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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2:47-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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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 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2장 47절-52절.
47절-50절: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기이히 여기더라 그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 모친은 가로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양친이 그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
나이 먹고 세상 경험 많고 율법에 능통한 선생들에게 묻고 답할 때 예수님의 지혜로운 그 문답은 어디서 나온 것이냐? 어디서 나왔어요? 세상 대학공부를 많이 한 데서 박사장을 딴 데서 나온 겁니까? 한 마디로 예수님께서 묻는 문답은 하늘의 뜻을 가진 하늘의 것이냐 아니면 땅의 이해타산 평가성을 가진 땅의 것이냐? 하늘의 것입니까 땅의 것입니까? 예, 하늘의 것.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이 성경문답을 하는 것이 주장하고 대답하고 소원 목적하고 판단하는 그 판단성이 땅의 것입니까 하늘의 것입니까? ‘예수 잘 믿어 세상에서 복 받고 잘 살자.’ 그 말 자체가 나쁩니까 좋습니까? ‘예수 믿어 가난하게 살고 빌어먹어라’ 그러면 그 말 자체가 좋습니까 나쁩니까? 얼른 얼른 대답을 해요. 왜 유구무언이요? 대답이 분명해야 돼요. 알지만 대답을 해야지. ‘예수 믿고 세상에서 복 받고 잘 살다가 부르시면 천국 가자’ 그 얼마나 좋습니까? 좋지요? 대부분 전도지나 가만히 보면 내용이 한 마디로 세상에서 잘되는 그런 내용으로 거의가 들어있어요.
근데 그게 땅의 거요 하늘의 거요? 예수 믿는 목적이 땅으로 돼있습니까 하늘로 돼있습니까? 땅으로 돼있습니까? 그럼 그렇게 가르치고 소원 목적이 되는 것은 땅의 것이 분명합니까? 안 믿는 사람이 들을 때에 다 좋아하는데 우리 주님은 하늘로부터 오실 때에 땅의 것을 주려고 왔어요 하늘의 것을 주려고 왔어요? 그래요. 미국사람이 한국에 오면 미국 것을 주려고 그래요 한국 것을 주려고 그래요? 그 사람이 어디서 출처 출발을 했느냐? 어디서 났느냐? 어디서 경험하고 문물을 닦았느냐? 그 사람 입에서 나오는 것은 그 나라의 것이더라 그 말이요. 맞잖아요?
그러면 기독교의 복음이 뭡니까? 하늘의 것이요 땅의 것이요? 하늘의 것.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 조만간에 부르시면 하늘로 올라가. 근데 왜 이 땅에다가 두었느냐? 얼른 불러버리지? 하나님의 자녀요 당신의 백성이 이 땅에서 나그네 생활하는 동안에, 신령한 천국은 하나님의 영능의 실력으로 만들어지지 아니하면 안 되기 때문에 신령한 하나님의 말씀의 천국의 이치를 밝혀. 그리고 자기 속에 하늘의 도덕성으로 하늘의 지혜지식성으로 들어가게 만들려고 이 땅에 자기를 두었고, 그리고 미운 사람 고운 사람 크고 작은 사건 환경을 자기 앞에 지나가게 하고 당하게 하고 깨달으라고 하는 거다.
그런데 그 이치를 무시하고 인간 자기 사고방식 안 믿는 사람하고 똑같은 사고방식으로 예수 믿는다고 생각을 하니 이것이 땅의 것이지. 땅의 것으로 이 마지막 시대의 교회가 충만해졌어. 그럼 어떻게 돼요? 쓰레기가 한두 개 있으면 골라내지만 워낙 많으면 어떻게 해요? 불질러버린다.
사람도 쓰레기 같은 사람이 있습니까? 감옥 속에 가면 어떻게 보화 같은 사람이요 다 쓰레기 같은 사람이요? 그래, 다 같은 사람인데 믿는 사람이 있고 안 믿는 사람이 있고, 현재적으로 보면 안 믿어도 믿을 사람 있고 또 예수 열심히 믿고 교회 다니다가 어떤 일로 인해서 교회 안 다닐 사람도 나온다. 나오더라. 다 같은 집안 식구인데 다 같은 자식인데 나가서 죽어서 안 들어오는 사람들도 있더라. 형제들도 있더라. 맞잖아요? 죽어도 더럽게 죽는 사람도 있고요. 참 귀하게 죽는 사람도 있고. 우리는 이 땅에서 그런 걸 다 보면서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느냐? 하나님 앞에서? 예수님의 문답은 하늘의 것. 하늘로부터 왔으니까. 참 사람으로 왔으니까.
이제 우리는 처음에는 땅의 사람이었어. 근데 예수님의 덕으로 하늘의 사람으로 되었어. 되었긴 되었는데 아직까지 속마음이 땅의 것으로 냄새 나는 것으로 썩어질 것으로 변질될 것으로 많이 차 있어. 예, 그렇게 되면 자기 인격 면에서 올라가겠느냐 이게 내려가겠느냐? 참 영리하고 똑똑한 사람은 말 하나 하나가 사람의 마음을 보면서 사람을 올려줘. 맞지요?
아무리 나이 먹었어도 사람이 본인은 모르는 거요. 사람 만드는 것을 모르고 늘 먹고 마시고 ‘돈 돈’ 돈 있으면 묻지마 관광이나 가고. 그러니 그 머리통 속이 뭐냐 그 말이요. 그 사람 속에 뭐만 들었느냐 그 말이요. 이렇게 달라. 다 같이 예수 믿지만 예수 믿는 사람이 다 똑같은가? 아니, 달라.
어떻게 믿는 것이 바른 것이냐? 어느 나라에서든 낮고 천하든 또 존귀 영광스럽든 성경은 하나인데 성경으로 너도나도 성경으로 성경으로 성경의 것으로 자기 속에 집어넣으면 똑같을 텐데 어찌하여 한 성경을 보고 한 하나님을 부르짖으면서 왜 예수 믿으면서 어떤 사람은 땅의 것을 소원 목적하고 어떤 사람은 하늘의 것을. 자기는 뭐요? 오늘날 자기는 무엇을 구하느냐? 무엇을 구하고 사느라고 돌아다니느냐? 말하자면 무슨 목적으로 사느냐 그 말이요? 신령하고 거룩하고 우리의 영인성장을 위해서, 쉽게 말해서 하나님으로 닮는 사람을 위해서 그 말이요.
주신 말씀은 세상에서 선악과 먹고 나온 저주받고 타락된 그 지식과 지혜와 도덕성 가지고는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기란 불가능한 겁니다. 하늘의 일을 땅에 속한 일처럼 말하면 그것이 되는 말인가? 이치가 맞는 말인가 그 말이요? 그래서 예수님이 문답을 할 때 선생들이 놀라는 겁니다. 그래서 선생들이 놀라는 거요. 말씀 줄줄 성경을 줄줄 외우는 그런 선생과 문답을 했는데 선생들이 놀라 자빠져 버렸어.
진리이치의 말씀에 마음이 찔리면 회개를 하고 은혜를 받을 줄 알아야지 만일 인간의 감정이 솟구쳤다가는 이건 저주의 사람이 되는 거다. 일반적으로 집에서 부모님이 옳은 말하면 자식이 듣기 싫어가지고 문을 확 닫고 나가버리지요? 그럼 그 자식이 어찌 되겠나? 앞길이 훤하게 열리지요? 그 성격 그 성질 가지고 세상 어디를 간들 반겨줄 곳은 어디겠느냐? 그런 모임은 깡패집단밖에 없는 거다. 그러면 그 집단에 있으면 감옥 문이 훤하게 열려 있는 겁니까 닫혀져 있는 겁니까? 감옥이 입을 딱 벌리고 있어. 어서 들어와. 어서 들어와.
어린 예수가 선생들 틈에 앉아서 문답하는 장면을 본 부모는 어리둥절합니다. 그렇지요? 그리고 하는 말투로는 ‘부모를 따라서 집으로 와야지.’ 부모가 하는 말씀이 ‘집으로 와야지 여기 앉아서 지금 뭐하느냐’ 그 말이지요? ‘부모에게 사흘 동안을 근심 걱정으로 잠 못 자게하고 자식 된 도리로서 그래서야 쓰느냐’ 그 말이지요? 그러니까 속에서 뭐가 왈칵 올라왔다 그 말이요. 속에서.
이 부모의 말씀이 일반적으로 맞는 말입니까 틀린 말입니까? 그래요. 일반적으로 맞는 말이에요. 누구에게 물어봐도 믿는 사람에게 물어봐도 ‘그 말 맞다. 예수 네가 잘못했다.’ 예, 그리고 안 믿는 사람한테도 물어보면 ‘맞다. 예수가 잘못했다. 부모 말이 맞아.’ 그러니까 믿는 사람의 해석과 안 믿는 사람의 해석과 잘 맞아 돌아갔습니까? 맞아요? 맞는다고. 딱 맞는 것은 이 부모님의 지식이 틀린 겁니까 안 믿는 사람의 지식이 틀린 겁니까? 분석해야 돼. 그래야 교인들 속에 자기 속에 신앙 믿음이라고 하는 고 지식의 분별이 나가는 거요. 칼을 가지고 두부를 딱 자르듯이 분별이 나가는 거다. 현재 예수 믿는 자기가 신앙의 의미가 안 믿는 사람과 똑같다고 그러면 자기가 저질입니까 안 믿는 사람이 저질입니까? 자기가 저질이요. 차원이 똑같단 말이요.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그러면 우리가 이치적으로 볼 때에 하늘의 생각을 가지고 풀어야 된다. 땅의 생각을 가지고 풀 수는 없다. 성령의 감화 감동으로 쓰인 것이다. 귀신의 감화 감동으로 쓰였다면 점쟁이가 잘 풀 거야. 그 이치를 알아야 돼요. 일반적으로는 맞는 말이요. 부모의 말이. 그러나 영적 신앙정신 사상적으로 보면 이건 안 맞는 말이요. 안 맞는 말이다. 안 맞아요.
그래, 이제 그 보니까 부모님이 하신 말씀이 맞는 말이요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맞는 말이요? 이해가 안 가지요? 지금? 여기 계신 분들도 이해가 안 갈 거요. 지금. 그건 왜 그러냐? 말 표면 속에 은밀한 뜻이 들어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사고방식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거다. 예수님이 모친 마리아를 보고 ‘여자여’ 그랬다 말이요. 이게 맞는 말이요? 유교의 삼강오륜의 지식 가지고는 성경은 못 풀어. 일반 도덕성적 개념 가지고는 성경을 풀면 안 돼.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사고방식을 타락된 인간 자기의 차원으로 끌어내린 이치가 돼버려. 오늘날 교회가 거의가 그렇단 말이요. 거의가 그래.
예수 바로 믿으려면 지식의 기준을 바로 하고 구별하고 분별하고 바로 가져야 돼. 바로.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의 것을 가져야지. 예수 믿는다 그러면 예수님의 것을 내가 가져야지 왜 안 믿는 사람 이방 불신적 고 지식의 개념을 가지고 예수 믿으려고 그래. 이것부터 바꿔라. 안 바꾸면 너는 예수 똑바로 못 믿는다. 아무리 열심 충성봉사해도 너는 신앙 믿음으로 못 올라간다. 올라갈 수가 없다. 지식부터 털커덕 걸려있기 때문에.
어머니 말 속에는 인간의 생각으로 된 인정정실로 예수님을 보고 따라오라는 것. ‘인정정실로 따라오너라’ 그 말이요. 인정정실로 따라오너라. 이게 신앙에 금물이요. ‘하나님의 생명이치 도덕이치 신적인 도덕이치. 예, 정확한 하나님 말씀에 이치대로 따라오너라’ 이건데. 교훈은. 부모의 말씀인즉 그 속에 풍겨져 나오는 냄새가 인정정실로 따라오너라. 인정정실로 예수 믿어요? 예수 믿는 거?
이 의도성을 아는 예수님은 49절에 뭐라 그랬지요? 아까 읽었지만 다시 한 번 읽어봐요.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자 그러면 당시의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 육신의 아버지는 누구요? 요셉. 그럼 예수님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그럼 예수님은 아버지가 두 사람이네. 아버지가 두 사람이 돼버렸어? 어느 아버지가 참 맞는 아버지요? 육신의 아버지는 자기 내버려두고 죽을 거요. ‘나 먼저 간다. 뒤따라오너라.’
예, 육신의 아버지는 자기 입에 맞으면 담배 맛도 그렇게 좋대요? 담배 맛이 그렇게 좋아요? 맛이 좋으면 ‘아들아, 이 맛이 꿀맛이란다. 너도 한 번 피워봐라’ 하고 좀 주면 안 되나? 안 주니까 이 중학생 초등학생 고등학생 아이들이 ‘얼마나 맛있나’ 하고 이렇게 ‘푸’ 하니까 입에서 코에서 연기가 나가는 그게 멋있게 보이는 모양이요. 그 참 희한하지요? 사람 콧구멍에서 연기가 나오는 그것이 멋있게 보이는 모양이요. 아예 입 안에다가 불을 때지.
예,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나를 찾으셨나이까.’ 찾는 이유가 누가 주격입니까? 지금 이게 우리교회는 좀 어렵습니다. 졸면 못 들어요. 순간의 이치를 놓치면 멍해져 버려요. 사람이. 자기 속에 세상 것을 갖고자 합니다. 가령 그러면 자기 속에 뭐가 들어있어요? 세상욕심이 들어있습니까? 맞아요? 확실하지요? 그러면 세상욕심으로 사는 그 주격, 자기 속에 세상이 주인으로 들어있다 그 말이요. 그런 의미에서 주격. 하나님의 말씀의 이치를 깨닫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한다면 거기는 하나님이 계실 거고 성령의 감화 감동이 있을 거고, 간단히 말해서 하나님이 계신다. 그 자기 주격에는 하나님이 계신다. 생각 마음 차이에서 이렇게 달라. 이렇게 달라요. 그건 뭘 봐서 아느냐? 말속의 성질을 봐서 안단 말이요. 질을 봐서 안단 말이요. 아, 그래서 ‘저 사람 속에 귀신이 들었구나. 성령님이 역사하는구나. 악령이 역사가 되고 있구나’ 그거 금방 나온단 말이요.
누가 주격이냐? 찾는 이유가 누가 주격이냐? 인간 부모욕심으로 찾는 겁니까? 인간이라고 하는 부모욕심으로 예수님을 찾는 겁니까? 신앙심을 가지고 찾는 겁니까 부모욕심으로 찾는 겁니까? 그거 잘 안 돼요? 예수님의 말씀이 ‘내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될 줄을 모르십니까?’ 그러니까 예수님이 사람으로 나왔으니 어린 아이로 자라면서 예수님의 마음속에 누구를 참 아버지로 갖고 있는 겁니까? 쉽게 얘기합시다. 그럼 요렇게 또 봐요. 예수님이 나시는 것은 마리아와 요셉하고 이렇게 몸을 붙여서 예수님이 난 겁니까 말씀으로 난 겁니까? 그러니까 예수님의 말씀이 맞는 말이지요?
우리 모두는 자기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을 아버지라 그럽니까? 그건 왜 그래요? 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그래요? 그거 자기 아버지가 들으면 ‘너 이놈의 새끼, 네 아버지는 여기 있는데.’ 진리로 낳았어. 예, 자기의 육신의 아버지라도요 사람을 만드신 이는 어머니 모태를 빌려서 아버지의 피를 어머니와 부정모혈로 이렇게 합쳐서 사람을 만드신 이는 하나님이란 말이요. 부모 제 마음대로 만들 것 같으면 왜 딸만 낳고 왜 아들만 낳고 그래요? 자기 마음대로 된다는 거요 안 된다는 거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되는 거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고 우리의 영은 신령천국에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요.
육신의 아버지는 이 세상에서 육신적으로 양육 그것밖에 별로 없어요. 신앙의 아버지가 더 되어있다면 육신보다도 신앙적으로 이걸 더 신경을 써서 내려가게 할 거란 말이요. 그게 이제 ‘아브라함의 믿음의 아버지’ 요렇게 들어가는 거요. 그냥 부모하고 달라요. 신앙의 부모는 그냥 부모하고 달라요. 신앙의 부모는 하나님의 축복이 그 사람 속에 영원히 그리고 세상 끝 날에 하늘나라로 가서도 존귀 영광자로 되게 만드는 이게 들어있어요. 신앙의 부모는. 그러나 거짓된 신앙의 부모는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거 그 강조로 들어가 있어요.
이게 거짓된 종들이고 하나님 앞에 은밀하게 따지면 육신의 부모도 자식에게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라’ 이런 식으로 들어가면 돈 많이 벌기 위해서 얼마든지 정신 마음 정조를 다 팔아버리고. 부자 살는지 못 살는지 빨리 죽을는지? 부모의 교육도 그러면 안 되지요. 육신의 부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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