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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창1: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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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조용기 목사 |
참고 : | 2018.7.22 주일예배 설교 여의도순복음교회 |
서론
‘천지창조와 하나님의 말씀’이란 말씀에 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성령으로 거듭나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말에 있어서도 새로워져야 될 것입니다. 우리 입술의 말에는 놀라운 권세가 주어져 있습니다. 어떤 말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지고 인생이 달라지는 것이기 때문에 말에 조심을 해야 됩니다.
본론
1. 말씀으로 창조하신 하나님
말씀으로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지으실 때, 말씀이 그 만물의 재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창세기 1장 3절~5절)’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므로 우리에게 빛에 관해서 기초적인 상식을 가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으심을 받았기 때문에 날마다 하나님과 대화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뱀이 다가와 하와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하와는 마귀가 뱀의 형상을 하고 오자 뱀과 대화를 했습니다. 사탄의 꾐에 넘어가 하나님이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먹고야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세기 2장 17절)’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마귀가 뱀의 형상을 하고 와서 하와를 꾀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영이 죽고 더 이상 하나님과 대화할 수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사탄의 말을 듣고 죄를 짓자, 인간과 인간 사이의 언어도 변해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창세기 3장 12절에 보십시오.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언어가 살리는 언어가 아니라 정죄하고 비난하고 죽이는 언어가 되고 만 것입니다.
2. 우리를 살리신 예수님
우리를 살릴 수 있는 길은 다른데 없습니다. 예수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와서 우리 죄를 대속해주는 길 밖에는 살아날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가 두 번째 아담이라고 말합니다. 첫 째 아담은 우리를 죽음으로 이끌었으나 둘 째 아담인 예수님은 우리의 죄와 불의, 추악과 정죄, 저주를 걸머지고 대신 건져주신 두 번째 아담인 것입니다. 우리의 죽었던 영이 주님에 의해서 살아나기 위해서는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우리가 만나고, 예수그리스도의 영광을 얻어야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1절에 보면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허물과 죄로 우리는 철저히 죽었는데 예수님은 오셔서 우리를 살려 주신 것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언어도 살아나고 모든 것이 다 살아났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보면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 하셨습니다. 이전 것은 지나가버렸습니다. 주님이 폐해 버린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하실 때, 옛날 것은 다 청산해 버리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새로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영혼이 속사람이 새롭게 되고 만 것입니다.
3. 새로운 언어를 사용하라
3차원의 언어가 4차원의 새로운 언어로 바뀌었습니다. 새로운 언어를 사용해야 되는 것입니다. 4차원을 잘 모르고 또 모름으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성령이 4차원의 삶과 말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기 원합니다.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요 3:4~7). 예수님께서 오셔서 새 생명을 우리를 위해 주셔서 예수님을 구주로 모셔야만 4차원의 세계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1차원은 직선이고, 2차원은 평면이고, 3차원은 입체고, 4차원은 모릅니다. 우리가 지적 체험으로는 3차원까지밖에는 모릅니다. 점으로 된 것과, 평면과 입체는 보고 말하고 만져볼 수 있지만 4차원은 전혀 안 보이는 세계인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안 보입니다. 꿈꾸는 것, 안 보입니다. 믿는 것, 안 보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음성은 들리지 안 보입니다. 4차원은 안 보이는 세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 14:26)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4차원의 세계를 성령을 시켜서 보내주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신세계의 언어인 성경과 성령님의 계시의 은혜 등 구속 받은 언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이제 발전되고 향상된 삶을 살려면 성경은 4차원의 말씀을 집대성한 것입니다. 그 다음 성령님은 안 보이지만 우리를 도와주기 위해서 와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삶이 성경과 성령의 은혜를 쫓아서 살려면 발전해 나가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절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그러므로 예수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성경 말씀에 있는 4차원에 진리, 성령이 가르쳐준 4차원의 진리를 공부하는 것입니다. 우리 성경은 모두 다 4차원의 성령의 역사를 기록한 것이고 4차원의 영성을 따라서 우리를 깨닫게 하는 것은 보혜사 성령께서 그렇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안 보이는 새로운 세계에 들어가는 것이 중생하고 예수를 믿어 변화 받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3차원은 물질적인 세계지만 4차원은 물질적인 세계를 떠난 영적 세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위대한 복음전도자였던 D. L. 무디는 “성경은 정보를 위한 책이 아니라 변화를 위한 책”이라고 말했습니다. 성경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우리 삶을 변화시키는 강력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렵고 불안할 때 말씀을 읽으면 용기와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또 절망에 빠진 사람이 말씀을 읽으면 꿈과 소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4차원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명령하면 3차원적인 물질의 세계에 변화와 창조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것은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말씀에 의지해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4차원의 영성을 가지고 3차원의 세계를 명령하면 3차원의 세계가 순복을 하는 것입니다. 차원에 높은 곳에 순종을 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4차원의 세계를 깨달은 사람이 이 세상에서 무엇을 다스려도 다스림을 성공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마음에 가득하고 그 말씀을 삶에 사용하면, 놀라운 변화를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것은 말씀을 읽고 묵상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말씀에 의지해서 기도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4차원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명령하면 3차원적인 물질세계에 변화와 창조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새로운 세계와 창조를 위해서는 새로운 말씀을 사용할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잠언서 20장 15절에 “세상에 금도 있고 진주도 많거니와 지혜로운 입술이 더욱 귀한 보배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금이나 진주와 같은 보배보다 지혜롭게 말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말은 반드시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인 것입니다. 씨를 심으면 열매를 맺듯이, 우리 입에서 나가는 말은 좋은 결과든 나쁜 결과든 결과를 반드시 낳아주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 중 언어를 사용하는 피조물은 인간 밖에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동물도 언어를 사용한다고 주장하지만 그런 것은 언어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은 인간만이 언어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우리 입술의 말은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군대에 가면 넓은 연병장에 군인들이 수백 명 모여서 있는데 지휘관이 “열중 쉬어! 차렷! 앉아! 일어서!” 이렇게 명령하면 수많은 군인들이 그 말하는 대로 움직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말을 하는 사람의 신분 때문입니다. 지휘관이라는 신분 때문에 그 말에 권세가 있는 것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한다면, 우리 입의 말에 얼마나 큰 권세가 있겠습니까?
말의 권세를 잘 아는 사람이 성경에 나오는데 바로 자기 하인을 치료해 달라고 예수님을 찾아온 백부장입니다. 그는 백 명의 부하를 거느린 지휘관으로서 자기가 부하를 말하면 그대로 이루어진다고 늘 잘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자기 하인을 고치러 집으로 간다고 하셨을 때 “집으로 오실 필요 없습니다. 그저 말씀만 하셔도 나을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을 칭찬하셨던 그의 말을 한번 들어보십시오.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마태복음 8장 8절~9절). 그는 예수님 말씀이 권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우리말에 권세가 있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 예수 믿는 사람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어떻게 살꼬? 하는 속에 말을 하면 그 말에 권세가 따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 자기가 말을 하면 자기 말에 권세가 따르고 그 말이 환경을 만든다는 것을 깨달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입술의 말을 듣고 계십니다. 시편 94편 9절은 “귀를 지으신 이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이가 보지 아니하시랴”고 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은 들으시고 그대로 행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민수기 14장 28절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야훼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늘 듣고 계십니다.
야고보서 3장은 말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 주기 위해 사람의 혀를 큰 배의 방향을 결정하는 작은 키에 비유합니다. 야고보서 3장 4절로 5절에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고 했습니다. 우리 입술의 말이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큰 일이 우리말이 좌우로 결정시키는 것입니다. 잠언 18장 21절에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고 말합니다. 죽고 사는 것이 입술의 말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입술의 말을 잘 사용해야 합니다.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말을 하면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오고 긍정적이고 믿음의 말을 사용하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예수님을 믿음으로 새 사람이 된 것처럼, 구원 받은 신자는 이제 성령님이 인도하시는 말을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게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새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새 사람이 되었으면 우리의 말이 새로운 말이 되고, 우리가 새로운 말을 할 때, 마음에 나오는 말이 창조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지은 것 같이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중생에서 우리의 하는 말로서 우리 주위의 모든 것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말에 권세가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입술의 말로 자녀들을 축복하면 귀한 자녀들이 되고, 자녀들을 비평하면 나쁘게 되는 것입니다. 컵에 물을 잔뜩 채워서 그 책상 위에 얹어놓고 욕을 합니다. 매일같이 그 물을 욕을 하면 일주일 내에 물이 썩어버립니다. 그런데 똑같은 병에 칭찬하고 찬양을 하면 물이 그렇게 생생하고 좋은 물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입술의 말이 이제는 얼마나 힘이 있고 능력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말로써 창세기에 많은 것을 한 것처럼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는 새 사람이 되고,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권세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생각하는 것이 이제는 창조적이고 말하는 것에 권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하든지 말로써 칭찬하고 창조적인 축복을 하고 그렇게 나가면 일도 안 될 것이 되고, 모든 것이 평안해 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새 사람이 되어 구원받은 신자는 성령님이 곧장 임하여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협조해서 우리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게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새 생명과 성령님의 은혜와 창조적인 능력이 우리에게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갖게 하고 4차원의 영성을 누리게 한 것입니다. 4차원의 영성은 새로운 세계인 것입니다. 새로운 생각, 새로운 꿈, 새로운 믿음, 새로운 언어. 이것이 4차원의 영성인데 새로운 세계에 새로운 말을 통해서 새로운 창조를 통해서 우리가 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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