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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막3: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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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기성 목사 |
참고 : | 말씀의 숲 교회(대한예수교장로회)https://www.youtube.com/watch?v=UzImulzUCqQ |
내 손을 내밀라 하시네(막3:1-6)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밀밭에서 논쟁을 하셨지요. 밀밭에서 논쟁을 마치시고, 예수님이 회당으로 들어오셨습니다. 그런데 그 회당에는 어떤 한 사람이 있었지요. 그 사람은 몸이 아픈 환자였지요.
한쪽 손이 말랐다고 합니다. 손이 말랐다는 것은, 손이 비틀려 있다는 것이지요. 그는 원래부터 그 회당에 출입했던 사람인 것 같습니다. 환자였고, 손이 말라 있습니다. 이 환자는 어제 오늘 아픈 환자가 아닙니다. 이 회당에 늘 출입하는 사람이지요.
남들에게 손을 보이기도 좀 그래서 가능하면 가리고 다니려고 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성전 구석 어디엔가 앉아서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리고 있었겠지요. ‘내가 오늘 나을 수 있을까?’ 기대하고 기다리고 있었겠지요.
그런데,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이 그 회당 안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감시하는 감시자들이었지요. 이들은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안식일에 과연 이 사람을 고치실까?(2절) 고치면 당장 고발하려고 준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저는 오늘 모든 문제의 해결점을, 3절에서부터 시작하려고 합니다.
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시작)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두 눈을 크게 뜨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은 화가 나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예수님은 어떤 행동을 보여 주십니다.
예수님은 환자에게 말씀하시지요.”여기 한 가운데에 일어서라“ 말씀하시지요. 예수님은 환자를 가운데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감시자들에게 예수님이 질책을 하십니다.
”안식일에 선을 행해야 하겠느냐? 악을 행해야 하겠느냐?“ ”생명을 살려야 되겠느냐?“ ”생명을 죽여야 하겠느냐?“ 어떤 것이 옳으냐? 이렇게 말하니까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잠잠히 있었지요. (4절)
여러분, 지금 여기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몸이 아픈 사람이구요. 또 한 사람의 부류는 영혼이 아픈 사람들이지요. 그러니까 영혼이 말라서 비틀려있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몸이 뒤틀려 있는 사람만 환자라 생각할 수 있지만, 예수님이 보시기에는 둘 다 환자입니다.
자, 우리는 이런 육신과 영적인 부분에 병자들을 예수님이 어떻게 다루시고 있는지 보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 손 마른 자를 한 가운데 세워놓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5절을 보시면, ‘너의 손을 내 밀어라!!’ 그러자 그 손이 회복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이렇게 하셨을까? 예수님이 왜 이 사람을 이렇게 가운데 세웠을까?
손이 말라 비틀어져 있으면, 참 부끄러웠을 텐데!! 사람들 가운데 서서 자신의 마른 손을 꺼내야 할 텐데!!, 그리고 사람들에게 그 손을 내놓아야 될 텐데!!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차라리 예수님께서 아무도 모르게 저 구석에 가서, 남모르게 기도해 주고 치료해 주시지~~ 왜 한가운데 세우셨는가? 우린 이렇게 질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의 의도를 조금만 더 생각해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예배에 나오는 자, 하나님의 성전에 나오는 자는,~~ 내 부끄러운 모습, 내 연약한 모습, 심지어 내 죄 된 모습, 내 강퍅한 내 자아까지, 하나님께 그대로 보여야 합니다.
그대로 다 내 손을 하나님께 보여야 합니다. ‘하나님 저는 이런 상태입니다.’ ‘저는 이런 연약한 자입니다.’ ‘지난 한 주간 내 삶을 돌아보면, 저는 사람들에게도 용납 받을 수 없는 죄를 지은 사람입니다.’ ‘저를 생각하는 것도, 과거도 현재도 그리고 내 내면도 이렇게 추악합니다.’ 하고 예수님께 내 손을 내 미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성전에 나아오는 우리에게 꽁꽁 싸매고 있지 말라고 하세요. 마음을 열고, 너의 손을 가슴에서 꺼내라, 감추고 있던 너의 모든 것을 내 앞에 꺼내라. 너의 손이 뒤틀려 있다 할지라도, 메말라 있다 할지라도, 내가 고치겠다.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오늘 내가 부끄럽다고 감추고 있는 내 모습, 사람에게 아니라 하나님께 내 놓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고치시고 역사하시고, 함께 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교회 와서 사람에게가 아니라, 하나님께 어떤 기도를 드리십니까? 참회의 시간에 하나님께 무엇을 기도합니까? 한 주 동안 있었던 이야기들을, 그 짧은 참회의 시간에, 어떻게 다 내어 놓을까요?
조금이라도 일찍 와서, 예배 10분전이라도 와서, 한주 동안에 있었던 일들을 반추하며, 나의 못난 모습들을 하나님께 내어 놓아야 지요. 사람에게는 말할 수 없었던 은밀한 이야기들, 그 부끄러운 손들을 예수님께 꺼내어 보여 드려야지요.
예수님께서 내가 내 민 손을 붙잡아 주시고, 그때부터 고쳐 주십니다. 예수님이 그 손 마른 자를, 성전 가운데, 세우신 의미는, 부끄러운 것을 부끄럽다 하지 말고, 그 모든 것을 꺼내어 보이라!!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손을 내 밀어야 예수님이 내 손을 잡아 주십니다.
같은 맥락에서 보면, 기도도 같은 것입니다. 기도할 때 많은 분들이 이런 질문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다 알고 계신다면서 왜 기도해야 해요?’ 하나님이 다 알고 계시고, 내 형편도 알고 계시고, 내 마음도 알고 계시고, 내가 바라는 것도 다 알고 계시는데, 그럼 알아서 다 이루어 주시면 돼지, ‘내가 왜 기도해야 합니까?’ 라고 질문을 합니다.
이것은 기도를 해 보지 않은 사람들의 질문이지요. 왜냐하면 기도를 하면 훨씬 더 많은 은혜를 우리는 받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상처를 받았습니다. 상처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서로가 상처를 받고 힘들어 합니다. 그리고 그 문제로 하나님께 기도를 합니다. 그 상처를 치유해 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기도하다 보면, 그 문제는 온대 간대 없고, 점점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은혜가 감격스러워서, 그 은혜에 흠뻑 빠져서 기도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나에게 주셨던 은혜가 감사해서 감사의 기도를 하게 되고, 나 같은 못된 죄인을 구원해 주신 그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해서 한참 동안 감사에 머물게 하시고요.
내 연약함을 하나님께 올려 드리고, 감사기도를 하게 되죠. 그리고 회개하는 마음을 주시고, 그리고 이 상처 받은 기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내가 용서하지 못한, 지난날의 누군가를 위해 기도도 하게 되죠. 처음에는 상처로 시작했는데, 끝은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는 것으로 기도를 끝맺는 경우가 참 많이 있습니다.
나도 모르게 하나님이 그렇게 해 주신다는 것이죠. 한 가지 문제를 가지고 기도하는데, 하나님은 열 가지 이상의 은혜를 덧입게 만들어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께 기도의 손을 내어 놓는 것입니다.
여러분, 저는 우리 성도님들에게 가능하면 대표기도를 준비케하고 시킵니다. 주일날 성도들을 대표해서 하나님께 나의 기도의 손을 내미는 것이, 대표기도 이지요.
대표기도를 듣는 성도는 듣는 순간 은혜를 받습니다. 그런데 그 기도를 듣는 성도들은 잊어버립니다. 왜요? 나의 고백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대표기도를 하는 분들은 기도를 준비하다가, 내가 은혜를 받지요. ‘내 인생에 어떻게 강단위에 설 수 있을까?’ ‘내가 이렇게 형편없는 사람이었구나!!’
‘그런데 하나님이 이렇게 부족한 나를 부르시고, 기도하게 하시는 구나!’ 이렇게 준비하다가 내가 은혜를 받습니다. 그리고 대표 기도하면서 은혜를 받습니다. 내가 내 입으로 나의 고백을 올려 드리면서 은혜를 받고, 기도하고 난 이후에도 조금이라도 내 삶을 조심하며 은혜를 받습니다. 그러면서, 성장하고 성숙해 가는 것입니다.
원하는 것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몰랐던 것까지 깨닫게 하시고, 은혜를 받을 수 있게 해 주실 것이다. 그래서 기도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죠.
여러분, 내가 기도의 손을 주님께 내 밀 때, 예수님이 내 마음을 만져 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손을 내밀면, 주님은 내가 생각하는 그 이상의 은혜를 주십니다. 그래서 ‘네 손을 내밀라’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마음이 뒤틀려 있어서, 예수님께 손을 내밀지 못하는 영적으로 손이 오그라진 사람이 있지요. 오늘 그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바리새인들’ 입니다. 우리 6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시작)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에게 영적으로 오그라진, 자신의 손을 내밀지 못하고, 예수님을 어떻게 하면 죽일까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단비가, 한없이 그 주위에도 내리는 데, 어떻게 보면 그렇게 가까이 있는 은혜의 단비를, 한 방울도 얻지 못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마치 은혜의 단비는 내리는데, 그 그릇을 자신이 그냥 뒤집어 놓고 있는 꼴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면, 아무리 비가 내려도 한 방울의 은혜의 단비를 담을 수 없습니다. 이 얼마나 불행한 사람들일까요?
여러분, 예수님이 손 내밀라 하실 때, 이 때가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되는 때인 줄 믿습니다. 영적으로 무지한 바리새인이 되지 말고, 주님이 손 내밀라 하실 때, 과감하게 주님께 그 손을 내 밀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은혜는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존재입니다. 하나님 앞에 서면 떳떳한 사람 없습니다. 육신이 뒤틀려 있을 수 있고, 때로는 우리의 영혼까지 뒤틀려 있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감추고 싶고, 드러내고 싶지 않고, 여전히 손 마른 사람처럼 성전에 있어도, 저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있고 싶어 합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저와 여러분에게 말씀하십니다. 부끄럽지만 가운데에 서서, 그 손을 내게 보이라 하십니다. 나의 손을 내밀라 하십니다.
여러분, 내가 나의 연약함을 주님께 내밀 때, 하나님은 치유해 주십니다. 그 은혜의 자리에 머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연약한 모든 것을 치료해 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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