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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시의 프란체스코] 평화의 기도
주님, 저를 당신의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상처가 있는 곳에 용서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심게 하소서.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주게 하소서.
오, 거룩하신 주인님, 저로 하여금
위로받으려 하기 보다는 위로하게 하시고
이해받으려 하기 보다는 이해하게 하시고
사랑받으려 하기 보다는 사랑하게 하소서.
주어서 받고 용서해서 용서받고
스스로 죽어 영원한 생명으로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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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cis of Assisi 1182-1226>
아시시의 프란체스코는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젊은 시절을 군인으로 복무하면서 용맹과 사치스런 생활로 이름을 얻었다. 그러다가 스물 세 살 되던 해, 회개하고 예수를 본받아 철저한 가난을 평생 배필로 삼았다. 그가 처음 한 일은 고향인 아시시의 황폐한 예배당을 보수하는 것이었다. 그런 다음 1208년 복음을 전하기 위해 맨발로 길을 나섰다. 곧 그의 온유한 사랑과 환한 기쁨에 감명 받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결국 그들과 함께 수도공동체를 이루었다.
-월간<풍경소리 제100권>에서
누가 "평화의 기도"를 썼는가?
2년 전 쯤인가, 이 곳 시카고의 저 유명한 남부 상가지역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Johnpaul Cafiero 수사님께서 지도해 주신 피정에 참가하였다가 좀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분의 말씀에 의하면 이 평화의 기도문은 프란치스코 성인이 쓴게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서 이 수사신부님께서는 이 기도문의 HISTORY를 이렇게 소개하여 주셨기에 여기에 소개하여 드립니다.
“이 기도문은 11세기초에 프랑스에서 신자들이 사용하던 기도문과 매우 흡사하다. 그런데 그 시기가 프란치스코 성인이 살았던 시대보다 약 200년전의 일이다. 그러다가, 1912년 프랑스의 소도시에서 La Clochette(번역을 하면 `작은 종`)이라는 잡지에 실렸는데, 그 당시 이 기도문의 처음 제목은 [미사동안 드려지는 아름다운 기도문]이었다. 별로 세인의 관심을 못 받던 이 기도문이 4년이 지난 후인, 1916년 교황청의 신문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L'Osservatore Romano)라고하는 기관지에 실리면서 이 기도문이 여러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4년후, 1916년 1월 28일, 프랑스의 한 신문이 그 당시에 일어나고 있던 세계 제 1차 대전이 끝나게 되기를 바라면서, 또 세계의 평화를 빌면서 이 기도문을 신문에 게재하였고, 당시 가톨릭교회의 한 주간잡지가 이 기도문을 교황 베네딕도 15세에게 전하였다.
그리고, 그 직후 한 프랑스인 재속 프란치스코회원이 이 기도문을 프란치스코 성인의 사진과 함께 사용하여서 포스터를 만들었고, 그리고 4년 뒤, 1920년에 프랑스의 한 사제가 프란치스코 성인의 초상화가 그려진 카드 뒤에 이 기도문을 실으면서 기도문 카드를 만들었다. 이 때까지의 제목은 그냥 “평화의 기도문”이었다.
미국내에서의 첫 영어 번역판은 1936년 개신교 목사인 Kirby Page목사가 계신교계통의 책자인 Living Courageously(씩씩하게 살기)라는 책에 번역하여 처음으로 알렸다. (여기에서 그는 이 기도문이 프란치스코 성인의 것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그런 후, 1939년 뉴욕의 Francis Spellman대주교께서, 그의 착좌식때 “프란치스코 성인의 평화의 기도문”이라는 제목으로 이 기도문을 많이 인쇄하여서 그 당시 제 2차 세계대전 때문에 정신적으로 또 물질적으로 피곤해지고 궁핍하여진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 후, 바오로 6세 교황께서 유엔본부를 1965년도에 방문하여 연설을 할 때, 그 때는 추기경이 된 Francis Spellman추기경은 “프란치스코 성인의 평화의 기도문”이라고 적힌 기도문과 성인의 초상이 색인된 커다란 메달을 교황님께 드렸고, 이 기도문은 노래로 만들어져 바오로 6세 교황께서 Yankee Stadium에서 집전하신 미사에서도 불리어 졌다.
교황 바오로 2세께서도 이 기도문을 자주 사용하셨고, 또한 2000년 대희년에 아씨시에서 거행된 [세계 종교지도자들과의 세계평화를 위한 기도모임]에서도 사용되었다.”
이상의 Johnpaul 수사님의 설명을 요약하면, 이 기도문은 프란치스코 성인에 의하여 쓰여진 게 결코 아니고, 1916년도에 이 기도문을 포스터에 옮긴 재속 프란치스코 회원이 포스터를 만들면서 한 이야기대로, 즉,
“이 기도문은, 모든 프란치스코 회원들의 이념과 영성을 잘 요약한 것이고, 또 그 당시 우리 세대에 긴급히 필요하였던 여러 가지 요구들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이었다.” 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피정이 끝난 후에 집으로 돌아와서 인터넷을 뒤져 봤더니, (지금도) 한국 싸이트에서는 이 기도문의 저자가 프란치스코 성인이 아니라는 글이 실려있지를 않았습니다마는, Google을 두드려 보니 많은 글들이 보였습니다.
-바오로 부제
http://www.standrewkimchicago.org/xe/MyStory/112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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