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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대에서 세상보기] 들꽃편지 제600호
[칼럼] 한국 기독교 반지성사
마누라에게 혼날 각오하고 솔직하게 쓰는
겁이 많은 마누라는 남편이 두루두루 다른 사람들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글만 쓰기를 원합니다. 이 세상에서 마누라가 가장 무서운 나는 다른 사람들 눈치보다도 마누라의 눈치를 먼저 봅니다. 그나마 나 같은 사람 데리고 살아준 마누라인데 쫓겨나면 나는 갈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신문을 보다가 한국 기독교에 대해 열 받아서 뭐라도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습니다.
한국 기독교는 130년 정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세계사에 유래가 없이 단기간에 폭발적인 성장을 했다고 자랑합니다. 그런데 쪼끔 내막을 들여다보면 폭발적으로 성장했던 시기는 넉넉하게 잡아 1970-90년대 약 30년간이고 나머지 100년 동안은 성장이 멈추거나 오히려 쪼그라들고 있는 시기입니다.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 한반도에는 천주교가 50년 정도 앞서 들어와 흥선대원군의 핍박으로 이미 수십만명의 순교의 피가 뿌려진 땅이었습니다. 터툴리안은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라고 했습니다. 그 터전 위에 기독교가 들어와 또한 공식적으로는 1만명 비공식적으로는 3만명 이상의 이름 없고 빛도 없는 무명의 순교자들이 한국 기독교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일제의 침략으로 조선왕조가 무너지면서 500년 동안 정신적 지주역할을 했던 ‘유교’를 잃어버리게 되고(강제로 빼앗기게 되고) 한국은 새로운 시대적 가치관을 선택받게 되었는데, 그때 때마침 한국인들을 파고 든 것이 ‘기독교’였습니다.
그리하여 기독교인들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이 전개되었고 평양은 한국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릴 만큼 기독교 도성이 되었습니다. 전통적으로 양반, 지주들이 많았던 남한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일제에 들러붙어 친일파가 된 사람들이 많았고, 상대적으로 차별받고 소외되었던 사람들이 많았던 북쪽에서는 ‘새 질서’에 대한 열망으로 기독교를 더 빨리 받아들인 것이죠.
일제는 독립군의 활동거점인 교회가 마음에 안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미국에서 건너온 ‘장로교 근본주의 선교사’들은 일제의 협조가 없이는 선교활동이 힘들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하여 기독교인들이 ‘독립운동’이 아닌 다른 곳으로 관심을 돌리게 하기 위해 일제는 기독교 근본주의자들과 협력하여 초대형 이벤트를 기획하는데, 그것은 바로 ‘평양대부흥운동’이었습니다. 일제와 미국 선교사들의 의도는 딱 들어맞아 그때부터 기독교인들이 ‘독립운동’을 하기보다는 사회적 강자와 권력 편에 붙어서 서서히 기득권을 형성하게 되었고 그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기독교를 세속적 기복주의와 천박한 상업주의로 전락시키기 시작합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한국사회의 적폐가 축약된 ‘반지성주의’의 온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기독교를 ‘개독교’라고 하겠습니까? 그 반지성주의의 뿌리는 그때 시작된 것입니다. 원래 기독교는 ‘개인주의’ 종교가 아닙니다. 독립운동가들이 목숨 걸고 독립운동을 한 것은 ‘개인 구원’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는 ‘개인 구원’ 외에는 아무 관심도 없습니다.
해방이 되고 남북이 나누어지면서 북한에 공산정권이 들어서자 한경직 목사를 중심으로 ‘서북(평양) 목사’들이 대거 월남하여 남한에 정착하게 됩니다. 강력한 우익 세력을 만들고 싶었던 미군정은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앉힌 다음 같은 파벌이었던 이들 월남 목사들에게 적산을 불하하고 물적 토대를 제공하면서 포섭 하자 이들은 그때부터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반공’과 미군을 지지하는 ‘친미’주의자가 되어서 오늘날까지 태극기를 흔드는 ‘가스통 할아버지’로 남게 됩니다.
한국 교회는 1970-90년대에 전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폭발적인 성장을 합니다. 그런데 성장만 자랑할 뿐 그 원인은 명확히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한국 교회는 친일파의 후손이자 독재 지배 권력과 다층적으로 얽히고 설키고 엮여서 팽창해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태타로 정권을 탈취한 박정희는 국민들의 지지가 필요했고 그래서 온갖 혜택을 주면서 포섭한 것이 ‘장로교 서북 목사’들 입니다. 그들은 이미 미국을 지지하고 있었고 공산주의를 반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서로 정서가 맞은 것이죠.
그리하여 ‘정치와 종교는 분리(정종분리)’라는 듣도 보도 못한 말을 만들어서 ‘종교의 무한 자유’를 주고 목사들의 세금을 면제해 주고 종교 활동을 보장합니다. 조선 사회에서 순교를 당하던 기독교는 이제 독재자의 똥구멍을 쪽쪽 빨아 먹으면서 적당히 관제 데모에 동원되어 주고, 국가 조찬기도회에서 독재자의 만수무강을 기도해 주며 ‘아무데나 천막만 쳐도’ 교회가 되는 엄청난 호황을 누립니다.
세상 어디에도 기독교 국가가 아닌데 한국처럼 종교 활동을 자유롭게 보장하며 길거리에서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쳐도 안 잡아가는 나라는 없습니다. 그렇게 한국 기독교는 손쉽게 세력을 불려 부를 축적하고 ‘강남 기독교’가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민주화 운동으로 독재정권이 무너지고 정권의 보호막이 사라지면서 한국 기독교는 침체기에 접어듭니다. 지금은 뭘 해도 교회가 안 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부동산 공화국답게 건물을 지은 교회나 얼마정도 버틸 수 있을 뿐,
이제 기독교는 이대로 끝나는 것인가요?
호사다마라고 저는 지금부터가 비로소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평양대부흥운동’ 이전에 원래 기독교로 되돌아가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었던 기독교에 대한 생각들을 다 내려놓고
기독교의 근본부터 다시 공부하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다시 ‘순교의 피’를 뿌릴 각오를 하는 것입니다.
추신/마누라가 이 글을 보면 너무 쎄다고 할까요 속시원하게 잘 썼다고 할까요?
*<당당뉴스> 신문에도 기고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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