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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지어져 가는 교회

에배소서 이익환 목사............... 조회 수 764 추천 수 0 2019.04.26 23:5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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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엡2:19-22 
설교자 : 이익환 목사 
참고 : 텔아비브욥바교회 http://www.telavivchurch.org 

텔아비브 욥바교회 샤2018년 1월 20일 설교 이익환 목사


에베소서 3 함께 지어져 가는 교회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엡2:19-22)

 

2018년도 들어 에베소서 말씀을 통해 교회론에 대해 살펴보고 있다. 에베소교회는 바울이 2년 반 동안 머물며 가르쳤던 교회다. 그의 사역 중에 가장 공을 들였던 교회였다. 바울은 이방인들 중심으로 이루어진 에베소교회가 교회로서 든든히 세워져가길 원했다. 당시는 교회라는 모델 자체가 많지 않았던 때라 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교회가 어떤 공동체인지 가르치길 원했다. 오늘 에베소서 2장 말씀을 통해 우리는 교회로서 어떤 부르심이 있는지 함께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바울은 먼저 에베소교회 성도들이 예수님을 믿기 전 어떤 존재였는지를 말한다. 2:1-3,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때에 너희는 가운데서 행하여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에베소교회 성도들은 원래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들이었다.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르던 자들이었다.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았기에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수 밖에 없던 자였다. 이것은 다름 아니라 예수 믿기 전 우리의 모습이다.

 

바울은 결론적으로 예수 믿기 전 에베소교회 성도들의 정체성을 이렇게 표현한다. 엡 2:12,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밖에 있어야 하는 사람은 얼마나 불쌍한 존재인가?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언약에 초대받지 못하고 오랜 시간 언약 밖에 있어야 했다. 남 얘기가 아니다. 구원받기 전 우리 얘기다.

 

바울이 굳이 과거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뭘까? 그것은 언약 밖에 있었던 우리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통해 교회 안으로 들어온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사건인지를 깨닫게 하기 위함이다. 바울은 말한다. 엡 2:13-14,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전에는 멀리서 겉돌 수밖에 없었던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언약 안으로 가까이 들어오게 된 것이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게 된 것일까? 그것은 예수님이 제물되어 죽으심으로 유대인과 이방인들 사이에 막힌 담을 허무셨기에 가능하게 된 일이다. 예수님 당시 예루살렘 성전에는 성전 주위 사면으로 담이 있었다. 이 담은 이방인의 뜰과 성전을 구분해 주는 담으로 이방인은 이 담 너머의 세계로 들어갈 수 없었다. 이 성전담 벽에는 경고 문구가 곳곳에 새겨져 있었다. “이방인은 안쪽 뜰과 성소 주변의 난간 주변으로 들어올 수 없다. 들어오다가 잡히는 모든 사람들은 죽을 것이다.” 이 말이 라틴어, 헬라어, 히브리어로 써 있었다. 우리가 이천년 전에 태어났다면 우리도 이런 차별을 겪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피로 성전의 담이 무너진 것이다. 더 이상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분이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이방인인 우리들에게 막혀있던 구원의 길이 열리게 되었다. 거기엔 하나님의 목적이 있었다. 엡 2:15,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목적은 서로 원수였던 유대인과 이방인이 이제는 한 새 사람이 되어 화평을 이루는 것이었다. 이제는 둘이 서로 남남이 아니라 함께 하나님께 나아가는 백성으로 부름받은 것이다. 이것은 곧 한 몸된 교회로의 부르심을 뜻하는 것이었다. 이제 에베소를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이방인 교회가 형성되는 시점에서 이 말씀은 너무도 필요한 메시지였다.

 

예수님은 십자가로 이미 우리가 한 새 사람을 이룰 조건을 완성하셨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나와 다른 사람과 한 새 사람의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한 새 사람에게 요구되는 것은 적극적인 샬롬이다. 원수된 것이 없는 화목된 관계를 맺는 것이다. 지금 여러분 주변의 관계 속에서 원수같은 사람이 있지는 않은가? 원수까지는 아니어도 적극적인 샬롬의 관계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자. 예수님은 십자가로 원수됨을 소멸하셨다. 에베소서 2:16-17,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결국 십자가가 원수됨을 끊고 한 새 사람을 이루는 비결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도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선택할 때 한 새 사람을 이루게 된다. 우리의 이성적 판단은 십자가가 아니라 선악의 열매를 따르려는 속성이 있다. ‘옳고 그르다’는 나의 판단으로 다른 사람을 대하려는 마음이 우리에게 있다. 그러나 우리가 선악의 열매를 선택할 때 관계는 죽는다. 나는 선민이고, 너는 이방인이라는 담이 그어질 뿐이다. 거기에 샬롬이 없고 한 새 사람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죽고 십자가를 선택할 때 관계가 산다. 담이 무너진다. 평화가 오고 한 새 사람이 지어지는 것이다. 새 사람이라는 것은 새로운 종류의 인류를 말한다. 그것은 더 이상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구분되지 않는 관계이다. 그것은 지위가 높은 사람, 천한 사람으로 차별되지 않는 관계이다. 그것은 너와 나로 구분되지 않는 한 사람으로 존재하게 되는 관계이다. 이것이 바로 교회인 것이다. 한 새 사람은 결코 혼자 독립적으로 이룰 수 없다.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십자가로 내 마음의 담을 허물 때 한 새 사람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바울은 이어서 교회로 부름 받은 우리는 더이상 외인도 나그네도 아니요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라고 선언한다. 엡 2: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교회로 부름받은 우리는 하나님의 보호 아래 똑같은 권리를 누리는 하나님 나라 시민이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 안에서 우리는 신분이나 계급이나 다른 어떠한 이유로 차별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바울은 교회로 부름 받은 우리들이 하나님 나라의 시민일뿐 아니라 또한 하나님의 권속, 패밀리라고 표현한다. 우리가 남이 아니라 예수님의 피로 맺어진 가족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권속은 대가족을 말한다. 대가족의 특징이 있다. 홀로 조용히 살 수 없다. 대가족은 서로 부딪치고 부대끼는 일들이 많다. 그러나 그런 관계 속에서 인격이 훈련된다. 서로 양보하고 포용하며 원만한 관계를 맺는 훈련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교회가 그런 대가족과 같은 공동체라는 것이다.

 

가족끼리는 싸우기도 한다. 화가 나기도 한다. 미워지기도 한다. 인간적인 모습이 다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적인 약점이 드러났다고 가족 구성원에게 퇴사를 강요할 수 없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교회는 천사들이 모인 곳이 아니다. 죄인들이 모인 곳이다. 시간이 갈수록 인간적인 약점이 드러나고 보이는 곳이 교회다. 그러나 교회는 대가족이기에 서로 용서하는 것을 배울 수 있는 곳이다. 서로 싸울 수도 있지만 결국 서로를 이해하고 세워주는 관계로 자라가는 것이 교회 공동체인 것이다.

 

바울은 이어서 교회를 성전으로 묘사하면서 그 성전이 세워진 터와 기초에 대해 말한다. 엡 2: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사도와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다. 교회가 사도와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었다는 것은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과 뜻 위에 그 터가 세워져야 함을 말한다.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세워지지 않는다면 교회가 아무리 가족적이라 해도 그것은 친목단체에 불과 한 것이다.

 

또한 성전에는 모퉁이돌이 있다. 모퉁이돌은 다른 부분들과 연결되어 건물을 이루어가는 기초석이다. 교회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기초석으로하여 세워져야 함을 의미한다. 사람의 능력이나, 재물이나 다른 어떤 것이 교회의 기초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바울은 말한다. 2:21-22,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바울은 교회를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성전으로 표현했다. 현재 진행형이다. 교회인 우리가 완성된 사람들이 아니라 여전히 공사중인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완성을 향해 계속 세워져 가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우리 중 어느 누구도 혼자 완성된 교회의 모습을 갖출 수 없다.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우리는 서로 도와야 한다. 서로 안에 미완성인 모습을 볼 때 우리는 ‘아직 공사중이시구나’라고 생각하며 인내해야 한다. 그 과정이 불편할 수 있다. 그러나 불편함을 감당하는 것 역시 함께 지어져 가는 과정인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함께 지어져가는 교회로 부름을 받은 것이다.

 

우리 욥바교회는 텔아비브 욥바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교회가 되라고 2007년에 세워졌다. 1대 담임목사님과 여러 부교역자들, 그리고 거쳐가신 많은 성도님들의 기도와 헌신의 터 위에 세워져 왔다. 그리고 여전히 부족하지만 지금까지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공동체로의 부르심을 감당하고 있다.

 

욥바교회 정관에서 우리 교회 다섯 번째 비전은 ‘성장하고 변화하는 교회’다. 함께 읽겠다. 성장은 단순히 교인수의 증가를 말하지 않는다. 그러한 성장도 우리에게 있어야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의 신앙과 인격의 성장이 있어야 한다. 주님을 닮은 인격이 자라나고 삶이 변화되는 성장이 있기를 소망한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까지 이르기 위한 성장이 있는 교회가 되기 위하여 전교인을 대상으로 하는 제자훈련 등의 양육 프로그램을 세워나갈 것이며, 그리하여 목회자와 성도들이 함께 성장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요즘 신앙성장을 위한 좋은 프로그램들이 많다. 그래서 많은 성도들이 그런 프로그램을 통해 영적인 성장을 이루려고 한다. 프로그램이 주는 유익이 분명 있다. 그러나 진정한 성장은 공동체 안의 관계를 통해 이루어진다. 바울 당시 헬라 문화에서 진리를 배우는 것은 스승에게 수강료를 내고 배울 수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리는 학원에서 돈내고 배우는 그런 것이 아니다. 바울은 대가족이라는 개념을 통해, 그리고 성전이라는 개념을 통해 교회를 함께 지어져가는 공동체로 묘사했다. 즉 서로 부딪치는 관계를 통해 배우고 성장하게 됨을 말하는 것이다. 나는 우리 교회가 서로의 관계 속에서 인내하고 용서하고 사랑하면서 주님을 닮을 인격이 자라나고 삶이 변화되는 성장이 있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 교회 여덟번째 비전은 ‘자녀들을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키우는 교회’이다. 함께 읽겠다. 이스라엘 땅에서 우리의 자녀들은 이방인으로 살아가게 된다. 처음에는 언어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유대인이나 외국인 친구들을 사귀는 것에 어려움을 겪고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에 자칫 그늘이 지기 쉽다. 그러한 우리 자녀들을 신앙적으로 양육하고 정서적으로 돌봐야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단순히 교회학교 차원이 아닌 전인적인 교육의 장으로서 아동교육을 있는 교회가 되길 소망하며, 그리하여 우리의 자녀들을 건강하고 밝은 하나님의 사람들로 양육하는데 목표를 둔다.’ 우리 교회는 나이별로 좋은 주일학교 프로그램이 있는 교회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단순히 교회학교 차원이 아닌 전인적인 교육의 장으로서 교육을 할 수 있는 환경이 형성되어 있다. 그래서 더더욱 모두늬 관심이 필요하다. 부모와 교회와 성도인 우리 모두가 우리 아이들이 특별한 환경 속에서 건강한 믿음의 세대로 일어나도록 함께 힘썼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는 지금 이스라엘이라는 땅에서 한 교회로 부르심을 받았다. 좋든 싫든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으로 함께 지어져 가야 한다. 바라는 소망이 있다. 한국에 가면 가족들과 신앙생활을 함께 하는 것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  바라기는 이 이스라엘에 있는 동안 온 가족이 함께 예배하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터가 다져지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부모인 우리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가르쳐주는 것이다. 돌아가신 나의 어머니가 남겨주신 유산은 기도하고 예배하며, 교회를 사랑하는 삶이었다. 싱글인 여러분 역시 이스라엘에 있는 동안 성지도 다녀보며 이 땅 곳곳에 있는 언약의 현장을 확인해보길 바란다. 그리하여 여러분 평생에 변하지 않는 신앙의 기초를 세우는 기간이 되길 바란다. 더 나아가 우리 모두가 한 성전으로 이곳에 있는 동안 함께 지어져 가고, 함께 성장하는 은혜를 누릴 수 있게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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