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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지 한장 칼럼]
1811.예수 부활
유대교와 기독교를 분리하는 가장 중요한 기점은 ‘예수 부활’사건입니다. 예수 부활 사건 때문에 기독교는 유대교와 확실히 구별이 되는 독자적인 종교가 되었습니다. 유대교는 아직도 ‘예수 부활’을 믿지 않습니다. 그들은 아직도 오실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지만, 기독교는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이 다시 오실 ‘재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1812.인간은 어디에서 와서
인간 존재에 대해 과학자들은 가장 비과학적 방법으로 증명을 합니다. 과학자들은 ①생명체가 ‘우연히’ 생겨서 ②가능성이 거의 희박한 ‘우발적인 일들’이 연속적으로 생겨서 ③갑자기 감정적·지적·영적 역량을 가진 인간이 쨘! 하고 생겼다고 합니다. 그러나 세상에 ‘우연히’는 없습니다. ‘우연’이 아니고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1813.어디로 가며
‘존재론’은 과거로부터 수많은 철학자들이 끙끙대며 연구해온 오래된 논제입니다. 저는 “뭘 그렇게 고민할까. 그냥 대충 살아도 죽을 때까지 사는 데는 아무 문제없는데.” 하고 혼잣말을 합니다. 왜 사는가? 하는 고민은 뭔가 거창하게 살아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깔려있는 질문입니다. 인간은 어디로 가는가? 결국 집으로 갑니다.
1814.왜 사는가?
우리는 왜 사는가? 생물학적 관점에서 보면 ‘종족보전’을 위해 삽니다. 우성 유전자를 후손에게 물려주고자 하는 메커니즘이 작동되는 것은 다른 동물들과 하등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적인 관점에서는 우리를 지으신 분의 뜻대로 산다고 봅니다. 하나님이 나를 어딘가에 쓰려고 만드셨으니 그 쓰임새대로 잘 쓰임 받자는 것이죠.
1815.가치관
사람들이 이 세상을 살 때 많은 생각을 하면서 사는 것 같지만 사실은 ‘몇 가지’ 생각으로만 삽니다. 그것을 ‘가치관’이라고 합니다. 어릴 때 어떤 환경에서 어떤 가치관을 형성하느냐? 그것 가지고 평생 살기 때문에 그래서 어릴 때 ‘인격 형성’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세 살 때까지 버릇을 잘 들여놔야죠.
1816.존재 증명
동양적 종교의 특징은 오랫동안 ‘불교’와 ‘유교’의 영향으로 뭔가 엄위하고 장엄하고 경건하고 진중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절 마당에 있는 어마하게 큰 석가모니 동상이나 거대한 절집 같은 것을 보면 그 크기에 압도당하는 느낌이 들지요. 기독교가 자꾸 그런 것을 흉내 내서 예배당이나 성당을 점점 거대하게 지어 건물 같은 것으로 자신들의 존재를 증명 하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1817.신명의 하나님
영이신 하나님은 한마디로 ‘신명나는 하나님’이십니다. 거대한 건물 안에서 에헴! 하고 수염을 쓰다듬으시며 헛기침을 함으로 자신을 증명하시는 분이 아니라, 당신의 백성들이 함께 소리 높여 찬양하고 춤을 추면서 즐거워하는 곳에 하나님도 함께 영광으로 임재하시고 더불어 즐거워하시고 기뻐하시는 분입니다.
1818.공명
이방 종교들이 건물을 거대하게 짓는 이유는 큰 건물이 주는 ‘공명(共鳴,resonance)’때문입니다. 작은 소리도 공중에 뜨면 뭔가 신비한 소리로 변해서 사람들의 심령을 미묘하게 건들거든요. 가수들이 어떤 공간에 수만명의 사람들을 모아놓고 공연을 할 때도 그 공간이 주는 소리의 공명이 가수도 미치게 하고 관객들도 미치게 합니다.
1819.트릴라
기독교는 자연현상인 공명을 이용하지 않습니다. 어떤 장소나 사람들의 모임 가운데 성령이 강력하게 임재하면 자기도 모르게 신령한 노래가 흘러나오는데(그것을 ‘트릴라’라고 합니다.) 그러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성령이 강권적으로 방방 뛰게도 하고 춤을 추게도 하면서 희락이 넘치며 하나님과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1820.교류
서로 주고받는 것을 ‘교류’라고 합니다. 돈이나 물건을 주고받는 것도 교류이지만, 각자에게 있는 ‘기운(氣運.)’을 주고받는 것도 교류입니다. 꽃밭에 있다가 온 사람에게서는 꽃향기가 나고 화장실에서 나온 사람에게는 똥냄새가 나는 것처럼 각 사람에게는 그 사람만의 고유한 향기(기운)가 있어 서로 만날 때 그 기운을 교류하는 것입니다.ⓒ최용우(전재및 재배포 대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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