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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10:1-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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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참고 : | 2018.2.11 희망의교회 http://hopech.kr |
칠십 제자를 파송하심
눅10:1-16
우리는 지금 하나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 말씀이 선포되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엄청난 일이며, 대단히 심각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말씀이 선포되는 것은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말씀의 선포와 함께 임합니다. 선포되는 하나님 말씀을 온전히 받아 순종하면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반대로 선포되는 말씀을 거부하면 심판이 임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이 선포되는 것은 엄청난 일이며, 우리에게 가장 심각한 선택을 결단하도록 촉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 말씀이 선포될 때 말씀을 듣는 우리의 자세와 그 말씀에 대한 반응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사모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진지하게 듣고, 그 말씀대로 온전히 순종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하여 하나님 나라의 축복과 은혜를 풍성하게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
누가는 많은 준비 끝에 가장 체계적이고 완전한 복음서를 기록했습니다. 누가는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을 지역별로 나누어 기록했습니다. 먼저 성전에서 사가랴가 가브리엘 천사를 만난 것, 그리고 시므온과 안나 선지자가 성전에 오신 아기 예수님을 만나는 장면을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사탄에게 시험 받으신 장면을 기록했습니다. 그 다음에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을 기록했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사역을 마무리하시고 고난과 십자가가 기다리고 있는 예루살렘으로 가고 계십니다. 누가는 10장부터 19장까지를 할애하여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행하신 사역을 기록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누가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잡히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것을 기록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사역을 마무리하시고 예루살렘으로 가고 계십니다. 이 길에서 예수님께서는 많은 지역에 복음을 전하셨는데, 이 사역이 약 6개월 계속되었습니다. 특히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칠십 제자들을 파송하셨습니다. “그 후에 주께서 따로 칠십 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1절)
예수님께서 보내신 칠십 제자들은 장차 예수님께서 가시려고 하시는 곳으로 다니면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 다음 예수님께서 그 지역들에 가셔서 복음을 전하실 작정이셨습니다. 그렇게 약 6개월 동안 여러 지역에 복음을 전하신 후,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입성하십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앞에 두시고, 할 수만 있으면 많은 지역에 복음을 전하고자 하셨습니다.
칠십 제자를 파송하심
예수님께서는 칠십 제자를 파송하시면서 하나님 아버지께 추수할 일꾼을 보내주시기를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2절)
당시 이스라엘의 형편은 매우 어려웠습니다. 세계를 제패하고 있던 로마에게 지배를 당하고 있었으며, 지도자들은 타락하여 백성들을 바르게 인도하거나 돌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당하고 있었으며, 영적으로는 암흑기였습니다. 백성들에게는 소망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어려웠지만, 예수님께서는 당시 이스라엘을 바라보시며 “추수할 것이 많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려움을 당하고 있었고 영적인 암흑기에 있었지만, 복음이 전파되면 믿고 구원받을 영혼들이 많은 것을 보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소망 없는 백성들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일은 너무나도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칠십 제자를 파송하셨습니다. 그리고 일꾼이 너무나도 부족하기 때문에 주인이신 하나님께 추수할 일꾼을 보내주시도록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도 그렇습니다. 지금처럼 사람들이 부정적이고 냉소적이며 이기적이고 절망적인 때는 일찍이 없었습니다. 빈부의 격차는 역사에 유래가 없을 정도로 심해졌고, 이념적으로 극단적인 대립이 고착되고 있습니다. 도덕적인 타락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세상의 마지막 보루인 교회마저도 부끄러운 일들로 인해 신뢰를 잃어버렸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는 소망이 보이지 않는 시대가 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도 주님처럼 세상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절망의 시대에 사람들은 영적으로 심히 갈급해 있습니다. 우리는 이들에게 더욱 힘써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이 사명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칠십 제자를 보내시는 심정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3절) 세상은 악하고 험한데, 예수님께서 보내시는 제자들은 약하고 힘이 없었습니다.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러 가면 완악한 세상이 그들을 핍박하고 대적할 것입니다. 제자들에게는 이것을 이길 힘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반드시 승리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전능하신 주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실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세상에 복음을 전해야 하는 우리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감당할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눅이 들거나 주저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감당할 수 없지만 주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반드시 믿고 구원을 받는 사람들이 있게 되어 있습니다. 주저하지 말고 담대하게 더욱 힘써 복음 전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라
예수님께서는 칠십 제자를 파송하시면서 열두 제자를 보내실 때와 비슷한 교훈을 주셨습니다. “전대나 배낭이나 신발을 가지지 말며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며”(4절)
복음 전하러 가는 제자들은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말아야 했습니다. 경비도 필요할 테고 급한 일도 생길 것인데, 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제자들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면서 오직 하나님만 온전히 의지해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자들의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제자들은 길에서 사람들과 인사도 하지 말아야 했습니다. 이 말씀은 일상적인 예절을 무시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길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면 여러 가지 사정을 일일이 물으며 인사를 했습니다. 그러느라고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사람들에게 그렇게 일일이 문안하다가는 어느 세월에 복음을 전하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그런 식으로 문안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지금 복음 전하는 시급하고도 중요한 사명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 전파에 방해되는 모든 일을 금하셨습니다.
평안을 선포하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그 집에 평안을 선포하라고 하셨습니다.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 하라”(5절)
이 평안은 죄와 문제 속에서 시달리는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음으로써 얻는 평안을 가리킵니다. 이 평안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며, 세상이 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평안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평안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
세상 사람들은 이 평안을 모릅니다. 오늘 성도는 세상 사람들에게 이 평안을 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평안을 전하는 길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듣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구원을 받게 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듣는 자들이 복음 전하는 자들의 필요를 채워주게 하셨습니다. “그 집에서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지 말라”(7절) 복음을 듣는 자들은 복음 전하는 자들의 필요를 채워줌으로써 받은 바 은혜를 보답해야 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복음 사역에 동참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말씀 전하는 종들을 후원함으로써 그들의 사역에 동참해야 합니다.
제자들은 어느 곳에 가든지 처음 그들을 영접하는 집에서 그곳을 떠나기까지 머물러야 했습니다. 더 나은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집이 생겼다고 해도 옮기지 말아야 했습니다. 복음 전하는 자들은 더 편안한 숙소와 더 좋은 음식을 추구하는 여행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더 좋은 대접 받기를 구하지 말고, 오직 복음 전하는 일에 전념해야 했습니다.
제자들은 복음 듣는 자들이 주는 것은 무슨 음식이나 먹어야 했습니다.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놓는 것을 먹고”(8절) 이방인의 동네에 들어가 전도할 때는 그들을 영접하는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 머물면서 그 집에서 제공하는 음식을 먹어야 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전통적으로 지켜오는 음식에 대한 관습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지도 않았으며,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방인의 지역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할 때 이방인들의 집에 머물며, 그들이 제공하는 음식을 먹어야 했습니다. 그 음식들 중에는 유대인들의 음식 규정에 어긋나는 것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따지거나 거부하지 말고 그러한 음식을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만일 제자들이 이방인들의 집에 머무는 것이나 이방인들의 음식 먹기를 거부한다면, 그들에게 복음 전하는 일은 불가능할 것이었습니다. 복음 전하는 일이 음식이나 식사법보다 훨씬 중요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병 고치는 능력과 복음 선포하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9절) 병 고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 역사하시는 것을 나타냈으며, 그들이 전하는 복음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인치는 증거였습니다.
복음을 거부하는 경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나가서 복음을 전할 때 거부하는 자들이 있을 것임을 미리 말씀해주셨습니다.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거든 그 거리로 나와서 말하되 너희 동네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도 너희에게 떨어버리노라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하라”(10-11절) 제자들은 이렇게 복음을 거절하는 자들은 심판을 받게 될 것을 엄중하게 경고를 해야 했습니다.
아무리 말씀을 전해도 듣지 않으며, 이적을 보고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복음을 거절하는 동네는 소돔보다 더 큰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 날에 소돔이 그 동네보다 견디기 쉬우리라”(12절) 소돔은 죄악이 관영한 곳이었으며, 심판의 경고를 무시하고 무서운 불 심판을 받아 멸망을 당한 도시로 유명합니다. 복음을 듣고도 믿지 않는 자들은 소돔보다 더 큰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특별히 갈릴리의 세 고을을 언급하시면서, 그들은 더 큰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세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심판 때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13-15절)
고라신과 벳세다, 그리고 가버나움은 모두 갈릴리 호수 주변에 있었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갈릴리 호숫가에서 설교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많이 들었으며, 예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이적들도 많이 보았습니다. 이것은 그들에게 허락된 특권이었습니다. 오병이어의 이적은 벳세다 언덕에서 있었으며, 가버나움은 예수님 갈릴리 사역의 본거지였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말씀을 직접 들었고, 예수님께서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보여주는 많은 이적들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두로와 시돈은 갈릴리 북쪽에 있는 페니키아의 오랜 항구들로서 매우 부유한 도시 국가들이었습니다. 선지자들은 두로와 시돈의 죄악을 지적하며, 그곳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을 예언했습니다. 결국 이 도시들은 심판을 받아 멸망을 당했습니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회개하지 않은 이방인들도 심판을 면할 수 없었다면, 하나님 백성이라는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친히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거절한 것에 대해 얼마나 더 큰 심판을 받겠느냐는 것입니다.
복음 전하는 자들의 권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전하는 복음을 듣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요, 그들을 저버리는 것은 그들을 보내신 예수님과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 하시니라”(16절)
예수님께서 보내신 칠십 제자들은 그 이름조차 밝혀져 있지 않으며, 연약하고 부족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권위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했으며,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제자들의 권위는 그들 자신의 권위가 아니었고, 예수님께 그들에게 주신 권위였습니다. 칠십 제자들은 예수님의 권위와 이름으로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치며 귀신을 쫓아냈던 것입니다.
이렇게 제자들의 권위는 그들을 보내신 예수님의 권위였기 때문에, 그들의 말을 듣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과 같았습니다. 제자들을 거부하고 저버리는 것은 그들을 보내신 예수님을 저버리는 것이었고, 더 나아가서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칠십 제자들이 비록 연약하고 부족했지만, 그들이 전하는 복음을 듣는 여부에 따라 그들의 영원한 운명이 결정되었습니다.
이것은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듣고 믿는 자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거절하는 자들은 예수님을 거절하는 것이며, 심판을 받게 됩니다. 지금 이 시간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비록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목사는 주님께서 보내신 종입니다. 그러므로 목사가 전하는 말씀을 듣는 것은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과 같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성도는 하나님께 사랑을 받고 얼마든지 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듣고도 순종하지 않으면, 그것은 그를 보내신 주님을 거역하고 저버리는 것과 같기 때문에 심판을 받게 됩니다.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있다는 것은 엄청난 사실이며, 우리에게 너무나도 심각한 일입니다. 당신은 이 말씀을 어떻게 듣고 있습니까? 이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마음을 다해 순종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우리가 비록 연약하고 부족하지만,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듣고 믿는 자들은 누구나 구원을 받게 되며, 거절하는 자들은 심판을 받게 됩니다. 주님께서 명하신 대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힘써 전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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