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햇볕같은이야기는 최용우가 1만편을 목표로 1995.8.12일부터 매일 한편씩 써오고 있는 1천자 길이의 칼럼입니다. 그동안 쓴 글이 15권의 단행본으로 만들어져 인터넷 교보문고에서 판매중입니다.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동의 없이 가져다 쓰셔도 됩니다. 책구입 클릭!

선지자들과 성경

2019년 하동 최용우............... 조회 수 157 추천 수 0 2019.10.03 09:10:46
.........

hb6475.jpg

♣매일 아침차 한잔 마시면서 전해드리는 햇볕같은이야기 그 6475번째 쪽지!


□선지자와 성경


어떤 분이 제 페이스북에 ‘삼위일체라는 단어는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다.’라고 댓글을 달아 놓았네요. 제가 쓴 글 내용에는 삼위일체라는 단어가 없는데 ????? 무슨 뜻이지? 고개를 갸웃.
전 세계에서 성경을 가장 많이 만들고 보급하는 나라가 우리나라입니다. 그런데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이 만들어지고 팔리고 읽히는 ‘성경’을 다른 나라에서는 잘 모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고 합니다. 그냥 우리나라에서만 유난히 유명한 책입니다. 그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는 ‘문자주의’ 교단과 교회가 대부분입니다. 문자주의(文字主義,Biblical literalism)는 16세기에 등장했으나 종교개혁자들로부터는 거부된 성경 이해 방식이었는데, 19세기 ‘기독교 근본주의’가 다시 성경해석의 개념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성경에 나온 모든 기록을 문자에 기록된 그대로 따라야 한다는 극단적 성경이해 방식으로 기독교 개신교 보수주의가 절대적으로 고수하고 있습니다. 문자주의는 성경에 있으면 있는 것이고 없으면 없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성경에 없는 것도 있고, 성경에 있는 것도 없는 것이 있더라구요. ‘삼위일체’라는 단어는 성경에 안 나옵니다. 그렇다고 삼위일체가 없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저도 문자주의자입니다. 성경을 열심히 보고 읽고 암송하면서 연구합니다. 그러다가 성경을 통전적으로 보는 방법을 배운 뒤로는 ‘오직 성경’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리고 성경 자체가 아니라 성경이 가리키는 그곳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구약 선지자들에게는 성경이 없었습니다.(그들이 성경을 썼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대의 선지자들은 성경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새로 씁니다. ⓒ최용우


♥2019.10.3. 나무날에 좋은해, 밝은달 아빠 드립니다.


댓글 '1'

호일맥

2019.10.05 08:28:35

개역개정에는 삼위일체를 숨겼지만 킹제임스흠정역1611년판 요한1서 5장에 삼위일체를 증언하십니다. 저는 개역개정을 버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번역본을 찾다가 킹제임스흠정역1611년판을 찾았습니다. ▶요한1서 5장"7. 하늘에 증언하는 세 분이 계시니 곧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님]이시라. 또 이 세 분은 하나이시니라. 8. 땅에 증언하는 셋이 있으니 영과 물과 피라. 또 이 셋은 하나로 일치하느니라.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6476 2019년 하동 무너진 마음 [2] 최용우 2019-10-04 317
» 2019년 하동 선지자들과 성경 [1] 최용우 2019-10-03 157
6474 2019년 하동 선지자의 설교 [3] 최용우 2019-10-02 207
6473 2019년 하동 선지자의 외침 [1] 최용우 2019-09-30 138
6472 2019년 하동 전하지도 않고 듣지도 않고 [2] 최용우 2019-09-28 260
6471 2019년 하동 선지자로 부르심 [1] 최용우 2019-09-27 263
6470 2019년 하동 선지자와 백성들 최용우 2019-09-25 140
6469 2019년 하동 선지자와 목사 최용우 2019-09-24 188
6468 2019년 하동 선지자와 하나님 [1] 최용우 2019-09-23 164
6467 2019년 하동 잠언과 지혜 최용우 2019-09-21 255
6466 2019년 하동 뱀과 지혜 [1] 최용우 2019-09-20 490
6465 2019년 하동 지혜의 말씀 최용우 2019-09-19 383
6464 2019년 하동 지혜와 윤리도덕 [1] 최용우 2019-09-18 132
6463 2019년 하동 지혜와 계시 최용우 2019-09-17 128
6462 2019년 하동 지혜와 지식 최용우 2019-09-16 211
6461 2019년 하동 시편과 희노애락(喜怒哀樂) [1] 최용우 2019-09-12 235
6460 2019년 하동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로 최용우 2019-09-11 287
6459 2019년 하동 시편기도 최용우 2019-09-10 219
6458 2019년 하동 시편 찬양 최용우 2019-09-09 249
6457 2019년 하동 고난과 성숙 최용우 2019-09-07 275
6456 2019년 하동 고난과 침묵 [2] 최용우 2019-09-06 197
6455 2019년 하동 고난의 신비 [1] 최용우 2019-09-05 230
6454 2019년 하동 고난의 유익 최용우 2019-09-04 252
6453 2019년 하동 고난과 나 최용우 2019-09-03 179
6452 2019년 하동 고난과 하나님 [1] 최용우 2019-09-02 223
6451 2019년 하동 나는 조국을 사랑합니다 [2] 최용우 2019-08-30 391
6450 2019년 하동 있고 없고 최용우 2019-08-29 241
6449 2019년 하동 손해와 이익 [2] 최용우 2019-08-28 242
6448 2019년 하동 그냥 믿어짐 [4] 최용우 2019-08-27 208
6447 2019년 하동 한국인의 의식구조 [1] 최용우 2019-08-24 335
6446 2019년 하동 미국인의 의식구조 [1] 최용우 2019-08-23 192
6445 2019년 하동 중국인의 의식구조 [1] 최용우 2019-08-22 190
6444 2019년 하동 일본인의 의식구조 최용우 2019-08-21 248
6443 2019년 하동 인간의 의식구조 최용우 2019-08-20 220
6442 2019년 하동 어려움을 극복하는 다섯가지 방법 [1] 최용우 2019-08-19 737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