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일 아침 차 한잔 마시면서 전해드리는 햇볕같은이야기 그 6298번째 쪽지!
□이해와 오해
어떤 분이 저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습니다.
“왜 꼭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이 나의 죄를 용서해주시기 위한 대속이라는 것을 믿어야만 구원을 받습니까? 2천년 전에 일어났던 그 처형 사건이 지금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우리나라에도 2천년 전에 강을 다스리는 신의 딸 유화(柳花)에게 그녀를 향하여 햇빛이 계속해서 비치는 기이한 일이 계속되더니, 마침내 그녀는 잉태하여 커다란 알을 낳았고 고구려를 세운 ‘주몽’이 알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마리아라는 처녀에게서 ‘예수’가 태어난 것이나, 유화가 낳은 알에서 ‘주몽’이 태어난 것이랑 뭐가 다릅니까?”
저는 대답을 못했습니다. 사실은 저도 뭐가 다른지 잘 모릅니다. 다만 예수 사건은 마음에 믿어지고, 주몽 사건은 믿어지지 않을 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의 영역’에 속한 신비로운 사건이라 왜 믿어지고 안 믿어지는지 조차도 잘 모릅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이십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수백 수천가지 속성 중에 단 한가지일 뿐입니다. 인간은 오직 ‘인격적’으로만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속성 중에 ‘인격’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본질은 인격적이 아니고 ‘영적’이십니다.
하나님의 영적인 속성은 인간 이해의 영역이 아니라 ‘믿음’의 영역입니다. 이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해하면 우리는 영적인 하나님을 알 수도 없으며 영적 신앙생활이 아니라 ‘인격적 신앙생활’ 즉 인본주의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바리새인들이 그렇게 하나님을 오해하여 인본주의적 신앙생활을 하다 예수님께 책망을 들었죠. ‘정신수양, 마음수련’을 하는 인본주의적 종교와 기독교가 다른 점은 바로 기독교는 ‘영적’인 종교라는 것입니다. ⓒ최용우
♥2019.2.20. 물날에 좋은해, 밝은달 아빠 드립니다.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