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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막4:21-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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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기성 목사 |
참고 : | 말씀의 숲 교회(대한예수교 장로회)https://cafe.naver.com/bibleforest |
있는 자 와 없는 자(막4:21-25)
어떤 분이 이런 말씀을 하세요. 세상에서 가장 쉬운 것이 예수 믿는 거래요. 그래서 왜 그러세요? 물어보았더니. 예수믿을 때 내가 하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내 안에 오셔서 믿게 만들어 주시면 그냥 순종하면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예수 믿는것처럼 쉬운 것이 없다. 그렇게 말씀하시지요. (참 성경적이고, 교리적이고, 많이 배우셨다)
이것이 믿어지는 은혜이지요.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그래서 은혜아니면 알 수 있고, 예수님의 사랑 아니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것이죠.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먼저 온 것은 축복인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은, 본분 자체만 보면 참 어려운 본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난 시간에 보았던 씨 뿌리는 비유를 생각하여 본다면, 쉽게 이해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길가 밭, 돌밭, 가시밭, 좋은(옥토)에 씨를 뿌리는 예수님의 비유에 대해, 비유로 설명하는 이유에 대해, 예수님이 설명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내가 비유로 너희에게 말한 이유가 있단다. ‘그것은 마치... 등불을 켜는것과 같다’ 등불을 켜서 그것을 말 아래(큰 그릇 안쪽에) 그냥 두는 것이 아니고, 또 평상아래(침대 밑에)에 그 등불을 놓는 바보는 없다. 등불을 켜고는 빛이 널리 비추기 위해서는 높은 곳에 올려놓아야 골고루 그 빛이 어두움을 몰아낼 것이다‘ 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본심을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는 꼭꼭 숨겨놓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오히려 잘 알려 주기 위해서이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죠.
그러나 그 다음이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비유로 말씀하시는 이유는, 누구나 다 들리는 것이 아니라, 들을 귀 있는 자만이 그것을 알 수 있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24절 말씀을 보시면 어렵죠?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이 말을 좀 쉽게 쓰면 어디가 잘 못되나요? 쉬운 성경에 보면 좀 우리가 알 수 있게 풀어서 써 놓았습니다. 그것은, ‘너희가 듣는 것을 마음에 새겨들으라’ 들을 귀 있는 자는 새겨 들을 것이다! 말씀하시고,
또 어렵지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며’ 라고 되어 있지요. 이것을 다시 쉬운 성경으로 써 놓을 것을 읽어보면, ‘너희가 새겨 들으면, 새겨 들을수록 하나님의 나라는 더욱 선명하게 보일 것이다’ 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나서 예수님이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25절 말씀을 같이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있는 자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그 있는 것 까지도 빼앗기리라” 여러분 이게 무슨 말씀일까요?
“있는 자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그 있는 것 까지도 빼앗기리라” 여러분, 요즘 상식으로는 심각한 반발이 따르는 내용일 것입니다. 없는자의 것을 빼앗아 가진 자에게 더 주어라! 라는 말은 정말 이것은 착취이고요. 어떻게 말하면 가진 자의 횡포일 수 도 있습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착취를 장려하는 것처럼 보일 수 도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여기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의도는 무엇일까요? 우리 안에 하나님이 있는 자와 없는 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의 진리를 더욱 분명하게 깨닫지만, 없는 자는 하나님의 진리에 대해서 아무것도 깨달을 수가 없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것 조차 빼앗길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면, 부자이고 가난한 사람이고, 돈 많이 있고 없고로 그 사람을 평가하지 않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단 두 부류로 사람을 분류합니다. 믿는 자 인가? 믿지 않는 자 인가? 그 안에 하나님이 있는 자인가? 하나님이 없는 자인가?입니다.
있으면 축복이요. 없으면 불행이고, 있으면 은혜이고, 없으면 저주이지요. 믿는 사람들은 세상을 구분할 때, 하나님이 있는 자, 하나님이 없는자로 나눕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안에 하나님이 있음을 믿습니까? 정말 믿습니까? 그냥 ‘아멘’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내 안에 나는 하나님을 계시는 것을 나는 믿는가? 라고 질문을 던질 때, ‘예스’ 나는 믿습니다! 라고 고백할 수 있는가요?
예스라고 하면, 증거에 대한 증거는 무엇일까요?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이 들린다는 것이죠. “너희 듣는 말을 새겨 들으라” 그 말이 들린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니까 의미 없이 들리는 것을 ‘소리’ 라고 말한다면, 의미 있게 들리는 것을, ‘말씀’이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에게나 이해되는 것은 아니고, 들을 귀를 가진 자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이해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도 ‘소리’를 듣고 가는 사람이 있고, ‘말씀’을 듣고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소리는 의미 없이 귀에 들리는 것이고, 말씀은 의미 있게 다가와 그 의미가 내게 들린다는 것입니다.
소리는 의미 없기 때문에 안 들리는 것이고, 그리고 안 들리니까 더 이상 안 들을려고 한다는 것이죠. 반면 의미 있게 들리는 것은 들리기 때문에, 그리고 그 말씀이 더욱 재미있기 때문에, 더 귀를 종끗 세워서 더 들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있는 자는, 하나님이 있는 자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하나님이 없는자는, 더 이상 들리지 않기 때문에, 있는 것 까지도 빼앗긴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만히 보면 우리에게는 네 종류의 사람을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안에 있고, 없고를 생각해서, 먼저, ➀있는데 없는 것처럼 사는 사람이 있고, ➁있는데 정말 있는 사람으로 사는 사람이 있고, ➂없는데 있는 것처럼 사는 사람이 있고, ④없는데 정말 없는 사람으로 사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있는데 없는 사람은, 언젠가는 하나님이 그 사람을 부르시겠죠. 그리고 예수 믿게 하시고 그 구원의 은혜를 깨닫게 하시겠지요. 있는데 정말 있는 사람은 예수를 믿고 그 은혜에 감사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찾고자 하는 열정과 사랑으로, 헌신하고 봉사하며 사는 사람이겠죠.
없는데 없는 사람으로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을 우리는 자연인이라고 말을 합니다. 없는 사람처럼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멀리하고, 마음껏 세상을 즐기며 사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가장 심각한 것은 무엇일까요? 없는데, 있는 것처럼 신앙 생활하는 사람이 아닐까요? 교회 안에서도 있을 수 있습니다. 아예 없다고 이야기 하면 되는데, 없는데도 있는 것처럼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죠. 사실 이런 분들을 우리는 ‘신앙인’이라고 말하지 아니하고, ‘종교인’이라고 말을 합니다.
여러분, 없는데 있는 것처럼 종교생활을 하는 것만큼, 피곤하고 힘든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있으면, 하나님 때문에 힘들어도 힘들지 않습니다. 넘어져도 곧 일어설 수 있습니다. 어려워도 하나님 때문에 견딜 수 있고, 이겨 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즐겁습니다. 행복하고요. 기쁩니다. 하나님을 알아 가면 알아갈수록 우리는 그 기쁨으로 만족하며 살아갑니다. (아멘)
그런데 없는데, 있는 것처럼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힘듭니다. 괴롭습니다. 그리고 짜증나지요.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행복해야 하는데, 자꾸 그 삶과 멀어지게 되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진정 하나님을 믿습니까?(아멘) 그러면 진정 하나님의 나라의 비밀을 오늘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우리는 어떤 사람을 없다고 단정 지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는 것입니다. 죽을 때 까지, 그리고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 앞에 내가 스스로 나갈 수 없는 나를 하나님이 먼저 나를 부르시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도록 만들어 주셨다는 것입니다.(아멘)
그것은 내가 하나님을 선택하여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여, 하나님이 믿어질 수 있도록 하나님이 그렇게 나를 만들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복인 줄 믿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의지에 따라 많은 사람들 중에 내가 선택되어지고, 그리고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강권적인 부르심에 순종할 수밖에 없고, 내가 죄인임을 깨닫게 하시고, 나를 회개 시키며, 기쁜 마음으로 예수님을 영접하게 만들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한 것이 아니라, 누가 그렇게 하셨다고요?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예) 어떤 집사님이 그런 말씀을 하세요. 정말 나쁜 사람인데, 교회에 목사님이시고, 교회 장로님이신데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아니하고, 너무 잘 되는 이유는 뭔가요?
그때마다 저는 그런 말씀을 드립니다. 예수를 믿으면 정말 계속 나쁜 사람이고, 계속 악한 사람은 없겠지만, 혹시 정말 믿는데, 그분이 나쁜 사람이고 악한 사람이면, 하나님이 가만히 내 두지 않겠지요. 깨닫게 하시고, 알려주시고 그래도 깨닫지 못하면 때려서라도 가르치겠지요.
그런데 하나님이 그 사람하고 아무관계가 없다면, 하나님의 관심 밖입니다. 그냥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가장 무서운 벌은, 내버려 둠입니다. 내 자식이기에 때려서라도 가르치지만, 내 자식이 아니기에 하나님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이 땅에서는 그만 저만 살 수 있겠지만, 그것이 다 이겠지요 라고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 안에 있는 자와 없는 자의 차이입니다. 있는 자로 하나님에 의해 책정되고, 구속함을 받은 성도는 때때로 시험에 빠질 수 있으나, 하나님은 끝까지 그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은총 속에서 영원히 타락하지 않게 만드십니다.
그리고 그 택함 받은 사람을 끝까지 견디게 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도록 분명히 해 주심을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안에 정말 그분이 살아 계심을 믿습니까? 있는자는 더 사모함이 있고, 더 갈급함이 있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 늘 거하는 사람인줄 믿습니다.
그래서 있는자는 더 받게 되는 줄 믿습니다. 늘 그 사모함으로 내 안에 계신 그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분과 영원히 살겠다고 고백하실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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