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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너희 안식이요 상쾌함이니

이사야 조용기 목사............... 조회 수 165 추천 수 0 2019.05.03 22:47:00
.........
성경본문 : 사28:11-13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18.8.5 주일예배 설교 여의도순복음교회 

“그러므로 더듬는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그가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리라 전에 그들에게 이르시기를 이것이 너희 안식이요 이것이 너희 상쾌함이니 너희는 곤비한 자에게 안식을 주라 하셨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야훼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고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사 그들이 가다가 뒤로 넘어져 부러지며 걸리며 붙잡히게 하시리라”(이사야 28장 11~13절)


서론


 이것이 너의 안식이요 상쾌함이니 이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방언에 대해 가르치면서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사용하는 언어가 아닌 다른 지역의 언어는 알아듣지 못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성령의 은사인 방언 역시 하나님과 교통하는 언어로서 사람들은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은 신앙생활에 큰 유익을 주기 때문입니다. 


본론


1.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해 모든 인간이 무거운 짐을 진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온 세상이 저주에 처한 것은 아담의 잘못된 생각 때문입니다. 로마서 5장 12절에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속하시고 영적인 회복을 주셨습니다. 로마서 8장 1절로 2절 말씀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삶을 앞뒤에서 응원하고 돌보아줄 수 있는 분이 바로 우리 주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과 같은 사랑을 가지고 자기 몸의 피를 쏟으시고 살을 찢어서 여러분과 나에게 삶을 주신 신은 역사상에 없었습니다. 예수님만이 하나님 아들로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죄를 속하시고 영적인 회복을 주셨습니다. 로마서 8장 1절로 2절에 보면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적인 회복뿐 아니라 몸과 마음도 치료하여 주셨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성경 말씀을 확실히 붙잡으면 지금보다 훨씬 큰 자유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친히 나무에 달려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였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병에서 나음을 얻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아침에 이 오후에 나도 치료가 필요하고 여러분도 치료가 필요하니 우리 치료의 예수님을 받아 들입시다.  


3. 기도를 통해 이기는 삶

 우리는 기도를 통해 주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가 있는데, 기도에는 일상의 언어로 드리는 기도가 있는가 하면 방언으로 드리는 기도가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4장 39절에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성도들에게 방언을 하게 될 것을 약속했습니다. 마가복음 16장 17절에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라고 말씀하셨는데, 여기 보면 방언은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자는 누구든지 방언을 말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으면 누구든지 방언을 말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약속은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성취되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 1절로 4절에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믿으면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방언을 말하게 됩니다.

 방언에는 알아들을 수 있는 방언과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이 있습니다. 오순절 성령강림 때, 약 120명의 성도들이 방언을 했는데 그때의 방언은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었습니다. 로마제국의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이 오순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왔는데 제자들이 성령을 받고 그들이 사는 지역의 언어로 하나님의 큰일을 선포했습니다. 사도행전 2장 5절로 8절에 “그때에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더니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외국어를 배운 적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각 나라 방언을 하게 됨으로써 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아주 기절할 정도로 놀랐습니다.

 예전에 한 일본인 성도로부터 들었던 간증이 생각납니다. 그분은 하나밖에 없는 동생의 구원을 위해 늘 기도했는데 방언을 받은 후에도 동생의 구원을 위해 방언으로 많이 기도를 했습니다. 당시 동생은 이탈리아의 로마에 살고 있었는데 하루는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갑자기 방언 기도가 나오기 시작합니다. 동생이 전화를 받았는데도 방언기도를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모시모시, 모시모시가 달구모시도 아니고 사람모시로 보는데 자꾸 방언이 나옵니다. 얼마 후 방언이 멈추고 나자 성도님이 동생에게 방금 있었던 상황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동생이 말하기를 “누나가 지금 이태리어로 나에게 예수님을 믿으라고 했다. 누나는 이태리어를 전혀 모르는데 이게 어찌된 일이냐?”며 놀라워했습니다. 이탈리아어를 전혀 모르는 누나가 이탈리아어로 복음을 전하는 것을 듣고 그 동생이 마침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간증했었습니다.

 또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도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4장 2절에는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이런 방언은 하나님만이 그 의미를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방언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비밀히 대화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방언으로 우리가 속사정을 하나님께 아뢸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특권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한 채 살아가는데 믿을 사람이 없어서 혹은 다들 사는 게 바빠서 대화를 나눌 여유가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설사 마음을 털어놓아도 상대방이 내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면 더 외롭고 또 사람이 도움을 줄 수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사정과 마음속에 있는 고민을 하나님께 다 얘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감사한 일이겠습니까? 시편 62편 8절은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의 문제를 넉넉히 해결할 수 있는 분이신 것입니다. 그 하나님께 우리는 나가서 기도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신앙생활에 있어서 방언으로 기도하면 많은 유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4장 18절에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 선생은 성도 누구보다도 더 많이 방언으로 기도해서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서대문에서 목회할 때, 우리 교회 권사님 한 분이 종로에 살았는데 남편은 형사였어요. 그 남편은 교회를 안 나오고 권사님만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권사님이 구역 예배에 가는 도중, 갑자기 마음이 위기감이 느껴지며 기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히 들었습니다. 그래도 어디에 조용한 데가 없어서 전봇대 옆에 가서 쪼그리고 앉아서 막 기도하는데 아는 기도로 해서 무슨 뜻이 있습니까? 방언으로 막 기도를 했습니다. 사람들이 미친 사람인 줄 알고 돌아볼 때까지 방언으로 기도를 했는데 나중에는 마음이 평안하고 가벼워져서 구역 예배에 가서 예배를 다 드리고 집으로 갔더니 그 사이 집에 도둑이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도둑이 서랍을 샅샅이 다 뒤졌는데 금붙이와 현금이 든 보따리만 그대로 둔 것입니다. 권사님이 방언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도둑의 눈을 가린 것입니다. 저도 그런 체험을 종종 합니다. 뭘 기도해야 할지 모르지만 갑자기 기도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할 때가 있는데 그것은 성령께서 기도하라는 재촉하는 것입니다.

 제가 해외 나가서 선교할 때 많은 사람들 앞에 서게 되는데, 방언으로 기도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과 두려움이 가득 합니다. 그러나 방언으로 30분이나 1시간 기도하고 나면 믿음이 꽉 들어차게 되고 대중 앞에 담대하게 서게 됩니다. 그리고 그럴 때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를 위해 기도하면 치료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방언 기도는 성령의 역사를 나타내기 위해 얼마나 절실한 기도인지 감탄할 일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더욱 깊은 교제를 나눌 수 있는데 방언으로 기도하면 더 오래도록 기도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고린도전서 14장15절)”고 말합니다. 자신이 아는 말로 기도하다가 방언으로 기도하고 이렇게 기도하면 몇 시간도 기도하고 밤새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아는 말로 기도하다가 피곤하면 방언으로 기도하고, 방언으로 기도하다가 피곤하면 아는 말로 기도하고, 아는 말로 방언으로 스위치 해가면서 기도하면 몇 시간이고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4. 성령께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심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해주십니다. 로마서 8장에 보면 26절로 27절에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위해서 친히 기도해주시는 그런 특권이 있습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항상 나와 함께하시고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분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의 모든 것을 아시는 성령께서 나와 함께하시고 나를 위해 기도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요한복음 14장16절)’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어떤 상황에도 혼자 외로운 삶을 살지 않습니다. 내가 기도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성령님께서 나를 위해 기도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인도하고 계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기도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너무 바빠서 기도를 못하고 너무 피곤해서 기도 못하고 너무 고난을 당해서 낙심해서 기도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사람이 어지간한 고난을 당할 때는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도와주시옵소서.”이렇게 탄식하고 기도하지만 너무 큰 고난을 당하면 기도조차 나오지 않고 다리를 뻗고 하늘을 쳐다보고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런 상황에서 혼자가 아닙니다. 내가 기도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어도 성령께서 나를 위해 기도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인도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항상 나와 함께하시고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분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의 모든 것을 아시는 성령께서 나와 함께하시고 나를 위해 기도해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요한복음 14장 16절)”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여러분도 살면서 그런 체험을 했을 것입니다. 기도를 하긴 해야 하는데 너무 막막해서 기도할 수가 없을 때, 그럴 때는 성령님께 의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 성령님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 들입니다. 성령님, 나를 위해서 기도해주십시오.” 그리고 난 다음 함께 기도하십시다. 입술을 열어 방언으로 기도하면 하나님과 직접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6절에 보면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서 기도를 해주십니다. 성령님을 의지하고 방언으로 간절히 기도하면 성령께서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하는 것, 기도를 해주시는 것입니다.

 방언으로 기도하면 악한 마귀의 궤계를 물리칠 수가 있습니다. 야고보서 4장 7절에 보면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아는 말로써 기도하고 방언으로 기도할 때, 성령께서 다 역사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이유 없이 슬퍼지고 비정상적인 것은 많은 경우 마귀가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방언으로 기도하면 마귀가 쫓겨나갑니다.

 저도 이런 것을 종종 체험합니다. 미운 사람도 없고 싸운 적도 없고 답답한 일도 별로 없는데 마음이 이상하게 답답하고 슬프고 우울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제 마음이 왜 이렇습니까?”하고 기도하면 “방언 기도를 하라.” 그렇게 하나님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마음을 열어놓고 방언으로 기도해서 “하나님, 제 마음이 하나님 앞에 문을 열어놓았습니다.” 하나님이 “너희 짐을 내가 맡았다.” 그렇게 말씀합니다. 그래서 방언으로 한참 기도하다 보면 귀신이 하나 둘 떠나가고 마침내 마음이 평안해졌고 조용해지는 것을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결론
 사람의 도움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첫째, 사람은 늘 함께 있어 주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항상 도와줄 수 없습니다. 또 사람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있어도 도와줄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성령님은 다릅니다. 성령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하시며 전능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가장 완벽한 도움을 주실 수가 있습니다. 성령님을 보혜사라고 부르는데 이는 ‘돕기 위해 옆에 와 계신 분’이라는 말입니다. 보혜사라는 말은 하나님께 보내심을 받아 도움을 위해서 항상 같이 계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보혜사라는 말은 참 중요하니 한 번 따라 말씀하십시오. “보혜사는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항상 나와 같이 계신자.” 이 보혜사가 오늘 이 자리에 함께 계십니다. 박수로 환영하십시다. 성령께서는 우리 예수님을 믿는 즉시 내주하시는데 우리를 떠나지 않고 영원히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환경에서도 낙심하지 말고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위해 놀라운 일을 행하여주실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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