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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마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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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남준 목사 |
참고 : | 2014.2.2 http://www.yullin.org(안양) |
568.긍휼히 여기는 자의 복(1)
2014-02-02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 5:7)
Ⅰ. 본문해설
하나님의 공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이루어졌다. 하나님은 십자가로 이루신 의를 율법의 요구대로 살지 못한 백성들에게 전가해 주셨고 이것이 곧 죄인을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긍휼히 여기는 자의 복은 팔복 중 가장 높은 복을 가리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긍휼히 여기는 자는 누구일까?
Ⅱ. “긍휼히 여기다”의 의미
‘긍휼히 여기다’는 불쌍히 여기는 것을 의미한다. 불쌍히 여기는 것은 그 사람에게 불쌍히 여기도록 하는 어떤 것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을 바라보는 신자의 어떤 성품 때문에 불쌍히 여기는 것을 의미한다.
이 긍휼이 하나님에게 적용될 때는 인간을 구원하는 동기가 된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디 3:5)라고 사도는 말한다. 하나님을 멀리 떠나 멸망 가운데 있는 우리를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와 평화를 누리게 함은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을 통해서였다. 그러면 왜 하나님이 멸망 가운데 있는 우리를 이렇게 대우하셨는가? 이것은 우리의 의로운 행위로 감동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또한 긍휼을 인간에게 적용할 때는 하나님께서 인간 상호간에 요구하시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 된다. 예수님은 마태복음에서 일만 달란트 빚진 자의 비유를 말씀하신다(마 18:23-34). 이 비유를 통해서 일만 달란트는 현재 화폐가치로 약 6조원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액수이다. 이 엄청난 액수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환산할 수도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죄의 빚을 탕감 받은 사람들임을 알려준다. 이 비유를 통해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긍휼에 빚진 자인 우리는 마땅히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며 불쌍히 여기며 살라고 말씀하신다.
Ⅲ. 긍휼을 받은 자
A.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은 오래 참음과 자비, 긍휼로 이루어져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의 각각 다른 국면을 이렇게 표현한다. 하나님의 사랑의 첫 번째 속성은 오래 참음이다. ‘참는다’는 것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질서를 견디는 것을 말한다. 그 사람과 계속 관계를 갖기를 원하기에 자기가 원하지 않는 질서를 견디는 것을 참는다고 말한다. 사랑의 두 번째 속성은 자비인데 타자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친절과 호의를 말한다. 자비는 우리가 행복하기를 바라기에 하나님이 베푸시는 모든 친절과 호의를 가리킨다. 가치가 없는 죄인에게 베푸시는 무한한 친절과 모든 좋은 것을 주셔서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의 배려이다. 사랑의 세 번째 국면이 긍휼이다. 이 긍휼은 사랑하는 사람이 처한 비참을 깊이 공감하는 것이고, 사랑하는 자의 고통이 제거되기를 바라는 열망이다. 한 사람이 비참하게 된 것은 원인이 있고 대부분 그 사람이 자신의 잘못된 선택의 결과로 초래된다. 그러나 긍휼은 비참함의 원인을 따져서 그 사람이 잘못하였기에 그 비참이 당연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우리의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히 여기셨기 때문이다. 매주일 하나님 앞에 나올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하고 무한한 사랑을 덕 입기에는 현저히 모자라는 존재임을 깨닫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용서해 주시고 당신께 돌아오고 싶어 하는 자를 감격적으로 맞아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시는 사랑 때문이다.
B. 긍휼히 여기라
예수님은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심으로써 그 말씀을 듣는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긍휼을 입은 자임을 상기시키면서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긍휼을 베풀라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길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우리에게 해 준 무엇이 있어서가 아니다. 사랑의 근거가 그가 나에게 무엇인가 유익한 일을 했기 때문이 아니다. 다만 그가 비참한 처지에 있는 것이 가엽기에, 그리고 내가 비참한 처지에 있을 때 하나님은 왜 내가 비참한 처지에 있는지 따지고 물으시면서 등을 돌리시지 않고 비참한 나의 눈물을 닦아 주셨고 상처를 치유해 주셨기에 그 사랑을 힘입어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길 수 있다. 그래서 긍휼은 기독교의 사랑의 완성에 있다. 오래 참음을 넘어서 긍휼을 실현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다.
Ⅳ. 결론
우리가 스스로의 잘못으로 고통 속에 있을 때 수많은 사람들은 사필귀정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러분이 왜 그런 처지에 이르게 되었는가에 대한 원인보다는 아파하는 여러분의 고통과 비참에 주목하시고 그 아픔을 공감하신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여러분의 고통을 제거해 주고 싶어 하신다. 바로 그리스도인은 이 사랑을 아는 사람이다. 자신이 그리스도를 못 박아 죄의 피를 묻힌 악한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긍휼 때문에 하나님이 자신을 용서해 주신 사실을 가슴에 새긴 사람이다. 이 사랑을 깊이 묵상하며 다른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는 사람들이 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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