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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누가복음 궁극이............... 조회 수 303 추천 수 0 2019.05.12 14: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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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3:4 
설교자 : 김경형 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34.

 

4: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바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오늘은 4절입니다. 광야에서 누가 외칩니까? 본문에 보면? 역사적으로는 세례요한입니다. 역사적으로는 세례요한입니다. , 그러면 오늘날 광야사상이 보입니까? 광야신앙 사상이 보입니까? 오늘날 애굽으로 들어가자. 세상애굽을 건설하자. 애굽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바로 왕이 지시하는 라암셋을 건설하자하는 이 사상이 보입니까? 보인다면 그 성도는 영의 눈을 가진 자요. 영의 눈을 가졌으면 주님의 증거를 똑똑히 볼 수 있기 때문에 이것도 지금 주님의 증거입니다. 역사 속에서 당신의 종을 붙들고 당신이 증거를 하고 있는 거요. 그렇다면 성경은 풀이가 될 겁니다.

 

그렇지 않고 광야사상을 모르면 아무리 세상에서 똑똑하다 하는 사람도 성경은 못 풉니다. 영의 눈은 감겨져 있고 육적인 개념으로만 보여지기 때문에.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우리에게 주시는 영 위주로 영을 위해서 영인성장 면을 위해서 영적 기능과 지능 영적의 영능의 실력을 위해서 당신의 온전한 성품을 위해서 주시는 겁니다.

 

역사적으로는 세례요한이요. 그러나 오늘날 영적 이스라엘로서 보냄을 받는 세례요한의 역할과 같은 일을 하는 그 종은 오늘날도 광야사상이다. 한 마디로 세상을 의지하지 않는다 그 말이요. 예수이름 불러가지고 자기 세상, 종교적 세상을 부르짖지 않는다 그 말이요. 영의 눈을 가지고 영적 이치적으로 따지면 금방 알 수 있어요. 금방 드러나 버려요.

 

그런데 아까 우리가 신명기도 봤지만 그것이 가견적인 육신의 눈으로는 안 보이기 때문에 육신의 그 면으로만 보려고 하고 그런 역사가 안 나타나 있으니까 이게 잘 모르는 거요. 그러나 영의 눈을 가지고 보면 이미 세계적인 교회에서 그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겁니다. 영적으로 잡혀갔으면 영적 신앙사상으로는 안 통하는 거요. 영적으로 영의 눈을 가지고 이 사상이 어디로 잡혀갔는지 그게 안 보이거든. 교회만 다니는 것으로 보이거든. 의사가 통합니까? 소원 목적이 통합니까? 그러니까 각자가 개별이다. 다 이방세상으로 붙잡혀 갔고 그 밑으로 들어갔고 세상사상에 종노릇하고 사망 밑에서 종노릇하고, 하는 것마다는 전부 다 사망성이고 사망으로 다 떠내려가는구나. 영의 눈이 열리고 영의 귀가 열리고 영적 감각성에 민감하다면 통곡을 할 것인데 그게 안 보인다. 그래서 신명기를 읽으면서도 모르는 거예요. 그냥 글씨가 있으니 역사적으로 그냥 글씨적으로만 보이는 거지.

 

일반적으로도 가족 안에 마음과 마음이 안 맞으면 남이 돼버려. 심지어 부부도 그렇더라. 그런데 눈에 안 보이는 이런 면에서 민감하게 느끼지를 못하고 먹고 마시고 육신생활로만 알고 있으니 속으로는 다 갈가리 찢어지고 사망 쪽으로 흘러가 있고 한 그것을 전혀 모르니 이게 세상으로 사는구나. 그러니까 마음과 마음이 멀어지니 몸도 행동도 다 떨어지는 거요. 그런데 이걸 하나 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는 거지. 안 된다. 원리적으로 되는 게 아니다. 이치적으로 되는 게 아니다. 질과 질이 다르기 때문에 그건 안 된다. 헛된 기도하지 마라.

 

무엇이라고 외친다고 합니까?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책에 쓴바.’ 이사야의 책에 썼잖아요?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뭐라고 외치는 거요?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이는 선지자가 미리 예언을 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미리 예언을 했어요. 남조유다 백성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는 것에 대한 예언입니다. 하지만 여기 본문은 초림의 예수 그리스도를 잘 영접하라는 뜻으로서 먼저 미리 주의 사자 혹은 당신의 종을 보낸 겁니다. 그래서 당신의 종은 어디서 보냄을 받은 종은 어디서 외친다고 되어있는 겁니까? 광야에서. 광야에서 외치는 거요.

 

우리는 이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를 잘 구별하고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거짓된 종들의 외침이 많기 때문이지요. 오늘날 거짓 종들이 많기는 많은 겁니까 없는 겁니까? 있어도 조금 있는 겁니까? 보시기에 어느 종이 많은 것 같습니까? 거짓 종입니까 참 종입니까 반반입니까? 볼 줄이나 압니까? 볼 줄 안다면 자기 속에 신앙의 질이 분별이 싹 들어가는 거요. 그게 안 되면 볼 줄 모른다. 너도 거짓말이다. 너도 거짓 신앙자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는 그 말이 아니라 자녀로서의 가질 바 신앙사상 정신이 아니라 그 말이요.

 

일반적으로도 보면 예를 들어서 학교선생이 술집에 가서 앉아있다면 선생으로서 가질 바 정신은 아니다. 맞잖아요? 그 신분에 걸맞게 가지는 정신 사상이 있어요. 그걸 모르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생각을 하는 거요. 그걸 모르기 때문에. 그러니까 일반적 차원에서 볼 때도 세상을 가만 보면 자기의 정신적 신분적 그 차이 그 위치를 다 떠났어. 그래서 이렇게 소란스러운 거요.

 

거짓 종들이 많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부르실 수 있는 그 신앙사상적 본질에 입각해서 딱 서 있어야 될 텐데 딴 데 서 있다. 딴 데서 딴 짓하고 있어. 그러니까 시대의 흐름 속에서 역사가 진행되는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못 듣는 거요. 들을 수가 없어. 돈이 부르면 하나님의 음성이다그러지, 큰 교회가 부르면 하나님의 음성이다그러지. 안 그런 목사들이 어디 있나? 자기 마음에 맞으면 이건 하나님의 뜻이다그러지. 이치에 맞는지 안 맞는지 이건 모르는 거요.

 

광야란 어디냐? 첫째는 시간과 공간적인 광야가 있습니다. 이것은 지형적 장소적입니다. 지역적 지형적 장소적 광야. 여기서 나가면 광야가 어디 있어요? 저기 집이 없고 풀이나 나무나 있는 곳. 사람이 살지 않는 곳. 뭐 여기는 천상 한국 땅 다 뒤져봐야 광야는 없고. 광야인가 싶으면 저기서 집이 보이고 광야인가 싶으면 뭐 좌우지간 곳곳에 뭐가 사람 사는 냄새가 있고 그래요. 광야는 짐승들이 많이 살지요. 주로 보면. , 그런 시간과 공간적인 광야. 이 시간과 공간적인 이 지역적 지형적 이건 장소이기 때문에 이건 늘 요동성이 있어요.

 

, 그 다음에 신앙사상적인 면에서 보는 광야. 사상 면으로 보는 광야. 이건 시간과 장소에 속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질세계 속하는 게 아니란 말이요. 신앙사상적으로 생명 길 좁은 길 하나님의 진리본질로 구원을 이루면서 가는 신앙사상입니다. 진리본질로 구원을 이룬다고 하는 이 말 속에는 인간 너를 만드신 그 창조자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대로 산다 그 말이요. 이게 신앙의 본질이요 그게 바로 구원입니다. 그게 바로 구원.

 

우리의 구원은 특히 제 입장에서는 사람과 직결이 돼있고 신령계와 신령성과 하나님과 직결이 돼있는 구원의 의미로서 쓰는 겁니다. 사람과 직결이 돼있어요. 하나님의 성품을 떠난 구원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구원을 위해서 이제 그 구원을 잘 이루라는 뜻으로 세상에 살다보면 어려운 일을 당하고 가난해지기도 하고 참 죽을 고비를 당하기도 하지요. 그러니까 그 때 그 때마다 당신이 알아서 내가 이렇게 방편을 써줄 테니 네가 구원을 이루어가라, 내가 또 너를 이렇게 도와줄 테니 구원을 이루어가라요렇게 돼있어요.

 

근데 세상 속화된 믿음은 방편이 그게 목적이 돼있어요. 그러니 완전히 이게 질이 다른 거요. 사건 환경 크게 되고 잘되는 요 위주와 목적으로 신앙심이 들어가 있지 하나님의 참사람으로서의 당신처럼 만들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예수를 수 년 수십 년 믿어도 하나도 없다. 그럼 성경을 어떻게 알겠냐? 성경해석이 어떻게 돼 가겠냐? 안 된다. 안 되는 거다. 성경해석은 영인성장 면에서 영 위주로 다 들어가 있는 건데 예수 믿어 세상 복 받아라뭐 이런 식으로 누구도 복을 많이 받았는데 부자가 됐는데요런 식으로 들어갔어.

 

예수 믿어 부자 되려면 세계적인 일등부자가 되기 전에는 말하지 말아라. 부자가 어느 정도의 부자냐? 여러 층층이더라. 소유적 물질적으로 부자가 됐으면 그걸 천국에 가져갈 수가 있다면 맞는 말이요. 근데 못 가져가요. 가져가는 거 봤어요? 못 가져간다는 증거로 사람 죽으면 보여주더라. ‘이래도 네가 모르겠느냐?’ 눈으로 똑똑히 보고도 거짓된 지도자들은 여전히 그러고 있어. 여전히. 이건 영의 눈을 가지고 보면 정신병자로 들어갑니다. 귀신들린 자로 들어간다. 귀신들린 자는 말이 많다. 앞뒤가 안 맞는다. 그걸 알아야 돼요. 귀신들린 자의 말은 정립이 안 돼 있어요. 서론 본론 결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 사상에 정립이 없어. 설교 들어보면 나오지.

 

세상사람들은 세상을 좋아하고 그 세상사람들이 교회 들어왔으면 목사는 교회 안에서 세상을 외쳐도 이게 세상인지 천국인지 그건 모르는 거요. 전혀 모르는 거요. 기도원에 잘 가고 산기도 금식기도 아무리 잘 해도 그 속에는 세상에 속한 것을 다 이루어 달라고 하는 기도이기 때문에 전부는 거짓된 신앙이고 요건 애굽적인 세상적인 신앙이기 때문에 광야에서 외치는 사상의 소리는 못 듣는 거다. 그걸 알아야 된다. 내 말이 아니라 원리와 이치와 법칙이 그런 겁니다. 질이 다르면 안 맞는 거요. 도시에 살아도 농촌에 살아도 어디에서 살아도 주의 길을 예비시키고 그의 첩경을 평탄케 되도록 가르치는 자가 곧 광야에서 외치는 자인 줄을 알아야 합니다.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여기서 가만히 보면 주의 길이 따로 있고, ‘길을 예비하라그랬으니까 주의 길이 따로 있고 이방세상이 가는 길은 따로 있는 겁니다. 맞지요? 우리는 어느 길로 가야 됩니까? 세상 넓은 길 사망 길로 가야 됩니까 생명 길 좁은 길 주의 길로 가야 됩니까? 그냥 주의 길이라 그러면 쉬운데 생명 길 좁은 길이라 그러니까 어딘지 모르게 마음이 좁아지는 것 같아서 그 말이 잘 안 나오지요? ‘넓은 길 생명 길이라 그러면 이구동성으로 크게 나올 텐데 이게 생명 길은 좁기 때문에 이게 마음이 좁아지는 것 같고 뭔가 자유가 없는 것 같거든?

 

제 개인적으로는 생명 길 좁은 길그러면 생명 길까지는 좋은데 좁은 길까지는 이게 마음속에서 제동이 걸리는 것 같아요. ‘생명 길 넓은 길하면 이게 확 나올 텐데. 느낌적으로 기분적으로 나올 텐데. 사실 세상 속화된 기독자들이 사상적으로 넓은 길로 가면서 생명 길이라 그런단 말이요. 왜 생명 길이라고 하느냐? 여기는 하나님의 생명으로 들어가 있는 건데 넓은 길로 가니까 세상 사는 생명적인 개념으로 들어가 있단 말이요.

 

우리는 주의 길로 가야 합니다. 이방세상이 가는 길은 살아생전에 잘 먹고 잘 살다 가자. 그렇게 하기 위해서 교육도 하고 결혼도 하고 직업도 가지고 소원도 목적도 그렇게 가지고 살다가 죽자하는 것이 이방세상의 길입니다. 맞습니까? 맞아요 틀려요? 안 물으니까 다 조는구먼. 맞아요 틀려요? 근데 세상에 속한 교인들은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고 하는 그런 사고방식으로 예수님께 기도를 해요. 그 기도 안 하면 먹고 마시는 것을 안 주는 것처럼 착각을 해요. 착각을 해요.

 

주의 길을 예비하는 것은 우리의 정신 사상 마음에 있습니다. 일에 있는 게 아니라 우리 마음에. 마음에. 이걸 잘 잡아야 되겠어요. 나침반처럼 그걸 잡으라는 거요. 주님을 잘 영접하고 주의 말씀을 잘 받을 수 있도록 방향과 소원과 목적을 바로 잡아라 그 말이요. 간단히 말하면. 마음의 방향과 소원과 목적 마음의 그걸 잘 잡으라 그 말이요. 다른 말로 하면 마음의 초점. 네 마음의 초점이 어디 있느냐 그걸 잘 맞춰라. 어디다가? 주님이 오시는 길에다가 잘 맞춰라. 잘 맞추면 기쁘고 즐겁고 모든 매사에 하는 일이 그 어떤 상황 어떤 일이든 하나님의 성품을 입어가는 그 면에 수입을 잡는 그 면에 만사형통이 되는 겁니다. 알겠어요? 그러나 세상 속화된 교인은 일이 잘 되도록만 자꾸 신경을 쓰는 거요. 아니요. 그렇게 들어있는 게 아니요. 하나님 앞에 바로 하다 보니 일이 잘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하고.

 

거의가 보면 오늘날 식당이 믿는 사람이요. ‘그 주일날 일합니까?’ 그러니까 일 한데. 내가 그랬어. ‘성경구절은 붙여놓고.’ 내가 그랬어요. 그게 또 권사요. 이게 가만 보면 또 감리교 권사더라고요. 감리교 권사만 있나? 여기서 나가면 순복음 집사가 있어. 내가 가면 목사라고 더 푸짐하게 해주네. 복 받으려고 해주는 거지 뭐 진리목사라고 해서 더 주는지 알아요? 제가 또 간간이 목사님들 많이 모시고 가니까 내 먹을 건 공짜지. 이제. 그러니 그 참 그 무슨 교회 본이 돼요? 본이 하나도 안 된다.

 

내가 아는 목사님, 물론 감리교회나 순복음교회나 그런 건 아닌데 보수적인 목사님이야. 어릴 때부터 같이 자라났고. 이 목사님이 장로를 줬데요. 근데 이 장로님이 아침예배 나오고는 오후예배 안 나오고 수요일도 안 나오고. ‘목사님이 왜 그럽니까? 교회를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로 세우십시오. 한 번 두 번 얘기해보고 안 들으면 정지처분을 해버리십시오.’ 교회는 인정정실이 아니란 말이요. 하나님 앞에 바로 세워야 교회가 돼 나가는 거요. 사람이 돼 나가요. 가만 내버려두면 나중에 이게 완전히 그냥 교회가 쑥밭이 돼버려요. 그런 사람들이 한 두 세 사람 되면 목사 쫓아버리고 당을 딱 지어버려요. 이게 참말로 하나님 앞에 무서운 줄을 몰라. 참 이거 오늘날 참말로 문제요.

 

제 입장에서 보는 눈은 이건 교회가 오늘날 신앙사상적으로 개혁을 안 하면 안 된다. 그냥 기독교 종교인은 많다. 종교개혁은 안 해도 돼. 내가 가만 보면. 근데 신앙개혁이 안 돼. 신앙개혁이 안 되면 말은 기독교인이라도 교회 안에서 제 멋대로 오만 우상 신관적인 그런 사고방식으로 교회가 잡스럽다. 혼잡하다. 이것이 요한계시록에서 말하는 큰 성 바벨론 귀신집들이요. 그게. 그 교회를 두고 다 하는 말이요.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첩경은 울퉁불퉁해서 길 걷기가 힘든 길이고, 마음으로 말하자면 상대하기 힘든 성격 성질이고. 이해갑니까? 길 같으면 돌짝밭이고 걷기 힘들고, 사람으로 말하자면 그 사람하고 상대하기 힘든 성격이요 성질이라. 그게. 왜곡되고 교만하고 오만하고 거만하고 자만하고 이런 마음과 정신 사상이 들어있으면 늘 주님과 의사적으로 대립되고 마찰되고 늘 충돌이 된다. 그게 안 믿어지면 한 식구라도 부부간이라도 성격 성질이 안 맞으면 그렇더라. 그래도 못 믿겠냐?

 

하나님의 말씀으로 단일성이 안 되면 그건 뭐 불 보듯 빤한 거야. 그런데 하나님의 의사단일로 맞추면 그렇게 행복하고 기쁘고 평안하고 마음이 편안하고 참 좋을 텐데, 모든 걸 다 이겨나갈 수 있는 그게 생기는 건데 하나님의 말씀대로 고치지는 않고 제 성격 제 성질대로 살려고 그러니 그래, 세상이 자기 성격 성질대로 잘됩니까? 그런 성격 성질가지면 너만 고통당할 뿐이다. 네 몸만 병들뿐이다.

 

지금은 안 나옵니다만 몸에 수술을 해서 오만 데다 칼을 다 댔어. 가만 보면 아주 성격 성질이 불같아. 제 마음에 안 들면 욕지거리가 그냥 나와 버려요. 그래서 집사님, 성질 좀 고치십시오.’ 성질 고쳐야 돼요. 성격 성질 고치지 못하면 이게 사람이라는 게 참 희한해요. 안 아픈 것도 아프다 아프다그러면 이상하게 아파요, ‘안 아프다 안 아프다그러면 안 아프다는 그 마음이 자기를 파워적으로 밀고 나가는 그게 있지요. ‘아이고, 아파그러면 팍 주저앉고 안 아파그러면 쑥 일어나는 거지. 사람이 그런 게 참 신비로워요.

 

가만 보면 저 사람이 저렇게 살아서는 안 될 텐데 왜 저럴까? 아이고이러고 약한 뭐 어떤 그런 마음이 잔뜩 들어가지고 평생 그렇게 살다가 죽는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하나님도 어쩌지 못하는 거예요. 자기가 그러겠다는데 하나님이 억지로 그래놓으면 다른 사람은 또 뭐라 그래요? ‘왜 이렇게 불공평 합니까그러지. 하나님의 공의 공평에는 그런 게 안 들어있어요. 억지 강압이 안 들어있어요. 몇 가지는 들어가는데 죽는 지경에까지는 들어가는데 마음속에는 그게 안 돌아가. 요게. 자기가 돌려야 할 텐데 이게 안 돌아가. 그래서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하는 여기에 교훈적으로 보면 어릴 때부터 이게 잘 돌려야 돼.

 

나무 키우는 사람들 잘 알 거야. 어릴 때부터 나무를 바로 잡을 거예요. 늙어서 잡아져요? 안 잡아져요. 늙어서 잡으려면 뚝 부러져 버려요. 식물에 과학적인 이치도 보여주면서 우리에게 교훈적으로 깨닫게 해주는 거요. 의사적으로 주님과 의사적으로 대립되고 마찰되고 이 충돌되지 아니하도록 주님의 의사단일이 되도록 하라는 거요. 또 그렇게 이치적으로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것이 광야의 외침입니다. 광야의 외침은 그건 주님이 보내신 종입니다. ‘어느 신학 나왔네. 박사냐 아니냐그걸 말하는 게 아니라 주님의 종은 바로 외침이 그래요.

 

주님의 종을 만나려면 어디로 가야 돼요? 그러니까? 광야로 나가야지. 자기 정신 사상이 하나님 앞에 옳게 바로 살려면 세상을 등지지 아니하면 하나님 못 만난다. 광야로 어떻게 나가져요? 자기 집에서 광야로 나가려면 집을 떠나야지. 맞잖아요? 이치가? 집을 안 떠났는데 어떻게 광야로 나가져. 이치를 말하는 거요. 지금 이치. 기도원에 가라는 말이 아니요. 정신 사상적 광야로 나가야 옳은 종을 만난다. 그럼 옳은 종은 어디 있다고 그랬어요? 큰 집 짓고 종교적인 덩치 키우고 하는 그 사상에 있다 그랬어요? 어느 사상에 있는 거요? 옳은 목사 만나고 싶지 않아요? 교회에서 종 바로 못 만나면 자기는 죽 쑨 거요. 이미.

 

광야로 나가야 회개의 세례를 받을 수 있고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됩니다.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돼요. 만날 수 있는 이 순서를 성경 속에 지금 주님이 만들어 놨어요. 그 안에 보면 순서가 있는 거요. 그 안에 주님을 만나는 순서가 있단 말이요. 그 안에 지금. 주님이 만들어놓은 이 순서를 어기는 자칭 종이 땅 위에 세상 안에 교회 안에 너무 많다. 너무 많다.

 

누가복음 7장으로 가보면 나인성에서 과부의 아들이 죽어가지고 상여를 메고 나오지요? 성 안 사람들이 뒤따라 나오고. 가는 사람들은 전부 다 웃고 갑니까 울고 갑니까? 무리들이 많이 따라요. 울고 가. 종착역은 어디요? 공동묘지.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또 무리가 있어요. 그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무리는 공동묘지로 가는 무리입니까 살리러 가는 무리입니까? ‘대열이다할 때는 누가 앞섰냐이걸 보란 말이요. 신앙의 세계를 사상적으로 지금 그걸 보여주고 있어요.

 

헤롯 왕궁으로 들어가면 헤롯 밑에는 대제사장 서기관 율법사 교사들 바리새인들 세상에서 어마어마한 훌륭한 인물들이 많다. 많이 있지요? 오늘날 많이 있잖아요? 저기 어디요? 이제 서울에서 안 사니까 지역도 다 잊어버리네. 정치인들이 많이 모이는 교회가 어디요? 영락교회. 또 영화배우들이 많이 모이는 교회가 또 어디요? 온누리교회. 다 있어요. 그게 냄새가 다 있어요. 냄새 나면 그리로 가면 돼요. 그리 가면 훌륭한 사람 많아요. 연예인 교회 가면 세상에 붕붕 뜨는 돈 많은 연예인 많아요.

 

뭐라고 설교 나오겠어요? 예수이름은 예수라고 할 테지. , 정치인들이 모이는 그런 교회는 또 대한민국 정치가 어떻고그 말 안 하겠어요? 하지? 축복기도 할 때에 연예인교회는 뭐라고 그러겠어요? 연예인으로서 축복이 들어가는 거지. 예수이름하고는 다른 거요. 전혀 다른 거요. 정치인들이 모이는 곳에는 정치적인 그 이름으로 잘되게 해 달라고 정치 잘하게 해달라고 이제 그러는 거지. 맞잖아요? 제 말?

 

그런데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죽일 정도면 그 이상 더 큰 권세가 어디 있습니까? 땅 위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일 정도의 권세면 그 이상 더 큰 권세가 어디 있어요? 그런데 그 집단에서는 무슨 소리가 나오겠느냐? 예수 죽이는 구원 죽이는 진리이치 죽이는 하나님의 성품을 죽이는 그 집단에서는 무슨 소리가 나오겠느냐? 가이사 밑에서 아부 떠는 소리. ‘세상에서 왕 되어라.’ 그 때 그랬잖아요. 우리의 왕은 누구 뿐이니이다? ‘가이사밖에 없나이다.’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이 신앙인들이 그 모양이요.

 

그러면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누가 왕이냐그러면 주님이 왕입니다그럴 것 같아요? 아니요. 너 거짓말 하지마라. 주님이 왕이면 그 왕의 명령을 듣는다. 그런데 네가 그 왕의 명령을 거스르고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게 아니라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세상축복 된 세상의 어떤 그런 개념으로 구하는구나. 다르지요? 네 속에 세상이 왕이다. 맞잖아요? 기도할 때에 시험날짜다 하면 부모들이 자식을 놓고 뭐라고 기도할까요? 시험 잘 보게 해 달라고 하겠지요. 공부는 개떡같이 해놓고, 성격 성질은 개떡같이 만들어놓고.

 

유대종교지도자들은 종교적인 세상을 크게 만들고 우리 이름을 날리세.’ 모두 외식운동이었습니다. 외식운동은 마귀운동이요. 악령운동이요. 예수님이 지적했잖아요. 근데 오늘날 교회들이 외식운동을 알아보느냐? 못 알아본다. ? 본인들이 다 외식운동을 외식적인 신앙사상을 가졌기 때문에. 자기가 마귀에게 붙잡히고 악령에서 붙잡힌 그걸 모르고 성령에게 붙잡혔다는 그런 되지 못한 소리를 늘어놓는 거요. 성령이 오시면 너 같은 그런 것은 신앙이 아니다.’ 이 어떻게 돌아가는 셈이냐? 이게 오늘날.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마귀운동 악령 운동하는 그들 밑에 가서 신앙합시다그렇게 외칩니까? 헤롯궁의 헤롯 밑의 신앙사상은 주님을 눈으로 보고도 주님과의 의사단일성으로, 쉽게 말하면 주님을 못 만나보고 죽었다. 맞잖아요?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는 하나님의 종들의 소리입니다. 하나님의 종들의 소리는 하나님의 소리요, 하나님의 종들의 소리는 세상을 의지하는 데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요, 또 세상을 구하지도 않습니다. 세상을 구하는 종은 하나님의 종이 아니고 바로 왕 밑에 애굽의 술사 술객들이고 헤롯왕의 졸개들입니다.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는 하나님의 의사만 외치고 인간 자기는 나타내지 않습니다.

 

산에 올라가서 야호하고 외치니까 어떻게 외치는 그 속에 자기가 갑니까 소리만 전해집니까? 무슨 소리를 하던 소리가 메아리쳐 가더라. 그게 하나님의 종들의 생애다. 왜 네가 나타나느냐? ‘나는 이런 사람이요.’ 명함이 무거워요. ‘나는 이런 사람이요하고 감사패. 무슨 컵? 감사의 컵인가? 그런 사람들은 사진 찍기를 잘하고요, 뭐 미국의 무슨 높은 사람들 있으면 그런 사람들하고 찍기를 잘해요. 사진 찍기를 잘해요. 거지가 와서 찍자고 그러면 찍겠어요? 높은 사람이 와야, 세상에서 그래도 아주 고급인사들이 와서 찍자고 그러면 아 예, 찍어드리지요하고 가지 목사님 옆에서 찍을래요그러면.

 

사실은요 주님의 종은 위치적으로 말하면 사상적으로 말하면 하나님 밑이에요. 말하자면. 대통령이 대사를 보내서 그가 말을 하면 그게 누구 말이요? 대통령 말이 되는 거지. 대통령의 말은 곧 국민의 말이 돼야지. 이제 또. 근데 오늘날은 세상성으로 커진 이것 가지고 자기를 나타내는 거요. 세상 가지고 자기를 나타내는 거요. 어쩌면 마귀가 예수님에게 시험 친 그 사상하고 어찌 그리 같으냐? 딱 들어맞는다. 딱 들어맞아. 아무리 예수이름을 가지고 해도 그건 껍데기고 정신 사상은 마귀사상하고 어떻게 그리 같으냐?

 

사람들이 처음에는 과일을 사든지 물건을 사면 겉을 보지요?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 속을 맛보려고 하는 거 아니요? 맞지요? 그런 일반이치도 있는데 예수 믿으면서 속을 맛봐야지. 여기에는 세상요소로 자기 위치가 올라간 것, 종교적인 명예와 부귀와 영광을 소개하지를 않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신문 보면 엄청난 소개가 많아. 그런데 내 입장에서 보면 내 신앙과는 이건 적성에 안 맞아. 그러니까 그런 것을 가지고 자기를 소개하는 자는 광야의 외치는 소리가 아니다 그 말이요.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왜 그것 가지고 외치려고 그래요? 말이 안 되잖아요?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고 말씀이면 끝난 거지 뭘 딴 걸 세상요소로 뭘 보려고 그래. 세상요소적인 그런 개념을 가지고 예수님을 한 번 봐 봐요. 볼 것 아무 것도 없다. 성경이 말했잖아요. 근데 오늘날 기독교인들 뭘 보려고 그래요? 그것부터 틀렸다. ‘너의 아버지 너의 부모에게 가거라. 너의 아버지는 마귀니.’ (계속)

 

(궁극교회 김경형목사님의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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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통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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