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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재구성을 마가가 말하다

마가복음 허태수 목사............... 조회 수 214 추천 수 0 2018.12.13 23:2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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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10:17~31 
설교자 : 허태수 목사 
참고 : 2018-05-09 성암감리교회 http://sungamch.net 

가족의 재구성을 마가가 말하다

마가복음 10:17~31

 

1인 가구를 ‘나홀로족’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1인 가구는 2015년 이래 우리 사회를 대표하는 가구형태로 올라서, 현재 네 집 중 한 집(28%)이 넘는다고 합니다. 한 부모가족은 전국 154만 가구이고, 이 가운데 미혼모·미혼부도 3만3천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되어 있습니다. 한편, 2017년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1.05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바닥을 쳤다. 가족의 다양화와 가족의 소멸에 직면한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까지와는 다른 가족관이 있어야 하는 겁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서 마가복음은 바로 이런 문제, 새로운 시대의 즉 하나님 나라를 지향하는 가족관에 대한 해답이 실려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가복음의 본문은 평범하게 해석할 수 없는 몇 가지 의문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율법을 잘 지키는 한 사람 즉 유대인이 예수를 ‘선한 선생님’이라고 부른다는 겁니다. 이 호칭이 누구든지 가능한 호칭 같지만 유대인들은 잘 하지 않는 낯선 용어입니다. 좀 이상하죠. 또 있습니다. ‘영생을 얻으리이까’에서 ‘얻다’라는 말은 내세의 의미를 뜻하는 용어가 아니라 땅과 관련해 쓰이던 용어였습니다. 물론 우리는 ‘영생’그러면 내세에 관한 뜻으로 사용하지만 당시 대부분의 유대인들의 사고에서 영생은 땅이었습니다. 게다가 구약은 유대인들이 내세 개념을 거의 가지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본문에 등장하는 영생이라는 용어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나 이방인들의 맥락에서 사용되던 용어였습니다. 이외에도 이 당시의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계명을 잘 지키면 별 문제가 없는 것으로 간주했음에도 계명으로 충분치 않아 예수에게 영생에 이르는 길을 구하는 이 사람의 태도는 유대적인 맥락에서는 약간 괴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랍비 문헌에는 이와 달리 토라의 계명을 잘 지키면 영생(땅의 복)을 얻는 데 족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두 번째로, 본문이 재밌는 것은 영생의 조건으로 이 신실한 유대인에게 예수는 십계명에서 가장 중요한 하나님과의 관계를 말하는 1~4 계명보다는 인간과의 관계를 논하는 5~10 계명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십계명의 1계명이 무엇이죠? 그것은 유대인의 종교적 정체성에 핵심인 나 이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계명이 아닙니까? 그런데 예수는 유대인의 정체성 문제보다는 이웃 간의 관계 문제를 영생의 핵심조건으로 설파합니다. 그래서 로버트 프라이스라는 학자는 이것을 이미 이방인 그리스 세계에 사는 사람들에게 맞는 쪽으로 번역된 마가적 예수의 계명으로 파악합니다. 막10:19를 행15:29과 비교해보면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 할지니라 이제 스스로 삼가면 잘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더라."(행15:29)

 

세 번째로, 가족과 관련한 베드로의 말 역시 역사적이지 않다는 점입니다. 역사적으로 말해 베드로는 가족을 떠나거나 버린 적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고전9:5절은 이 점을 확인해 주고 있어요.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자매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겠느냐?"(고전9:5). 또한 막1장에서는 베드로의 장모를 예수가 고쳐주는 일화가 등장합니다. 아내를 가진 베드로에 대한 고려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눅14:26에는 아내를 미워하라는 예수의 말이 있는 반면 우리가 본 막10:29에는 아내에 대한 말이 아예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지상적인 혈연 가족이 아니라 신성가족으로 재구성하려는 마가의 욕망이 베드로로 하여금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다고 말하게 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또한 이 때문에 가족에 관한 마가의 다른 말도 흥미롭습니다.

 

즉, 막 3장의 바알세불 논쟁에서 본 것과 같이 예수를 반대하는 예수 가족에 대한 일화 역시 역사적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낯선 일화로 보인다는 점이죠. 실제로 마가와 달리 마가복음보다 좀 더 빠른 문헌인 Q의 바알세불 논쟁에서는 예수의 가족이 등장하지 않으며 게다가 놀라운 점은 마가복음에서 예수를 반대했던 예수의 형제 야고보가 사도행전에서는 초기 예루살렘 공동체의 수장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가족에 관한 베드로의 말(막10:28)과 이를 되받아치는 예수의 말(막10:29~30)을 유대사회의 가족개념에 깔린 혈연적 관계를 비판한 결과로 생긴 구성원들의 고통에 대해 마가가 위로를 시도하는 일종의 담론입니다. 그런데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막10:28~30의 이야기를 막3:20~35와 막13:9~13과 함께 살펴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막3:20~35는 마가가 혈연에 기초한 유대 가족 사회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실제로 막3:20~35에서 마가는 예수의 가족들이 예수를 반대하는 모습을 묘사하고 그리고 이에 대항하기라도 하듯 가족을 혈연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재정의해 버리는 예수를 보여주고 있어요. 하지만 이로 인해 마가 공동체는 유대사회에서 비판받을 수밖에 없는 위치에 놓이게 됩니다. 막13:9~13은 이 점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유대를 넘어 결국엔 만국에 전파되어야 하는 복음과 그로 인한 가족에 대한 재정의는 마가 공동체의 구성원들로 하여금 가족 내에서 불화를 겪도록 만들고 있다는 점입니다.

 

동시에 이것은 복음이 유대사회를 넘어 이방사회로 흘러들어가야 하는데 지상의 유대적인 가치관 대 만국의 복음이라는 대립구도가 빚어낸 고난이 자칫 마가 공동체 구성원으로 하여금 지상의 유대적인 가치관들에 연연하도록 만들어 버린다면 온 세상에 전파되어야 할 복음은 결국 파국을 겪고 말 것이라는 점을 암시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보상도 따르는데 막10:28~30은 예수로 하여금 가족을 버린 자는 현세뿐만 아니라 내세에서도 보상을 받을 것이라고 말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가족에 관한 마가의 이야기는 촘촘히 얽혀 있기 때문에 가족과 관련한 역사적 예수에 대한 정보를 확실히 제공해주는 전승이라기보다는 앞서 말한 것처럼 이러한 위기를 맞이한 마가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예수를 통해 위로를 주고자 하는 마가의 이야기들일 가능성이 더 큰 것 같습니다. 이 때문에 ‘오는 세상’에서 보상이 주어진다는 이 마가의 말이 유대적이 아니라 헬레니즘적인 사고의 도식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10:21과 10:25에 대한 문제입니다. 21절은 ‘너의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고 오라’이고, 25절은 ‘부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입니다. 본문의 이 말은 역사적 예수에 대한 우리의 흔한 역사적 상상력과는 다소 다른 의미를 전해주는 것으로 보입니다. 뭔 이야긴가 하면, 예수는 가난한 자들을 더 배려하고 부자를 경원시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다소 의아스럽다는 것입니다. 예로 막14장에 나오는 예수의 머리에 향유를 붓는 여인의 이야기에 나오는 구절인 막14:5과 14:7은 막10:21과 10:25과는 반대의 의미를 갖습니다. 이 구절들을 막10:21과 10:25과 비교해보면 아이러니하게도 예수보다는 예수 주변에 있는 어떤 사람이 막10:21과 10:25의 예수의 말을 더 잘 구현한 것으로 보이죠. 그래서 이에 대해 학자들은 다양한 변증을 펼치기도 합니다. 하지만 더욱 놀랍게도 현대의 성서학자들뿐만 아니라 복음서 저자들도 당혹스러웠던지 마가복음보다 후대인 마태복음은 어떤 사람들을 제자들로 그리고 요한복음은 아예 가룟 유다로 바꾸어 놓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마가복음 10:17~31을 꼼꼼하게 읽으면 막10:21과 10:25에서의 예수의 말은 표면적으로는 가난한 자들에게 자신의 소유를 주지 못한 그래서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모든 것을 버린 예수의 제자들도 막10:31에 가서는 일종의 경고를 듣는 것으로 제시되고 있기 때문에 가난한 자들에게 자신의 소유를 주지 못한 어떤 신실한 유대인의 주저함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막았다는 식으로만 이해해 버리면 곤란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부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데 있어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부를 버린 예수의 제자들 또한 막10:22의 신실한 유대인의 주저함 못지않게 막10:31 그 다음에 나오는 이야기에서 권력을 두고 다투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느냐 들어가지 못하느냐가 단순히 부와 관련된 문제만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더구나 제자들의 권력 투쟁과 관련해 마가는 그 자신의 예수의 수난 이야기에서 예수를 막10:31의 말처럼 제자들과 달리 유대인들의 지상적인 이해들 중 하나에 속하는 전통적으로 메시야로 이해되는 찬란하고 힘 있는 유대인의 왕이 아니라 볼품없이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자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막10:31은 지상적인 것들에 대한 연연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막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마가의 이야기는 지상적인 것들에 대한 연연이 흔히들 생각하는 것처럼 세상적인 부나 명예 혹은 권력과 같은 일반적인 것들에 관한 것이 아니라 -물론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대체로는 이러한 것들과 관련된 유대적 가치관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본 본문인 부와 관련한 이야기(막10:24~27)는 이것들 중 하나에 속합니다. 사실 막10:24, 26은 제자들의 놀람을 통해 부와 하나님 나라에 관한 유대인의 일상적인 가치관을 뒤흔들어버리는 예수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이로써 이제 막10:17~31에 깔려 있는 마가의 이야기 전략이 다소 드러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오늘 우리가 읽은 마가의 이야기는 지상적인 것들에 대한 연연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 즉 영생을 막고 있으며 따라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다시 말해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지상적인 것들에 연연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앞서 나는 이 지상적인 것들에 대한 연연이 어느 사회에서나 통용되는 일반적인 것들이 아닌 유대적인 가치관들에 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막10:17~31에 나오는 이야기는 대체로 유대사회를 넘어 이방사회에 전해져야 하는 복음 혹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다시 말해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유대사회의 지배적인 가치관, 특히 부와 가족에 관한 유대적 가치관을 비판적으로 돌파할 필요가 있음을 역설하는 마가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읽은 본문에는 두 문화 사이에 있는 사람들 간에 나타나는 사회문화적 갈등 혹은 충돌이 잠재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점을 해결하기 위해 마가가 예수의 권위에 의존해 자신의 이야기를 신뢰할 만한 것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 해결점이 새로운 개념의 가족 구성을 해야 하고, 지금까지의 중심적인 가족사회를 이끌었던 가치관과 사회운영 의식을 바꿔야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과거에는 재산을 혈연에게만 상속을 했습니다. 그러나 1인 가구사회, 미혼모나 미혼부 사회가 확산이 되면 더 이상 혈연 중심의 상속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부모나 자식을 돌보고 양육하는 일도 이제는 혈연에 의존할 수 없습니다. 이미 새로운 가족으로 세상은 재구성되고 있습니다만, 이것을 불편하게 하는 과거의 가치체계가 변화하는 내일(영생)과 충돌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가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유대인으로 하여금 영생을 묻는’질문을 던지게 하고, 영생의 조건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아니라 이웃과의 관계’라고 규정하며, 기존의 가족관을 버리지 못한 베드로와의 문답을 통해 ‘형제와 부모를 죽이는데 내어주라’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가난한 자라 할지라도 무조건 영생에 적합지 않으며, 부자라 해서 무조건 영생의 거부조건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통용적인 가치관을 버리고 새로운 세계질서의식으로 나서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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