 그 높은 곳으로, 하늘로 올라갔는지.

아빠.

아직 화가 다 풀린 건 아니에요. 하지만 난 다시 생각해보려고 해요. 아빠가 왜 올라갔는지.

아빠 회사 친구들은 왜 아빠와 계속 싸우고 있는지. 날 화나게 만든 게 정말 아빠인지, 아빠 회사 친구들인지, 아니면 또 다른 사람들인지 말이에요. 또 텔레비전 뉴스도 잘 보려고 그래요. 뉴스에서 얘기하는 게 맞는 건지, 틀리는 건지.

그리고도 잘 모르겠으면 물어볼래요. 다른 사람들에게요.

"언제까지 비바람이 칠 때마다 이렇게 잠 못 이루는 밤이 계속되어야 하나요?"

라고요.

아, 아빠!

비가 멈췄어요. 다행이에요.

하늘에 햇살이 다시 나오면 비바람에 힘 빠진 아빠도 다시 힘이 나겠죠?


<당선소감>아직도 마음속에 이야깃거리 가득해요

 

영국의 작은 도시에 막 도착했을 때 당선 소식을 들었습니다. 토막 영어로 산 같은 짐을 끌고 친구를 찾아갈 일이 아득해 실감도 못 하다가 이틀이 지나고서야 지난 시간을 돌이켜봅니다.

지난 두 해 동안 참 많이 아팠습니다. 아프고 나서야 깨닫게 된 게 많았습니다. 제 옆에 저를 아끼는 사람이 정말 많다는 걸. 제 마음속에 간직해 온 이야깃거리가 가득하다는 걸. 필요해서가 아니라 아이들이란 존재 자체를 사랑해서 아이들을 쫓아다닌다는 걸. 행복은 미루면 결코 오지 않는 것처럼 인생의 진리들을요.

하나씩 차근차근 이뤄가도록 큰 용기를 주신 심사위원께 감사드립니다. 옆에서 아픔도 기쁨도 함께 겪어가는 남편과 딸들, 끝없는 사랑을 퍼주시는 엄마와 동생들, 버팀목이 돼서 지켜봐 주시는 시어머님, 하늘에서 돌봐주고 계시는 아버지와 시아버지께도 감사드립니다.

안영은 선배님, 친구 한나영, 랄라라 모임 선후배님들 사랑하고 고마워요. 끈을 놓지 않도록 끌고 밀어준 동화세상 동기들과 합평 모임 문우들 덕분인 걸 잊지 않겠습니다. 처음 보는 영국 꼬맹이가 무서운 꿈을 꾸었다고 울며 찾아와 옆에서 토닥토닥 재우고 있습니다.

영국에선 밤마다 태풍 소리 같은 바람 소리가 들립니다. 이 밤, 세상의 모든 아이가 편안하게 잠자기를 기도합니다.


◎ 약력

▶ 1971년 출생

▶ 수원 영복여고, 성균관대학교 섬유공학과 졸업

▶ 1995년부터 KBS, EBS에서 어린이 대상 방송 프로그램과 애니메이션, 에듀테인먼트 콘텐츠 원고 집필, 〈동화세상〉과 〈여랑글패〉에서 동화 공부


<심사평>아프고 분한 아이 마음을 과장 없이 드라마틱하게…

 

신춘문예 심사를 할 때면 혹시라도 당선작을 발견할 수 없을까 걱정이 앞선다. 그만큼 최근 몇 년간 응모 편수는 많지만 좋은 원고 만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올해는 좀 달랐다. 최종 후보에 올려놓을 작품 가려내느라 오히려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제외해야 했으나 마지막까지 붙들고 있던 원고는 이윤희의 〈양말 신는 아이〉, 박소영의 〈새의 강〉, 나니나의 〈그림자〉였다. 각각 다른 개성을 가진 이 작품들을 써낸 분들은 꾸준히 노력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격려를 보낸다. 최종 후보작으로 다음 작품들을 놓고 고심했다. 장유하의 〈할머니 사랑〉은 가정형편상 시골의 할머니 집에 맡겨져 자라는 아이라는 옛날풍의 흔한 소재인데도 주인공의 애착과 분리의 감정을 생생하게 그려내어 읽는 이의 눈시울을 적시게 하는 힘이 있었다. 최빛나의 〈거짓말 일기〉와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는 두 편이 고른 수준을 보이고 있어 우선 글쓴이의 저력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이들 생활에서 찾아낸 소소한 소재를 서사로 풀어내는 능력이 돋보였다. 〈하늘에 있는 아빠에게〉는 신문지 한 장보다 좁은 굴뚝 위에서 352일째 투쟁하고 있는 아빠를 둔 아이의 마음을 편지 형식의 글로 드라마틱하게, 그러나 과장 없이 그려내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하늘로 올라가 버린 아빠 때문에 생활이 엉망이 되어, 슬프고 아프고 분하고 혼돈스럽던 아이가 제 나름대로 세상을 관찰하면서 옳고 그름에 대해서 눈떠가고 스스로 힘을 내는 이야기가 진실되게 그려져 있다. 믿음직하다. 기쁜 마음으로 당선작으로 결정하며 작가의 탄생을 축하한다..
심사 : 최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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