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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기를 사는 성도

다니엘 이익환 목사............... 조회 수 328 추천 수 0 2019.04.26 23:5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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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단1:8-9 
설교자 : 이익환 목사 
참고 : 텔아비브욥바교회 http://www.telavivchurch.org 

2018년 2월 24일 텔아비브 욥바교회

설교 이익환 목사

다니엘서 1 포로기를 사는 성도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 [9] 하나님이 다니엘로 하여금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 (단1:8-9)


지난 주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이 소천하셨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은 한국 교회의 부흥과 무관하지 않다. 1973년 그의 여의도 광장 집회에는 연인원 백만명이 참여했다. 이후 한국교회는 철야기도, 산기도의 불이 붙으며 폭발적인 성장을 하게 된다. 80년대, 90년대에 교회 다니는 것은 참 즐거웠다. 그래서 교회에 오라고 친구들에게 자주 권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45년이 지난 지금 한국교회의 현실은 어떤가? 사회는 급격히 세속화가 진행되고 있다. 자본주의 경쟁사회에서 사람들은 성공과 힘을 숭배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 신앙인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음을 지키며 살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상대주의 가치와 종교적 관용을 이야기 하는 시대에서 다른 구원이 없다고 말하는 기독교는 고집스럽고 독선적인 집단으로 비춰지고 있다. 더우기 교회 안에서는 간증도 하는 신앙인일 수는 있으나 사회에선 지탄받는 일을 자행하는 경우가 많아 그럴 때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함께 ‘개독’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한 마디로 교회 다닌다는 것이 지금 우리 사회에서 별로 환영 받는 일이 못되고 있다. 교회는 권위를 잃어가고 기독교에 대해 냉소적인 사회분위기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런 분노하는 사회에서 우리 자녀들을 어떻게 신앙인으로 키워야 할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고민을 풀어보고자 오늘부터 다니엘서 강해를 시작한다. 다니엘은 어린 나이에 바벨론에 포로로 유배된 사람이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지키기 힘들었던 바벨론에서 포로기를 살았던 성도였다. 그가 적대적인 사회에서 어떻게 신앙인으로 살아갔는지 살펴보며 우리 역시 신앙인으로서 오늘을 사는 지혜를 얻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단 1:1-2, “유다 여호야김이 다스린 년이 되는 해에 바벨론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을 에워쌌더니 [2] 주께서 유다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그릇 얼마를 그의 손에 넘기시매 그가 그것을 가지고 시날 자기 신들의 신전에 가져다가 신들의 보물 창고에 두었더라”

 

때는 남유다왕 여호야김 재위 3년이다. 기원전 605년의 일이다. 이 때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은 예루살렘을 공격하고 성전의 기물을 가져간다. 보통은 정복하는 민족의 신의 형상을 가져가는데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지 않기 때문에 대신 성전에 있던 기물들을 가져갔던 것이다. 유대민족으로서는 예루살렘성과 성전이 강탈당했다는 것은 치욕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다니엘서가 그것을 ‘주께서 넘기셨다’고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벨론 왕에게 빼앗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란 사실이다. 사람의 눈에는 비극적인 역사적 상황이지만 여전히 역사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지금 교회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 현실속에서도 여전히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임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사실 세속화는 우리나라만 겪는 현상이 아니다. 유럽과 미국의 교회가 경험했고, 지금도 경험하고 있는 현상이다. 중세 유럽사회는 AD 313년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인정되면서 크리스텐덤이라고 불리는 기독교 사회를 형성한다. 크리스텐덤은 모든 사회와 문화가 기독교의 영향 아래 있는 국가를 말한다. 그러나 17, 18세기 계몽주의 시대를 거치며 크리스텐덤의 기반이 무너진다. 그리고 20세기 들어서 국가의 부가 증대하면서 유럽은 급격히 세속화의 물결에 휩쓸린다. 그 결과 기독교는 국가와 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나게 되었다. 신학자들은 서구 교회가 이제는 새로운 바벨론 유배기를 맞이하게 되었다고 평가한다. 기독교 신앙을 지지했던 국가의 후원은 더이상 없다. 교회는 그동안 누렸던 특권적 지위를 더이상 누릴 수 없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유럽의 많은 교회가 문을 닫았다. 반면 세상은 상대주의와, 허무주의, 세속주의의 가치로 가득하게 되었다.

 

자, 이것은 교회의 위기일까? 위기는 분명 위기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의 세속화를 탓하지 전에 하나님께서 왜 이러한 현상을 허락하셨는지 질문해야 한다. 바벨론의 유배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남은 자를 허락하셨다. 다니엘과 세 친구는 유배된 상황 속에서도 신앙인으로 살기 위해 몸부림쳤다. 기독교를 인정하고 환영하는 크리스텐덤 시대에는 신앙의 옥석을 가릴 수가 없다. 오히려 교회 다니는 것은 특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바벨론이라는 유배지는 신앙의 진검 승부를 가릴 수 있는 곳이다.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시대를 이끌 사람들을 키워내는 시대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포로기라는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일에 주목해야만 하는 것이다.

 

단 1:3-6, “왕이 환관장 아스부나스에게 말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왕족과 귀족 사람 [4] 흠이 없고 용모가 아름다우며 모든 지혜를 통찰하며 지식에 통달하며 학문에 익숙하여 왕궁에 만한 소년을 데려오게 하였고 그들에게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언어를 가르치게 하였고 [5] 왕이 지정하여 그들에게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에서 날마다 것을 주어 년을 기르게 하였으니 후에 그들은 앞에 서게 것이더라 [6] 그들 가운데는 유다 자손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가 있었더니”

 

다니엘은 그의 나이 16살에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다. 그는 이미 유대사회에서도 엘리트였다. 그러기에 특별히 바벨론의 엘리트 교육을 통해 바벨론 제국을 위해 일할 인재로 만들어지기 위해 끌려 간 것이다. 당시 바벨론은 점성술과 영매술, 꿈 해석학 등이 발달했다. 이것은 당시 바벨론 제국의 경영을 위해 중요하게 여겨지던 학문이었다. 바벨론은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학문과 언어를 가르쳤을 뿐 아니라 그들에게 왕의 음식과 왕이 마시는 포도주를 주며 삼년간 공을 들였다. 이 화려한 식탁을 소년들에게 제공하는 이유가 뭘까? 그것은 바벨론의 진미를 먹고 마시며 바벨론을 위해 살라는 초대였다. 바벨론 제국은 이들이 바벨론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도록 이름까지 고친다.

 

단 1:7, “환관장이 그들의 이름을 고쳐 다니엘은 벨드사살이라 하고 하나냐는 사드락이라 하고 미사엘은 메삭이라 하고 아사랴는 아벳느고라 하였더라”

 

다니엘은 ‘하나님은 나의 심판자’라는 뜻이다. 그런데 벨드사살은 ‘그대의 보호자는 벨이다’란 뜻이다. 벨은 바벨론의 주신 마르둑을 가르키는 말이다. 하나냐는 ‘하나님은 자비로우시다’란 뜻이다. 그런데 사드락은 수메르 달의 신인 ‘아쿠의 명령’이란 뜻이다. 미사엘은 ‘누가 하나님과 같은가’란 뜻이다. 그런데 메삭은 ‘아쿠 같은 이가 누구랴’는 뜻이다. 아사랴는 ‘하나님께서 도우셨다’란 뜻이다. 그런데 아벳느고는 ‘느고의 종’이란 뜻이다.

 

이름을 왜 바꾸는가? 이전의 정체성을 버리고 새로운 정체성을 갖게 하기 위해서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을 버리고 비그리스도인으로 살도록 강요한다. 그러나 다니엘은 바벨론 사람들이 자기를 벨드사살이라 불러도 자신은 스스로 ‘나 다니엘이~’(단 7:15)라고 칭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은 나의 심판자’라는 정체성을 놓치 않은 것이다. 그는 더 나아가 왕의 음식을 먹지 않기로 작정한다.

 

단 1:8,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

 

다니엘은 왕의 음식이 자신을 더럽힌다고 판단했다. 아마도 레위기에서 금지하는 육식이 포함된 식단일 가능성이 높다. 또한 어쩌면 바벨론 신에게 진상했던 음식이 제공되었을 수 있다. 환관장은 ‘너희 때문에 내 머리가 왕 앞에서 위태롭게 되리라’고 대답했다. 이처럼 왕의 음식을 거절한다는 것은 상당히 위험을 감수한 일이었다. 그러나 다니엘에게 중요한 것은 어떤 게 덜 위험하고 손해를 안보는 일인가가 아니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나의 심판자, 하나님 한 분 앞에서 살아가는 삶을 선택하는 것이었다. 열여섯 살 소년이 어떻게 이런 결단이 가능했을까? 그것은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신앙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비록 포로로 끌려갔지만 바벨론 제국의 유혹에 맞서 하나님 한 분을 경외하는 신앙인으로 자라난 것이다. 나는 여러분의 자녀들이 세상 앞에서 하나님 한 분을 선택하는 신앙인으로 자라게 되길 축원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바벨론제국과 같다. 힘을 숭배하고 권력을 숭배한다. 세상은 바벨론의 진미를 제공하며 바벨론에 충성할 인재들을 양성한다. 바벨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사람들의 우선순위가 된다. 너도나도 바벨론의 패러다임에 길들여지고 바벨론이 짜놓은 판에서 최고가 되려 한다. 바벨론의 가치가 교회 안에도 들어와 하나님의 가치와 충돌하는 시대이다. 그러한 바벨론을 경멸하고 도망치라는 말이 아니다. 여전히 바벨론에서 살아가지만 그 속에서 뜻을 정하는 한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내가 손해보고, 내가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하나님을 뜻을 지켜내겠다고 각오하는 한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하나님은 그러한 사람을 주목하시고 그런 사람을 통해 바벨 문화 속에서도 하나님나라를 진행하신다.

 

단 1:9, “하나님이 다니엘로 하여금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

 

하나님은 힘을 가진 사람을 통해서 일하시는 것이 아니라 뜻을 정한 사람을 통해 일하심을 알 수 있다. 위험을 감수하고 믿음의 선택을 한 다니엘에게 하나님은 보상하신다.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다. 그리고 다른 소년들보다 얼굴이 더 아름답고 윤택해지게 하신다.

 

단 1:10, “하나님이 소년에게 학문을 주시고 모든 서적을 깨닫게 하시고 지혜를 주셨으니 다니엘은 모든 환상과 꿈을 깨달아 알더라”

 

하나님은 뜻을 정한 네 소년에게 지혜를 주셨을 뿐 아니라 특히 다니엘에게는 환상과 꿈을 깨달아 알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해 뜻을 정한 다니엘에게 아낌없이 베풀어주심을 볼 수 있다. 나는 여러분의 자녀들이 세상의 엘리트가 아니라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인재가 되길 축원한다. 물론 다니엘은 축복 받기 위해 뜻을 정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기에 위험을 무릅쓰고 뜻을 정한 것 뿐이다. 결국 다니엘은 느부갓네살 왕 앞에 서게 된다. 바벨론에 살지만 바벨론의 종교와 문화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기로 뜻을 정한 그가 바벨론 왕 앞에 서게 된 것이다.

 

지금 교회는 수난을 당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수난기를 통해 어떠한 시대를 준비하고 계시는지 모른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수난기에 낙심하거나 쉽게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뜻을 정한 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편안한 시대에는 누가 진짜 신앙인인지 모른다. 그러나 어려운 때 뜻을 정하고 믿음을 지켜내는 사람이 진짜 신앙인인 것이다. 하나님은 어려운 때를 통과하게 하시며 진짜 신앙인을 가려내고 계신지 모르는 일이다.

 

우리 욥바교회가 4~5년 전에 비해 많이 어려워졌다. 한국교회의 상황이 선교지 교회에도 그대로 반영되는 것 같다. 교회가 어려운 때를 통과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때가 신앙의 진검승부를 가릴 수 있는 기회라 여겨진다. 하나님께서는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우리 교회에 새 일을 행하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세상 속에 살지만, 세상을 등지지 않고, 세상을 섬길, 뜻을 정한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 한국교회는 이전의 부흥과 이전의 영광, 이전의 특권을 회복할 수 없을지 모른다. 유럽교회가 크리스텐덤의 시대를 회복하지 못하는 것처럼 지금의 교회인 우리는 세속사회에서 사회의 주변부에서 마치 유배된 것같은 삶을 계속 살아가야 할 지 모른다. 중요한 것은 포로기를 살더라도 거기서 나의 신앙정체성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께 중요한 것을 결코 양보하거나 타협하지 않겠다는 결단이 있어야 한다.

 

교회는 어쩌면 세상속에서 영원한 나그네로 살아야 할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돌아갈 영원한 본향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 땅에서의 삶이 다가 아니고 결국 심판자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날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지금 눈 앞에 보이는 바벨론의 가치, 바벨론의 패러다임을 정신없이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나의 뜻을 정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세상이 바벨론화 될수록 세상은 믿는 자들을 핍박할 것이다. 뜻을 정한 성도와 교회는 세상과 섞이지 않음으로 인해 배타적인 공동체로 여겨질 것이다. 그리하여 세상은 믿는 자들을 압박하며 그들의 문화를 계속해서 따르라고 요구할 것이다. 그러나 영적 포로기를 사는 성도들에게는 사명이 있다. 세상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통로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성도들은 지금의 직장, 나를 부르신 삶의 현장을 떠나선 안된다. 거기서 내가 손해 보고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하나님의 가치를 붙들고 살아내야만 하는 것이다.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 고지에 오르는 삶을 목표로 삼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만 하나님께 뜻을 정했기에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세상을 섬길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역사를 주관하고 계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우리의 삶을 심판하실 분도 하나님이시다. 바라기는 다니엘처럼 어려운 시대를 탓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뜻을 정하며 사는 우리 모두가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 말씀 나눔

1. 다니엘이 바벨론의 종교와 문화속에서 자신의 신앙을 지킬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입니까?

2. 하나님께서 다니엘을 포로로 끌려가게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 적용

1. 세속화는 교회의 위기인지, 기회인지 나누어 봅시다.

2. 세상이 바벨론처럼 느껴지는 때가 언제인지 나누어 봅시다.

3. 하나님께서 나를 지금의 환경(직장/학교/키부츠/가정/교회 등)과 인간관계 안에 머물게 하신 이유가 무엇인지 나누어 봅시다.

4.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다니엘과 같은 선택의 기로에 놓인 적이 있었는지, 그 때의 선택은 무엇이었는지 나누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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