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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론 70년

예레미야 이익환 목사............... 조회 수 684 추천 수 0 2019.02.14 23:4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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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렘29:10-14 
설교자 : 이익환 목사 
참고 : 텔아비브욥바교회 http://telavivchurch.org (이스라엘) 

텔아비브 욥바교회 2017년 12월 9일 설교 이익환 목사

예레미야 4 바벨론 70년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10]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12]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1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14]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너희들을 만날 것이며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나라들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났던 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렘29:10-14)

 

땅 문제가 다시 이 땅을 들썩이게 하고 있다. 어디서부터 이 문제를 풀어야 할지,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막막하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가나안 땅, 지금의 이스라엘 땅에 이르게 하셨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의 언약에 따라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이스라엘 백성, 믿음의 세대에게 주신 땅이었다. 그러나 그 땅에는 원칙이 있었다. 레 18:28, “너희도 더럽히면 그 땅이 너희가 있기 전 주민을 토함 같이 너희를 토할까 하노라”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나 자신을 더럽히지 않아야 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정착해 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 땅의 풍요의 신을 우상으로 섬기며 자신을 더럽혔다. 결국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대로 그 땅에서 토함을 당하게 된다. 땅을 주겠다는 것도 하나님의 언약이었지만 그 땅에서 토함을 받는다는 것도 하나님의 언약이었다.

 

북이스라엘은 BC 722년 앗수르제국에 의해 먼저 멸망을 당하여 여러 나라로 흩어진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남유다가 멸망 당하지 않도록 23년간 꾸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그러나 그들은 순종하지 않았다. 결국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작정을 그들에게 선언한다. 렘 25:9-11, “보라 내가 북쪽 모든 종족과 내 종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을 불러다가 이 땅과 그 주민과 사방 모든 나라를 쳐서 진멸하여 그들을 놀램과 비웃음 거리가 되게 하며 땅으로 영원한 폐허가 되게 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0] 내가 그들 중에서 기뻐하는 소리와 즐거워하는 소리와 신랑의 소리와 신부의 소리와 맷돌 소리와 등불 빛이 끊어지게 하리니 [11] 이 모든 땅이 폐허가 되어 놀랄 일이 될 것이며 이 민족들은 칠십 년 동안 바벨론의 왕을 섬기리라”

 

이 예언의 말씀은 바로 그 해 BC 605년에 이루어진다.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이 예루살렘을 쳐들어와 성전 기물과 포로들을 바벨론으로 끌고 간 것이다. 이 1차 포로 때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가 포로로 끌려간다. 이 때부터 바벨론 포로 70년이 시작된다. 이 70년은 BC 537년 포로들이 귀환하면서 마치게 된다. 그렇다면 왜 70년인가? 오늘 본문을 통해 그 이유를 살펴보며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오늘 본문은 바벨론으로 끌려간 2차 포로들에게 보내는 예레미야의 편지 내용이다. 렘 29:1-2, “선지자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에서 이같은 편지를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끌고 간 포로 중 남아 있는 장로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에게 보냈는데 그 때는 여고니야 왕과 왕후와 궁중 내시들과 유다와 예루살렘의 고관들과 기능공과 토공들이 예루살렘에서 떠난 후라” BC 598년에 벌어진 일이다. 이 때 유다 왕과 왕후도 끌려가고 지도자급 인사들과 용사, 장인, 대장장이 등 만 명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다. 이들은 바벨론 그발 강가에서 강제 노동을 하는 신세가 된다.

 

시편 137편은 포로로 끌려간 그들의 심정을 이렇게 노래한다. 시 137:1- 3,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2]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3]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하게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그들의 심정은 정말 참담했다. 바벨론으로 끌려간 포로들은 하나님이 바벨론 신보다 힘이 없어 자신들을 구해주지 못했다고 원망했다. 그들은 또한 잘못은 조상들이 했는데 처벌은 왜 자신들이 받아야 하는지 불만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렘 29:5-7, “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에 살며 텃밭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 [6] 아내를 맞이하여 자녀를 낳으며 너희 아들이 아내를 맞이하며 너희 딸이 남편을 맞아 그들로 자녀를 낳게 하여 너희가 거기에서 번성하고 줄어들지 아니하게 하라 [7]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읍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라” 포로민들은 이 예레미야의 권고를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다른 선지자들 중에는 하나님께서 2년 안에 자신들을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고 예언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바벨론에 집을 짓거나 텃밭을 만들거나 결혼해서 자녀를 낳으며 눌러 살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예레미야는 한술 더 떠서 사로잡혀가게 한 그 성읍 바벨론의 평안을 구하라고 한 것이다. 적국의 파멸을 위해서 기도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그들의 평안하기를 기도하라니 가당치도 않는 일이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편지를 통해 거짓선지자들의 말을 믿지 말라고 당부한다. 하나님이 그들을 보내지도 않았는데 그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 예언한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그러면서 충격적인 예언을 선포한다. 렘 29:1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1, 2년 안에 돌아가길 바라고 있는 그들에게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야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예레미야의 편지 내용을 듣고서 처음부터 순순히 따랐던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러던 중 12년의 세월이 흐른다. 2차 포로로 끌려갔던 사람들은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 때가 BC 586년이다.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고 남유다가 멸망한 것이다. 그발 강가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던 포로들은 좌절했다. 그들에게 남은 유일한 희망이 뭘까? 그것은 예레미야가 전한 포로생활 70년을 믿고 따르는 것이었다.

 

그들은 왜 하필 70년일까 질문했을 것이다. 그 의문은 그들이 다시 토라와 선지자들의 말에 귀를 귀울이면서 풀리게 된다. 레 26:2,15,33-35, “너희는 내 안식일을 지키며 내 성소를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15] 내 규례를 멸시하며 마음에 내 법도를 싫어하여 내 모든 계명을 준행하지 아니하며 내 언약을 배반할진대… [33] 내가 너희를 여러 민족 중에 흩을 것이요 내가 칼을 빼어 너희를 따르게 하리니 너희의 땅이 황무하며 너희의 성읍이 황폐하리라 [34] 너희가 원수의 땅에 살 동안에 너희의 본토가 황무할 것이므로 땅이 안식을 누릴 것이라 그 때에 땅이 안식을 누리리니 [35] 너희가 그 땅에 거주하는 동안 너희가 안식할 때에 땅은 쉬지 못하였으나 그 땅이 황무할 동안에는 쉬게 되리라”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지 않았기에 망하게 된 것임을 알았다. 특히 이 말씀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일과 안식년을 지키지 못한만큼 땅이 황무하게 되어 그 땅이 안식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들이 지키지 못한 날 수가 몇 년이란 것인가? 70년이다. 그들이 BC 1446년 가나안에 들어와 약 900년이 지나는 동안 그들은 마땅히 제사장 나라 백성으로 지켜야 할 안식일과 안식년, 그리고 희년을 지키지 않았던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일을 잘 지켰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을 우선시 하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들이 매 칠년 마다 안식년을 지켰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땅은 쉼을 얻고, 면제년이 지켜지면서 가난한 이웃을 배려하고 사랑하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또한 매 50년이 되는 해 희년을 지키며 살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빚진 사람이 없고 양극화가 없는 더욱 공평한 사회가 되었을 것이다. 이들은 70년이란 징계의 시간을 겪으면서 그들이 놓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삶이 얼마나 뼈아픈 고통의 시간을 초래했는지 돌아보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70년이란 시간은 그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부름받은 자라는 그들의 정체성을 다시금 기억하는 시간대였던 것이다.

 

역대기 기자는 그 70년이란 시간을 이렇게 기록한다. 대하 36:20-21, “칼에서 살아 남은 자를 그가 바벨론으로 사로잡아가매 무리가 거기서 갈대아 왕과 그의 자손의 노예가 되어 바사국이 통치할 때까지 이르니라 이에 토지가 황폐하여 땅이 안식년을 누림 같이 안식하여 칠십 년을 지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더라”

 

포로로 끌려온 사람들은 바벨론에서 하루도 쉬지 못하고 일하면서 하나님이 제정하신 안식일이 얼마나 귀한 것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희년과 각종 절기가 얼마나 귀한 하나님의 선물이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예레미야의 말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확신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예레미야의 권고대로 바벨론에 집을 짓고, 텃밭을 만들며, 결혼하여 자녀를 낳고, 바벨론이 평안하기를 기도하며 살았다. 다른 나라 포로들은 70년 동안 그들의 정체성을 잃고 노예로 살아갔다. 반면 유대인들은 그 70년 동안 기도하고 토라 연구에 힘쓰며 자기 정체성을 지킨 뛰어난 민족으로 거듭나게 된다. 그 중 다니엘은 바벨론 제국의 총리로까지 활약한다.

 

이어진 예레미야의 권고는 이렇다. 렘 29:11-1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12]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1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바벨론 포로기간은 결국 재앙이 아니었다. 다시 유대인들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기 위한 하나님의 시간이었다. 그러한 시간으로 빚어지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내게 와서 부르짖으라’고 초대하셨다. ‘그러면 그 기도를 듣겠다. 나를 구하면 나를 만나리라’고 약속하셨다.

 

하나님의 뜻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빨리 재앙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그들의 영적 실상을 아셨다. 그들이 얼마나 회복 불가능 상태까지 갔는지 아셨다. 하나님은 그들을 고치기 원하셨다. 그리하여 바벨론이란 제국에 그들을 집어 넣고 고통 중에 다시 하나님 한 분만을 찾게 하신 것이다. 70년 동안 그들은 하나님을 찾으며 그들의 믿음과 영성을 회복해 나간 것이다. 토라와 구약의 성경들이 이 기간 동안 정리되고 편집되어 가르쳐진다. 그들은 이 70년의 기간 동안 그들이 어디에 흩어지든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는 훈련을 받게 된 것이다.

 

우리의 삶을 돌아보자. 우리의 삶도 우리가 원하는대로 항상 진행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갈망하는 자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로 만드시기 위해 때론 우리에게 바벨론 포로의 시간을 허락하신다. 그런 의미에서 바벨론은 내가 죽고 주님이 다시 내 삶에 주인이 되는 시간이다. 그런데 바벨론 포로의 시간은 결코 하나님이 먼저 만들어 내시지 않는다. 우리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놓치고 시대의 우상에 마음을 빼앗기며 정신없이 살아가는 그 지점에서 바벨론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바벨론 포로생활의 끝은 우리의 상태에 따라 정해지게 된다. 그 징계가 고통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고통 중에 하나님께 나아가 부르짖을 때 그 고통은 재앙이 아니라 반드시 우리의 미래와 소망이 된다. 그 시간대에 하나님 앞에 엎드리지 않는다면 재앙이 우리의 미래와 소망으로 바뀌는 변곡점을 만들어 낼 수 없다. 그냥 개고생밖에 안되는 것이다.

 

바벨론의 시간을 살아가다보면 까칠한 심령이 되기 쉽다. 나를 이러한 상황으로 몰아넣은 하나님께 실망하거나 주변사람들을 향하여 원망하는 마음을 갖기 쉽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바벨론의 평안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명한다. 그곳에서 건강한 일상생활을 가꾸어내라고 권면한다. 여러분 중에는 이스라엘 생활, 지금의 직장 생활이 바벨론의 시간일 수 있다. 여러분 인생의 문제가 바벨론의 시간일 수 있다. 여러분이 힘든 지점에서 여러분을 압제하는 바벨론의 평안을 위해 기도하기 바란다.  그곳의 일상에 충실하며 거기서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지켜내길 바란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다르다. 더 크고 멀리 내다 보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만 선물해주시는 산타할아버지가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느 것에도 마음 빼앗기지 않고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선택하며 사는 당신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신다. 지금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있지 못하다면 우리는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바벨론은 다시 하나님을 찾고 그분 앞에 엎드리며, 다시 사랑하기로 결단하는 사람을 만들어내기에 가장 좋은 환경이 되는 것이다. 거기선 이미 내가 무너졌기에 재물도, 명예도, 세상의 영화도 구할 이유가 없어진다. 그리고 정말 내가 무너져내려 하나님 앞에 엎드리게 된다면 그 영혼은 매일 아침마다 새로운 주님의 인자와 긍휼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게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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