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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과 하나님 나라

누가복음 이정원 목사............... 조회 수 235 추천 수 0 2019.03.28 21:5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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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16:14-18 
설교자 : 이정원 목사 
참고 : 2018.8.26 주일 희망의교회 http://hopech.kr 

율법과 하나님 나라

눅16:14-18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내세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우리 인생은 길어야 백년인데, 우리의 내세는 영원합니다. 우리의 내세는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준비하는 것으로 결정됩니다. 이 세상에서의 우리의 인생은 내세를 준비하기 위한 것입니다.

 

내세를 준비한다는 것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내세를 준비하는 것에 대해 교훈하시면서, 특히 재물에 대한 자세에 대해, 그리고 재물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돈을 좋아하고 그것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이 심해지면 돈이 우상이 되고 인생의 목적이 되기 쉽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돈의 노예가 되고, 하나님을 섬길 수 없게 되며, 내세를 전혀 준비하지 못하게 되고 맙니다.


돈을 바르게 사용하며 내세를 잘 준비하려면 무엇보다 우리가 하나님의 청지기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은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고,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재물과 시간과 건강과 은사 등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대로 사용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특히 우리에게 있는 재물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께 꾸어드리는 것이며, 천국에 보물을 쌓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하는 성도에게 천국에서 큰 상을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재물을 지극히 작은 것이라고 부르시면서,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지극히 큰 것에도 충성되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재물을 충성되게 사용해야 영원한 천국에서 지극히 큰 것을 우리에게 맡겨주신다는 것입니다. 함부로 낭비하거나 단지 자신의 쾌락과 만족만을 위해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최대한 하나님 나라를 위해, 그리고 가난한 이웃을 돕는 데 사용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내세를 잘 준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청지기임을 잊지 말고 맡겨주신 재물을 지혜롭고 바르게 사용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돈을 사랑하는 바리새인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재물을 잘 사용하여 내세를 준비해야 한다는 예수님 말씀을 듣고 비웃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14절) 바리새인들은 돈을 사랑하는 자들이었는데, 예수님 말씀이 자신들을 겨냥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비웃은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유대인들의 종교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철저히 지켰고 경건생활에 힘썼으며 열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겉으로 보기에만 그랬습니다. 바리새인들의 실제적인 관심사는 오직 부와 명예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돈이 많은 것은 축복이라 믿었으며, 재물이 많은 부자를 존경했습니다. 부자가 된 것은 하나님께 복을 받은 증거이며, 따라서 부자는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에게는 부자 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돈을 사랑하며 탐욕을 품고 있었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재물에 대해 교훈하시는 말씀을 듣고 비웃었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다는 바리새인들, 율법을 철저히 지킨다는 바리새인들이 어떻게 돈을 사랑할 수가 있었을까요? 어떻게 위선적인 경건에 빠질 수 있었을까요?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잘 믿고 율법을 열심히 지켰지만, 그 모든 것을 단지 형식적으로 행하였습니다. 정확히 말한다면, 그들은 하나님과 상관없이 하나님을 섬겼으며, 하나님과 상관없이 율법을 지켰고, 하나님과 상관없이 경건생활에 힘썼습니다.


바리새인들의 신앙에는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과 교제가 없었습니다. 그들의 예배와 율법준수는 단지 형식적인 것에 불과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인정하시는 경건생활이 될 수 없었고, 단지 자신들의 만족을 위한 경건생활이 되고 말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스스로 믿음 좋은 사람들이었고 열심을 다해 하나님 섬긴다고 했지만, 실제로 그들의 신앙생활과 경건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것이 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의 신앙과 경건은 그들의 삶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신앙과 삶은 완전히 분리되었습니다. 양심은 죽었고, 성령의 감화하심도 없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을 잘 섬긴다면서도 돈을 사랑하고, 사람들에게 칭찬과 인정받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것들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일인데도 말입니다. 그들은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알아볼 수 없었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믿음 좋다는 사람들, 열심을 다해 하나님 섬긴다는 사람들이 사실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신앙과 생활


이것은 오늘 우리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믿음 좋은 성도인데 성질이 고약한 사람이 있습니다. 기도 많이 하고 성경도 많이 아는데 못된 행동을 서슴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혹시 이것이 당신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닌지 정직하게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좋은 믿음 성도라면, 기도 많이 하고 성경도 많이 아는 성도라면 당연히 거룩하고 성숙되고 친절해야 하지 않을까요?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그 사람의 믿음이 그의 인격과 삶에 전혀 영향을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아무리 많이 해도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자신의 뜻만 고집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아무리 많이 알아도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오늘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심각한 문제입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말씀을 삶에 적용하여 구체적으로 순종하는 것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성령께서 내 맘을 감동하시고 인도하실 때 즉시 순종하는 것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끊임없이 자아를 깨뜨리고 하나님의 뜻에 복종시키는 것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우리가 말씀을 붙들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며 살아가면, 우리의 신앙이 성숙될 뿐만 아니라 인격과 삶에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이것이 평생 계속된다면 그 성도는 얼마나 거룩하고 성숙되고 아름다운 신앙과 인격을 갖추게 되겠습니까? 평생 끊임없이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며 순종하여 신앙과 인격이 아름답고 능력 있게 성숙해가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바리새인들에게는 이것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율법준수는 그들의 인격과 삶에 전혀 영향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자부했지만, 철저히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었습니다. 형식적인 율법준수는 있었는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삶속에서 순종하는 것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의 신앙과 경건은 그들의 생활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신앙은 병든 신앙이며, 더 나아가 죽은 신앙입니다.


날마다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기도하기를 쉬지 마십시오.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드러나거든 즉시 순종하십시오. 끊임없이 자아를 깨뜨려 말씀과 하나님의 뜻에 복종시키십시오. 그래야 우리의 신앙과 인격과 삶이 함께 변화되고 성숙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청지기임을 명심하고, 우리에게 맡겨주신 모든 재물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대로 사용해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자에게 구제하여 하늘에 보화를 쌓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 말씀을 듣고 비웃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돈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들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15절)


복음서 기자들은 바리새인들이 늘 사람들 앞에 자기를 옳게 보이는 일에 관심이 많았으며, 사람들에게 존경과 인사 받기를 좋아했다고 기록했습니다. “이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눅10:29)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눅18:9)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원하며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좋아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눅20:46)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신랄하게 책망하셨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 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 하도다”(마23:27-28)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처럼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옳다 여기며, 사람들 중에 놓임 받는 것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 보다 재물을 더 사랑했으며, 하나님의 칭찬보다 사람들의 칭찬과 존경을 더 추구했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침입하는 사람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16절)


율법과 선지자로 대표되는 구약시대가 지나가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하나님 나라가 세상에 도래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셨으며, 이제 누구든지 이 복음을 듣고 믿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이 복음을 듣고 믿어 하나님 나라로 침입해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세상적인 가치관과 재물에 대한 탐욕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율법준수만 고집하면서 스스로 의롭게 여겼습니다. 자기들만 구원받은 하나님 백성이라고 주장했고, 예수님을 배척하며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무시하고 조롱했습니다. 결국 이들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구약의 율법은 폐지된 것일까요? 예수님께서는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율법의 한 획이 떨어짐보다 천지가 없어짐이 쉬우리라”(17절)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심으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율법이 폐지된 것은 아닙니다. 율법 역시 하나님의 계시이며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완전하며 영원합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받는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받았고, 신약시대에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구약의 율법은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예표했으며,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제 마침내 율법이 가리켰던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의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께서 율법을 폐지하신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율법을 온전히 지키셨고, 십자가를 통해 율법을 성취하시고 완성하셨습니다.

 

이혼 문제


여기서 누가는 갑자기 이혼에 관한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재물의 청지기로서 내세를 잘 준비해야 할 것을 말씀하셨고, 내세 즉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에 대해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이혼에 관한 말씀이 여기 나오는 것일까요?


누가복음을 읽다보면 이런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는 산발적인 이런 저런 말씀을 한 데 모아서 기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누가는 그가 복음서를 기록한 원칙을 이렇게 밝힌 바 있습니다. “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눅1:2-3)


누가는 그의 복음서를 차례대로 질서 있게 기록했습니다. 그렇다면 18절의 이혼에 관한 말씀은 문맥과 상관없이 불쑥 끼워 넣은 말씀이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누가는 지금 율법의 절대성과 영원성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기록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씀을 이러한 주제와 문맥에 따라 살펴보아야 합니다.


“무릇 자기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 드는 자도 간음함이요 무릇 버림당한 여자에게 장가 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18절) 이 대목에서 예수님께서 왜 이 말씀을 하셨을까요? 먼저 이혼에 대한 구약의 율법을 찾아봅시다. “사람이 아내를 맞이하여 데려온 후에 그에게 수치 되는 일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이혼 증서를 써서 그의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보낼 것이요”(신24:1) 이 구절은 이혼의 사유에 대한 규정입니다. 사람이 결혼하여 아내에게 수치 되는 일이 발견되면 이혼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수치 되는 일’이 과연 무엇을 가리키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구절에 대한 해석에 따라 이혼 문제가 결정되었는데, 논쟁이 분분했습니다.


힐렐 학파는 이 구절을 폭넓게 해석하여, 아내가 큰 소리를 내거나 음식을 조리하다 태운 것과 같은 경우도 ‘수치 되는 일’에 해당한다고 보았습니다. 반면에 샴마이 학파는 ‘수치 되는 일’이라는 규정을 엄격하게 해석하여, 아내에게 성적인 부정이 있는 경우에만 이혼을 허락했습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힐렐 학파의 해석을 받아들여 자기 맘에 들지 않으면 간단한 핑계를 대고 아내를 버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혼에 대해 훨씬 더 엄격하게 교훈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 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마19:9) 예수님께서는 결혼에 대한 율법의 진정한 정신을 이렇게 해석해주셨습니다.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마19:6)


사람들은 결혼을 오직 자신의 유익과 행복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봅니다. 그러나 결혼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관점은 이러한 차원을 넘어서야 합니다. 왜 결혼해야 합니까? 결혼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율법의 정신에 비추어 생각해볼 때 답은 분명합니다. 결혼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은 결혼을 통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하며, 이웃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즉 아내를 사랑하여 섬김으로 아내를 행복하게 해야 합니다. 이런 성경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혼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혼에 대한 율법의 규정을 자의대로 해석하여 아내를 함부로 버렸습니다.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은 이 땅에서의 결혼생활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며, 자신의 행복과 유익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배우자를 사랑하며 섬겨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청지기들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주인이신 하나님께 충성을 다해 살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오직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사용해야 합니다. 나 자신의 유익과 만족을 위해, 내 맘대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재물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에 헌신하며, 가난한 이웃에게 구제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결혼에 있어서도 우리는 주인이 아니고 하나님의 청지기입니다. 결혼의 목적은 단지 자신의 유익과 행복이 아닙니다. 결혼생활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며, 배우자를 내 몸처럼 사랑하고 섬겨 행복하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자신도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청지기가 되어 세상에서도 복된 인생을 살아가며, 영원한 내세를 잘 준비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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