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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렘1:7-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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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익환 목사 |
참고 : | 텔아비브욥바교회 http://telavivchurch.org (이스라엘) |
텔아비브 욥바교회 2017년 11월 18일
설교 이익환 목사
예레미야 1 건설을 위한 파괴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8] 너는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고 [9]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10] 보라 내가 오늘 너를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 위에 세워 네가 그것들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렘 1:7-10)
포항에서 지진이 났다. 땅이 흔들리고 건물들의 일부가 무너져 내렸다. 안전의 기초가 흔들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험하기 보단 안주하길 원하고, 개혁을 위해 몸부림치기보다는 그냥 편안한 자신의 일상에 머물러있길 원한다. 재난과 위험은 다 비껴가고 내게 평안만 찾아오길 바란다. 오늘부터 예레미야서 강해를 시작한다. 예레미야는 흔히 눈물의 선지자라고 한다. 그러나 그는 눈물만 흘리지 않았다. 눈물을 흘리며 사람들의 안전지대를 과감하게 흔들었던 선지자였다. 예레미야 강해를 통해 우리는 지금 나의 안전의 기초를 어디에 두고 있는지 살펴보길 원한다. 그리고 정말 안전한 삶을 위해 내가 선택해야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길 원한다.
렘 1:4-5절,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5]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다. 그것은 그에게 부담스런 경험이었다. 그의 나이 불과 스무 살 때의 일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6절)”라고 반응한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여러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다는 말씀을 들었을 때 예레미야의 반응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이었다. 사명의 무게에 비해 자신의 연약함이 너무 크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가 외쳐야할 메세지는 평안이 아니라 재앙에 관한 것이었다.
예레미야는 슬프다고 탄식하는 장면은 몇차례 더 나온다. 렘 14:13절, “이에 내가 말하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시옵소서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칼을 보지 아니하겠고 기근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이 곳에서 너희에게 확실한 평강을 주리라 하나이다” 다른 모든 예언자들이 ‘확실한 평강’을 예언하는 시대에 홀로 재앙에 대해 외쳐야하는 것은 너무도 슬픈 사명이었다. 특히 그가 전해야 했던 메세지는 자신의 나라 유다 국가의 멸망과 예루살렘 성전의 파멸에 대한 것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다 국가와 성전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들 안전의 기초였다. 그들은 다윗왕조가 영원할 것이라 믿었다. 다윗 언약은 왕조의 영원함을 보증하는 언약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또한 예루살렘 성전이 영원할 것이라 믿었다. 성전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솔로몬은 예루살렘에 성전을 봉헌하면서 “주께서 영원히 계실 처소로소이다”(왕상 8:13)라고 외쳤다. BC 701년 히스기야 왕 당시 앗수르 제국의 산헤립이 쳐들어 왔을 때 예루살렘은 무너지지 않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이 성을 지키고 계심을 경험했다. 그러나 거기서부터 거짓 안전감이 시작됐다. 예루살렘은 영원할 것이라는 거짓 믿음이 싹텄다. 이 거짓 안전감에 사로잡혀 백성들은 세상 풍요의 신인 바알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하나님만이 아니라 두 주인을 섬기기 시작한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의지하고 있는 거짓 안전감을 제거하셔야 했다. 렘 25:9절, “보라 내가 북쪽 모든 종족과 내 종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을 불러다가 이 땅과 그 주민과 사방 모든 나라를 쳐서 진멸하여 그들을 놀램과 비웃음 거리가 되게 하며 땅으로 영원한 폐허가 되게 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뜻대로 유다 국가의 파멸을 외쳐야 했다. 예레미야는 당시 백성들이 의지하던 안전의 기초를 흔들어야 했다.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망한다는 메세지는 사람들이 듣기 싫은 소리였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두려워하는 예레미야를 말씀으로 격려하신다. 렘 1:7-8절,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8] 너는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고” 그리고 친히 손을 내밀어 그의 입에 대시며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9절)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그의 이후 활동하게 될 선지자에 대해 말씀하신 적이 있다. 신 18:18절,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서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말하리라” 하나님께서는 멸망을 향해 달려가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모세와 같은 선지자 예레미야를 일으킨 것이다. 모세가 40년 동안 포로에서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었다면, 예레미야는 40년 동안 이제 포로로 끌려갈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예언했다. 모세가 옛언약을 가르치며 하나님의 말씀은 대언했다면, 예레미야는 새언약을 선포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 것이다.
예레미야는 요시야 왕 재위 13년인 BC 626년부터 예루살렘이 멸망한 BC 586년까지 약 40년 동안 선지자로 활약한다. 10절에는 선지자로서 그의 사명이 소개된다. 렘 1:10절, “보라 내가 오늘 너를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 위에 세워 네가 그것들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 위에 감독자로 세워진 그의 사명은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는 것’이었다. 앞에 사용된 동사 네 개는 파멸에 관한 것이고, 뒤의 두 개는 건설에 관한 것이다. 무너져야 할 것이 무너져 내려야 건설할 수 있다. 잘못 심어진 삶의 모습이 무너져 내려야 비로소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심고 건설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참된 건설은 철저한 파괴 위에서 이루어진다. 잘못된 것이 무너지고, 거짓 안전감이 제거될 때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질 수 있는 것이다.
예루살렘이 무너지고 유다 백성들이 그 땅에서 뽑혀져 나간 것은 그들이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힘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그들이 하나님과 상관 없이 살았고, 하나님이 금지하신 죄를 향해 달려갔기 때문이다. 렘 1:16절, “무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들에 절하였은즉 내가 나의 심판을 그들에게 선고하여 그들의 모든 죄악을 징계하리라”
유다 백성들이 우상을 섬긴 것은 요시아의 할아버지인 므낫세 왕 때 절정을 이루었다. 므낫세는 기원전 716년에서 662년까지 55년간 통치했다. 그 당시 세상의 중심은 앗수르 제국이었다. 그리하여 므낫세는 예루살렘을 앗수르 제국의 우상과 문화들로 도배했다. 바알을 위한 제단과 하늘의 여왕 아세라의 목상을 성전 안에 세웠다.
열왕기하 21:8-9절은 말한다. “만일 이스라엘이 나의 모든 명령과 나의 종 모세가 명령한 모든 율법을 지켜 행하면 내가 그들의 발로 다시는 그의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떠나 유리하지 아니하게 하리라 하셨으나 이 백성이 듣지 아니하였고 므낫세의 꾐을 받고 악을 행한 것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멸하신 여러 민족보다 더 심하였더라” 이미 므낫세 왕 때 유다 백성들은 돌아 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다. 그들에게 남은 것은 파멸뿐이었다. 예레미야는 이 파멸의 메세지를 유다 백성들에게 전해야 했던 것이다.
결국 남유다 백성들은 그들의 죄악 때문에 그동안 안전의 기초가 되었던 것들이 무너져 내림을 경험한다. 국가가 무너졌고 성전이 무너졌다. 안전의 기초가 무너지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안전의 기초가 무너지지 않았다면 그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갔는지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나라와 개인의 안전의 기초를 흔드시는 것은 파멸을 위한 것이 아니다. 파괴를 통하여 다시 건설하고 회복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의 뜻과 상관 없이 스스로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생각은 사람들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치명적인 죄다. 하나님은 잘못된 기초를 지지하지 않으신다. 거짓 안정감에 의지하여 사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그것을 뽑고 파괴하고 파멸하고 넘어뜨려서라도 새로운 하나님의 질서를 건설하고 심기 원하신다.
로마에 갔을 때 로마제국 전역으로 뻗어 있던 아피아 가도를 걸었던 적이 있다. 로마는 자신들의 힘으로 길을 만들었고, 힘의 지배를 통한 평화의 시대, 팍스 로마나 시대를 열었다. 콘스탄틴 황제가 313년 기독교를 공인하면서 기독교는 로마제국의 종교가 되었다. 기독교를 공인한 것은 순전히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하나의 제국, 하나의 법, 하나의 시민, 하나의 종교라는 그의 통치이념에 부합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공인 이후 기독교는 안전한 종교가 되었다. 제국의 종교가 되었기 때문에 출세를 위해 기독교로 개종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순교를 각오한 신자들이 모이던 교회가 정치적 야심을 가진 이교도들이 몰려 들기 시작했다. 초대 교부인 제롬은 이렇게 말했다. “(예배당) 지붕은 금으로 치장하고 대리석을 끼워 장식하고 있다. 한때는 불꽃 속에 던져졌던 그리스도인들의 거룩한 책이 이제는 화려하게 제본되고 황금과 보석으로 꾸며지고 있다.” 교회의 타락과 함께 영원할 것 같았던 로마제국도 결국은 멸망했다.
힘이 있던 교회, 강력했던 하나의 제국이 멸망하는 이유가 뭘까? 그것은 겉으로 보기에 군사력이 쇠퇴하고, 더 강력한 나라가 일어났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 나라, 한 개인, 하나의 교회와 제국이 뽑히고 다시 심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작정에 달려 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나라를 하나님의 뜻대로 세우시기 위해 그것을 뽑거나 파괴하거나 파멸하거나 넘어뜨리신다. 사실 역사는 힘을 가진 제국의 의도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하나님의 말씀에 주목한 소수에 의해 움직여졌다. 앗수르제국 때는 이사야와 예레미야를 통해서, 바벨론과 페르시야 제국 때는 다니엘을 통해서 하나님은 세상에 말씀하셨고, 그 분의 작정을 역사 속에서 진행하셨다.
로마에 갔을 때 베드로와 바울이 갇혔던 마메르틴 감옥에 가본 적이 있다. 제국은 그들을 힘으로 가두었지만 로마제국에 하나님 나라의 길을 연 것은 바로 그들이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말씀에 귀기울이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들에게 당신의 마음을 나누신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마음을 받은 사람들은 더이상 거짓 안전감에 의지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길을 떠나는 자들이 된다. 목숨을 내거는 사람들이 된다. 아브라함이 그랬고, 모세가 그랬고 예레미야가 그랬다. 세상이 말하는 안전지대를 버리고 하나님나라의 길을 열기 위해 떠나는 자들이 된 것이다.
예레미야 역시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움직이는 자가 된다. 렘 1:17-19, “그러므로 너는 네 허리를 동이고 일어나 내가 네게 명령한 바를 다 그들에게 말하라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그들 앞에서 두려움을 당하지 않게 하리라 [18] 보라 내가 오늘 너를 그 온 땅과 유다 왕들과 그 지도자들과 그 제사장들과 그 땅 백성 앞에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성벽이 되게 하였은즉 [19] 그들이 너를 치나 너를 이기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할 것임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예레미야는 결코 눈물만 흘리는 나약한 선지자가 아니었다. 그는 유다 왕들과 열방의 백성들 앞에서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성벽과 같은 존재로 살았다. 아주 강하고 다수의 의견에 타협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가 자신을 미워하고 적대적인 환경가운데서도 끝까지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는 하나님 말씀 때문이었다.
여러분의 안전의 기초는 어디에 있는가? 여러분의 지위에 있는가? 여러분이 받는 월급봉투에 있는가? 높은 자리가 여러분의 안전을 지켜주지 않는다. 올라갈 수록 불안할 뿐이다. 경제력이 안전의 근거가 될 수 없다. 불면 날아가는 것이 돈이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떨 수만 있다면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자가 될 것이다.
여러분이 지금 의지하고 있는 거짓안전감을 뽑아내야 한다. 하나님과 더불어 섬기는 우상들을 파괴해야 한다. 자기 영광을 구하는 삶, 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받으려는 인정, 칭송이 우상이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안식일이면 성전에 나와 기도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일상은 당시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던 부와 성공, 쾌락을 향한 갈망으로 가득했다.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간섭을 받기 싫어하는 우리의 고집을 무너뜨려야 한다. 우리가 안전하다고 자부하며 쌓아가는 우리의 안전지대가 정말 안전한 것인지 돌아봐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세워진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우리가 쌓은 나만의 제국을 무너뜨려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뜻이 심어지고 하나님 나라가 건설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심고 건설할 자들을 찾으신다. 그 희망은 거대한 제국의 힘을 통해 오지 않는다. 거대한 제국 속에서도 오직 하나님이 역사의 주관자가 되신다는 사실을 믿는 충성된 남은 자를 통해 이루어진다. 제국은 사라지지만, 하나님이 심으신 믿음의 사람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나와 여러분들이 그러한 믿음의 사람이 되어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자가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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