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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1:78-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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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 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1장 78절-2장 5절.
78절-80절: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을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취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하니라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들에 있으니라.
사람이 강해지려면 어디에서 살아요? 광야에서 산다. 집 나가서 저기 들판에 가서 천막치고 살라는 그 말은 아닙니다. 교훈의 사상이 정신이 자기가 받는 교회의 교훈이 오직 순전히 위로부터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 그게 뭐냐?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말씀의 이치를 말을 하는 겁니다. 그걸 연령적으로 말하자면 어릴 때부터 이게 듣지 아니하고 배우지 아니하면 사람이 자라면서 강하지를 못하다 그 말이요. 예수를 믿어도 세상에 속한 거, 이런 거 저런 거. ‘예수 믿어 뭐 어찌된다. 어찌 된다’ 그걸 받아놓으면 사람이 약하다 그 말이요. 강하지 못하다 그 말이요.
세상바람 따라다니고 사람 따라다니고 인정정실 따라다니고 그렇게 해서 어떻게 머리가 되겠느냐 그 말이요. 꼬리밖에 안 된다. 꼬리는 항상 따라다니는 것. 머리가 돼야지. 세상사람마다 자기를 알아주기를 바라지만 머리로 알아주기를 바라지만 그게 아니다 그 말이요.
소원목적성이 전부 다 불에 타질 것으로 된 그게 저속이고 저질이고, 그런 사상과 소원목적으로 예수 믿는 거는 저질이고 저속이에요. 그게 머리가 되지 못하는 신앙이라. 사람이 강하지 못하고 세상 유행바람 정치바람 물가바람 어떤 바람이 불면 그냥 팍팍 쓰러지는 사람으로 돼버린다 그 말이요.
교회 안에서 말씀 듣는 것을 우습게 생각지 말아라. 교회의 교훈은 그런 게 아니다. 잘못 생각했으면 고쳐야 된다. 잘못 믿었으면 다시 믿어야 된다. 가는 길이 잘못됐으면 되돌아서라도 옳은 길 가야 된다. 가다가 멈춰서 있거나 ‘이제까지 걸어왔는데 믿어왔는데 에라, 모르겠다. 더 가자’ 하면 너 망하는 꼴밖에 없다. 죽고 망하는 꼴밖에 없다. 해가 비취는 그 장면은 네가 못 볼 거다. 나는 열심히 믿는다고 충성봉사하고 천국에 가서 상급 받는다고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그거마저도 안 한 사람은 지금 말할 필요가 없는 거고, 한다고 했는데 하나님의 성품이 안 되고 일반적으로도 성격도 성질도 안 고쳐지고 세상욕심은 그대로 들어있다면 물질축복만 축복으로 알고 있다면 교회감투 쓰는 것을 믿음 좋다고 알고 있다면 교인 많아지는 이유를 모르고 축복으로만 알고 있다면 이는 어두운 그늘에 앉은 자가 아닌가? 어두운 그늘에 앉았단 말이요. 생각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많이 가면 ‘뭐가 있기에 사람이 몰려가지?’ 전철 타려면 차가 저기서 옵니다. 사람이 자기 생각에 계산을 해서 어떤 사람은 막 뛰어갑니까? 누가 오라고 그랬는데? 뛰어가니까 그 차타는 사람은 또 다 뛰어갑니까? 사람은 일반적으로도 보고 생각을 하지 않는가? ‘아이고, 저 교회는 왜 사람이 저렇게 많이 가지? 왜 저 교회는 안 가지?’ 이유가 있을 거 아니요?
예수 믿는 소원목적을 모르면 자기의 생각 사고방식이 어두운데 앉았단 말이요. 소원목적성으로 그렇게 앉아있고 그 전부는 어두움과 그늘이야. 예수 믿으면서 세상에 속한 어떤 무엇을 기대심을 갖고 있다면 그건 어두움의 신앙이야. 그건.
날파리들이 태어나서 하루 만에 늙고 죽어요? 그게 하루살이지요? 이 하루살이들은 자기들끼리 어디서 만난다고 생각이 돼요? 어두운 데서 만납니까 햇빛 쨍쨍한 데서 만납니까? 하루살이들이? 어두운 데서 만나. 어두운 데서.
그 옛날에 기장교회 다닐 때에 젊은이들이 많았어요. 나 따라다니던 젊은이들이 많았어. 그만큼 내가 교회활동 행사 연극 뭐 하여튼 안 하는 게 없었어. 그러니까 청년들이 많이 따라다니지. ‘모여서 뭐 하자’ 그러면 잘 모이고, ‘어디 가자’ 그러면 또 잘 따라다니고 그랬어요. 그 이제 내가 나오고 난 뒤에 이것들이 가만 보니까 시집장가 갈 나이쯤 되니까 요것들이 제 눈에 좋은 데로 다 잡고 가버렸어.
그러니까 이 사람을 보는 눈이 우리 같으면 진리로 속사람을 보는 건데 그것들은 그냥 교회 나오면 ‘야, 쟤 잡고 시집이나 가라. 장가나 가라’ 이런 식으로 됐어. 훗날에 가만 보니까 이것들이 가관이 아니야. 늘 싸우고 들락날락하고 ‘사네 못 사네.’
아니, 생각을 해봐요. 이 사람 속이 참 한 발도 안 되는 사람속인데 그 사람 속을 어떻게 알아서. 사람 속을 알기란 참 힘들어요. 얼마나 어려운지? 뭘 안다고 젊은이들이 자기들끼리 좋다고 하나의 기분적으로 가버렸어. 그러니 조금 뭐 어떻게 되면 그 상황을 못 이겨서 그냥 ‘네 탓이다’ 그러고.
지금 가만 생각하면 첫째는 물론 인도자야. 예, 인도자의 신앙이 우리 입장에서 보면 구별 분별 안 되는 그 교훈을 하고 있었어. 지금도 생각하면 그래. 맨 ‘예수 믿는 사람은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된다. 세상에서 착하게 살아야 된다. 사랑하며 살아야 된다’ 맨 이런 거. 지식을 바꾸어주는 것은 없었어. 그러니까 행동 활동 충성봉사로만 일관했지요. 사람을 보는 눈, 사람을 키우는 눈이 없었어. 일을 자꾸 만들어가지고 일감을 맡겨서 일만 하는 시키는 일꾼들만 길러냈어. 그러니 이게 머리가 어떻게 되냐? 지금 그 청년들은 이 말씀 못 받고 안 받고. 교훈이 그렇게 사람의 일생을 영원히 이게 망쳐놓는구나. 아주 절실하게 느꼈지요. 그래서 옛날처럼 옛날 같은 것은, 옛날 나를 철두철미하게 나는 저주를 했어요. 안 그러면 우리교회 옛날처럼 하면 이게 뭐 젊은이들이 꽉꽉 찰 거야. 일주일이 멀다 하고 행사를 하니까. 교회는 그런 게 아닌데.
죽음과 어두움의 그늘에서 나오면 하나님과의 평강의 삶의 길이 기다리고 있다. 무턱대고 나오면 그럼 하나님과의 평강의 길이 있는 거냐? 꼭 그렇지만은 않아. 문제는 ‘내가 지금 죽음과 어두움의 그늘에 있는 것이 확실하구나’ 그걸 안다면 이미 밝음이 비춰진 거지. 그렇다면 평강의 길이 뭔지, 평강의 삶이 뭔지 그걸 찾게 되고 만나게 되고.
하나님 앞에서 쓰임을 받을 자는 오직 광야의 정신 사상으로 양육되더라. 성경에서 말하고 있지요? 그런데 대학교 시험에서 떨어지면 면목이 없어서 신학대학 들어가고, 무슨 사업이든 하다 하다 안 되면 주의 종이 된다 하고, 몸에 병이 들어 고치다 고치다 못 고치면 하나님 앞에 몸 바친다 하고. 아니, 성한 몸도 안 받을 참인데 병든 몸을 누가 받아요? 하나님이 받아요? 병든 정신을 하나님이 받아요? 월급은 적고 힘은 들고 뭐 해먹을 것이 없으니까 목사 된다 하며 신학교 들어가고, 그런 식으로 목사 되는 자 참 많다. 얼마든지 있다. 그런 정신으로 목사 된다면 누군들 목사 못하겠느냐 그 말이요. 누군들? 목사가 그런 거냐 그 말이요. 그런 식으로 되는 거냔 말이요? 그것이 그런 정신이 하나님 앞에 바로 된 것인가? 또 교인들을 그런 정신으로 기르고 교인들은 그런 식으로 길림을 받아야 하나님 앞에 이게 옳은 신앙이겠느냐 그 말이요.
무엇을 하는 교회냐? 일반 세상사람 끌어다가 친목 하는 것이 교회인가? 세상지식 가르치는 것이 교회인가? 예배순서 절차 지켜나가는 것이 교회인가? 세상사회 윤리도덕성을 가르치는 것이 교회인가? 애굽을 탈출한 광야교회 이스라엘을 봐라. 말씀의 다스림을 받았느냐? 애굽사상으로 다스림을 받았느냐? 애굽을 탈출한 광야교회가 그 말이요.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한 애굽의 정신 사상을 가진 자들 하나님의 진노를 광야에서 받고 죽었어요 살았어요?
약속의 땅으로 들어간 자들은 어떤 자들이었어요? 처음부터 신앙본질로 된 불변자 몇 명이요? 2명. 참 처음부터 애굽 출발에서부터 그 신앙의 본질로 가나안에 들어가기까지 변질이 없어. 변질이. 광야에서 훈련받는 중에 다시 태어난 자, 새사람의 영능의 실력자, 예수 믿기 전에 그 성격 성질 소원목적이 교회 와서 다 없애버리고 다시 바꿔 넣는 것. 그 광야에서 다시 태어난 자. 그런데 그대로 내버려두고 그것을 그대로 가지고 왁자왁자 하면서 그냥 많이 모이게 하고 그러니 이게 믿는 사람이 세상이요 세상이 교회 안에 들어와서 아주 북새통이 돼버렸다. 이게.
아이는 자랍니다. 인도자도 자랍니다. 성도도 자랍니다. 어디에서 자라게 되느냐? 80절에서 뭐라 그러지요? 광야에서 자라는 거다. 아이도 자라고 인도자도 광야에서 자라는 거고 성도도 예수 믿는 성도도 광야에서 자라는 거다. 왜 여기 ‘아이’ 라고 한 거냐 그 말이요? 실력이 어느 정도 이르기까지 아이가 아니거나 생명이 아니거나 진리가 아니거나 성도가 아니거나 광야가 아니거나 한다면 심령이 강하게 자라지 못할 것이 분명합니까?
2장 1절-2절: 이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 되었을 때에 첫 번 한 것이라.
이때에? 어느 때에? 어느 이 때? ‘이 때’란 말은 앞에서 말한 마리아의 복중에서 예수님이 자라고 있지요? 만삭이 되어오고 있다 그 말이요. 또 엘리사벳으로부터 세례요한이 출생해서 아이로서 광야에서 자라고 있을 때지요. 이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천하인간을 다 호적을 하라고 법령을 내린 자라면 지상최고의 권력자 최고의 권세자 최고의 부귀와 최고의 명예영광자입니다. 최고라고 하는 최고는 다 가졌어. 지상에서. 누가 그 법을 거스를 수가 있을까?
그가 하나님일까요? 가이사 아구스도가 하나님이냐 그 말이요? 그도 인간이지 하나님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명령을 거역하면 목이 달아나겠지요? 그렇지 않겠느냐 그 말이요. 지상 최고의 권세자의 명령을 거스르면 목 달아나지. 그러나 아무리 높아도 하늘 아래의 사람이지. 역시 그 명령도 임시성이지 영원히 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 명령이.
이때에 요셉과 마리아 세례요한과 외에 의로운 성도들의 태도가 나오게 돼있더라. 그런 와중에 요셉과 마리아 세례요한과 또 외에, 그러니까 엘리사벳 사가랴 등등 의로운 성도들의 태도가 나오게 돼있다. 그런 명령이 떨어졌을 때에 그런 상황이 사건이 일어났을 때에 의로운 성도들의 태도가 여기서 이제 나온다 그 말이요.
일반 역사적으로 보는 문제는 왜 호적을 하라는 것일까? 그것은 제일 큰 목표는 백성의 수를 조사해서 세금을 거두려고 하는 거지요. 일반역사로는 그렇다 그 말이요. 세금을 거두어 세상이라는 가이사 나라의 건설과 행복과 안녕을 위해서, 그리고 개개인마다의 소원목적으로 인생을 살기 때문에 그 명령을 따라 살기 마련입니다. 개개인적으로 행복과 안녕을 위해서 살기 때문에 가이사의 명령 역시 행복과 안녕을 위해서 세금을 거둔다. 이랬을 때에 그게 호응이 돼있고 맞춰 들어가게 돼있다 그 말이요.
신앙 영적으로 말을 하자면 세상이라는 사상이 말하기를 ‘네가 안 죽고 잘 살고 싶으면 내 말에 순종을 해라’ 하니까 온 천하 사상이 정신이 마음이 다 그 말에 순종을 하더라 그 말이요. 이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세상에서 행복하게 해 준다’ 그러면, 국회의원 선거할 때에 ‘내가 당신들을 행복하게 해 주겠소’ 그러면 그 사람에게 표를 찍어줘요 안 찍어줘요? ‘내가 당신들을 잡아먹겠소’ 그러면 찍어줄까요 안 찍어줄까요? 누구에게 찍어주겠느냐 그 말이요. ‘너를 내가 행복하게 해주마.’ 쉽게 말해서 ‘잘 살도록 해주마. 학교는 공짜고 병원도 공짜고 시집장가 가는 것도 공짜고 아이 낳는 것도 몇 살까지 어느 학교까지 공짜고’ 그렇게 해준다면 그러면 찍어줘요 안 찍어줘요? 그 사람이 꼭 그렇게 해줄 것 같지요? 자기 일생을 책임지고 그 사람이 그렇게 해줄 것 같지요? 말하자면 세상사람들은 그런 말에 다 넘어간다 그 말이요. 쉽게 말해서 그게 다 가이사 아구스도의 명령이라. 그런 사상이란 말이요.
그런 사람들이 다 하나님이냐? 하나님이요? 세상상황이 정치적으로 이렇게 저렇게 변해지니까 그게 제대로 돼요? 그렇게 떠들던 사람들이 몇 프로나 지켰는지? 이루었는지? 난 거기에 대한 생각은 아무 것도 없어요. 누가 몇 프로나 지켰는지 얼마나 지켰는지 했는지 안 했는지 난 아예 생각 밖이에요. 사람의 말을 믿는 것은 참 어리석다. 사람은 누구든지 다 자기가 태어난 출처가 있듯이 사람마다 다 소원목적을 품는 자가 있듯이 신앙사상 면에서도 다 자기의 소원목적을 가지는 그 신앙사상의 출처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자기가 신앙정신을 가졌는데 어떤 식으로 가졌던 그게 출처가 있단 말이요. 그 생각 그 마음이 어디서 나왔는지 그 출처가 있는 겁니다.
그리고 누구의 소리에 어떻게 움직였는지? 누구 목사 소리 듣고 그 마음을 신앙이라고 가졌는지 부모의 소리를 듣고 신앙이라고 가졌는지 교회 전체가 돌아가는 것을 보고 그런 신앙정신을 가졌는지 그 출처가 있다 그 말이요. 성경을 보면서 깨달으라 그 말이요. 그 출처가 없어질 출처인지? 그 출처를 가지고 있으면 사람이 난 고향이 있잖아요? 장소가 있으면 ‘호적 하라’ 그러면 그곳으로 달려가듯이 그 말이요. 세상 어떤 사건의 바람이 불면 자기의 신앙이라고 하는 그 정신 사상이 나온 곳으로 가기 일쑤라 그 말이요.
이 호적은 누가 총독 할 때에 나왔습니까? 누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 되었을 때 첫 번한 것이라 그랬어요. 호적 하라. 세금을 거두려면 사람의 머릿수부터 세어야 되겠지요? 가이사 보기에 일을 잘했던 모양이요. 누가? 구레뇨가. 그리고 ‘첫 번 한 것이라’ 한 것을 보면 어떤 예감이 들어요? ‘이것이 처음이다’ 할 때 어떤 예감이 들어요? 어떤 예감이 드느냐고요? 아무 예감도 없어요? ‘첫 번, 일’ 하면 어디로 건너갈 가능성이 많아요? ‘일’ 하면 이, ‘이’ 하면 삼. ‘첫 번 한 것이라’ 그러니까 또 할 가능성이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염두에 둬야지.
사실 세상이라는 세상은 호적을 안 하면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호적을 함으로써 세금을 걷고 일을 추진할 수가 있습니다. 세상은 그래요. 그리고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한다는 것이지요? 또 한 가지는 호적을 안 하면 어디 출신인지 모릅니다. 한다고 하더라도 말과 생활습관 풍습을 보고 어림잡고 말할 뿐이지 확실히는 잘 모릅니다. 모두 섞여서 살지만 호적을 함으로써 고향을 알게 되고 출처를 알게 되더라.
이제 영의 눈으로 신앙사상 면으로 보면 자기 소속과 입장을 밝히는 사건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사건이 오면 ‘네 신앙출처는 어디로구나’ 이게 간단 말이요. 마음이 골로 가기 때문에. 좁은 길 생명 길을 가는 자는 이 성경 역사계시 속의 뜻을 아는 자는 현실에서 자기 신앙사상을 점검하고 가게 됩니다. 모르는 자는 진리인격화가 안 되기 때문에, 말하자면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에 역사계시 속의 뜻이 안 믿어지는 겁니다. ‘성경 속에 지금 나한테 뭐라고 말을 하나’ 그게 안 들린단 말이요.
세상이라는 가이사의 칙령 즉 명령이 내렸을 때에 우리는 어느 사상으로 아이들을 기르느냐? 지금 이것을 알아야 한다. 명령이 난 지 오래됐어요? 이 세상 돌아가는 역사 속에 그 사람들의 정신 사상들이 세상명령이 부모들을 향해서 ‘어린아이들을 어떻게 키우라’ 하는 이게 들리지 않느냐 그 말이요. 그래서 ‘교육을 어떻게 시켜야 된다. 대학은 뭐 어쩌고’ 얼마나 떠들고 있느냐? 그러니까 그 와중에 ‘아이고, 우리 애는 이렇게 시켜야 되겠다. 이렇게 시켜야 되겠다. 어떻게 해야 되겠다’ 지금 그 소리 안 들려요?
아이를 제 멋대로 그냥 기르는 부모가 있고 아이를 그냥 부모의 손 안에 넣어가지고 부모 제 맘대로 기르려는 그런 부모가 있고 여러 가지가 있어. 세상소리 듣고 움직이더라. 하나님의 말씀에서 ‘우리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되겠구나.’ 세상은 이 바람 저 바람 바람이 부는데 그 바람에 맞춰서 기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맞춰서 기르더라. 그 부모를 보라고요. 성경이 왜 있느냐? 성경이 안 믿어지지요?
세상바람 맞춰서 기르니까 그래, 얼마나 잘 먹고 잘 살고 떵떵거리고 살고 그렇습니까? 고작 해봐야 대통령밖에 더 돼요? 대통령 밤잠 주무시는지 알아요? 나 같으면 안 해요. 하라 그래도 안 해요. 밤에 잠을 잘 수가 있어야지. 혼자 나다닐 수가 있나? 우리처럼 나다니다가는 언제 어디서 뭐가 날아와서 죽을지 모르지.
참 그 요즘 배우가 ‘뭐 어떻게 하고 몸을 건드렸네 안 건드렸네, 술집으로 데리고 갔네 안 데리고 갔네.’ 그 우리 여자청년들, 거울보고 ‘내가 예쁘다’고 그렇게 생각이 되면 조심해라. 죽는다. 예쁘다고 무슨 뭐요? 탤런트 또 뭐요? OO에 영화 찍는 공부하는 데가 뭐요? 예술학교? 노래 부르는 거 연극하는 거 뭐 그 몸이 성하고 깨끗한 것 같아요? 천하 지저분하고 똥 걸레요. 그 인격이 똥 걸레야. 영화배우들이 하나님 앞에 깨끗하고 그래요? 결혼했으면 그만 둬야지 결혼하고서도 뭐 영화하느라고 키스신이니 러브신이니 하면 남의 남자 잡고 진짜같이 하려면 그래, 본 남편이나 본 여자나 가만 보고 있겠어? 안 헤어지겠어? 그게 세상이요. 부모도 그렇지. 정신머리 썩어빠졌지. 그래, 예쁘면 돈이 많이 들어올 것 같아요? 사람은 안 죽고? 개 같은 욕설이나 안 듣고?
우리교회서는 소설가 나오면 안 돼요. 아주 순 거짓말쟁이요. 소설 쓰려고 막 제 멋대로 돌아다니면서 경험을 해야 돼요. 무슨 할 짓이 없어서 그런 짓을 해. 소설 영화배우, 영화배우하고 탤런트는 뭐요? 가수?
하나님의 종이라면 매인 데가 없어야 돼. 근데 여자목사님들 보면 어떻게 매여가지고 공부시간에 남편 들어왔으면 남편한테 가야 돼. 공부시간에는 안 나와도. 그게 무슨 놈의 목사요? 그게? 목사라면 남편이고 자식이고 하나님의 종으로서 인정을 하고 들어가야 할 텐데 이게 그냥 식구라고. 그러니까 엄마가 목사라도 막 대드는 거야. 그냥 자식이. 그 꼬락서니가 뭐야? 그게 하나님의 종이야? 자식들은 시집장가 가는데 또 이상한데 다 보내고. 그게 목사요? 또 그게? 아주 개판이야. 개판이야. 이게 일반이지 무슨 목사요? 일반이지. 말하자면 교회 안에 아주 그런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었어요. 그런 걸 보고 마음이 아파라 그러고, 얼마나 가슴을 치고 통곡해야 할 일들인데 그냥 마땅한 것처럼 우습게 여기는 거요. 우습게. 이런 꼴이 어디 있느냐? 하나님을 어떻게 본 신앙이기에 그 모양이냐?
오늘날 어떤 명령이 흘러가고 있느냐? 세상사람들의 말이 온통 무엇으로 자기에게 들려옵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려와요? 그래서 세상이 말하는 그들의 계획대로 자녀를 키우는 거요? 그 남자들 저기 뭐야? 우리 차집사도 키가 작고 저기 누구 아들이야? 장목사님 아들도 키가 작고 또 키 작은 아들이 많아요. 약한 아들도 있고. 나도 키가 작고 약한 측에 들어가요. 경쟁의식을 가져. 키가 작으면 뭐로 강해야 되겠어요? 키 작은 친구들, 내가 ‘친구들이라’ 그래야지. 키가 작으면 뭐로 강해야 돼? 키 큰 사람은 말 안 해도 돼. 허허허. 정신력으로 강해야 돼. 천하를 호령할 수 있는 거는 이 정신력이 문제야. 이게. 하나님의 말씀에서 배우고 용기를 얻고 ‘음매 기죽어’ 그렇게 살지 마. 하나님의 말씀에서 용기를 얻고 마음을 굳히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하나님이 들어 쓰시는 사람이라면 참 강한 사람이요. 약골로 살지 말아.
3절-5절: 모든 사람이 호적 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인 고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그 정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 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 되었더라.
세상명령이 떨어지니, ‘호적을 하라. 세상 쪽으로 호적을 하라. 세상 쪽으로 소원목적을 가지라. 세상 쪽으로 네 희망 소원을 다 가져라. 행복을 가져라.’ 이게 다 명령이에요. 다 그 명령을 따라서 각기 자기 고향으로 올라가지?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이 자기 자신들이 태어난 곳을 향하여 도시 산골 벽촌 섬 등등 모두 고향 찾아갑니다. 누구의 명령에? 가이사의 명령에. 조금 있으면 무슨 세상명절이 오는 거요? 추석 맞아요? 추석이라고 하는 세상명령이 싹 떨어지면 세상사람들은 자기 고향 찾아갑니까? 자기 고향 찾아가면서 어머니 아버지가 술 담배 잘 먹으면 그거 또 사들고 가지요? 사들고 가고. 또 이게 고향 가면서 걸어갈 수도 없고 차는 타고 가야 되겠는데 차는 복잡하고 그러니까 ‘허’씨 자가용 빌려 타고 가야지. 허허허. 그럼 고향 가면 ‘와.’ 이제 뭐. 허허.
목사님들도 그래요. 교인들도 그렇고. 명절 때 되면 명절의 바람이 쓱 한 번 이렇게 오면 각자 자기 고향 아니면 아내 고향 뭐 안 가요? 그런 바람을 타는 사람으로 살지를 마라. 꼭 명절만이 아니고 아무 때고, 추석 때 무슨 떡 해 먹어요? 송편? 송편 속에 뭐 넣는 거요? 나는 맛도 없더구만. 그래, 꼭 어떻게 송편만 해 먹냐? 맛있는 떡으로 마음대로 해 먹으면 되는 거지. 명절이라고 해서 해 먹지 말고 먹고 싶을 때 항상 해 먹어. ‘추석 때 송편 해 먹자.’ 그 때 먹으려고 기다리다가 못 먹고 죽으면 어떻게 해. 아무 때고 먹고 싶을 때 먹고 그래야지.
가이사의 명령에 고향 찾아 가더라. 요셉은 어디로 가느냐? 요셉은 어디로 가요? 요셉은 누구 집 자손? 다윗의 집 족속인고로 그렇단 말이요. 다윗의 집 족속인고로 그 계대 그 계열. 신앙사상으로 보면 그렇단 말이요. 못 속인다 그 말이요. 못 속인다. 다윗의 집 족속인고로 베들레헴이라고 하는 다윗의 동리로 찾아들어가더라. 아, 물론 베들레헴에서 태어났고 그 동네에 살았기 때문에 그렇게만 보는 것이 아니고 신앙의 사상을 말을 하려고 하니까 동네이름을 말을 하는 거예요.
이름들의 의미를 잠깐 생각해보면 여기 ‘갈릴리 나사렛 동리에서’ 그랬거든? ‘갈릴리’ 하면 요게 원이라. 동그라미. ‘원’ 하면 그 안에 그 말이요. 그 안에. 어디 안에? 원 안에. 어디 안에? 영원 전 그리스도의 구원을 얻는 그 안에. 이스라엘 안에 큰 원이 쳐진단 말이요. 그리고 나사렛 동리 이름은 거룩하다라고 하는 뜻. 거룩하다. 그리고 유대는 찬양하다. 베들레헴은 떡집, 다윗은 사랑, 요셉은 그가 더할 것이다. 충분하게 우리에게 신앙계시를 가르쳐주는 의미로서 들어가 있구나.
어느 때고 사건적으로 상황적으로 호적 하라는 가이사의 소리가 들리거들랑 세상소리가 들리거들랑, ‘세를 얻어서 하는 교회는 다 철거한다더라.’ 그 가이사의 소리거든? 가이사의 소리가 이렇게도 들리고 저렇게도 들리는 거 알아야 돼요. 상황적으로 호적 하라는 가이사의 소리가 들리거들랑 다윗의 집 자손이면 요셉의 정신을 따라서 밟아가라. 요셉의 신앙정신이 안 보이면 못 가는 거다. 그걸 알아야 돼요.
우리는 다윗의 이름만 들어도 생각나는 사건들이 많지요? 그렇지요? 어릴 때 골리앗을 때려 눕혔고, 사울 왕에게 안 죽으려고 쫓겨 다녔고, 또 사울 왕에게 죄를, 다윗 자기가 죽으면 사울 왕이 죄를 짓거든요. 그러니까 사울 왕에게 죄 안 짓게 하려고 쫓겨 다녔단 말이요. 예수님이 자기의 고향에서 도를 전했는데 이걸 안 받고 벼랑에다가 밀쳐 떨어뜨려 죽이려고 했거든. 그 예수님이 피했어. 만약의 경우에 예수님이 그들이 밀어서 벼랑에서 떨어져 죽었다면 이게 어떻게 되겠어? 어떻게 되겠냐? 동리사람들이 형벌을 받는다. 다시 말하면 죄를 짓는 셈이다. 그러니까 그들을 죄 안 짓게 하려니까 피해버린단 말이요.
왕이 된 후에 우리야의 사건, 아들들의 사건과 반란 등등 사건도 많았지만 믿음을 잃지 않았고 회개도 빨리하고 하나님 사랑 하나님 제일주의로 신앙을 가진 다윗이 우리는 존경이 갑니다. 그리고 다윗에게서 신정통치 그림자가 보이는 것이지요.
요셉은 다윗의 집 족속입니다. 요셉에게 다윗의 신앙정신 사상 다윗의 혼이 들어 있을까요? 정신이 들어 있겠느냐? 있단 말이요. 역사적으로 보면 예를 들면 아합의 집 족속이면 어디로 갈까요? 북조로 갈 것이고, 요셉은 다윗의 집 족속이니 유대를 향해서 베들레헴이라는 동리로 올라가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한 사건에서 신앙의 본질을 생각하는 겁니다. 무슨 말이냐? 어떤 상황이나 사건이 오면 너의 근본을 밝혀라. 너의 출처를 밝혀라. 너의 소속과 입장을 밝혀라. 그런 의미가 들어 있단 말이요. 이게 참 어떤 상황 존재이든 사건이든 일어나면 너에게 신앙의 어떤 그 무엇을 들춰내려고 한다. 진리를 가졌냐? 진리의 사고방식대로 신앙이 나오겠지만 비진리가 들어있으면 그 상황 속에서 비진리를 드러낸다. 말하자면 ‘네 신앙의 출처가 그 모양이냐?’ 이제 그게 나온단 말이요. ‘네가 집사인데 네 신앙이 그 모양이냐? 예수님을 수 년 믿었는데 네 신앙이 그 모양이냐?’ 하고 그게 발각이 돼버린다. 출처가 그냥 드러나 버려요. 자기 속에 뿌리 깊이 박혀있는 그 사상대로 가더라 그 말이요.
이 진리 받아도요 어떤 상황이 아닌 말로 여기 서 있는 목사가 자기를 ‘사단아, 물러가라’ 그러면 그 사람은 어디로 갈까요? 여기 있겠어요? 안 있어. 자기 속에 뿌리깊이 박혀있는 그 생각대로 찾아가기 마련이다. 그게 고향 찾아간다 그 말이요. 그게. 보통 보면 자기의 육신의 세상살이 이것을 따지면서 찾아가더라. 보통은 그래요. 육신의 세상살이를 위해서 찾아가더라.
자기 신앙의 출처 잘 정했어요? 어떤 상황 사건이 와도 변질이 안 되겠어요? 사건이 오면 떡집으로 가겠어요? 말씀의 떡집으로 가겠느냐고요? (계속)
(궁극교회 김경형목사님의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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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통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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