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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2:8-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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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 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2장 8절-12절.
8절-10절: 그 지경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더니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저희를 두루 비취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주의 영광이 어디로 비추어졌습니까? 어디로 비추어졌어요? 거기 본문에 나와 있잖아요? 그 지경의 목자들에게 비추어졌습니다. 왜 비추어졌는지 그 안에 신앙의 본질을 찾아서 생각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당시에 대제사장 서기관 율법사 등등 그 훌륭한 자들에게 왜 주의 영광이 비추어지지 않았을까? 왜 그들에게 주의 영광이 비춰지지 않았을까? 오늘날로 말하자면 내로라는 세상에서 붕붕 뜨는 이방인들도 다 알아주는 그런 자들에게 주의 영광이 비추어지지 않았고 왜 그 지경의 목자들에게 비추어졌을까? 여관집 주인에게 왜 주의 영광이 비춰지지 않았을까? 여관집 주인이 수지계산 맞추는 거나 오늘날 세상 속화된 교회목사가 교인들을 두고 수지계산 맞추는 거나 다를 게 뭐가 있어요? 왜 그들에게 주의 영광이 비춰지지 않았을까?
그러면 오늘날 꼭 목사들을 죄다 여관집 주인이나 당신의 대제사장 서기관 율법사들과 그렇게 맞대결을 시키고 비슷하게 얘기를 해야 되겠느냐? 얘기를 해야지. 할 수밖에 없지. 왜 그러냐? 그들은 종교적인 그 명예 영광성을 가지고 세상성적인 종교로 부흥 발전을 기하지 않았던가? 그럼 오늘날은 어떤가? 똑같지 않은가? 사람들 속에 정신이 들어있고 사상이 들어있고, 그 사상과 그 정신이 악령의 감화인지 성령의 감화인지 오늘날 우리 입장에서는 볼 때는 구별이 당장 갈 수밖에 없는 거지요. 우리는 그런 교회 찾아들어갈 수가 없다. 뻔한데.
그 때 당시 그들의 입장에서 미래적으로 본다면 주후 70년에 역사 속에 사라질 그들이 아니었던가? 하나님의 형벌로 그 말이요. 왜 예수 믿으면서 성경은 계시인데 왜 신앙의 정신 사상을 보지를 못하고 아무데나 가서 안수 받고 아무데나 가서 예수 믿는 사람처럼 그 사이에 끼어있고 교인들이 알아주니 자기가 뭐가 된 것처럼 올라가고 영의 눈이 막혀있고 영의 귀도 막혀있고. 자기부터 고치고 영적인 면에서 병을 다 고쳐야 될 것 아닌가?
왜 몸의 병든 것만 생각하지? 정신병원에 가면 몸은 다 건강해요. 근데 정신면에는 병들었어. 그 정신병든 거 괜히 그런 거요? 마음에서 나왔지. 그 마음을 못 다스렸기 때문에 그렇게 나간 거지. 그 정신병든 거 마음 병든 거 무슨 약을 먹고 다스려요? 그런데서 약을 주면 만날 잠만 자고 그러는 수밖에 없다. 그 우연한 일이 아니다. 정신병 들어놓으면 약 먹여서 잠재우는 수밖에 없다. 안 그러면 사고를 저질러 놓을 테니까. 그러니까 사고 저지르지 못하고 약이나 먹고 일 년 내내 잠이나 자라. 그 약 먹여서 재우는 거요. 미쳐 날뛰면 쇠고랑을 다 채워놓는 거요. 그게 어디서 나왔어요? 왜 마음을 못 다스리느냐?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다스림을 받지 못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그 말씀에 의해서 자기가 사람이 정화되고 정립이 되어간다는 것. 모든 면에서.
당시의 유대종교 지도자들은 가이사를 최고의 왕으로 모셨고 당시에 그들이 뭐라고 그랬어요? ‘우리에게는 가이사 왕밖에 없나이다.’ 유대종교인들이 그랬단 말이요. 헤롯을 분봉 왕으로. 분봉 왕은 유대 땅을 1/4 다스리는 것을 분봉 왕이라 그래요. 분봉 왕을 떠받들고 그 밑에서 충성을 다하고 있었어. 종교인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종교인들이 성경가지고 그들을 떠받들고 살고 있었어. 여관집 주인은 돈 보따리가 하나님이 되어 있었고요.
왜 여관을 하느냐? 불쌍한 사람들 잠재워 주려고요? 돈 벌려고 그러는 거지. 그러나 목자들은 추운 밤에 밖에서 웅크리고 들판에서 불을 피워 양떼들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들에게 주의 사자가 나타나더라. 주의 영광은 그들에게 비추어졌습니다.
이게 지금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날 되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지금 행사로만 생각지 말아요. 신앙의 세계를 영의 눈을 가지고 보면 지금도 이런 장면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다. 연속적으로. 옛사람 부패성적 육체로 살고 있는 여관집이나 외식운동 하는 유대종교 지도자들에게 나타날 리가 없지요. 주님의 영광이 왜 그런데 나타나요? 세상영광 받으면 다 됐지 주님의 영광이 왜 그런데 나타나? 오늘날 자기는 세상영광 받는 것을 그렇게 좋아라 그러고 다행인줄 알지요? 주님의 영광은 없는 거다.
주님의 영광 받을 자의 신앙의 속셈은 세상이 알아주던 안 알아주던 하등의 상관이 없다. 세상이 알아준다고 해서 그 장단에 춤추고 안 알아준다고 해서 슬퍼하고 그건 아니다. 자기를 알아주던 말든 그건 세상하고 상관이 없다. 그런다고 해서 세상에 할 일을 자기가 안 하느냐? 해도 알아달라고 하는 건 아니다. 신앙 믿음으로 살다보니 너희들 눈에 좋게 보이는 것뿐이지.
밤에 양떼들을 지키던 목자들에게 주의 영광이 나타났을 때 이 목자들이 얼마나 놀랐을까? 목자들에게 이 주의 사자가 어떻게 나타났을까요? 어떻게? 놀라지 않게 저기서부터 이렇게 사람 모습을 하고 왔을까요? 아니면 하늘로부터 서치라이트가 비취더니 서치라이트 가운데서 내려왔는지? 아니면 저승사자가 사람 잡으러 온 것처럼 까만 옷을 입고 얼굴을 하얗게 칠해가지고 온 건지? 손톱은 이렇게 길어가지고 그렇게 온 거요?
천사의 하는 말. 양떼들에게 나타나면서 천사의 하는 말. 뭐 천사가 나타날 때에 이상한 소리하고 나타났을까요? 귀신은 어떻게 하늘에서 내려와요 땅에서 솟아요? 그것도 잘 봐야 돼요. 귀신의 성질이 땅에서 솟아요. 그 말의 의미가 무슨 말이냐? 귀신이 들려놓으면 땅의 소원목적을 말하게 되고 땅의 것을 말하게 돼있어요. 그러니까 아무리 성령 받았다 그래도 별 짓을 다 해도 요건 땅에서 솟은 영이구나. 땅에서 올라온 영이구나. 세상 소원목적을 말을 하니까 틀림이 없다. 하늘로부터 왔으면 하늘의 소식을 전하는 거다. 땅에서 솟았기 때문에 땅의 것으로 말하는 거다. 이치로 봐라. 이치로.
사람도 대화할 사람이 있고 안 할 사람이 있고 그래요. 말이 아니면 수체 말을 하지 말아요. 오다가다 목사님들 만나도 세상목사들 그저 이웃에 살면 고개만 꾸벅하고 이러지 무슨 신앙적으로 대화를 한다고 하지 말아요. 그리고 아들딸들 옷 입는 모습하며 머리하며 부모님들이 신경을 쓰세요. 이 세상이 부모의 교육과 상관없이 자기들끼리 막 클럽으로 흘러가버려요. 자기 못 돼 먹어요. 지금 그래요. 지금이. 부모교육하고 단절이 돼있어. 어떻게 보면 학교선생하고도 단절이 돼있어.
천사의 하는 말이 무슨 말이었습니까? 천사의 하는 말? ‘온 백성에게 미칠 해당되는 큰 기쁨의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여기서 교회인도자들은 목자들이 어떤 상태에 있었을 때에 주의 영광이 비추어졌는지 그 신앙사상의 의미하는 바를 알아두어야 할 것이다. 괜히 그들에게 나타나는 게 아니다. 그들의 신앙사상 정신이 그 말이요. 그걸 알아야 한다.
예수님의 초림의 소식도 그들에게 그렇죠? 초림소식. 그들에게 지금 이게 초림 아니요? 두 번째 예수님의 이 복음의 소식도 그들에게. 제자를 불러서 그들에게. 그 다음 세 번째 진리 깨달음으로 오는 보혜사 성령도 그들에게 온다고 하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예배당 건물들이 경쟁이나 하듯이 사람의 숫자가 불어나는 것이 교회의 부흥인 것처럼 꼭 그렇게만 생각하는 이것은 그 생각 사고 발상이 복음의 본질이 아님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노아홍수 때도 그랬고 마지막 때도 그럴 것이고 구약시대 정치적 이스라엘 종말 때도 그랬고 또 앞으로 미래적으로 언제일지는 모르나 마지막 때도 그렇다. 반드시 그렇다.
11절-12절: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이제 목자들은 주의 천사가 전하여준 그대로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되고 구주가 되시는 그 분을 가서 확인을 해야 합니다. 가서 보고 듣고 만져보아야 합니다.
어느 동리에서 구주가 났다고 했어요? 다윗의 동네. 다윗의 동리가 어디냐? 베들레헴은 누구의 고향이었더냐? 옛날 구약시대에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예언적으로 하신 말씀들이 많습니다. 많아요. 삼하7:1-29까지도 보고 미가 선지자가 예언한 것도 있습니다. 미가서5:2이지. 목자들은 다윗의 동리에 가서 확인한 것입니다. 그 성경대로 그 예언대로 보고 그 천사의 소식을 듣고 가서 확인을 했다 그 말이요.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그랬지요? 가서 보면 그게 표적이다.
무엇이 표적이냐? 표적은 겉으로 보인 증거입니다. 그렇지요? 장소 시간 사람 등. 그러나 우리는 좀 더 생각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구원과 관계되는 말씀이기 때문에. 자기의 구원과 관계되는 말씀이기 때문에 그렇다. 첫째로 하나님이 인간 되어 오셨다는 것. 이것은 인간 상상 밖의 일이 눈앞에 보였다고 하는 것이니 이게 표적이요. ‘하나님이 사람 되어 오셨다. 가서 봐라.’ 눈으로 본다는 이게 표적이다. 두 번째는 미가 선지자의 예언이 그곳에서 이루어졌는데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성경을 가지고도 메시아이신 이 구원해주실 자를 알아보지도 못하고 세상 가이사를 왕으로 삼고 있었고 기다리던 메시아는 짐승의 구유에다가 저렇게 버려져있다는 이것이 또 표적입니다. 이해갑니까? 지금? 최고의 세계 최고의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성경을 가지고 메시아를 기다렸는데 모세에게 말한 그 메시아를 기다렸는데 알아보지 못하고 저렇게 버려져 있다는 것. 왜 버려져 있지요? 누구를 왕으로 삼고 있는 거지요? 가이사를. 로마 가이사를. 저 표적이다. 이들이 왜 버렸는지? 누구를 왕으로 삼고 있는지 이걸 봐라. 표적이다.
그 다음에 세 번째. 만삭된 산모가 진통이 오고 있는데도 산모를 배려 못할 정도면 이것은 정말 비인간적이다. 이것이 또 표적이다. 비인간적이라는 면에서 표적이다. 이게 예수님 태어난 당시에 혹시 구약시대의 그 옛날 떡집이 돈을 버는 여관집으로 전락한 것이 아닐까 그렇게도 상상이 돼요? 네 번째. 귀하신 분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낮고 천한 자리로 오셨다는 것. 이것이 또 표적이다.
다섯 번째.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백성 전체와 유대종교인들이 외식적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브라함의 신앙을 이어받은 후손인 것처럼 보수요 전통이라고 착각하고 남을 무시하고 교만하여 있을 때에 진리생명과 메시아를 독차지하고 있는 성도는 따로 있다는 것. 요셉과 마리아가 독차지하고 있었다는 것. 이것이 표적이다. 어느 때에 독차지 하고 있다는 것? 모두 다 교회교인들이 교파 교단들이 아브라함의 신앙을 이어받은 후손인 것처럼 보수 전통이요 단체도 크다 뭐 이러고 있을 때에 진리생명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요 한 그것을 차지하고 있는 성도는 따로 있다는 것. 이해갑니까? 지금?
그 다음 여섯 번째. 구주예수 메시아가 옆에 있어도 세상 가이사를 왕으로 따르는 신앙사상은 이 구주예수를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 옆에 있어도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 이해갑니까? 그 다음 일곱 번째. 시대적 밤중에, 시대적 밤중. 시대적 밤을 알 수 있지요? 시대적 밤 개인적인 밤. 시간적인 밤이 아니고 시대적 밤. 진리가 없는 때, 선지자가 없는 때, 자기에게 진리가 없는 때 너는 밤이다. 너는 밤이다. 시대적 밤중에 양떼를 지키는 충실한 목자들에게만 이 표적이 보인다는 것. 이해됐어요?
예수 믿는 정신이 뭔지 좀 알아라. 시간 남아돌아가면 믿고 자기 형편 따라서 예수 믿는 게 아니다. 주일날은 누구 날이요? 하나님의 날. 창세기로 올라가서 보면 하나님이 제정을 해놨어. 왜 제정했냐? 하루 쉬라고? 목적은 거기 있는 게 아니라 하늘의 복을 받아라. 하늘의 사람이 되라. 하늘로부터 오는 것은 이날밖에 없다. 그 날 못 받으면 못 받는 거다. 알겠어요? 자기 착각에 빠지지 말아. 오늘날 거의가 자기 착각에 빠져있어. 그러면서 복만 자기한테로 왔으면 좋겠지요? (계속)
(궁극교회 김경형목사님의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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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통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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