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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갈1:11-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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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허태수 목사 |
참고 : | 2018.7.19주일설교 성암감리교회 http://sungamch.net |
예수의 교회에서 바울의 교회로
갈1:11-17
지난주에 나눈 이야기들을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어요. 바나나 이야기를 시작으로 교회의 참 된 씨앗은 ‘세상과 다른 세상, 세상 사람들이 사는 삶과는 다른 삶, 세상의 인간과는 다른 인간’이 되려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교회라고 했습니다. 물론 예수그리스도가 그런 인간과 삶을 살아가는 표본이 되는 것은 물론이지요. 이것이 교회의 정체성이라면, 이런 교회의 기초를 놓은 사람인 바울을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이후 초대교회의 선교 사역은 바울이라는 걸출한 인물에 의해 그 틀을 잡아가게 됩니다. 여러분도 아시듯이 바울은 예수님을 직접 만난 적이 없습니다. 독실한 유대교인이었는데 다마스커스(다메섹)로 가는 길에 부활한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면서 그리스도의 종이 됩니다. 바울은 유대교 신앙에 대해서 회의하고 모순을 느끼고 고민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에게서 답을 찾은 겁니다. 그러므로 회심이란 바로 내면의 깊은 회의에 대한 답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라는 인문을 그 자신 안에 회의가 해답이라는 긴장과 모순, 대립과 화해라는 역설을 내포한 인물입니다.
바울을 알기 위해서는 그가 쓴 편지들을 읽는 수밖에 없습니다. 바울은 자기가 설립 하거나 자기와 관계된 교회들을 직접 방문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때문에 여행자나 대리자들을 통해 구두나 편지로 공동체에 대한 보고를 자주 받습니다. 또 자신의 생각을 편지로 써서 보냈어요. 이렇게 보낸 편지들은 모인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낭독이 되었습니다.
바울이 쓴 편지들은 대부분 복음서(마태, 마가, 누가, 요한)들보다 앞서 기록되었습니다. 대략 바울의 편지들은 서기 50~60년대에 기록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신약성서의 여러 문헌들 가운데서는 가장 오래된 문서들입니다. 그의 편지들은 바울이라는 열정적이고 목적이 분명한 그의 인격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그는 수사학을 공부한 이지만 결코 말로서가 아니라 실천과 행동으로 말함으로서 듣는 이들의 삶을 관통했습니다.
신약성서 27권 중에서 바울의 이름으로 되어 있는 편지는 모두 13권입니다. 히브리서가 바울의 글이라는 이도 있었으나 그러나 지금은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 13건 중에서도 바울이 직접 쓴 편지는 7개고, 나머지 6개의 편지들은 후대의 제자들이 바울의 이름을 빌려서 적은 것들입니다, 바울이 직접 쓴 서신들은 데살로니가 전서, 고린도 전서, 고린도 후서, 갈라디아서, 빌립보서, 빌레몬서, 로마서까지 모두 7권입니다. 제자들이 바울의 이름으로 쓴 편지는 디모데 전서, 디모데 후서, 디도서, 골로새서, 에베소서, 데살로니가 후서이니 이게 6권입니다. 후대의 제자들이 왜 바울의 이름으로 이런 편지를 썼는가 하면, 바울의 권위에 기대어 교회의 가르침을 정당화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저작권법에 저촉이 되지 않느냐고요? 그 때 그런 게 있을리 없다는 건 아시죠? 이렇게 바울이 세운 교회들은 바울의 편지들을 통해서 그들의 종교적인 정체성을 확립해 나갔습니다.
편지라는 건 역사를 기록하는 일이나 보고서를 쓰는 것과는 다릅니다. 편지는 특정한 기회에, 구체적인 동기에서, 특정한 대상(사람)에게 씁니다. 다시 말하면 편지는 그때그때의 곤경 혹은 문제 상황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걸 잘 기억하셔야 합니다. 문제 상황이 발생했을 때 편지를 쓴다는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 운동을 펼치던 때와는 전혀 다른 상황에 있다는 덧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예수와는 다른 상황에서(그가 놓인 처지에서)막 태어난 교회를 유지하고 돌봐야 한다는 책임 감 아래 편지로 자신의 생각을 펼치는 것입니다. 그것이 초대 교회의 기독교 신앙, 신학의 기초가 된 것입니다.
바울은 생전에 예수님을 만난 적이 없는 대신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렸다가 부활했을 때의 예수를 만납니다. 그게 그의 생각, 삶의 방향, 삶의 내용과 인생 전체를 통째로 바꾸는 계기가 됩니다. 바울은 루터처럼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괴로워하고 회의한 인물이 아닙니다. 확신에 넘치는 인물이었고, 독실한 바리새파 유대인이었으며, 율법과 성전에 도전하는 예수 추종자들을 극렬하게 박해하던 인문이었습니다. 그렇게 기세등등하게 예수 믿는 자들을 박해하러 가는 도중에 부활하신 예수를 경험합니다. 이때의 체험을 갈라디아서에 아주 간단하게 언급합니다. 사도행전에는 바울의 회심 이야기가 세 번 등장하지만 이는 덧씌워진 것입니다(행9,20,26).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사도행전의 바울 이야기를 듣지 않을 수 없습니다. 행전에 의하면, 바울은 예루살렘의 저명한 바리새파의 하나였던 가말리엘의 문하생이었습니다. 랍비 교육을 받았다는 것이고, 랍비로서 활동을 했다는 의미입니다. 당시 랍비들은 두 갈래의 랍비집단이 있었는데 하나는 보수적인 샴마이파와 진보적인 힐렐파입니다. 가말리엘은 샴마이파에 속하는 보수적인 집단이었으므로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에 대해서 유연한 이해가 없던 집단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추종하는 사람들을 잡아다 율법재판에 넘겨주는 일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 길이 바로 다마스쿠스, 다메섹입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는 장면이 아주 드라마틱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이는 사실적인 표현이 아니라 문학적인 창작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땅에 엎어질 때 26장의 설명을 보면 옆에 있던 이들도 모두 바울처럼 그렇게 되었다고 하지만, 9장에는 다른 사람들은 그냥 서 있다고 하는 반면, 22장에 가면 곁에 있던 사람들은 바울이 들었다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또 9장에는 들었다고 합니다. 듣지만 않았던 게 아니라 아무도 보지 못했다고 전합니다. 이는 회심 장면의 전달에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바울의 회심 이전과 이후를 극명하게 대조하기 위해서 장치된 기술법이라는 것이죠.
그러면 바울은 본인의 다메섹 체험을 뭐라고 할까요? 사도행전의 엇갈린 이야기들은 다른 사람이 기록한 것이니까요. 갈1:13-17과 고전15:3-9에 나옵니다. 먼저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은 자신에게 나타난 예수의 체험이 다른 사람에게도 동일하게 나타난 것이라고 말합니다. 갈라디아서에서는 자신이 그런 체험을 한 것은 이방인을 위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바울은 자신의 황홀한 체험을 과시하거나 거기에 근거해서 자신의 정체성과 존재성을 정당화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큰 의미가 확장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단지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전하는 자로서의 소명에 의미가 있는 것이지 다른 사람에게 선전 될 만한 게 아니라는 것이죠. 호들갑스럽게 의미지우는 게 아니라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사건, 하나님이 자신을 부른 사건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의 신학이고 신앙의 토대입니다.
바울의 신분 전환은 그에게 어떤 부가적인 유익을 주었나요? 이를테면 신분이 상승한다든지, 운수가 대통한다든지 하는 거 말입니다. 아니죠. 현실적으로는 그 반대죠. 그의 신분은 하락하고, 끝없는 박해와 고난을 죽을 때 까지 감당해야 했습니다. 바울의 자신의 고생담을 늘어놓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그가 이런 삶의 처지를 감내하면서 까지 간절히 하고자 했던 바는 무엇일까요? 바울의 초기 편지들을 보면 예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야기가 전부입니다. 산자나 죽은 자나 모두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된다는 것입니다(살전4;13-18, 고전15:51-52). 바울은 자기가 죽기 전에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해석과 믿음은 서서히 유보되기 시작합니다.
자, 이제 예루살렘의 신앙인들, 예수님의 제자들과 형제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던 신앙 공동체는 서기 70년에 로마가 망하면서 붕괴가 되고, 이방인 지역 여기저기에 모이던 바울의 공동체는 예루살렘 사람들은 생각지도 않는 신학과 신앙 하나를 구축하는데 그것은 바울의 의한 ‘임박한 종말과 부활’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당시 교회에 모이는 사람들의 신앙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로마가 다스리는 세상과는 다른 세계, 삶, 인간의 추구’라는 것이었는데, 한 세대가 지나면서 ‘다시 오실 그리스도에 대한 희망’ 즉 ‘종말의 신앙’으로 바뀌게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처음 교회에 모이는 이유가 인간 삶의 실제적인 것이었다면 바울에게서 ‘종말과 부활’이라는 교리적, 종교화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그의 기대가 이뤄졌건 아니건, 자신에게 속한 세계가 끝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마치 크리스토퍼 콜롬부스가 했던 생각과 같습니다. 바울은 죽은 자의 부활, 천사들의 나팔소리, 그리스도의 재림과 같은 신화적인 환상은 세계의 끝, 시대의 끝에 대한 바울의 종말론적 기대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는 바울에 의해서 비롯된 교회의 정체성 가운데 하나입니다. 본래 유대교의 묵시문학에서 유래된 그러한 신화적인 환상들은 ‘세계의 전환’또는 ‘문명의 전환’과 관련되어 있는 용어들입니다. 바울과 같은 물질세계의 소멸과 같은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오늘 저는 처음 로마사회에서로부터의 ‘탈 세계’와 ‘탈 인가’을 꿈꿨던 교회가, 예수의 교회가 바울에 의해서 ‘세상의 종말과 그리스도의 재림’이라는 비약적 신념체계가 들어서고 있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다분히 신화적으로 말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교회는 이 시점의 이해들을 고정시켜놓고 있기도 합니다. 교회는, 교회 다니는 이유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믿음의 교리체계는 이렇게 변해 갑니다.
다음 시간에 좀 더 바울의 종말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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