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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2:41-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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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 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2장 41절-46절.
41절-42절: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을 당하면 예루살렘으로 가더니 예수께서 열두 살 될 때에 저희가 이 절기의 전례를 좇아 올라갔다가.
참 멍텅구리 같은 부모인가보다. 유대절기는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입니다. 유월절의 유래는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탈출하기 전날 밤에 이스라엘 백성은 양의 피를 문지방과 문설주에 발랐는데 애굽백성은 자기들의 문에 양의 피를 바르지 않아서 애굽의 장자는 다 죽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의 장자는 하나도 죽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무사히 탈출을 했지요. 이 날이 바로 성력 1월 14일 저녁입니다. 21일 저녁까지 7일간 지키는 것이 유월절입니다.
이 유월절은 무교절이라고도 하는데 이 무교절은 누룩을 넣지 않고, 그러니까 밀가루 떡이 얼마나 딱딱하겠어요? 이 유월절은 1월 15부터 7일 동안 누룩을 넣지 않고 먹는데 그 이유는 누룩, 다른 말로 하면 소다. 부푸는 것. 그 이유는 탈출이 너무 급한 고로 누룩은 넣지 않고 먹었다는 거지요. 그러니까 누룩을 넣으면 하룻밤을 재워야 하거든요. 근데 하룻밤을 재울 시간 여유가 없잖아요?
그리고 오순절을 칠칠절 또는 맥추절이라고도 하지요? 성력으로 3월 6일입니다. 유월절 제 2일로부터 50일 만에 되는 고로 오순절이라 그렇게 붙였습니다. 유대는 이때가 추수 때인 고로 그 은혜를 감사해서 지킵니다. 이 오순절 날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은 날이기도 하고 신약에서는 성령강림이 되었습니다.
또 장막절은 성력 7월 15부터 21일까지. 이 절기는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로 나와서 장막생활을 기념하는 겁니다. 이때는 유대인들이 곡식 거두기를 마치는 고로 추수절이라고도 합니다. 이것 역시 7일 동안 지키는 겁니다.
한 해에 3번을 지키는데 외국에 사는 자들도 3번을 와야 하는데 그것이 잘 지켜질까 의문스러워져요. 예루살렘 성전에 각 곳에서 모여온 유대인들 해마다 양이나 염소를 끌고 와서 유월절을 지키고 갑니다. 하지만 로마의 속국이 되어있는 고로 세상이라는 로마를 왕으로 떠받들고 있는 한 유월절을 지키는 그 정신은 하나님 앞에 별 의미가 없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아요? 예수 믿으면서 세상정신 사상 세상소원 목적을 자기의 왕으로 모시고 있는 한 그 말이요. 주일을 지킨다고 해도 별 의미가 없다. 별 효력이 없다 그 말이요. ‘천국 간다. 지옥 간다. 못 간다’ 그걸 말하는 게 아니고 속에 깨닫고 들어가지는 하나님의 은혜에 별 효력이 없다 그 말이요. 해마다 지키지만 하나님의 살아있는 생명적 역사의 신앙사상을 찾기란 힘듭니다.
이 신앙사상에도 생명적 신앙사상이 있고요 해이된 이 세상정신 사상으로 된 신앙의 정신이 있어요. 그거 알아야 돼요. 그래서 의례히 습관적으로 지키는 생명이 없는 절기더라. 말하자면 정신이 없는 절기더라. 그 정신.
우리 젊은이들이 6. 25정신이 있는지 알아요? 없어. 8. 15해방 맞은 정신이 있는지 알아요? 3. 1절 정신이 있는지 알아요? 없어. 우리는 그런 노래 나오면 그 노래 속에서 그때의 환경이 살아나는 거요. 그래서 옛날노래는 삶의 애환이 많이 담겨있기 때문에 합창이 나오고 눈물도 나오고 그러는 거예요. 근데 요즘 젊은이들 노래는 그런 거 있어요? 없어요. 그냥 즉흥적이고 둘이서 재밌게 노는 그런 즉흥적. 그건 깊이가 없는 거지.
그걸 알아야 돼. 삶의 애환 속에서 나오는 것은 이게 정신이 들어있어. 노래도 그걸 알아야 돼요. 그래서 서양노래는 목소리가 듣기 좋고 곡 자체가 사람의 흥을 돋우는 거지요? 근데 옛날노래는 뭐요? 아주 젊은 사람들이 들으면 듣기 싫지만 그 속에는 삶의 애환이 들어있기 때문에 그 마음이 그리로 가는 거지요. 그걸 알아야 돼요. 지금 젊은이들이 들으면 별 의미가 없어요. 심심하고 뭐 신도 안 나고 쾌쾌 묵은 거 같고.
6. 25를 겪은 사람은 6. 25에 관한 노래 ‘흥남부두에~~~’ 그런 노래 들으면 전쟁 그게 싹 떠올라요. 나쁘다가 아니고 삶속에서 우러나온 노래이기 때문에. 근데 그 정신을 아는 사람은 참 제가 볼 때는 일반적으로 국가적 국민적 애국심이 굉장히 이게 막 움직이는 거요. 근데 젊은이들은 6. 25를 겪어봤어요? 안 겪어봤거든. 전쟁이 얼마나 비참한지? 젊은 여성들은 농락당하고 끌려가고 죽고. 그래서 나이 많은 부모들로부터 6. 25에 관한 그런 얘기 들으면 안 겪었지만 겪은 것처럼 정신을 가져야 돼요. 그게 지혜로워요.
그리고 사람이 사는 동안에 군인을 감축하면 안 돼요. 인류가 지상에 있는 동안에는 전쟁은 연속이요. 알겠어요? 군인 감축한다? 자기 아들 안 보내고 자기 신랑 안 보내고 ‘감축합시다’ 떠들면 그건 안 돼요. 벌써 이건 틀렸어요. 군인은 무기는 항상 준비를 해야 돼요. 인간이 지상 위에 존재하는 동안. 그거 알아야 돼요. 그리고 이 세상에 신앙적인 면에서 사단 마귀 악령류들이 역사하는 동안에 기독자들은 뭐요? 성령에 감화된 진리의 지식을 많이 축적을 시켜놓아야 돼요. 속에 탄환을 많이 축적을 시켜놓듯이 시켜놔야 돼요. 그거 알아야 돼요.
지금은 육신의 눈으로 보는 그런 전쟁은 없지만 그러나 민족적인 그런 정신으로 지금 양쪽에서 전쟁을 하고 있단 말이요. 그런데 신앙적인 면에서 볼 때는 편안한 것 같아요? 아니요.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엄청난 비진리적이며 세상적인 것이 교회로 많이 파고 들어와요. 눈에 안 보이는 전쟁, 적이 있는데, 눈에 안 보여요. 이걸 안다면 참 영특한 사람이다. 현재 자기의 몸 바깥에 심지어 자기의 몸 안에서까지 자기를 넘어뜨리는 옛사람의 부패성적인 요소가 움직이고 있다. 그것이 자기 속에서 주격이 되면 자기 몸 바깥에 세상육적인 것으로 들어올 때는 그냥 따라가고 그건 넘어지는 거요. 사람이 넘어져 버려요. 정신이 팔려간다 그 말이요. 뺏겨져 버린다 그 말이요. 마음이 빼앗긴다 그 말이요. 정신 빼앗기고.
제일 어려운 것은 세상에 속한 교회들이 많기 때문에, 교회는 천국에 속한 것이고 천국의 정신으로 살아나가야 되는데 성경가지고 세상에 속한 것이 교회에서 판을 치고 있어. 우리는 그걸 보는 눈이 필요하고 그런 그 무기 없는 전쟁에서 이겨야 돼요.
창살 없는 감옥도 있습니까? 있어요. 눈에 보이는 감옥만 생각지 말아라. 자기가 자유하지 못하는, 말하자면 간단하게 세상염려 걱정에 딱 들어가 있으면 자기가 풀려나오지 못해요. 이상하지요? 창살 없는 감옥이라. 이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은 자기가 그런 차원을 알도록 만들어주고 거기에서 탈출을 하도록 만들고 자유함을 갖게 만든다 그 말이요.
인간 자기가 그런 자유하지 못하는 거기에 계란 노른자처럼 쏙 들어가 있다면 타를 향해서 인명과 재산에 피해를 안 준다고 해도 그 상태가 하나님 앞에 죄로 들어가는 겁니다. 그걸 알아야 돼요. 그래서 우리는 창살 없는 감옥을 말을 들어보면 대강은 알아요. ‘아, 이게 창살 없는 감옥에 갇혔구나.’ 그걸 허물어줘야 되는데, 허물어주려면 진리이치를 깨닫게 해서 그 사람의 차원을 알게 하고 탈출하게 만들고. 사람이 자유로워져요. 돈에 노예가 된 사람도 있습니까? 많지요?
해마다 지키지만 하나님의 살아있는 생명적 역사의 신앙사상을 찾기가 힘들다. 의례히 습관적으로 지키는 것이기 때문에 생명이 없는 절기더라. 그런데 오늘날 우리 교인들 오늘날 기독교인들 주일날마다 이렇게 교회 오고 하나님 말씀 지키지만 과연 그 자기 속에 신앙의 정신이 무장이 돼가지고 있는지? 오늘은 무엇을 무장을 할까? 무엇을 한 이치 깨닫고 갈까? 그 산 정신이 있어야 돼. 특히 오늘날 젊은이들은 신앙의 산 정신이 있어야 돼. 없으면 그 젊은이는 정신이 죽었어. 나이는 젊었는데 그 정신을 보니 늙어빠졌어.
해마다 유월절을 지킨다고 아기예수를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갔었는데 그때마다 부모는 아이에게 무엇을 가르쳤을까? 아기예수는 부모로부터 그 예루살렘의 장면에서 무엇을 듣고 배웠을까? 그게 또 들어있어요.
43절: 그 날들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 아이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무셨더라 그 부모는 이를 알지 못하고.
‘그 날들을 다 마치고’: 그러면 며칠을 지킨 거요? 오늘 올라갔다 오늘 내려온 거요? ‘그 날들을 다 마치고.’ 그러니까 며칠이요? 7일. ‘이 날들을 다 마치고’ 라는 말은 ‘유월절의 의식과 순서 절차를 잘 지켰다’ 그렇게만 보지 말고, 그러나 잊어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무엇을 잃어버리고 집으로 간다고 꺼덕꺼덕 하룻길을 갔을까? 무엇을 잃어버리고? 그 날들을 다 마치고 순서 절차를 다 지켰는데 집으로 돌아갈 때 무엇을 잃어버리고 갔어요? 아기예수. 글자 그대로 보면. 예, 우리에게 계시성을 가르쳐주고 있어요. 이게 지금.
아이와 동행하고 있는 줄로 착각을 하고. 아이고, 이런 참. 그 아기가 예수아기가 그러니까 걷고 있는 거지 뭘. 안 그러면 가슴에 앉고 갔을 텐데. 안 그래요? 걷고 있는 중인데 착각을 하고 하룻길을 갔다. 어른 걸음으로 하룻길을 간다면 얼마나 가겠어요? 잘 모르지? 어른 걸음으로 빠른 걸음으로 가면 한 40분이면 10리를 가요. 보통 1시간을 잡아요. 그럼 하루가 몇 시간이요? 24시간. 잠자는 시간 밥 먹는 시간 다 빼고 활동을 하는 시간이 그러니까 아침밥 먹고 나면 몇 시요? 밥 먹고 나면 일터로 가고 그러잖아요? 몇 시부터 치지요? 8시부터. 우리 한국시간대로 따지면 그 8시부터 몇 시까지? 몇 시에 저녁 먹어요? 여기는 하룻길이라 그러지만 사실 시간대로 치면 반나절 좀 넘습니까? 일할 수 있는 활동을 할 수 있는 길을 갈 수 있는. 그럼 5, 6시 돼요? 겨울 되면 더 빨리 질 거고. 어쨌든 동행중에 있는 줄로 착각을 하고 하룻길을 갔다.
이럴 수가 있을까?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을까? 일반적으로도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게 지금. 예, 식구들이 모두 집 나가면 부모는 아이를 챙기는데. 그렇잖아요? 그리고 하룻길을 가면서 아이를 챙겨서 간식도 안 먹이나? 아침밥 먹고 그냥 내버려둬요? 그 간식을 먹을 때 또 아이를 찾기 마련인데 문제가 많은 아이니까 아이를 버리기로 부부가 작정을 한 것입니까? ‘이놈이 문제가 많다. 그러니까 제 멋대로 에이, 키우기도 귀찮은데 여보 우리 갑시다’ 그렇게 하고 내려간 거요? 절기를 지키고 돌아오면서 분명히 이웃사람들과 같이 오면서 잡담을 하느라고 아이 생각을 잊어버렸을까? 그러기에 하룻길을 집으로 오면서 동행하는 줄로만 알았겠지? 만일에 그렇다면 이웃과는 대화를 잘하면서 자기 집 아이를 모르는 부모가 많습니다. 실질적으로.
이 참 오래 전 얘기입니다만 여기 교회 말고 딴 교회 다닐 때 집사님이 아이를 하나 데리고 왔어요. 4살인가? 데리고 와서 누구 아이냐? 돌아다녔기 때문에 집사님이 지서에다가 갖다 주고. 지서 순경들이 아이들 맡으려고 하겠어요? 연상 순찰 나가고 그러니까 교회 집사님이 맡고 계시다가 찾는 사람 나오면 주라고 그랬던 모양이야. 그런데 그 집사님이 우리 집으로 데리고 왔어. 그 때 길가에서 기쁜소리사. 라디오 수리하고 하는 그걸 하고 있었는데 우리 집으로 데리고 왔어. 그 집사님 집에도 애가 많아요. 나는 총각이고. 그래, 뭐 데리고 오라고. ‘그래, 다 지서에 연락하고 다 했나요?’ ‘다 했다’ 그랬어요. 나는 그걸 잘 캐물어요. 어디서 주웠으며 누구랑 같이 있었느냐? 그 시간대가 몇 시 몇 분이냐? 찻길에서 그랬냐? 누구 집 앞에서 그랬냐? 자세히 물어야 돼. 안 그러면 둘러써 버려요. 큰일 나요.
그래, 우리 집에 데려다 놓고 그 다음에 밥도 주고 뭐 사주고 그러니까 애가 잘 따르더라고요. 그래, 이 소리사 유리문 가게에다가 ‘이런 아이 있습니다’ 하고 딱 붙여놨어. 그러니까 부모가 며칠 만에 찾아왔더라. 우리 집 앞으로 버스가 왔다 갔다 하니까 본 거지. 그 소문이. 그 애 집이 어디냐면 봉천동이야. 봉천동하고도 그 부모가 돼지를 키워. 그러니까 이게 돼지는 잘 알았지만 애가 어디로 나가는지 몰랐단 말이요. 말하고자 하는 게 이 말이요. 이제.
그래 와가지고, 순경하고 같이 왔더라고요. 내가 얘기를 자세히 다 했어. 나한테는 하자가 없잖아요. 부모가 이제 미안하다고 그러면서 참 감사하다고 그러면서 그 때 돈으로 몇 십만 원, 삼십 만원이던가? 사례를 하고 갔어요. 안 받으려고 그랬는데 순경도 ‘받으라. 좋은 일 하라’ 그러면서 주고 가더라고.
그래, 이 짐승이나 이런 걸 잘 키우는 부모가 자기 자식이 어디서 놀고 있는지? 많이 있어요. 짐승 키우면서 돈 버는 이건 알면서 자기 자식이 교육적인 면에서 어디로 비뚤어져 나가는지 이걸 모르는 부모가 허다하더라. 허다하더라. 정말 이게 보통 큰일이 아니구나. 이게.
그래, 그 동안에 아이가 정이 들었다고 안 가려고 그러더라고요. 자기 부모한테 가봐야 또 돼지 키울 테니까. 우리 집에 있으면 내가 공부도 시키고. 하기야 중풍병 든, 교회 다니면서 아버지가 중풍병이 들었어. 엄마도 죽고. 근데 그 학생이 5학년인가 6학년이야. 그 아버지의 동생 또 이렇게 몇 사람이 왔어. 그 아이를 데리고 가려고 하지를 않아요. 예, 내가 볼 때 작은 아버지인데 작은 아버지 집에서 그 아이를 안 데리고 가려고 그래요. 자꾸 걱정만 하고. ‘내가 데리고 간다’ 하고 교회 다녔으니까 데리고 가서 좀 키웠어요. 학교도 가고. 아버지도 아닌데. 서면초등학교야. 그 아이 공부하는데 뒤에 가서 가만 서서 보기도 하고 그랬어요. 가짜 아버지이지. 이게. 그런데 난 신경을 잘 써요. 자식이 없어도 학교 슬그머니 간다고. 부모인 것처럼, 학부형인 것처럼 하고 선생 가르치는 것도 본다고. 그러니까 선생이 ‘누군가’ 하고 힐끗 쳐다보기도 하고 그랬어요.
근데 한 1년인가 6개월인가 지났는데 작은 아버지가 찾아왔어. 찾아가야지. 이제 생각을 해봐요. 이북사람이야. 이제. 그 지금 잘 크는지 모르겠어. 지금 나이를 먹었다면 한 40, 50될까? 그런 일들이 많아요. 저는 좀. 그렇게 하는 것이 말하자면 복음처럼 생각을 했으니까. 근데 예수 믿으나 안 믿으나 그건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거예요.
하룻길을 가면서도 아이를 잊었다는 것은 유월절의 주인공, 예수님이 주인공이요. 유월절의 주인공이요. 이게 지금. 유월절의 주인공과 대화 없이 상관없이 절기를 지켰다는 의미가 되는 겁니다. 알겠어요? 신앙사상으로 들어가면 그렇게 들어가는 거요. 유월절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해방된 구원의 교훈에 무관심했다는 증거요 하나님의 뜻에 대한 교훈을 아이에게 들려주지 않았다는 증거요, 말하자면 알맹이는 없고 정신 사상 없는 절기를 지켰다는 말이 되는 겁니다. 당시의 유대 종교지도자들과 백성 전체가 그랬다는 거요. 심지어 이 장면을 보니까 부모도 그렇게 돼있어. 부모도.
절기 때가 되면 일가친척들과 이웃들이 올라가는 분위기 내려오는 분위기, 나그네 길에서 잡담분위기가 아무리 좋아도 구원의 주인공이 동행치 않았다는 것은 희망도 소망도 건설도 기쁨도 행복도 영광도 영원 궁극적 미래의 영능의 실력적 누림이 어디 있겠느냐? 없다. 예를 들면 학생이 학교에서 배우지 않고 놀고만 있다면 학생이라는 의미를 어디서 찾겠느냐? 말하자면 학생시절의 젊음 시간 활동을 어떻게 찾을 수 있겠느냐? 이미 다 흘러가 버렸는데. 버스 지나간 후에 손들면 어떻게 태워줘요? 아이가 없는데, 아이가 없다는 것은 여기서 미래가 없는데 길거리 잡담에 분위기 좋다고 그대로 갈 것인가? 인생생활에 잡담적으로 산다고 생명이 없는데 그게 그대로 가는 것이 좋겠는가? 되돌아서라도 아이를 찾으러 가야 하지 않겠는가?
찾으러 가면서 길에서 오고 가는 사람들에게 묻습니다. ‘요렇게 요렇게 생긴 아이를 보았느냐? 신발은 뭘 신고 위에 옷은 뭘 입고 바지는 무엇을 입고 머리는 어떻고 눈코는 어떻게 생겼고.’ 전기요금 나오는데 늘 잃어버린 아이들이 거기 나오지요? 많은 아이들이. 도대체 그 아이들이 어디로 갔을까? 난 궁금해요. 참 궁금해요. ‘그런 아이 어디 못 봤습니까’ 하고 물으면서 갑니다.
그러니까 이게 지금 사실은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알지를 못하는 거요. ‘아이가 어디만큼 따라오다가 어디서 떨어졌구나’ 이게 없고 출발시점서부터 따라오는 줄 알았는데 중간에서 떨어졌는지 처음서 떨어졌는지 거의 와서 떨어졌는지 이게 어디서 아이가 떨어졌는지 알지를 못 해. 이 무슨 말이냐? 교인들이 자기의 생명적 깨달음의 그 신앙정신이 어디서 떨어졌는지, 처음사랑이 어디서 떨어졌는지? 첫사랑 말고 처음사랑. 하나님의 사랑이 어디서 떨어졌는지 그걸 모르지. 뭐하다가 떨어졌는지 모르지. 알 리가 없지. 처음사랑도 모르는데 뭘 뭐가 어디서 떨어졌는지 어떻게 알아요? 참말로 이게 참 문제다. 이게 오늘날 기독교 안에 참 문제다.
예수 믿는 사람이 자기 속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뭐가 떨어져 나가는지 그것도 모르니 이게 참 문제다. 이게. 자기 속에 악령이 들어와서 판을 치고 있는지 귀신이 들어와서 판을 치고 있는지 어떤 잡된 정신이 들어와서 판을 치고 이게 한 바퀴 돌고 나가는지 모른다. 그래, 이 부모가 물어 물어 어디까지 왔어요? 지금 어디까지 온 거요? 물어 물어 어디까지 온 거요? 예루살렘까지 왔어요. 참.
44절-46절: 동행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룻길을 간 후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찾되 만나지 못하매 찾으면서 예루살렘에 돌아갔더니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저희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절기의식을 지키느라고 그 분위기 속에 돌아가느라고 구원을 버렸구나. 예수는 구원이요. 부모와 아들이라는 법적 이전에 부모와 구원은 생득적이다. 날 때부터. 우리 인간은 날 때부터 생득적이에요. 구원이 붙는 거요. 왜? 구원 때문에 인간 너를 만들었기 때문에. 인간 너를 만든 창조의 원인 동기 목적이 바로 구원이다. 구원이 뭐냐? 하나님의 성품으로 만들어서 신령천국에 들어가서 하나님 당신처럼 누리게 하는 거다.
왜 인간 자기를 하나님께서 인격자로 희로애락을 가진 자로 오각의 오감성을 가진 자로 감염성을 가진 자로 왜 그렇게 인격자로 만들어 놓았느냐? 인간 자기를? 그렇게 만든 그 하나님의 어떤 가치력을 자기가 알고 있습니까? 안 믿는 사람은 몰라요. 예수 믿는 사람은 아냐? 몰라요. 모르는 사람이 많아요. 그러나 우리교인들은 알아야 돼. 알고 있어야 되고. 법적 이전에 구원은 생득적이다. 날 때부터 관계가 들어있다 그 말이요. 인간과 구원은 기본적 관계입니다. 주님과 성도와의 관계는 영원 전 그리스도 안에서부터 나오는 겁니다.
아이를 버린 부모, 진리생명을 버린 교회, 구원을 버린 성도 교인. 신앙의 근본을 모르고 오다가다 만난 것은 버리기 일쑤이더라. 오다가다 만난 것은 버리기 일쑤이더라. 조만간에 통곡소리가 안 날까? 예수 믿는 거 옳은 진리이치 만나서 깨달아진 거 그냥 오다가다 만난 거요? 절기는 껍데기. 그 속의 진리생명의 예수는 내가 모시고 와야지. 알맹이는 자기가 모시고 와야지 축제분위기에 왜 들뜨는가? 왜 휩싸이는가? 이것을 모르면 누가 주격으로 살아온 것일까?
예수 12살 나이, 축제분위기는 아랑곳없습니다. 12살짜리가 축제분위기는 아랑곳없어. 어린애들 보면 축제하는데 막 잘 가지요. 나팔소리 쿵작쿵작하면 잘 찾아가고 고무풍선 띄워 놓으면 사달라고 보채고. 교훈이 문제이고 이 12살짜리가 정신 사상이 문제입니다. 축제분위기에 아랑곳이 없구나.
예수님을 사흘 후에 만났습니다. 삼일 동안 만나기 전까지 이 길 저 길 이 골목 저 골목 이 집 저 집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예수 찾느라고, 아니 자기 아들 찾느라고 얼마나 간장이 다 녹았을까? 얼마나 눈물로 범벅이 되었을까? 부모의 어리석음을 얼마나 후회했을까? 밤에 잠은 제대로 잤을까? 부모가? 참 아이 잃어버린 그 부모심정은 모를 거요. 구원 버린 그 심정 희망이 있을까요? 생명 버린 그 심정 희망 있을까요? 그걸 다 말해주고 있어요.
예수 구원 찾으려면 이웃이라고 다 아는 것은 아니더라. 가면서 물어봤잖아요? 알더냐? 모르더라. 이웃사람이라고 다 아느냐? 모르더라 그 말이요. 구원이 뭔지? 친족이라고 다 아는 것이 아니더라.
분위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분위기에 있지 않다. 성령님의 역사는 분위기에 있지 않다. 어디에 있느냐? 교훈의 근본을 찾아라. 그걸 가르쳐주고 있어요. 교훈의 근본을 찾아라. 교회분위기에 휩싸여요? 북치고 나팔 불고 율동하니까 그런데 휩싸여요? 교훈의 근본을 찾아라. 근본은 성경을 말해주고 있어요.
사흘 후에 찾았는데 선생들 틈에서 같이 앉아서 듣기도 하고 묻기도 합니다. 그러면 그 아이가 무엇을 좋아한다는 말이지요? 구슬치기 만화보기 오락게임 하기 영화보기 잠자기? 뭘 좋아해요? 못 속이잖아요? 예수는 무엇을 좋아했는가? 인간구원의 말씀이다.
인간구원의 교훈을 듣고 배우고 진리지식으로 성장되는 것은 성전에서 되는 정신이요 사상이요 거룩한 역사요, 예수님은 이런 곳에 계심이 틀림이 없는 겁니까? 그 장소에서 예수님의 사상을 찾으란 말이요. 이런 곳으로 부모가 직접 찾아왔으면 사흘 동안을 근심 걱정 안 하고 허송세월 보내지 않고 기쁨을 찾을 수 있었을 텐데 그 말이요. 성전으로 빨리 왔으면 될 텐데 왜 성전 밖에서 돌아다니고. 이건 사흘이지만 다른 말로 하면 삼십 년도 걸린 거요. 이게 지금. 교훈의 본질을 찾았더라면 그만큼 빨랐을 텐데 뭐하느라고 돌아다니고 돌아다니고. 삼십 년만 걸려요? 육십 년도 걸리고 평생 돌아다녀도 못 찾고 그대로 죽는 사람이 많아요. 목사도 그래요. 왜 그리 딴 곳에 가서 묻고 헤매는지? 사흘이 아니라 삼 년이 아니라 삼십 년을 헤매 다니지나 않았는가?
예배의식 순서 절차가 문제가 아니고 종교적인 풍속이 지금 문제가 아닙니다. 진리이치의 말씀의 깨달음이 없다면 거룩한 믿음의 성장이 안 되는 것이니 이것은 주는 자나 받는 자나 심각하게 생각을 하고 단정을 내릴 줄 알아야 한다. 성전 안의 선생들은 율법을 좔좔 외우는 율법 정통자들입니다. 예수님의 문답은 그 율법 속에 들어있는 심령골수를 쪼개는 하나님의 은밀한 뜻입니다. 그들의 정곡을 콕콕 찌르니 깜짝 깜짝 놀랄 수밖에 없구나.
해미에 있을 때에 신학도 보내고 남한 전국 각지로 성경을 마태복음서부터 문답을 해서 남한 전국 각지에 보내고 하니까 답을 써서 돌아오는 말이 ‘정곡을 콕콕 찌르기 때문에 부끄러워서 답을 못 쓰겠다. 답 쓰는 건 쉬운데.’ 아마 그럴 거요. 이게 마태복음 문제가 그럴 거요. 문제로 내놓고 답을 묻는 게 아니고 답을 먼저 내놓고 문제를 물으니 양심이 찔릴 수밖에? 신앙정답을 가르쳐놓고 ‘이제 어떻게 살래’ 하고 물으니 한 번 생각을 해봐요. 그 사람의 생각 본인의 신앙자세를 묻는 건데 왜 엄한 답을 하고 있어. 남의 말을 하라고 했어요? 그건 벌써 틀렸어. 신앙은 하나님 앞이요. 하나님 앞에 자기 자세.
선생들과 진리문답의 광경은 부모들이 보고 구경만 하라는 건지 아니면 그렇게 양육을 하라고 이렇게 쓰여 있는 건지 생각을 해야 한다. 오늘날 예수 믿는 부모들 자녀를 기르는 부모들 성경을 못 깨달으면 이게 생활하고 전혀 상관이 없어. 주일날 그저 왔다가 그냥 설교만 듣고 가는 것. 신앙생활은 생활이요. 자기 생활이요. 생활은 따로 하고 기도는 청산유수, 아주 그냥 얼음 위에 박 미는 것처럼 달달. 아무 소용없어. 신앙사상은 자기의 인격으로 들어가는 거요. 자기 생활이 되는 거요. 그런 자를 누가 정죄를 하겠어요? 진리사상으로 생활을 하고 있는데 누가 정죄를 하겠어요? 누가 정죄를? (계속)
(궁극교회 김경형목사님의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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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통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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