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햇볕같은이야기는 최용우가 1만편을 목표로 1995.8.12일부터 매일 한편씩 써오고 있는 1천자 길이의 칼럼입니다. 그동안 쓴 글이 15권의 단행본으로 만들어져 인터넷 교보문고에서 판매중입니다.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동의 없이 가져다 쓰셔도 됩니다. 책구입 클릭!

욥기를 읽기 시작하며

2019년 하동 최용우............... 조회 수 237 추천 수 0 2019.04.19 06:28:13
.........

hb6348.jpg

♣매일 아침차 한잔 마시면서 전해드리는 햇볕같은이야기 그 6348번째 쪽지!


0 욥기를 읽기 시작하며


성경 욥기는 독특한 책입니다. 성경 중에 창세기보다도 더 먼저 쓰여졌다고도 하고, ‘욥’이 실제 인물이 아니라고도 하고, 다른 종교의 사상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고도 합니다.
욥기의 큰 주제는 “죄가 없는 사람이 왜 고난을 당하는가?”입니다. 이에 대해서 욥과 세 친구와 엘리후의 논쟁을 통해서 세 가지 사상적 큰 흐름을 따라갑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는 이 세 흐름 중에 어느 흐름을 타고 있는지 생각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로, 세 친구들은 욥이 고난을 당하는 것은 뭔가 숨겨진 죄가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정의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성경 말씀대로 살면 복을 받고 그렇지 않으면 벌을 받는다는 권선징악(勸善懲惡)입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설교쥬? 현대 교회들은 거의 세 친구의 주장과 같은 설교를 합니다.
둘째로 엘리후는 욥이 고난을 당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욥을 연단하기 위하여 징벌, 고난, 어려움을 주셨다고 합니다. 엘리후의 주장은 유대교 경전에도 있고, 신약 성경에도 있고, 오늘날 현대 교회 강단에서도 공공연하게 설교를 하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셋째로 욥은 자신은 잘못한 것이 없다. 나는 내가 고난을 당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첫 번째, 두 번째 충고를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그냥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현대 교회 강단에서는 거의 하지 않는 설교입니다.
도대체 욥은 왜 고난을 당했을까요? 욥기서는 그에 대한 답을 시원하게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읽는 사람이 스스로 답을 느낄 수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세 친구들이나 엘리후가 아니라 욥을 인정하고 바라보셨다는 것입니다. ⓒ최용우


♥2019.4.19. 쇠날에 좋은해, 밝은달 아빠 드립니다.


댓글 '2'

임경수

2019.04.20 00:02:02

아멘입니다

들꽃601

2019.05.09 07:36:16

드디어 욥기를 다 읽었습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6371 2019년 하동 영혼의 무게 [1] 최용우 2019-05-21 393
6370 2019년 하동 고령화 사회 [1] 최용우 2019-05-20 187
6369 2019년 하동 도무지 [2] 최용우 2019-05-17 326
6368 2019년 하동 치매(癡?) [1] 최용우 2019-05-16 269
6367 2019년 하동 믿음의 디테일 [4] 최용우 2019-05-15 278
6366 2019년 하동 지식과 믿음 최용우 2019-05-14 309
6365 2019년 하동 고난 받는 특권 [1] 최용우 2019-05-13 178
6364 2019년 하동 죽음은 복이다 [4] 최용우 2019-05-11 286
6363 2019년 하동 개혁과 혁명 [2] 최용우 2019-05-10 215
6362 2019년 하동 팔의론(八醫論) 최용우 2019-05-09 203
6361 2019년 하동 간접적인 대화 [1] 최용우 2019-05-08 185
6360 2019년 하동 축복의 대화 [3] 최용우 2019-05-07 315
6359 2019년 하동 소수와의 대화 최용우 2019-05-04 138
6358 2019년 하동 간헐적인 대화 최용우 2019-05-03 190
6357 2019년 하동 직접적인 대화 [1] 최용우 2019-05-02 179
6356 2019년 하동 쌍방향 대화 [1] 최용우 2019-05-01 198
6355 2019년 하동 성경을 머리로 [1] 최용우 2019-04-29 203
6354 2019년 하동 성경을 손으로 최용우 2019-04-26 232
6353 2019년 하동 성경을 입으로 [1] 최용우 2019-04-25 236
6352 2019년 하동 성경을 귀로 [1] 최용우 2019-04-24 214
6351 2019년 하동 성경을 눈으로 [1] 최용우 2019-04-23 221
6350 2019년 하동 성경을 읽는 5가지 방법 [3] 최용우 2019-04-22 334
6349 2019년 하동 낙태(落胎) 최용우 2019-04-20 159
» 2019년 하동 욥기를 읽기 시작하며 [2] 최용우 2019-04-19 237
6347 2019년 하동 그냥 좋기만 한 것이 아님 [2] 최용우 2019-04-18 200
6346 2019년 하동 땅의 사람과 하늘의 사람 [3] 최용우 2019-04-17 370
6345 2019년 하동 하나님은 예쁜가 미운가 최용우 2019-04-16 192
6344 2019년 하동 천국의 보상 [1] 최용우 2019-04-15 239
6343 2019년 하동 혹시 모를 4월 어느 날에 [2] 최용우 2019-04-13 303
6342 2019년 하동 스승님과 책 최용우 2019-04-12 199
6341 2019년 하동 본질에 대한 고민 최용우 2019-04-11 211
6340 2019년 하동 말도 안 되는 사랑 최용우 2019-04-10 360
6339 2019년 하동 성추행 최용우 2019-04-09 205
6338 2019년 하동 영혼의 생명 최용우 2019-04-08 222
6337 2019년 하동 육체의 생명 [1] 최용우 2019-04-06 215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